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23화 (23/193)

특이개체(2)

사람의 이마 부분에서 뿜어지는 빛이 앨런의 얼굴에 그대로 직격했다.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나 상대에게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어 보였다.

“너, 혼자냐?”

“보다시피요.”

머리를 닭 볏처럼 세운 엘프의 물음에 앨런은 차갑게 대꾸했다. 워낙 차분한 어조라 그가 느꼈을지는 모르지만.

“미로에서 오토마톤을 데리고 다니네···.”

엘프는 잠시 자신의 일행과 숙덕거리더니 재차 질문을 던졌다.

“오는 길이 어렵진 않았고?”

“그렇진 않았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서 묻는 겁니까?”

엘프는 앨런의 물음을 무시하며 일행과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앨런은 질문에 담긴 저의를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5층 끝에 있는 야영지에서 아저씨가 말했던 소문의 원인을 찾으러 온 파티였다.

거짓이라면 허탕이 그들을 반겨도, 진실이라면 꽤 괜찮은 벌이가 되어줄 것이다.

대기업들은 언제나 새로운 발견물을 비싸게 사들이니까. 그게 물건이든, 지식이든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럼 저쪽으로 가볼까.’

앨런이 관상학을 믿는 건 아니라도 태도와 인상이 골고루 험악한 사람들과 가까이하긴 싫기에 다른 통로를 선택했다.

지금 이곳은 6층이었다. 아저씨의 경고도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사실 여부도 가릴 수 없는 소문 때문에 원래의 계획을 바꿀 수도 없었다.

사실 5층에서 사냥하면 안정적이긴 했다.

‘일단 안전하고, 할인받은 붉은 꽃을 구매할 자금 정도는 충분히 벌겠지.’

앨런의 목표가 평안한 삶이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아니, 진짜 그랬다면 미궁탐험가는 멀리하고 공방에 취직해서 평범한 마법공학자로 살았으리라.

하지만 자극 없는 삶은 앨런의 취향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쓰레기장을 뒤지며 신문이나 책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던가.

바로 끝없는 호기심과 바깥 세계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즈시티, 더 나아가 미궁은 앨런의 욕구를 충족해주는 최적의 장소였다. 앨런이라는 이름의 화로에 끝없이 장작을 넣어줬다.

무언가에 대한 욕망은 삶의 활력소다.

그렇기에 사람은 움직인다. 매일 도시를 닦는 청소부도, 카페에서 원두를 내리는 바리스타도, 삼라만상에 접속해서 공부하는 대학생들도 나름의 욕망이 있었다.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거나, 더 좋은 향기의 커피를 만들고 싶다거나,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학점을 높이고 싶다거나.

방향은 다를지라도 욕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꿈, 소망 등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원동력에 의해 앨런은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탐험한다.

앨런은 짙은 남색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작은 마정석을 꺼냈다. 표면이 헤드램프에서 떨어져 나온 빛으로 반짝거렸다.

‘확실히 밑에서 만나는 적일수록 전리품이 좋아.’

마석은 더 많은 마나를 내포하고, 영혼석의 안개 같은 입력창도 넓어지고, 마정석이 나올 확률도 높아졌다.

‘마정석은 눈을 위해서도 모아놔야 해.’

혹시 모를 폭주에 대비해서 두 개가 배낭 안에 잠들어있고, 나머지는 브레이커의 금고에 맡겨놨다.

앨런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던졌다. 7층으로 향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해서 계속 움직였다. 입구와 출구는 하나씩이나, 둘을 잇는 길은 여러 개가 있었다.

‘이쪽은 좁은 일자형 통로가 주를 이뤄서 오토마톤을 조종하며 싸우기 적합해. 난입을 예방하기도 좋고.’

미로는 소스까지 핥아먹은 접시와 비슷해서 지도 구하기가 쉬웠다. 삼라만상에도 퍼져있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았다.

물론 용기를 가지고 내려오는 건 별개지만.

마침 앨런의 앞쪽에서 맨홀이 조용히 열리더니 사라졌다. 그 짧은 순간에 밖으로 빠져나온 늑대 기수는 적을 감지하고 붉은 안광을 내뿜었다.

“양, 앞으로. 돼지는 멈춰.”

앨런은 다리가 망가진 산양을 앞세워서 주의를 끌었다. 절뚝거리면서도 뿔 대신 달린 톱날이 세차게 회전하는 모습은 사뭇 위협적이었다.

미궁 밖의 존재가 지닌 마나로 별문자를 썼기 때문인지 기수는 양을 적으로 인식하고 창을 내질렀다. 단숨에 꿰뚫리는 몸통 그리고 단단히 틀어박힌 창대.

“돼지. 돌격.”

멧돼지가 쿵쿵거리며 달려들었다. 마침 산양을 찌르느라 몸의 방향을 틀었던 기수는 쉽게 옆구리를 내주었다.

까앙!

이번에도 청명한 소리가 들리며 기수의 몸이 높이 떠올랐다. 멧돼지가 떨어져 내리는 기수에게 다시 박치기를 시도할 때쯤, 앨런은 레이저포인터를 꺼냈다.

늑대의 목에 붉은 점이 찍히자 표범이 단숨에 튀어 나갔다.

“살살 물어.”

이 명령을 이해할까 싶었지만, 다행히 늑대의 목이 뽑히지는 않았다.

표범이 제 입과 몸무게로 늑대를 구속하는 사이, 빠르게 접근한 앨런은 지팡이로 늑대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다가 유달리 반발력이 강한 철판을 빠르게 뜯어내고, 팔을 깊숙이 집어넣어서 그 안에 있는 영혼석을 단숨에 꺼냈다.

‘확실히 전리품의 질이 괜찮아.’

마석이 풍기는 기운도 강하고, 영혼석 내부를 떠도는 기류도 짙어졌다.

기수는 완전히 분해해서 귀중한 부품만 챙겼고, 늑대는 상처 없이 잡았기에 망가진 산양을 버리고 아군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앨런은 산양 위에 걸터앉아서 영혼석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표범에게 적용할 때는 오류를 해결하느라 하루 넘게 걸렸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문자만 쓰면 되기에 익숙해질수록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한 시간 좀 넘게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자 영혼석이 새로운 별문자로 뒤덮였다.

전투를 담당하는 별문자는 오토마톤의 형상에 따라 다르고, 애초에 잘 짜여 있기에 건들 필요가 없었다.

앨런은 옆으로 다가오는 늑대를 보며 손가락으로 산양의 몸체를 두드렸다.

‘개조할 때마다 별문자를 일일이 입력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심력 소모도 큰데 다른 방법 없으려나?’

문득 떠오른 의문이었다. 여기에서 해결할 순 없으니, 심장 앞에 달린 재킷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내용을 적었다.

평소의 사색이나 의문이 빽빽하게 수놓아져 있는 페이지 가장 아래쪽에 새로운 문구가 적혔다.

앨런은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영혼석을 들여다보느라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어줬다.

그리고 다시 전진했다. 오늘의 목표는 7층 입구까지 가거나, 시간이 남으면 7층도 주파하는 것이었다.

미로는 돌로 가득 차 있고, 적으로는 오토마톤만 등장하기에 전리품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특히, 앨런이 연구할 만한 물건도 없었다.

미로를 넘어 11층부터 등장하는 지하도시 정도는 도달해야 전리품의 양상이 다양해졌다.

통로는 조용했다. 앨런과 부하들의 발소리, 수레바퀴가 돌돌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이상하게 오토마톤이 보이질 않네.’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며 경계심을 끌어올렸으나, 어쨌든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서 7층 입구에 신속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다음 층으로 향하려던 앨런은 문뜩 발을 멈추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이 없었다.

미궁탐험가 정보를 보면 미로에 있는 야영지에는 파티가 한둘은 있는 게 정상이었다. 미궁 전체로 보면 미로가 가장 작지만, 반대로 드나드는 사람은 제일 많았으니까.

앨런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미궁의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는 요화가 건네준 마스크의 필터를 거쳐서 상큼하게 변했다.

‘표범, 멧돼지, 늑대 그리고 붉은 꽃 덕분에 잠시지만 건강해진 몸.’

객관적인 전력은 칼슨, 아웅과 함께 다닐 때보다 강했다. 그래도 자꾸 보기 드문 현상을 접하니 걱정이 되긴 했다.

이젠 선택의 시간이었다. 원래의 계획대로 탐험을 계속할지, 아니면 오토마톤을 강화해서 복귀할지.

이럴 때는 혼자인 점이 좋았다. 의견 교류할 필요가 없어서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막힘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앨런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우유부단한 게 아니라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전에 무언가가 보였다.

헤드랜턴의 빛이 닿는 부분보다 앞쪽. 검은 안개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사람?’

기수처럼 사람의 형태이나, 마네킹처럼 가냘픈 몸이 아니라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와 닮았다. 게다가 오토마톤 특유의 안광이 없었다.

‘랜턴이 없다.’

미로의 어둠을 극복하려면 무조건 광원이 있어야 했다. 그건 대마법사나 강기를 휘두르는 초인도 마찬가지였다.

앨런은 목소리를 높였다.

“혹시 랜턴이 고장 났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수상함을 감지한 앨런이 지팡이에 마력을 불어넣는 도중.

기이잉!

기사는 말없이 등에 멘 대검을 뽑아 들었다. 날을 따라 톱날이 거칠게 회전하며 공간 전체를 소름 끼치는 소음으로 가득 채웠다.

절그럭거리며 다가온 기사는 대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동작에서 적의가 흘러넘쳤다.

“돼지. 돌격.”

앨런의 명령이 떨어지자 멧돼지가 내달렸다. 전투용 기계는 생물이 가져야 할 마땅한 공포심조차 없었다.

그리고 수직으로 떨어지는 대검. 가만히 놔둔다면 멧돼지가 반 토막 나겠지만, 앨런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지팡이에 모아둔 마력이 탄환으로 변환, 기사의 손목을 향해 쏘아졌다.

퍽!

손목이 오목해졌다. 그러나 기사의 대검은 멈추지 않았다.

까드드득!

지금까지 단단한 이마를 앞세워서 오토마톤을 분쇄하던 멧돼지의 머리가 단숨에 갈려버렸다. 화려한 불똥이 핏방울처럼 마구 솟구쳤다.

멧돼지가 망가진 건 아쉬워도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대검의 톱날이 안쪽의 케이블과 부품에 걸린 지금이 기회였다.

“늑대!”

기사의 발목에 붉은 점이 찍혔다. 다른 곳의 장갑은 너무 두껍기에 그나마 얇은 곳을 노려서 기동력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몸을 낮춘 늑대가 빠르게 접근했다. 멧돼지 옆을 지나가려는 순간.

기사가 멧돼지가 꽂혀있는 대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둔기에 얻어맞은 늑대가 비틀거렸다.

기사는 옆으로 발을 움직이며 대검을 다시 내리찍었다. 멧돼지와 대검의 무게에 납작하게 깔린 늑대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기이이잉!

다시 톱날이 회전했다. 멧돼지를 완전히 양단한 톱날이 늑대에게도 닿았다. 멧돼지보다 덩치가 작은 녀석은 쉽게 썰려 나갔다.

달려드는 둘을 처리한 기사는 앨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곳에는 어둠을 밀어내는 푸른 빛만이 가득했다.

앨런은 기사와 눈이 마주친 순간, 지팡이 속에서 날뛰는 마력을 해방했다. 출력제어기가 제거된 마력 탄환은 포탄이 되어 날아갔다. 빛줄기가 날아가는 것 같기도 했다.

지팡이를 라이플처럼 겨누고 있는 앨런은 붉게 달아오른 끝 너머를 주시했다.

왼쪽 팔과 상반신 일부가 통째로 사라진 기사가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이잉!

아쉽게도 동력원이 망가지지 않았는지 톱날의 가동이 멈추질 않았다.

그래도 누가 승자인지는 결정이 났다. 기사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테고, 앨런은 지팡이의 냉각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기다릴 생각이었다.

고작해야 5분, 그러나 체감상 훨씬 긴 시간이 지나고 앨런은 지팡이를 다시 겨눴다. 아까처럼 기사는 피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탄환은 허공만 꿰뚫었다.

“이건?”

앨런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원래 맨홀에서 등장한 오토마톤은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상처 입은 기사는 널리 퍼진 정보를 비웃기라도 하려는 듯, 바닥에 생성된 맨홀을 통해 달아났다.

이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니면 누군가는 알고 있는데 비밀로 하고 있거나.

불행하게도 앨런에게는 기뻐할 시간이 없었다.

통로 저편에서 붉은 안광이 급속도로 많아졌다. 제일 앞줄에 서 있는 늑대 기수만 넷. 그 뒤는 볼 필요도 없었다.

‘돼지와 늑대는 완파. 표범은 멀쩡하지만···.’

지금은 상대할 수 없는 숫자였다. 앨런을 뒤를 힐끔 바라보며 다른 정보를 떠올렸다.

오토마톤은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없다.

‘맨홀의 정보도 뒤바뀌는 마당에···.’

의심이 솟아올랐지만, 지금은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앨런은 표범과 함께 7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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