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19화 (19/193)

미궁(4)

지네의 턱이 기병 하나의 목을 잘근잘근 씹는 동안, 나머지 둘은 창을 쉴새 없이 찌르며 지네를 구멍 숭숭 뚫린 두부로 만들었다.

오토마톤들이 어지러이 뒤엉키는 도중, 기수를 잃은 늑대는 지네를 공격하는 대신 원흉을 향해 최후의 돌격을 감행하는데.

탕!

칼슨의 샷건에 기세가 한풀 꺾이고, 함께 달려든 아웅과 앨런에게 사냥감처럼 붙잡혔다.

“괜찮나? 물리면 아프다.”

“영혼석 꺼냈어요. 이제 놓고 기병을 견제해주세요.”

아웅이 걱정스러운 말을 전부 내뱉기도 전에 앨런은 손으로 늑대의 영혼석을 꺼냈다.

일행 둘이 지네를 거의 쓰러트린 기병을 견제하는 한편, 앨런은 영혼석의 입력창을 띄웠다.

불투명한 안개가 솟아오르고, 별문자가 은하수처럼 그 안에서 반짝였다.

앨런의 손가락이 별 사이를 빠르게 움직이며 익숙한 패턴을 찾았다.

‘지난번에 여기를 지우니 공격성이 사라졌지. 그럼 바로 밑에 붙어있는 줄은 대상을 지정하는 문구일 확률이 높겠지.’

파랗게 빛나는 손가락으로 별의 무리를 지우고, 활짝 열린 늑대의 가슴에 영혼석을 되돌려줬다.

마력을 사용해서 전기 충격처럼 동력원에 자극을 가하자 늑대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하얀색으로 빛나던 늑대의 눈이 기병을 보며 새빨갛게 물들자, 칼슨이 신기해하며 다가가는데.

딱!

“얘, 왜 이래?!”

뒤에서 잡아당긴 앨런 덕분에 늑대의 입질을 피한 칼슨이 당황하는 사이, 앨런과 눈빛 교환을 한 아웅이 바람의 벽을 응용, 늑대를 기병이 있는 곳으로 밀어냈다.

창에 한 번 찔리면 전투 불능에 빠지기 쉬운 사람과 달리, 오토마톤인 지네는 동력원이 멀쩡하니 몸통이 반 토막 났어도 분투하고 있었다.

칼슨이 물릴뻔한 팔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별문자 조작해서 우리 편 만든 거 아니었어?”

“적을 개별로 인식하고 공격하라는 명령보다는 제외 대상 말고 전부 적대하라는 편이 입력하기 수월하죠. 그 부분을 지워서 적대 대상을 무차별적으로 바꾼 것뿐입니다.”

“아, 분노조절장애···. 아니, 늑대니까 광견병에 가깝겠네.”

마침 아웅에게 밀려난 늑대는 지네를 거의 끝장낸 기병의 늑대를 깨물었다.

콰직!

다리를 물어뜯자 기수의 균형이 흔들리고, 겨우 늑대의 머리를 창으로 꿰뚫지만, 동시에 접근한 칼슨의 샷건에 허리를 내줬다.

앨런은 서로 물어뜯느라 절뚝거리는 늑대 둘을 마력 탄환으로 간단히 무력화했다.

이제 남은 기병은 하나. 오토마톤이 늘 그렇듯 도망가지 않고 과감하게 돌진했다.

기병은 예전에 만났던 개체처럼 벽을 밟고 점프해서 칼슨의 머리를 노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수는 뛰어올라 창을 치켜들었고, 늑대는 바닥을 낮게 미끄러지며 사타구니를 노렸다.

잔혹한 공격에 칼슨은 어디를 막아야 할지 머뭇거렸으나, 동료를 믿고 코앞까지 당도한 기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콰앙!

마석가루 섞인 화약이 거세게 폭발하며 기병의 몸이 높게 떠올랐다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추락했다.

비싼 탄환이지만 칼슨은 쪼들리는 미궁탐험가가 아니라 대학생이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깟 금액에 머뭇거리면 목숨을 잃으니 좋은 태도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늑대는 샷건의 반동 때문에 무방비가 된 칼슨의 급소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는데.

툭!

어느새 접근한 앨런이 지팡이로 건들자 몸이 살짝 떠올랐다.

거세게 발버둥 치는 목표라도 붕 떠 있으면 맞히기 쉬운 법. 아웅이 만든 바람의 칼날이 늑대를 수직으로 훑고 지나갔다.

전투가 끝나자 엉거주춤한 자세의 칼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 다녔던 그 어느 때보다 땀을 많이 흘렸고, 얼굴도 잘 익은 사과 같았다.

“후, 다행이야.”

“매직스틱. 성능 좋다.”

“아직 그거 안 달아도 팔팔하거든.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아는 거야?”

그 사이, 앨런은 마정석을 하나 발견했다. 반짝이는 때깔부터가 밋밋한 마석과 확연한 차이가 났다.

마정석과 비교해서 그렇다는 이야기지 마석 역시 현대문명에서 빠트릴 수 없는 원동력이었다.

앨런이 쪼그려서 마정석을 지긋이 보고 있으니, 칼슨이 어깨를 두드렸다.

“가지고 싶으면 가져.”

“그래도 될까요?”

“어차피 너 아니었으면 저것들 잡지도 못했어. 네가 오토마톤을 조작하지 않았다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잖아.”

앨런은 겸양의 말을 내뱉는 대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겸손도 너무 과하면 주변인을 불편하게 했다.

복귀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5층에 올라오니 공기마저 상쾌하게 느껴졌다

다수의 오토마톤이 눈치채지 않을까 걱정하던 덜그럭거리는 바퀴 소리조차 정겨웠다.

5층을 중간쯤 돌파하자, 아웅이 뒤를 살피는 앨런에게 손을 까닥였다.

“저기.”

그곳에는 헐벗은 시체가 벽에 반쯤 파묻혀있었다.

질척한 늪이라면 당연한 일이나, 미로의 벽은 파괴할 수 없는 수수께끼의 암석이며 당연히 매우 단단하기에 지금의 광경은 낯설었다.

하지만 미궁탐험가가 되었으니 익숙해져야 하는 누군가의 말로기도 했다.

죽은 생명체와 부서진 오토마톤은 누군가가 옮겨주지 않는 이상 벽에 금방 빨려 들어갔다.

마치 장에 흡수되는 음식처럼.

슬라임이 포용하는 유기체처럼.

그래서 몇몇 학자는 미궁 전리품이 사람을 꾀어내기 위한 미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에 동조하는 이들도 있지만, 돈의 논리와 문명의 발전이 주는 혜택에 감화된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앨런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도중, 시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아서 방금 봤던 것이 꿈인가 싶기도 했다.

“방금 나체였지?”

“네. 누군가가 벌써 장비를 챙겨갔더군요. 시체의 발견자가 장비를 챙기는 건 일종의 관례니까요.”

“음···.”

칼슨의 답답함은 다른 이유로 인해 발생했다. 오토마톤에 의해 죽었다면 안타까운 죽음이나, 같은 탐험가의 손에 끝장났다면 완전범죄니까.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후···. 괜히 탐험가를 제2의 몬스터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니까. 브레이커는 가장 큰 탐험가조합이라 그나마 파티 매칭에 신뢰도가 높아서 다행이야.”

물론 방심은 금물이었다. 지금이야 앨런과 다른 둘 사이에 신뢰가 쌓였다지만, 처음에는 벽을 세우고 얼마나 눈치를 봤는지.

누군가의 최후를 배웅하며 액땜을 한 덕분인지 2층에 올라갈 때까지 전투는 없었다.

마침 퇴근 시간인지 주로 1~2층에 머무는 고철수집가들도 교대 인원과 자리를 바꾸거나, 누군가와 흥정을 마친 후 위로 향했다.

그들은 아웅이 끄는 묵직한 수레를 보며 잠시 시선을 고정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미궁탐험가의 수칙 중 하나.

함부로 남의 전리품을 탐내지 말 것.

아웅의 수레에 실려 있는 오토마톤은 훨씬 아래에서 등장하는 종류였고, 그건 1~2층에 죽치고 앉아있는 탐험가들보다 전투력이 우월하다는 증거였다.

마나와 피로 먹고사는 직업답게 성정들이 거치니 웬만하면 시빗거리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서 검은 문을 통과하니 밤하늘이 앨런을 반겼다. 대기오염과 빛 공해 때문에 별은 자취를 감췄지만, 까만 커튼만으로도 마음에는 평안함이 깃들었다.

브레이커로 향한 앨런은 정산실로 들어갔다. 정산은 중요한 문제기에 밤에도 근무자가 있었다.

작은 박쥐 날개를 달고 있는 직원은 빠르게 정산을 마쳤고, 각자에게 수수료를 제외한 150만 코인이 떨어졌다.

앨런이 로비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으니, 칼슨과 아웅도 맞은편에 착석했다.

“더 가져가지? 기여도만 따지면 네가 압도적이잖아.”

“괜찮습니다. 혼자였다면 대부분을 버리고 왔을 겁니다.”

앨런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 혼자 내려갔다면 오토마톤 대부분을 버리고 왔을 게 뻔했다.

게다가 일행은 짐꾼도 아닌 전투원이며, 힘쓰는 일들도 그들이 도맡았으니 똑같은 비율로 나눔이 옳았다.

칼슨과 아웅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기를 머금었다.

“식수 생성기나 에너지바 등 탐험물자를 구매한 비용도 꽤 됐는데 열흘 동안 200만이나 벌었네. 나중에 취업하기 어려우면 이쪽으로 진로를 틀까?”

우스갯소리를 하던 칼슨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앨런, 인증을 받은 교육기관에서 마법공학에 대해 배운 적 없지?”

“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학생들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아예 달랐거든. 주위 애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책을 사거나, 교수님에게 먼저 매달려. 그런데 너는 쉬는 시간도 쪼개가며 직접 부딪쳤지.”

“눈썰미가 좋으시군요.”

“네가 직접 만든 지팡이도 하나의 단서였어. 기성품 중에는 그런 디자인이 아예 없거든. 그렇다고 공방제작품이라고 하기엔 마감이 조잡했고.”

“조잡? 나쁜 말.”

아웅의 말에 칼슨이 오해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너무 진지하고 필사적인 모습이라 역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앨런 정도면 미궁탐험가보단 메이즈시티 시립대 학생이 어울려서 꺼낸 말이야.”

“말씀은 감사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요.”

“···.”

칼슨 역시 대충 눈치챘기에 말을 아꼈다.

미궁탐험가 자격은 시장의 논리에 의해 주어진다지만, 결국 임시 신분증에 불과해서 여러 제약이 따랐다.

금융기관에 계좌를 개설할 수 없는 문제와 대학에 입학할 수 없다는 현실도 제약의 일부였다.

그래도 앨런은 자신이 있었다. 결국, 대학은 더 효율적인 배움을 위해 방문하는 장소가 아니던가.

랑카에서 쓰레기장을 뒤지며 쓸만한 책을 찾아다녔던 집념과 지식을 얻기 위한 욕망은 여전히 그대로, 아니 더욱 커진 상태였다.

그러니 장소는 다르더라도, 약간 멀리 돌아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

마력과다증으로 인한 육체의 피폐함과 수명의 개선도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나갈 역에 불과했다. 앨런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안개처럼 두루뭉술하던 마음을 구체화한 앨런은 왼쪽 눈을 쓰다듬었다.

“이참에 아카샤의 눈에 도전해볼까요?”

“역사상 최고의 마법공학자인 카탄도 못 이룬 업적을? 그래, 응원할게. 그의 칭호가 너에게 가기를. 혹시라도 잘 되면 우리 잊지 말고.”

“미궁을 계속 내려가며 지식을 찾고 비밀을 풀다 보면 그리될 겁니다.”

그렇게 이름이 널리 퍼지면 부모가 있는 하늘에도 닿으리라. 아니면 머리에 구멍을 뚫어준 노박을 통해 잘 있다는 소식을 벌써 들었을 수도 있고.

서로의 미래를 축복해주며 일행과 헤어진 앨런은 캡슐 호텔보다 시설이 좋은 호텔을 찾았다. 자신에 대한 선물이었다.

따끈한 물로 몸을 데우니 절로 졸음이 쏟아졌지만 그대로 잘 수는 없으니 견뎠다. 겨우 몸을 닦고 부드러운 침대에 도달하자마자 앨런의 기억은 끊겼다.

*

‘몇 시간이나 잤지?’

앨런은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11시에 눈을 붙였는데 지금은 12시였다.

“1시간밖에···. 아니, 하루가 지났구나.”

오래 잤기에 느껴지는 뻐근함과 미궁에서 혹사당한 근육이 시너지를 내서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본의 아니게 연장도 안 하고 무임 숙박을 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미궁탐험가에게 이런 일은 다반사며, 이 호텔은 브레이커와 제휴를 맺은 사업체이기에 앨런의 통장에서 자동으로 숙박비를 빼갔다.

“으음···.”

몸을 뒤척이자 앨런의 입에서 저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들기 전에는 진리와 아카샤의 눈에 대한 큰 꿈에 대해 논의했지만,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머릿속에 박혔다.

미궁 탐사도 좋고, 별문자 공부도 좋은데 일단 허한 육체에 기운을 불어넣을 수단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다음 계획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서점 그리고 제약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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