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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26화 (26/193)

눈(1)

브레이커의 구급요원들이 상처를 치료해줬어도 앨런의 몸은 충격을 받아서 깊은 휴식을 요구했다.

‘휴식은 치료의 연장선이다. 혹은 수련의 일환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지 않았다. 몸은 소모한 만큼 채워 넣어야 제대로 작동하지, 함부로 막 굴렸다가는 성장점이 닳아 없어질 수도 있었다.

신체강화에 일가견 있는 무인이나 전사라면 모를까, 원래부터 앨런은 몸이 약했지 않은가.

그 결과, 침대에 눕자마자 쓰러진 후, 자고 깨고를 반복하며 이틀이 지났다. 이마저도 구급요원의 조치 덕분이지, 혼자 감당해야 했다면 며칠이 걸렸을지도 몰랐다.

눈을 뜬 순간 좁은 잠자리가 보였다. 천장은 낮고, 벽도 팔을 조금만 펼치면 닿을 정도로 좁았다. 하루 숙박 요금이 1만 코인인 캡슐호텔이었다.

‘언제까지 여기에 드나들 수는 없지. 주택은 무리니,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구해야 하는데···.’

브레이커에서 만든 탐험가 신분증이 있으니 가능했다. 다만 도시 외곽으로 갈수록 싸지고, 탐험가 조합이나 미궁에 가까울수록 비싼 건 고려해야 했다.

앨런은 고민을 잠시 접어두고 눈을 가동, 삼라만상에 접속해서 그날의 사건에 대해 검색했다.

[질서정연한 미궁탐험가들, 전부 도시 방위군이 든든하게 지켜보는 결과!]

[미궁탐험가 ○○○,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는 주장은 사실 사기?!]

사람이 그렇게 죽고, 그렇게 체포당했는데도 놀라우리만치 아무 뉴스도 없었다.

‘일상적인 일이라 기삿거리도 안 되거나, 시끄러워지기 싫은 누군가가 조용히 처리했거나.’

당장 다른 뉴스의 헤드라인만 해도 방위군을 칭찬하고 있는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어려웠으리라.

보고 있던 페이지를 닫은 앨런은 가장 궁금했던 내용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브레이커, 검은 옷, 직속 탐험가···.’

이번에도 역시 쓸만한 정보나 뉴스가 없었다.

다만, 검색어 여러 개를 조합하니 짤막한 글이나 댓글이 나오긴 했다. 대부분 커뮤니티 발 소식이라 신뢰도는 떨어지지만, 궁금증 때문에 클릭하게 됐다.

[제목 : 브레이커 배지 달고, 검은 망토 두르고 다니는 놈들 뭐임?]

핸섬오크 : 그건···.

┖바다구울 : 빨리 말해.

┖핸섬오크 : 넌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다.

┖바다구울 : 너도 모른다는 말이잖아. 꼭 모르는 새끼들이 아는 척하더라. 꺼져.

산해경 : 궁금해?

┖바다구울 : 너도 놀릴 거면 꺼져.

┖산해경 : 브레이커 소속 요원일걸.

┖바다구울 : 요원? 국가 정보기관도 아니고 탐험가가 웬 요원?

┖산해경 : 그냥 부르는 말임. 진짜 명칭이나 하는 일은 아무도 몰라. 가끔 위기에 빠진 탐험가를 소속 구분 없이 도왔다는 소식 들으면 착한 친구들 같긴 한데···.

┖바다구울 : 그렇게 들으니까 더 구린데. 너 혹시 그쪽 소속이라 실드 치는 거 아냐? 제이크 마셜 개새끼 해봐.

┖산해경 : 아무리 그래도 착하기로 소문난 사람한테 개새끼라니.

┖핸섬오크 : 제이크 씨. 여기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이크 마셜?’

이번에는 금방 찾았다. ‘제이’까지 찾는 순간, 검색어 자동완성기능이 바로 이름을 완성했다.

그는 브레이커의 회장이었다. 브레이커는 행정상 탐험가 조합으로 등록되어있어서 조합장으로 부름이 마땅하지만, 브레이커의 덩치가 너무 크기에 사람들은 전부 회장이라고 불렀다.

‘제이크 마셜 회장, 새내기 미궁탐험가를 위해 실전 강좌 설립. 미궁탐험가의 유족을 직접 방문해서 보상금과 위로의 말을 전함.’

호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나, 앨런은 직접 보기 전까진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한둘이던가. 만약 그게 아니라 진짜라면 제이크 마셜 회장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눈을 깜빡이며 삼라만상을 종료한 앨런은 캡슐을 빠져나왔다.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커지기만 했다.

외출 준비를 마친 앨런은 얼마 안 되는 짐을 챙기고 캡슐호텔을 빠져나가 은행으로 향했다.

신규등록을 했던 5층 건물 옆, 도로와 인접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었다. 브레이커 소속 탐험가들의 돈과 물건을 보관해주는 역할을 했다.

차례를 기다렸다가 창구 앞에 앉은 앨런은 드워프 은행원에게 신분증을 건넸다.

“신분 확인 완료했습니다. 무슨 일로 방문하셨습니까?”

“잔액 확인과 제 이름으로 보관된 물건을 찾으려고 왔습니다.”

“탐험가님의 이름으로 금고에 보관 중인 물건은 영혼석 하나입니다. 찾는 물건이 맞으십니까?”

“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잔액은 정면에 띄워드리겠습니다.”

표범의 영혼석이 멀쩡하면 보관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다행히도 무사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앨런과 은행원을 가로막는 투명한 벽에 계좌의 잔액이 찍혔다.

1천만 코인.

0에 가까웠던 잔고가 크게 뛰어올랐다. 그때 쓰러트렸던 오토마톤은 미로가 삼켰을 테니, 기사만으로도 저 정도 금액이 들어왔단 의미였다.

아깝다는 생각 반절, 잘 팔았다는 생각 절반이었다.

‘기사도 조사해보고 싶었는데 아깝게 됐어.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으니 거기에 집중하자.’

어차피 손을 떠난 일. 앨런은 저 돈으로 무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 사이 표범의 영혼석이 앨런의 앞에 놓였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완전히 망가진 표범은 새로운 몸이 필요했다. 은행을 나온 앨런은 옆 건물의 2층 상점에서 고양잇과 맹수 형태의 오토마톤 골격을 주문했다.

직원은 마침 재고가 있다고 말하며 잠시 기다려달라고 했다.

“추가로 필요하신 물건이 있으십니까?”

“혹시 공방을 대여할 수 있는 장소가 근처에 있습니까?”

본인의 장비를 마련하고 길들이는 편이 가장 좋으나, 그 정도로 자금이 모이진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누군가가 갖춰놓은 설비를 빌리는 게 최선이었다.

앨런의 물음에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본 건물 지하에 기초적인 마법공학 공방이 있습니다만, 찾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하자라도 있습니까?”

“미로 같은 저층을 주로 다니는 마법공학자를 위해 마련했는데···.”

직원이 잠시 망설였으나, 앨런이 계속 쳐다보니 말을 이었다.

“그곳을 다니는 분들이면 수작업보다 차라리 기성품을 사는 편이 가격이나 성능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저층을 벗어난 분들이면 더 시설이 좋은 공방을 대여할 수 있거나, 소유하고 계시고요.”

“기본적인 설비만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도구가 중요하긴 하나, 없으면 없는 대로 진행해야 했다. 미로의 오토마톤은 그런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으니까.

“그럼 자격이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분증을 잠시 보여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직원의 인공 안구가 푸른 빛을 내며 신분증을 스캔했다.

“앨런 님은 최근에 조건을 충족하셔서 대여하실 수 있습니다. 공방 앞에서 신분증을 찍으면 입장이 가능한데, 일일 대여료를 받으니 계좌 잔액을 먼저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예상 범위 안이었다. 사실 공짜는 기대도 안 했다. 어디서든지 황금만능주의는 팽배하고, 메이즈시티는 그 풍조의 최선두를 달리는 도시였으니.

잠시 상점을 구경하고 있으니, 직원의 눈이 새파랗게 물들었다. 누군가와 통신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요청하신 오토마톤은 지하의 공방 앞에 배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희는 탐험가님의 편의를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앨런은 빠르게 지하로 향했다. 표범도 표범인데, 기사의 몸통 안에 있었던 새가 어떤 지식을 담고 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삑!

신분증을 찍자 1인 공방의 문이 열렸다. 앨런은 오토마톤을 공방 중앙에 놓고, 확대경이 있는 책상 앞에 재빨리 앉았다.

배낭에서 꽁꽁 싸맨 새를 꺼내고, 공방 안의 공구로 조심스럽게 해체했다.

해부된 진짜 새처럼 가슴을 벌린 오토마톤의 안쪽에 동력원이 보였다.

‘마석은 망가졌고, 영혼석은 다행히 멀쩡하네. 기대했던 만큼 특이한 기술은 적용되지 않은 것 같고···.’

앨런은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영혼석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그리고 책상에 부착된 전등 아래로 가져갔다.

“오.”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보통 영혼석은 얇은 플라스틱 조각 안에 희뿌연 연기가 떠다니는 모양새인데, 이건 금가루를 뿌린 것처럼 반짝거렸다.

‘오파츠 같은데.’

오파츠라고 전부 대단한 것만 있진 않았다. 과일 잘 깎는 칼도 오파츠라고 부르니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었다.

앨런은 마력을 머금은 손가락으로 영혼석을 문질렀다. 보통 영혼석의 입력창을 띄우는 패턴대로 움직이니, 이것에서도 반응이 왔다.

전등의 빛만 있었던 공방에 또 다른 광원이 생겼다. 이 광원의 빛들은 매우 작은 것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저번에 표범의 영혼석을 만지며 은하수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틀렸다. 오히려 이쪽이 은하수고, 표범은 별 몇 개의 군집에 불과했다.

무수히 많은 별문자가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왜 기사가 다른 오토마톤보다 행동이 풍부했는지 알려주는 증거였다.

‘사람의 영혼도 구조화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도 영혼석으로 만드니 구조적으로는 가능하겠지. 진짜 사람처럼 만들려면 그 복잡함은 상상을 초월하겠지만.’

앨런은 어딘가에서 읽었던 글귀를 문득 떠올렸다. ‘사람은 소우주를 품고 있다.’ 어쩌면 별문자로 사람을 표현하려던 누군가의 말이 아니었을까.

눈을 깜빡거리고 다시 별문자에 집중했다. 모르는 문자는 제쳐 두고 일단 아는 문자부터 읽었다.

‘대상 지정. 비행은 새니까 당연하고. 이동 다음은 모르겠는데. 이게 설마 맨홀을 가리키는 문자인가?’

아직 읽을 부분이 한참 남은 만큼 모르는 문자도 대단히 많았다.

앨런은 서점에 들를 생각을 하며 눈을 바짝 붙였다. 은하수에 눈이 거의 파묻힐 정도로 말이다.

부르르.

그때 왼쪽 눈이 진동했다. 갑작스러운 반응에 화들짝 놀란 눈꺼풀이 저절로 닫혔다.

‘이건?’

새의 영혼석이 뿜어낸 은하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왼쪽 눈이 별문자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노박이 만든 눈에 관해 설명하기 귀찮아서 오크 의사에게 오파츠라고 둘러댔을 뿐인데.

‘진짜 오파츠일 줄이야.’

앨런은 마력을 담은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문질렀다. 자극을 받은 눈이 은하수를 토해냈다.

휘황찬란한 별 무리가 앨런을 감쌌다. 검은 물감이 묻은 듯한 부분도 군데군데 있었다.

‘이건 배드섹터. 안정화가 끝나지 않은 물건을 강제로 착용해서 발생한 문제겠지.’

지우려고 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부분이지만, 새의 영혼석이 분출한 은하수를 전부 흡수하자 경계가 실낱만큼 깨끗해졌다.

‘영혼석을 흡수해서? 아니면 오파츠를 집어삼켜서?’

눈을 수리할 방법을 찾았지만, 다른 오파츠를 얻기 전까지는 불확실했다.

애초에 눈은 미완성이기도 했다. 곳곳에 보이는 노박의 흔적은 굉장히 어설펐다. 워낙 별문자가 많기에 기초적인 실수인 겹쳐 쓰기가 보이기도 했다.

장인, 명장, 거장 순으로 분류되는 마법공학자. 그것도 거장은 되어야 오파츠를 손쉽게 다루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들의 섭외비용은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고, 가능하다 해도 아무나 만나주지도 않았다.

‘노박은 기껏해야 장인과 명장의 사이였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그렇다고 앨런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미완성이라면 자신이 차근차근 완성하면 되니까. 불가능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젊은이의 패기라 해도 좋았다.

그렇게 좋았던 기분도 삼라만상에서 별문자 초급 해석본의 가격을 보자 쭈그러들었다.

‘500만?’

입문서의 가격에서 무려 열 배나 뛰었다.

마법사로 따지면 별문자 해석본은 비전 마법서나 마찬가지라 이런 취급은 당연했지만, 앨런은 그걸 필요로 하는 당사자라 속이 쓰렸다.

중급의 가격을 보면 마음이 꺾일 것 같아서 삼라만상을 종료, 공방의 중앙에 놓인 표범에 눈을 돌렸다.

‘원하는 걸 얻으려면 미궁을 내려갈 수밖에.’

7층까지는 쉬웠으니 다음 탐험에는 10층까지 내려갈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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