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개체(1)
미로에는 교차로도 있고 막다른 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일자형의 통로가 많다.
이동하는 도중 맨홀에서 오토마톤이 튀어나오면, 혹은 통로에서 만나게 되면 무조건 해치워야 했다.
달아나는 방법도 있지만, 미로에서의 사냥을 생업으로 삼는 탐험가 절대다수는 오토마톤보다 발이 느렸다.
그건 앨런도 마찬가지, 아니 마력과다증 때문에 평균보다 느렸다. 그렇기에 오토마톤과의 조우는 자연스럽게 전투로 연결되었다.
‘원래 네 발이 두 발보다 빠른 법이지.’
앨런은 지팡이를 들고 앞을 노려봤다. 굽은 뿔 대신 원형의 톱날을 달고 있는 산양 셋이 일렬횡대로 돌진했다.
다각다각!
위이이잉!
금속 발굽과 톱날이 자아내는 소리는 소름이 쭈뼛 돋게 할 만큼 사나웠다. 앨런이 산양의 돌진을 허용한다면 다짐육이 될 건 자명했다.
“사슴, 앞으로. 돼지는 대기.”
작은 뿔을 탄환처럼 발사하는 사슴이 통로 가운데에 떡 하니 섰다. 멧돼지는 앨런의 앞을 막으며 비상상황에 대비했다.
산양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발사.”
드릴 같은 뿔이 맹렬한 기세로 날아갔다. 원래라면 뿔과 머리 사이에 달린 와이어가 공격당한 적의 행동을 제약하지만.
카드드득!
육중한 질량으로 돌진하는 산양들을 제대로 막을 순 없었다. 매끄럽던 사슴의 장갑이 고철로 변하는 과정에서 화려한 불똥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튀었다.
함께하던 사슴이 조각나는 광경에도 앨런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침착하게 레이저포인터로 왼쪽의 산양을 콕 찍었다.
“돼지. 돌격.”
앨런의 앞을 지키던 멧돼지가 옆구리를 훤히 드러낸 산양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다. 맞붙기 직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단단한 머리 장갑을 내밀었다.
까앙!
매우 맑은소리는 타점이 정확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대로 벽까지 밀려난 산양에게 다시 한번 돌격하는 멧돼지.
사슴을 해치운 산양 하나가 회전 톱날을 들이밀며 뒷다리를 공격해보지만, 앨런의 마력탄환 때문에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침묵했다.
콰직!
멧돼지의 목표였던 산양은 벽과 단단한 머리 사이에서 납작한 고철로 변했다. 몸 안의 케이블과 회로들이 내장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그러나 산양은 처음부터 세 마리였고, 남은 하나는 앨런을 향해 돌진했다.
꽤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서 톱날의 바람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했다.
앨런은 위기상황에서도 무심한 눈빛과 표정을 고수했다. 대신 차분한 손동작으로 레이저포인터를 켰다.
“물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어둠에서 웅크리고 있던 무언가가 산양을 덮쳤다. 정확히 붉은 점이 가리키는 목을 물어뜯고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언제까지고 회전할 줄 알았던 톱날이 멈추자 앨런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헤드램프의 불빛이 아직도 케이블을 잘근잘근 씹는 표범을 비췄다.
“이리 모여.”
표범과 멧돼지가 명령에 순순히 따랐다. 산산이 분해된 사슴은 그렇지 못했지만.
앨런은 쪼그려 앉아서 산양의 목을 살폈다. 말로만 명령내리기보다는 레이저포인터로 정확한 공격 위치를 지정해주는 편이 훨씬 결과가 좋았다.
낑낑대며 전리품을 챙긴 앨런은 수레와 멧돼지를 연결했다.
끼익끼익!
다리가 망가진 멧돼지는 움직일 때마다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고, 절룩대기도 했다.
“힘내. 조금만 더 가면 쉴 수 있어.”
앨런은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도 말을 걸었다. 이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원래 세 명이 함께 다니다가 하나로 줄어드니, 전리품이 세 배로 늘어났지만, 그에 따라 위험성도 세 배로 늘어났다.
하이리스크 그리고 하이리턴은 어느 영역에서나 통하는 진리였다.
당연히 피곤함도 세 배로 늘어나서 붉은 꽃이 아니었다면 체력의 한계 때문에 당일치기만 했을 수도 있었다.
조금 더 걸으니 쉴 수 있는 장소가 나왔다. 널찍한 공터에는 미궁탐험가 무리가 끼리끼리 모여있었다.
5층에서 6층으로 내려가는 길 근처, 탐험가들이 보통 야영지라고 부르는 장소에 도착한 앨런은 수레에 기대앉았다.
운반할 수 있는 용량에는 한계가 있기에 껍데기를 몽땅 옮기는 대신, 마석과 영혼석 그리고 집적회로를 가장 먼저 챙겼고, 덕분에 수레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내부 공간은 남았고, 그럼 표범은···.’
오토마톤의 공격에 당한 표범의 이곳저곳이 살짝 오목해졌으나, [경화]가 내부를 지켜줘서 전투에는 지장이 없었다.
룬문자를 믿고 계속 표범만 앞에 세웠다면 벌써 박살 났을 테지만, 추가로 오토마톤을 다루게 되면서 그럴 확률은 크게 줄었다.
앨런은 멧돼지를 닮은 오토마톤의 장갑을 벗기고 룬펜을 움직였다.
이 녀석이 전위를 맡고, 표범이 빈틈을 노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이미 유명을 달리한 풍뎅이와 사슴의 뒤를 잇는 3대째였다.
첨단소재를 사용하면 훨씬 강화할 수 있으나, 아직 여건이 따라주질 않는 점은 매우 아쉬웠다.
수리를 마친 앨런은 멧돼지에게 명령해서 천천히 걷게 했다. 끼익 소리를 내던 관절 부위가 부드러워졌다.
“충분해. 앉아.”
앨런의 말에 서 있던 표범과 멧돼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수레, 표범, 멧돼지가 삼각형을 이루며 앨런을 감쌌다.
“후···.”
앨런은 숨을 길게 내뱉으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별문자나 룬문자를 다룰 때는 언제나 이랬다. 세심한 손길과 정확한 마력통제력이 필요하기에 체력과 심력이 쭉쭉 깎여나갔다.
게다가 앨런은 마력과다증이라 통제하려면 몇 배나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반대로 말하면 앨런은 족쇄를 차고도 이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뇌와 손을 혹사해서 기운이 빠진 앨런은 식사 준비를 했다.
부피를 줄이기 위해 들고 다니는 에너지바는 압축한 영양소 덩어리라 맛도 없고 단단하지만, 물에 넣고 조미료와 함께 끓이면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열원이 없는 미로는 기본적으로 서늘하기에, 끓인 수프를 마시면 지친 몸도 따뜻해지는 부가 효과가 있었다.
다음으로 배낭에서 보온병을 닮은 물통을 꺼냈다. 식수생성기라고 불리는, [응결]과 [정화]를 함께 사용하는 마도구 안에서는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났다.
‘언제쯤이면 룬문자 두 개를 상호작용하게 만들 수 있으려나···.’
배낭에 달린 냄비를 꺼낸 앨런이 물병을 그 위로 기울이자, 청량함을 담은 식수가 쫄쫄 흘러내렸다.
‘다음 차례는 받침대에 냄비를 올리고 에너지바를 퐁당.’
마지막으로 [화염]이 적힌 철판을 냄비 아래에 두고, 마력을 담은 손가락으로 자극을 가했다.
화륵!
미로의 칙칙한 돌벽에 밝은 빛이 깃들고, 축축한 공기에도 따스함이 맴돌았다. 차가워진 폐에 온기가 깃들자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수저로 물렁물렁해지기 시작한 에너지바를 뭉개고 있으니, 누군가가 멀찍이 떨어진 장소에서 말을 걸었다.
“혹시 마법공학자면 부탁 좀 해도 되나?”
“무슨 용무입니까?”
미궁의 규칙 중 하나는 다른 파티나 사람에게 너무 접근하지 말 것. 그것을 잘 따르는 중년 남성은 앨런이 화답하자 머리를 긁적였다.
“아까 싸우다가 오토마톤이 배낭 위로 떨어졌는데, 하필 물통이 망가져서 위로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거든. 그런데 마침 그쪽이 오토마톤을 수리하는 모습을 봤지.”
앨런의 눈에 겉이 살짝 깨진 식수생성기와 저 멀리에서 대답을 기다리는 남성의 일행이 보였다.
미궁 저 밑에는 식수를 공급할 수단이 있다지만, 1~10층 구간인 미로에는 수원이 없었다.
게다가 미궁 탐험은 피로한 일이고, 각자의 일정을 고려해서 뭉치기에 지금 올라가서 식수생성기를 챙기면 목표량을 채우기 힘들 수도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마침 마법공학자를 만났으니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앨런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은 알겠습니다. 고칠 수 있는 물건인지 살펴야 하니 그곳에 놔두세요.”
“고마워.”
천천히 접근한 남성이 식수생성기를 바닥에 놓고 뒤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앨런이 그걸 챙겨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왼쪽 눈의 투시 능력을 발동, 어떤 부분이 망가졌는지 검사했다. 앨런의 것과 달리 [응결]만 새겨져 있고, 정화는 내부의 필터가 담당하는 물건이었다.
‘룬문자는 멀쩡하고, 다른 부품은···.’
앨런이 천천히 살펴보고 있으니, 남성이 앨런을 호위하듯 일어서 있는 표범과 멧돼지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마법공학자라 가능한 건가? 내가 알기론 가성비가 최악이라고 하던데···.”
“그 점은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도 수익이 얼추 나오긴 하더군요.”
앨런이 마력과다증이 아니었다면 시도도 못 했을 방법이었다. 진짜 그랬다면 차라리 아르바이트하는 편이 훨씬 수입이 좋았으리라.
말을 받아주면서도 문제의 원인을 찾은 앨런은 룬펜을 꺼내 끊어진 마력회로를 이어줬다.
말로 표현하면 매우 간단한 과정은 남성에게는 오르지 못할 나무였다. 애초에 모두가 가능했으면 마법공학자라는 직업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인 마력사용자와 마법공학자를 가르는 기준은 많지만, 기본적으로 마력감응과 마력통제 요구치 자체부터 달랐다.
수리를 마친 앨런이 물통을 기울이자 물이 졸졸 흘러나왔다.
앨런은 아까 건네받을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물통을 건네줬다.
“끝났습니다.”
“고마워. 보수는 얼마나 줘야 할까?”
마도구는 미궁 공략의 핵심이며, 마법공학자가 탐험대에 포함되는 이유였다. 고장 나서 쩔쩔매거나 복귀하느니, 그 자리에서 고치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특히, 몇 달씩 걸리는 원정에서는 더더욱.
물론, 수가 적은 만큼 귀한 몸들이라 아무 파티나 마법공학자와 함께할 순 없었다. 저층을 주로 다니는 탐험가들이라면 말해봐야 입만 아팠다.
“괜찮습니다. 넣어두세요.”
앨런은 남성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고작 선 하나 그어주는 행위는 앨런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기에 보수를 받기 애매했다.
게다가 남성의 분위기는 뭔가 익숙했다. 저 나이라면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을 테고, 그 모습이 앨런이 아는 누군가와 겹쳐 보여서 그냥 봉사한 셈 치고 싶었다.
“이거 참. 이러니까 오히려 더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럼 이건 어때? 내가 소식, 아니 뜬소문을 들었을 수도 있는데, 요즘 누군가가 오토마톤을 조종한다고 하나 봐.”
앨런은 남성과 표범을 말없이 번갈아 쳐다봤다. 마치 내 이야기냐고 묻는 것처럼.
“아니, 아니. 말이 그렇게 되나? 어쨌든 그쪽 들으라고 말하는 게 아니야. 원래 이곳 5층에서는 오토마톤이 많아야 두셋 몰려다니는 거 알지?”
“네. 6층부터 그 수가 많이 늘어나죠.”
지난번에 6층에서 만난 기수 셋. 말이 셋이지 기수와 늑대를 분리하면 여섯이었다.
“누가 5층에서도 6층처럼 몰려다니는 모습을 봤다는 소문이 있어.”
“조종이라는 의미는 범인이 의도적으로 상황을 조성했다는 말인가요?”
“일부러 오토마톤을 자극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오토마톤을 조종하는 오파츠를 얻었을 수도 있지.”
“어떤 능력을 지녀도 이상하지 않은 오파츠라면 가능하죠.”
“6층으로 가는 계단에서 홀로 숙박하는 사람에게는 농담으로 들리려나? 아무튼, 그런 소식이 있다 그거지. 그럼 젊은 친구, 태양이 그대를 반기길.”
“태양이 그대를 반기길.”
그렇게 남성은 일행이 기다리는 장소로 돌아가고, 앨런은 그의 말을 곱씹어보다가 칼슨과 함께하며 발견했던 시체를 떠올렸다. 하필 그때의 발견 장소도 5층이었다.
그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사람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미로에서도 가끔 새로운 발견을 할 정도로 미궁은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
‘범인이라고 꼭 사람일 필요는 없지. 어떤 현상의 징조일 수도 있고.’
생각을 마친 앨런은 완성한 수프를 천천히 마셨다.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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