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3)
미궁은 하루아침에 왕복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미로만 하더라도 1층에서 10층까지 왕복하려면 며칠씩 걸리고, 훨씬 아래로 내려간다면 몇 달씩 걸리는 경우도 있다.
긴 여정에서 만약 회복수단이 마땅치 않다면, 미궁탐험가들은 짐 덩이로 전직한 동료를 힘겹게 데리고 다녀야 했다.
치료술사라도 있으면 모르겠으나, 어찌 보면 그들은 마법공학자보다 귀한 몸.
그렇기에 미궁탐험가들은 부상을 예방하고자 체계적인 전투를 수행했다.
‘파티를 결성한 지 오래됐나 보네.’
앨런은 자신이 따라온 탐험가들의 전투를 유심히 지켜봤다.
수문장을 처치하려고 내려왔다는 말은 농담이 아닌 듯, 대여섯씩 몰려드는 오토마톤을 상대하는 중에도 여유가 있었다.
‘잘 맞물리는 톱니바퀴를 보는 것 같아.’
개인이 다수를 압살하고 더 나아가 군대까지 상대하는 무력을 보유할 수 있는 세계지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
그전까지는 다수가 소수를 압도했다. 당연히 미궁 탐험도 힘을 합치는 편이 더 쉽고.
‘사람을 찾아볼까? 아니면 오토마톤을 더 늘려?’
앞으로의 탐험 계획에 대해 고민하던 앨런은 전방으로 시선을 던졌다. 전투의 양상이 갑자기 변한 탓이다.
리자드맨과의 대화에 끼어들었던 남자, 머리를 파랗게 물들인 데니스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시선 끌게!”
데니스의 앞에는 고릴라를 닮은 오토마톤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입을 쩍 벌리자 총구와 닮은 쇠막대기가 튀어나왔다.
‘마력총과 비슷한 무기인가?’
앨런의 생각대로 총구가 파란빛을 머금더니, 탄환이 데니스를 노리며 발사됐다.
그대로 전진하면 맞을 게 뻔하나, 데니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화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의 양다리, 정확히 말하면 의족 형태의 매직웨어가 변형을 시작했다. 원래는 평범한 인간의 다리와 같았으나, 관절이 뒤로 꺾이며 동물과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쿵!
강한 발 구름. 가볍게 튀어 오른 데니스의 몸이 천장에 닿았다.
뒤이어 그가 있던 자리를 요격하는 푸른 탄환. 그러나 고릴라들의 목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메뚜기처럼 벽을 요리조리 박차던 데니스는 어느새 적의 진영 뒤에 착지한 상태였고.
에비의 수리를 맡겼던 리자드맨, 카크다를 포함한 마법사용자 셋이 ‘공기 폭발’을 차례대로 쏟아냈다.
펑펑펑!
정확히 세 번 들리는 폭음. 데니스의 움직임에 시선이 쏠렸던 고릴라들의 진열은 흩어졌고, 상당수는 머리가 떨어지거나 몸이 움푹 패서 망가졌다.
잘 싸우는 사람은 적의 약점을 사정없이 후벼 파는 법. 대기하던 전사 셋이 달려들어 둔기로 남은 고릴라들을 끝장냈다.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결과야.’
화력만 보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생각하는 능력. 단순히 적을 인지하고 영혼석에 새겨진 대로 반응하는 오토마톤과 달리, 사람은 머리를 쓸 수 있었다.
이런 양상도 11층부터 지하인이 나오면 달라지지만, 어쨌든 미로 구간에서는 커다란 이점이었다.
전리품을 챙긴 파티와 앨런은 다시 이동, 10층 입구에 멈춰서 재정비를 시작했다.
10층은 다른 층보다 통로가 훨씬 넓고, 오토마톤도 많이 등장하고, 수문장은 아무 곳에서나 나타났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기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앨런은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매우 비싼 가격임에도 망설임 없이 돈을 지급하게 만든 ‘별문자 초급 해석본’을.
500만 코인을 보고 심란했던 적도 있으나 그건 잠시. 새로운 지식을 접한다고 생각하니 계좌의 사정은 아무래도 좋았다.
슬슬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하려는 순간, 데니스가 다가왔다.
“너도 참 부지런하네. 평소에도 이래?”
“자는 시간을 빼면요,”
“아니, 내 말은 미궁에서도 그러냐고. 책 보고 있는데 갑자기 생긴 맨홀에서 적이 튀어나오면 곤란하잖아.”
“야영지에 사람이 많으면 보고, 아니면 경계하는 편입니다.”
“그래. 그게 상식적인 대응이지.”
앨런은 책을 덮고 데니스를 쳐다봤다. 아무 목적 없이 오진 않았을 터. 잠시 그러고 있으니 데니스가 바짓단을 위로 걷었다.
탈부착이 가능한 바지 아랫단에 감춰진 은회색 의족이 드러났다.
“혹시 이것도 점검할 수 있겠어?”
“불편하거나 고장 난 부분이 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마침 마법공학자가 파티에 합류했으니 점검받으면 좋잖아. 이상이 있으면 빨리 파악할 수도 있고.”
“그럼 살펴볼 테니 수레에 앉아 주세요.”
데니스가 수레에 걸터앉자, 앨런은 눈으로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마나팩은 이상 없습니다. 따로 충전하진 않나요?”
“나도 마나하트가 있어서 정 위급하면 그걸 사용하면 돼. 예비도 몇 개 있고.”
데니스의 옷 안쪽에 부착된 마나팩을 확인한 앨런은 계속 점검을 이어갔다.
“잠시 손대겠습니다.”
앨런은 데니스의 허벅지 근처의 철판을 열더니 케이블을 쑥 뽑아냈다. 마나팩을 통한 동력 공급이 끊기자 데니스가 눈을 크게 떴다.
“너무 본격적인데?”
“이래야 마법저항력이 약해지고, 본격적인 점검을 할 수 있습니다. 안 아프니 걱정하지 마세요.”
치과 의사처럼 대꾸한 앨런은 눈의 투시 능력을 발동, 내부를 샅샅이 훑어봤다.
의족 형태의 매직웨어는 마력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해서 관절을 인간의 한계 이상으로 가용하게 해주는 동시에.
[가속], [감량], [강화]의 룬문자도 새겨서 성능과 효율을 크게 끌어올렸다.
“[경화]는 물질을 단단하게만 하니, [강화]로 균형을 맞췄군요.”
“확실히 다르네. 저번에 자기가 마법공학자라고 거들먹거리던 새끼는 룬문자도 못 알아보더만. 그런데 손길이 좀 그렇다?”
“평범하게 점검하는 중입니다만···.”
“음, 내가 착각했나?”
앨런의 무표정에서 데니스가 읽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사실 그의 감이 맞긴 했다. 앨런은 처음 만져보는 의족을 찬찬히 뜯어보는 중이었으니.
이상도 없는데 너무 오래 살펴보면 의심할 수 있어서 앨런은 이쯤 하면 됐다고 판단했다.
“룬문자, 마력회로 모두 정상입니다. 긁히거나 찌그러진 부분도 없고, 냉각시스템도 멀쩡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이것 때문에 차를 못 사잖아.”
“맞다. 의족이 심하게 망가지면 데니스는 수리비 때문에 밥도 못 먹는다.”
갈색 비늘의 카크다가 얼굴을 쓱 내밀었다. 리자드맨 특유의 비늘이 마석등의 빛으로 반짝거렸다.
“나한테 그동안 빌붙은 금액이 어마어마하다. 거지가 따로 없다.”
“다 갚았잖아. 유언비어 퍼트리지 마. 마법싸개.”
“그렇게 부르지 말고, 마법사라고 불러라.”
에비의 보급으로 누구나 마법을 사용하게 되자, 마법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마법사용자라고 불렀다.
데니스가 내뱉은 마법싸개는 놀릴 때 쓰는 단어였다. 오줌을 못 가리는 아이를 오줌싸개라고 놀리지 않던가. 그런 맥락에서 생겨난 멸칭이었다.
카크다는 기분이 나쁜지 꼬리로 미로 바닥을 탁탁 때렸다.
친구들이 함께 있으면 유치해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던가.
앨런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열었다.
“마탑에 취직하신다고 하셨죠? 그럼 마법사 아닌가요?”
“당연히 마법사가 맞다.”
질문이 기꺼운지 카크다의 꼬리가 둥글게 휘었다.
“난 비늘이 말랑말랑할 때부터 마법을 배웠다. 에비는 신체를 보조하는 마법을 사용하려고 구매한 거고, 아까 사용한 ‘공기 폭발’은 내 본연의 능력이다.”
“어떤 마탑에 지원하시게요?”
“에셀 마탑이다.”
에셀 마탑은 최고 중 하나였다. 기업으로 따지자면 대기업. 그러니 마법사 혹은 마법 수련생이라면 마땅히 원하는 취업처였다.
“가산점 때문에 미궁에 내려오셨군요.”
“그래. 미궁탐험가 전형에 지원하면 도달계층이 낮아질수록 가산점이 붙는다. 심지어 상한도 없지.”
카크다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데니스와 달리 말이 통한다고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에비에서 기억수정을 뽑아 보여줬다.
“혹시 기억수정도 다룰 줄 아나?”
“아뇨. 아직 그쪽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에비는 영혼석으로 만든 중앙처리장치가 기억수정에 담긴 주문을 읽어서 마법을 부리는 마도구였다.
앨런은 카크다가 왜 저런 말을 꺼냈는지 짐작했다.
“기간 제한 때문이죠?”
“기억수정의 내용물이 자꾸 삭제되니 매번 사줘야 하잖아. 기술, 아니 마법 개발자 얼굴이 정말 궁금해.”
“만나면 어떻게 하시게요?”
“잘 나가는 마법사일 텐데 조용히 있어야지 뭘 어떻게 해.”
앨런이 보기에도 기억수정 초기화 기술은 그야말로 상술의 정점이었다.
마법이 담긴 기억수정을 파는 마탑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계속 사용하면 회로가 열화되어서 사용자에게 사고가 생길 수 있다고.
이유는 그럴싸하나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억수정이 튼튼하면 추가로 팔기 어렵지 않겠는가. 기업들은 자신들의 물건을 어떻게든 팔아서 수익을 만들어야 했다.
사실 기억수정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도 비슷했다.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2년만 지나면 버벅거린다든지, 잘 보던 TV의 마력회로가 툭 끊긴다든지.
앨런은 기억수정을 돌려주며 물었다.
“카크다 씨도 에셀 마탑에 취업하면 똑같은 일을 하겠죠?”
“지금은 지금, 그때는 그때. 그런데 나는 미궁탐험부서에 지원할 거라 그런 일과는 상관이 없을 거다.”
리자드맨은 자신의 비늘처럼 매끄럽게 질문을 넘겼다.
사람이란 선 자리에 따라 인식과 마음이 바뀌는 법이니까. 앨런은 그런 것 가지고 뭐라고 할 생각이 없었다.
슬슬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자 앨런은 책을 펼치고, 데니스는 카크다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부러 수문장이 처리됐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으니 얼추 재등장 시간이 됐겠지.”
“이번에는 있으면 좋겠다.”
같은 11층도 수문장을 상대했느냐 피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그렇기에 카크다처럼 성과가 필요한 사람들은 수문장을 무조건 노렸다.
수문장을 상대해봤다는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잠깐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금방 들통나기 마련이다.
미궁은 장난삼아 내려오는 장소가 아니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을 그 어디보다 잘 실현한 마경.
그렇기에 상대의 실력과 적을 대하는 자세만 보고도 초보인지 베테랑인지 금방 판단할 수 있었다.
슬슬 둘의 이야기도 마무리되는 시점, 데니스는 앨런이 보는 책이 궁금했는지 기웃거렸다.
물론 지식의 가치를 알기에 먼저 주인에게 허락을 구했다.
“잠깐 봐도 될까? 별문자 책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대여는 안 되지만, 옆에서 보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어디 한번 보자. 윽···.”
데니스는 책의 페이지를 잠깐 살피자마자, 100% 레몬즙을 들이킨 표정을 짓더니 달아났다.
“그거 뭐야?”
“별문자 초급 해석본입니다.”
“내 눈에는 새까만 부분만 보이는데. 여백보다 글자가 더 많잖아. 문자도 다 똑같은 것 같고.”
“아닙니다. 부여하는 마력양에 따라 별의 세기가 달라지면 문자의 뜻이 바뀝니다. 선을 연결하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요.”
데니스는 듣기 싫다는 듯 귀를 막는 시늉을 하더니 카크다에게 중얼거렸다.
“쟤가 너보다 학자 같은데.”
“마법공학자 맞잖아.”
“아니, 마법사도 일종의 학자 아냐?”
“전투 직렬로 지원할 거니 다르다.”
*
다음 날, 파티는 염원했던 수문장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하늘이 도왔는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오토마톤 무리도 없었다.
쿵쿵쿵!
적을 인식한 수문장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펑퍼짐한 강철 몸통, 그에 걸맞게 굵은 다리 그리고 중장비를 떠올리게 만드는 거대한 망치.
3m를 가볍게 넘는, 트롤을 닮은 오토마톤이 움직일 때마다 미로의 벽이 덜덜 떨렸다.
수문장의 외눈이 붉은빛을 사방으로 뿌렸고, 어찌나 강렬한지 회색의 암석이 피를 머금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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