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27화 (27/193)

눈(2)

아침의 특유의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은 도시. 그래도 시민들은 각자의 직장으로 향하며 도로에 기다란 줄을 만들어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꽉 찬 버스나 지하철, 거기에 교통체증까지 더해지면 누가 봐도 끔찍한 장면이 완성된다.

꽉 막힌 동맥처럼 도로가 정체 상태에 빠져도 메이즈시티의 시민들은 시큰둥했다. 이런 일로 감정을 소모하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라 밖의 풍경을 보는 대신, 인공 안구로 증강현실이나 삼라만상에 접속했다.

그건 미궁의 입장 대기 줄도 마찬가지였다. 줄줄이 서 있는 미궁탐험가들의 안구에서 푸른 빛이 반짝였다.

빛을 발산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 낭비로 생각되지만, 인공 안구는 불법 녹화, 녹음 등 악용의 소지가 있기에 가동할 때 표시를 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사방에서 파란빛이 가득했고, 새벽에 이 장면을 하늘에서 본다면 검은 문으로 향하는 반딧불이의 행진으로 보이리라.

앨런은 그들의 행태에 휩쓸리는 대신 장비를 점검했다. 언젠가 자신도 저렇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거대한 문을 보면 심장이 뛰었다.

‘헬멧.’

주먹으로 껍데기를 두드렸다. 통통거리는 소리가 단단한 외피를 타고 부드러운 내피까지 전달되었다.

‘방독마스크.’

공기를 깊게 빨아들이자, 필터에 엮여있는 식물들이 오염물질을 걸러내고 청량함만을 전해줬다.

‘옷.’

경찰특공대를 연상케 하는 전투복이었다. 차이점이라면 앨런은 간소화한 옷을 입었고, 방탄복 대신 짙은 남색의 재킷을 입었다는 것이다.

재킷의 급소 부위에 [경화]를 새긴 철판을 끼워서 무게가 꽤 됐다. 앨런의 마력으로 강화가 되니 단단함은 설명할 필요 없고.

주변의 탐험가들은 수레에 앉아있는 앨런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정확하게 말하면 수레를 끄는 기계 표범을.

‘너무 과했나? 내가 보기엔 적당한데.’

기사와 싸울 때, 톱날 대검에 너무 허무하게 썰린 기억이 자꾸 나서 이것저것 더하다 보니.

“저거 뭐냐? 호랑이?”

“어······, 무늬만 보면 표범이나 재규어 같은데?”

“여기는 저층 줄인데 오토마톤을 끌고 다니네. 저거 유지비 빼면 수익이 되려나?”

“되니까 데리고 다니겠지. 아니면 제품 테스트를 하러 왔든지.”

외장갑에 빽빽하게 새긴 룬문자는 맹수의 무늬를 연상케 했다. 덩치까지 커서 1~3층의 붙박이들은 절로 위압감을 느꼈다.

그런 시선도 미궁에 입장하니 사라졌다. 각자의 목적을 향해 빠르게 흩어졌다.

“왼쪽. 오른쪽. 전진.”

미로의 교차로마다 앨런은 명령을 내렸고, 표범은 아무 문제 없이 수행했다. 직접 두 발로 걸을 때보다 훨씬 빠르기도 했다.

통로마다 탐험가들이 있는 1~3층에서는 평소처럼 오토마톤 하나 마주치지 못했다.

4층 중반에 도달하고 나서야 늑대 한 마리를 만날 수 있었는데, 앨런은 직접 나서지 않고 표범을 풀어놨다.

늑대는 호랑이만 한 적을 보고도 달려들었다. 진짜 생명체가 아니기도 하고, 미궁의 세계는 상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표범은 가만히 있다가 상체를 살짝 들었다. 앞발도 반원을 그리며 위로 올라갔다.

달려오는 늑대를 보고 있다가 그대로 퍽!

앞발 휘두르기가 작렬했다. 소위 냥냥펀치라고 부르는 기술은 전투 병기에 의해 파괴의 기예로 변했다. 고양이의 귀여움 따위는 저 멀리 날아갔다.

뿌드득!

늑대의 목이 홱 꺾이며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머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몸과 연결된 케이블이 사정없이 덜렁거렸다.

수레에서 내린 앨런은 바로 조사에 착수했다. 먼저 표범의 앞발과 상체를 살폈다.

‘[상쇄]와 [탄성] 덕분에 관절의 마모가 심하지 않아. 출력을 더 높여도 되겠는걸.’

표범의 몸엔 중고 마력로까지 달려 있었다. 그냥 마석을 꽂는 경우보다 전도율이 훨씬 높아서 낭비도 줄고 출력도 상승했다.

덕분에 통장이 아사하기 직전인데도 앨런의 마음은 흡족했다. 돈보다 제작과 지식습득이 훨씬 중요하기에. 돈은 그냥 수단과 경유지일 뿐이었다.

그렇게 7층까지 앨런이 전투에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표범의 외장갑에 흠집이 조금 생겼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앨런은 수레에서 내려 8층으로 내려갔다. 표범은 수레에서 완전히 해방되었고, 중간에 강제로 등용한 사슴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1~3층이 날품팔이 탐험가를 위한 장소라면, 4~7층은 미궁을 실감하는 장소, 8~10층은 처음으로 어설픈 자들을 걸러내는 시험대였다.

위에서는 무작정 달려들던 오토마톤이 좀 더 교활하게 변했다.

‘지금처럼.’

앨런은 벽과 천장 속에서 갑자기 튀어 오른 맨홀들을 보며 걸음을 멈췄다. 앞과 뒤를 포위한 형국이었다.

푸슉!

대번에 모든 맨홀이 열리며 증기를 뿜어냈다. 갑자기 미로에 안개가 끼며 헤드랜턴의 빛을 따라 보이는 작은 알갱이들이 급속도로 많아졌다.

‘어디지?’

분명 맨홀은 오토마톤을 토해냈다.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앨런을 노린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이건 일종의 속임수였다. 맨홀이 등장한 수만큼 튀어나왔을 수도, 아니면 아예 없을 수도 있었다.

이번에는 둘 다 아니었다.

‘위!’

미세한 마찰음을 들은 앨런이 머리를 들었다. 붉은빛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근거리였다. 보통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늦었다는 뜻이다. 안개 속에서 서슬 퍼런 낫이 튀어나왔다. 어찌나 날카로운지 잘린 수증기가 그대로 찢어졌다.

앨런의 몸은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단 하나, 왼쪽 눈만은 청명한 하늘의 빛을 뿜어냈다.

푸른 안광이 수증기를 뚫고 적에게 닿았다.

끼이익! 쿵!

마치 억지로 브레이크를 밟은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천장에서 거미의 하체와 사마귀의 상체를 합성한 오토마톤이 툭 떨어졌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표범이 배 부분을 짓눌러 움직임을 막고, 앨런은 지팡이로 외장갑을 두드렸다.

통통, 퉁!

유달리 반발력이 강한 부분에 마력탄환으로 구멍을 뚫고, 손을 쑥 집어넣어서 마석과 영혼석을 꺼냈다.

앨런의 손재주가 남다른 면도 있고, 자주 하다 보니 이런 작업에는 도가 텄다.

그리고 안개가 걷혔다. 피부트러블처럼 여기저기 출몰했던 맨홀도 전부 사라졌다.

“다시 출발해.”

집적회로처럼 값비싼 부품만 챙긴 앨런은 다시 전진했다. 남겨진 오토마톤은 암석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다소 허무하게 사냥당한 오토마톤은 결함 때문에 멈춘 게 아니었다.

앨런의 눈에 담긴 능력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새가 지니고 있던 특성.

‘새에게 지휘능력이 있는 줄 몰랐지.’

오토마톤들이 우르르 몰려다닌 이유였다.

‘완벽한 지배는 아니고 선동과 비슷했겠지.’

아예 부하처럼 부렸다면 기사 하나가 아니라 오토마톤 여럿을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새의 영혼석이 앨런의 눈에 옮겨오는 과정에서 변질되었지만 굉장히 유용했다.

애초에 매직웨어를 해킹하듯이 미로에서 태어난 오토마톤의 제어권을 강탈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말 아무도 몰랐거나, 알고도 비밀로 했거나.’

그러니 앨런도 떠벌릴 생각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목격하고 물어볼 경우를 대비해서 알리바이도 준비했다.

‘염동력이나 마나펄스를 사용했다고 하면 충분하겠지.’

아직은 잠깐 멈추게만 하는 정도라 그렇게 티도 안 났고, 결함이라고 생각해서 변명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었다.

능력의 구성요소인 별문자를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고민하며 움직이던 앨런이 발걸음을 멈췄다.

8층 야영지, 그러니까 9층의 입구의 공터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홀로 도착한 앨런에게 시선이 잠깐 쏠렸다가 흩어졌다.

앨런은 빈 곳으로 이동, 수레에 실린 오토마톤의 부품을 꺼내서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손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특이개체가 등장했다는 소문을 듣고 노리러 온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우연히 저 아래로 내려가는 탐험가들끼리 시기가 겹쳤거나.

뚝딱거리던 앨런은 고개를 들었다. 이곳을 빤히 쳐다보는 탐험가들이 몇 명 있었다.

애초에 마법공학자는 희귀했다. 전투 대신 학문에 집중해서 약할 거라는 편견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서는 사람도 있으나, 그 방면으로 유명한 사람이 적어도 현재는 없었다.

마법사라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이 외우는 주문도 룬문자를 자신의 방식대로 읽는 행위니까.

그러니 마법공학자가 미궁에 혼자 있는 광경은 처음 봤을 탐험가가 대다수였다.

앨런은 탐험가들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수리를 부탁하던 갱단원과 표정이 비슷했다.

‘이 정도는 예상했지.’

앨런은 수레에서 작은 표지판을 꺼내 앞에 세웠다.

[마도구 및 매직웨어 수리. 가격은 사전 협의.]

다른 탐험가가 장비를 보여달라고 하면 싸움으로 번지겠지만, 마법공학자는 다른 사람의 마도구나 매직웨어를 합법적으로 살필 수 있는 직종이었다.

앨런의 경우에는 견문을 쌓고 지식을 습득하는 게 주목적이라 수리비용은 부수입 따위에 지나지 않았다.

눈치를 보던 탐험가들이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걸 고칠 수 있을까?”

첫 손님이 마석등을 들고 왔다. 헤드랜턴은 단방향, 일정 범위만 밝히는데, 이건 사방으로 빛을 뿌리는 종류였다.

“일단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찌그러진 마석등을 받은 앨런은 눈의 계측 능력을 가동했다.

노박도 명색이 마법공학자라 전문가용의 최고급 안구에나 포함된 기능을 집어넣었는데, 이제는 앨런이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찌그러진 부분의 회로가 뒤틀렸어.’

원인을 빠르게 파악했음에도 앨런은 마석등을 오래 쳐다봤다. 소소한 욕심 채우기였다.

“3만 코인만 받겠습니다.”

“진짜로? 하루만 켜지고 다시 망가지는 일은 사양이야.”

“그럴 일은 없습니다.”

“좋아. 수리해줘.”

탐험가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앨런은 재킷 안쪽에서 펜치와 비슷하게 생긴 공구를 꺼냈다. 히팅펜치라고 금속을 가열해서 쉽게 펴지게 하는 도구였다.

알루미늄 캔이 찌그러지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마석등이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 예전처럼 매끄럽진 않아도 외관은 그럴 싸 했다.

그리고 룬펜으로 회로를 수복하고, 금속판을 닫으며 마무리했다.

“끝났습니다.”

“벌써?”

앨런은 미심쩍은 표정을 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딸깍. 환한 빛이 공터를 가득 채웠다.

“마석으로도 받습니다.”

그렇게 하나둘 방문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장비를 예비로 지니고 다니지만,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언제나 든든한 편이 좋았다.

가져오는 마도구도 점점 복잡해졌다. 헬멧 형태의 에비를 가져온 사람도 있었다.

혼자서 에비를 수리하려면 룬문자와 별문자를 동시에 다룰 수 있어야 했다.

에비의 사용자가 마법사가 아니라면 룬문자를 대신 영창을 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영혼석이었다.

리자드맨의 질문에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됩니다.”

“진짜? 음···.”

약간의 망설임은 보였다. 여기는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가게가 아니고, 앨런은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앨런은 수레에서 오토마톤의 영혼석을 꺼내 은하수를 보여주고, [화염] 카드를 수프 냄비 밑에 놨다.

그 모습에 리자드맨이 꼬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작업이 끝나고 수리로만 70만 코인을 벌었다.

‘요금을 싸게 했는데도 생각보다 수입이 괜찮네.’

그렇다고 착각은 금물이었다. 여기는 미궁이라는 특수성도 존재하고, 마법공학자는 앨런 혼자였으니까.

앨런이 에비 수리비로 받은 마석의 가치를 계산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리자드맨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수리는 끝났나?”

“빨라서 지루하지 않았다.”

“잘됐네. 수문장을 잡으려면 화력이 조금이라도 필요하니까.”

수문장은 11층을 가로막는 존재였다. 항상 있는 건 아니고, 누군가가 처치하면 한동안 안 보이기도 했다.

앨런은 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남자를 2층 상점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브레이커에서 등록했다는 소리고, 그렇다면 최소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의미였다.

“구경해도 될까요?”

“그건···.”

“대신에 전투 후에 수리는 무료로 해드릴게요. 전부는 아니고 미궁에서 가능한 것만요.”

“일행들과 잠깐 이야기해 보마.”

동료들과 논의하더니 생각보다 빠르게 허락이 떨어졌다.

다른 탐험가였으면 어림도 없지만 마법공학자라 경계심이 낮아서 가능했다. 더 오래 탐험하려면 정비는 필수였으니까.

앨런에게도 좋은 기회였다. 오토마톤은 생물이 아니라서 패턴이 있는데, 그걸 직접 살펴볼 수 있으니까.

미궁 창조자가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영상 녹화는 불가능했다.

기억을 통해 재구성한 영상이 있지만, 언제나 기억이라는 것에는 왜곡과 주관적인 해석이 첨가되기 마련.

그러니 말로만 듣는 것보다 직접 봐야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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