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4)
교차로를 지나서 조금 이동하다가 만난 수문장. 10층의 통로는 다른 층보다 넓은 편인데도 좌우가 꽉 막힌 듯한 압박감을 선사했다.
수문장은 느릿느릿 다가오는데도 제일 뒤에 서 있는 앨런의 발밑까지 부르르 떨렸다.
상대해야 할 적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려주는 증거였고, 전투 병기가 육중하다는 뜻은 지닌 무기가 많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붉은 외눈이 목표를 포착했다.
미궁탐험가와 수문장 사이에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수문장은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모를 미궁을 지키는 존재였고, 미궁탐험가는 저 끝에 있을 보물 혹은 비밀에 매료된 사람이니.
서로의 존재는 방해일 뿐. 눈에 걸리적거리는 걸 치울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말살이다.
수문장이 망치를 들어 올렸다. 망치 머리는 꼭 리볼버의 탄창처럼 생겼는데, 여섯 개의 구멍 안쪽에는 빨간빛이 응축되어 있었다.
“망치 패턴! 방어막 사용!”
의족을 역관절로 바꾼 데니스의 외침에 마법사용자 셋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에비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헬멧 표면에 푸른 선들이 죽죽 그어지더니, 팔을 타고 손바닥으로 방출, 탐험가들의 앞에 벌집 구조의 방어막이 세워졌다.
동시에 바닥을 내리치는 망치.
콰앙!
붉은 광선이 섬광탄처럼 주변을 물들였다. 마치 코앞에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성대한 이명이 앨런을 덮쳤다.
미로의 바닥을 이룬 암석이 폭발력에 의해 분쇄되고, 뒤따르는 바람에 몸을 실어서 먼지로 이루어진 안개를 만들었다.
원칙적으로 미로는 파괴 불가능해서 곧 회복할 테지만, 둥둥 떠오른 먼지 사이에서 홀로 뚜렷한 적색 안광은 꽤 살벌했다.
깨진 방어막과 탄창 하나를 비운 망치. 공평한 교환을 성사한 가운데, 몸을 낮춘 데니스가 미끄러지듯 앞으로 쏘아졌다.
“빨리 물 뿌려!”
카크다를 포함한 마법사용자 셋은 미로의 바닥에 가져온 물을 왕창 쏟아내고.
“데니스가 시선을 끄는 동안 수류탄 준비!”
전위를 맡은 모험가들은 각자의 허리춤을 매만졌다. 그들은 동그란 물건을 꺼내더니 핀을 뽑았다.
물건의 이름은 마나펄스 수류탄. 가까이에서 터진다면 일반인의 뼈를 가루로 만들 만큼 폭발력도 괜찮지만, 주기능은 마력회로를 뒤흔드는 것.
수문장 같은 존재는 금속 골격뿐만 아니라 마력으로도 몸속이 꽉 차 있다. 마력을 많이 소유했다는 말은 마법저항력이 강하다는 뜻과 유사했다.
마법저항력을 깎으려는 이유는 당연히 마법사용자 때문이었다. 그들은 에비에 탑재한 근거리 연결기능을 활용, 관통력이 강한 합체 마법을 준비하며 기회를 노렸다.
“이얍!”
수문장의 시선을 끌던 데니스는 기합과 함께 높이 뛰어오르고,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선수처럼 휘둘러지는 망치와 팔을 피해 수문장의 몸을 넘어갔다.
수문장이 본대에 옆구리를 노출한 지금이 적기였다. 마나펄스 수류탄 세 개가 거의 패스트볼처럼 날아가서 수문장의 가슴, 몸통, 허벅지를 타격했다.
펑!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부풀린 풍선이 터지듯 수류탄의 껍질이 갈라지며 푸른 전류를 토해냈다.
탐욕스러운 푸른 뱀들은 수문장의 외장갑 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마법저항력에 그대로 타버리는 것도 있지만, 반 절 이상이 내부로 침투했다.
“지금이야!”
누군가의 외침에 반응한 마법사용자들이 합체 마법을 완성했다.
원래부터 습하고 차가운 미로의 공기에서 뽑아낸 물과 바닥에 뿌린 물이 만나 차갑게 얼어붙었다.
[꿰뚫는 얼음창]
새하얀 냉기를 줄줄 흘리는 창이 그대로 쏘아져 수문장의 몸통에 박히기 직전.
마나펄스 수류탄의 충격에도 데니스를 쫓던 수문장이 머리를 180도 돌렸다. 사람으로 치면 목과 가슴이 반대편을 바라보는 기괴한 광경.
수문장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법을 감지, 이번에는 몸통만 돌렸다. 동시에 회전력이 더해진 망치가 얼음창을 강타했다.
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전투 직전 벽 옆에 던져놓은 마석등 덕분에 꽤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전투가 아니라면 그랬을 것이다.
“키식!”
카크다가 이빨 사이로 리자드맨 특유의 소리를 내었다.
“아깝다.”
“두드리다 보면 열리겠죠.”
“그 말이 맞다. 전투가 아직은 안정적이야.”
앨런의 말에 카크다가 동의를 표하더니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이쪽이 화력을 위해 마나를 소모하면, 저쪽도 방어를 위해 마나를 소모한다.
이건 당연한 이치다. 그 증거로 수문장의 망치에는 세 개의 빛만이 남았다. 얼음창을 막아내느라 공격에 사용할 마력을 두 개나 써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고작 망치에 담긴 힘을 깎았다고 안심하기에는 수문장 본체가 지닌 에너지도 꽤 많았다.
앨런의 눈이 수문장의 외눈을 응시했다.
처음보다 빛이 강렬해졌다. 마석등만 아니었다면 수문장의 안광만으로도 미로가 환할 정도로.
‘다음 패턴까지 얼마 안 남았어.’
수문장이 충격을 받으면 안광이 점점 거세진다. 그게 한계에 도달하면 안구에서 붉은 광선을 발사하는데, 그 위력은 살벌했다.
‘미로는 넓으면서도 좁은 곳이라 피하기 힘들지. 게다가 고개만 살짝 움직이면 안광은 빠르게 이동하니까.’
앨런은 전위들이 꺼내는 마도구를 살폈다. 익숙한 물건이었다.
랑카를 탈출하는 배 위에서, 떠오른 노박에게 마력 유탄을 발사하며 사용했던 방어막 생성기였다.
저것 역시 일회용품이라 사용하는 즉시 마력회로가 망가졌다.
물론 지금은 마탑이나 대기업의 악랄한 상술보다는 방어막 생성기와 마법사용자의 방어 마법을 함께 사용해야 막을 수 있는 안구 광선에 더 관심이 생겼다.
앨런이 숨죽이며 관찰하는 도중, 귓가에 ‘삐이이!’ 소리가 들렸다. 진원지는 카크다의 허리춤. 지나왔던 교차로에 놔둔 알림 장치가 이쪽으로 무언가가 온다는 소식을 알렸다.
놀란 카크다가 뒤를 바라봤다. 앨런 역시 그의 시선을 따라 머리를 돌렸는데, 새까만 어둠 속에서.
부우우웅!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진짜 헬기가 지하에 있진 않을 테니 오토마톤이라는 뜻이었다.
카크다의 갈색 비늘이 새하얘진 것처럼 보였다.
“분명, 이 일대를 크게 돌며 적이 없는 걸 확인했는데···.”
“운 없게도 맨홀이 생겼나 보네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기에서 수문장을 쓰러트려야 해. 조금 있으면 안광 패턴이라 뒤를 보이면 다 죽는단 말이야.”
“지금 다가오는 무리는요? 어차피 뒤를 잡히면 똑같습니다.”
“윽···.”
진퇴양난에 빠진 카크다. 단기간에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았는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비늘을 부르르 떨었다.
“끼시싯!!!”
“진정하세요.”
앨런의 차분한 음성에 놀란 가슴을 살짝 진정시킨 카크다가 입을 열었다.
“안구 광선이 거의 충전되어서 자리를 피할 수 없어. 방어막을 함께 펼쳐서 막아줘야 부상이나 사망을 막을 수 있는데···.”
“전위는요?”
“우리가탈진에빠지면지키면서수문장을공략해야지!”
어찌나 다급한지 속사포처럼 전황을 내뱉었다.
앨런은 알고 있었다. 저 패턴만 넘기면 급속충전 단계로 넘어가니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안구 광선은 위력만큼 많은 마력을 소모하기에 수문장은 방어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급속충전하는 패턴에 돌입한다.
단점 때문에 지하인의 통제를 받는 수문장이라면 광선을 더 영리하게 사용하겠지만, 일단 미로에 있는 오토마톤의 전투 논리에는 한계가 있었다.
앨런은 혼란이 번지는 파티를 바라봤다.
톱니바퀴의 단점이었다. 평소에는 그보다 좋을 수 없지만, 바퀴 하나가 빠져버리면 삐걱거렸다. 그건 운이 좋은 경우고 보통은 고장 났다.
지금까지 편히 구경하던 앨런은 지팡이로 엎드린 표범을 두드렸다.
“제가 막아볼게요.”
“가능···하겠어?”
“우리 9층 입구에서 만났잖아요.”
“아, 너 원래 혼자 다녔지. ······금방, 도우러 갈게.”
카크다는 거절하지 않았다. 지금은 쓸데없는 의견교류로 낭비할 시간이 없었고, 무엇보다 수문장의 안광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앨런은 수레를 뒤로 몰았다. 표범이 성큼성큼 내달리니 꼭 전차에 탑승한 것 같았다.
잠시 뒤를 바라보자 마석등의 빛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가득했다. 이것 또한 미궁의 신비였다. 동시에 미궁에 진입한 탐험가들의 정신을 깎아 먹는 장치기도 했다.
부우웅!
더욱 커지는 소리가 앨런의 잡념을 날려버렸다. 헤드랜턴의 빛이 일직선의 통로를 비췄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오토마톤의 형태는 말벌. 그 수는 열.
말벌들은 앨런을 보자마자 꽁무니를 앞으로 내밀고, 끝이 갈고리처럼 휘어진 침, 아니 크기로 보면 창을 겨눴다.
몸에 박히면 갈고리와 가시들이 살 사이를 파고들어서 뽑지도 못하는, 잔혹한 발상의 무기였다.
수레를 멈춘 앨런은 뒤에 몸을 숨기고, [자성] 카드를 휙 던졌다.
카드의 궤적을 따라 날아오는 말벌들이 조금 휘청거렸으나, 그건 잠시뿐. 마법저항력이 제법 있는 10층의 오토마톤은 쉽게 견뎌냈다.
“돌진.”
조용한 주인의 명령에 표범이 앞으로 나섰다. 발사되는 꼬리 창은 [경화]를 곁들인 외장갑으로 막아내며 훌쩍 뛰어올랐다.
콰득!
배구선수의 손바닥에 걸린 배구공처럼, 앞발에 얻어맞은 말벌은 바닥과 누가 단단한지 겨뤄야 했다.
당연히 승자는 미로의 바닥. 그러나 오토마톤의 내구성도 장난 아니라, 몸이 비틀린 와중에도 절단기 같은 턱을 딱딱거렸다.
표범이 다시 말벌 하나를 낚아챘어도 남은 적의 수는 여덟.
그들은 위층의 오토마톤과 다른 알고리즘을 지녔는지 표범을 무시하고 뒤에 있는 앨런을 향해 날갯짓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앨런의 눈은 평소처럼 고요했다.
마음 또한 그러했다. 랑카에서 탈출 후에 겪은 일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지만, 동시에 장점을 부여하기도 했다.
차가운 이성 또는 부동심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앨런에게 깃들었다. 마력을 다루고, 구름 같은 신비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능력이었다.
앨런은 왼쪽 눈을 떴다. 원래부터 눈꺼풀은 올리고 있었으니, 마력을 사용해서 능력을 발현한 것에 가까웠다.
뿜어진 푸른 빛이 마치 그물처럼 퍼졌다. 그물에 말벌이 닿는 순간.
‘보인다.’
앨런은 은하수를 봤다. 그물에 담긴 마력이 오토마톤의 영혼석이 스며드니, 그 안에 새겨진 별문자가 보였다.
영혼석에 대한 간섭. 지금은 별문자를 아예 바꾸는 건 아니고, 검은 안개를 불러내서 빛을 가리는 정도였다.
‘배드섹터를 불러내서 잠깐 고장 내는 거지.’
잠깐이지만 오토마톤의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었다. 룬문자 카드에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던 말벌들도 이번에는 무시하지 못했다.
텅텅텅!
무리를 지어 날아오던 말벌이 하나둘 바닥에 떨어졌다. 날개가 아예 휘어지는 건 작은 고장이고, 심하면 머리가 박살 나기도 했다.
그다음은 앨런이 손쓸 필요도 없었다. 적을 포착한 표범이 냉큼 달려오더니 발로 말벌을 꾹꾹 눌렀다.
고양이들의 꾹꾹이와 비교하면 곤란했다. 표범은 호랑이로 착각할 정도로 컸고, 동시에 외장갑과 골격은 금속이었다.
‘200kg은 그냥 넘겠지.’
부품을 이것저것 달다 보니 확실하지 않았다.
어쨌든 표범의 발에 밟힌 말벌은 납작하게 변했다. 공중 전투용 오토마톤은 비행을 위해 장갑이 얇아서 매우 쉽게 부서졌다.
평소라면 표범으로 압박만 가하고 말벌이 기동하는 채로 느긋하게 해체할 테지만, 지금은 수문장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앨런은 표범이 입안 가득 물고 온 영혼석과 마석을 수레에 대충 던지며 탑승했다.
왔던 길을 조금 되돌아가자, 어둠 속에서 카크다가 튀어나왔다. 약속한 대로 도우러 오는 거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과 다리는 너무 심해서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탈진한다더니 농담이 아니었다.
눈이 반쯤 감긴 카크다가 힘겹게 물었다.
“적은? 얼마나 있어?”
“열 대였죠.”
“혹시, 후퇴하는 중이야?”
“아뇨. 이제 없어요.”
혼자서 전멸시켰음을 알아챈 카크다가 입을 벌렸다. 그의 귓가에 평소처럼 차분한 앨런의 음성이 전해졌다.
“안광 패턴은 끝났나요? 구경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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