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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30화 (30/193)

눈(5)

앨런은 카크다를 수레에 태우고 전장으로 급하게 복귀했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검은 안개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으니 초조함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후우···, 별일 없네.”

한숨을 푹 내쉰 카크다는 동료들과 합류하고, 앨런은 처음처럼 뒤에서 대기했다.

안구 광선을 막아내느라 방어막 생성기는 부서졌고, 마법사용자들은 벽에 기대거나 막대를 짚고 서서 몸이 무너지는 걸 방지했다.

수문장은 상체를 구부리고 망치를 앞에 세운 자세로 데니스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데니스의 짧은 검이 수문장을 긁을 때마다 푸른 빛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나소드구나.’

오러와 오러블레이드, 다른 이름으로는 검기 그리고 검강으로 불리는 깨달음의 산물과는 달랐다.

검기와 검강이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마력사용자들이 추구하는 목표라면, 마나소드는 마법공학이 만들어낸 무기였다.

레이저 혹은 플라즈마를 방출해서 무언가를 자르는 것처럼 마나소드 역시 비슷한 용도로 쓰였다.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고, 근접전투를 지향하는 미궁탐험가들의 필수품이었다.

마나소드의 살벌한 위력과 데니스의 빠른 발걸음이 시너지를 내며 수문장을 몰아붙였다.

손목을 휘릭 돌릴 때마다 수문장의 외장갑에 상처가 생겼고, 마나소드의 푸른빛과 대조되는 붉은 불똥이 피어올랐다.

수문장의 안광은 느릿하게 깜빡였다. 충전 중이라 시간이 지날 때마다 짙어지긴 해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했다.

데니스는 파리를 쫓듯 수평으로 날아든 손을 피해 뒤로 훌쩍 물러나며 외쳤다.

“다음 마법 준비는?!”

수문장의 외장갑이 너덜너덜하게 변하는 중이지만, 껍데기만 상했을 뿐 내부까지 상처를 입혔다곤 할 수 없었다.

“너무 보채지 말라고!”

비틀거리는 마법사용자들은 재촉에 화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전위 하나가 허리춤의 작은 가방에서 원통 3개를 꺼내더니 동료들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

강심제, 각성제, 영양제 등 여러 약물이 포함된 전투자극제였다. 손에 쥐어지는 작은 원통 크기로, 끝에 달린 작은 주삿바늘이 약품을 주입했다.

“자극제 효과는 금방 나오니 너희도 대기해.”

카크다의 주문에 전위 셋이 둔기를 들고 수문장 쪽으로 슬금슬금 접근했다.

전투자극제의 효능은 마법사용자의 정신을 다시금 일깨웠고, 그들은 다시 한번 합체 마법을 준비했다.

[냉기의 사슬]

마법으로 벼려냈던 얼음창이 녹은 물과 미로의 습기가 다시 뭉치더니, 새하얀 사슬이 바닥에서 솟구쳤다.

하얀 김을 흘리는 사슬은 수문장의 양쪽 팔을 빈틈없이 묶었다. 수문장의 반항으로 얼음에 금이 가도, 계속 공급하는 마나가 사슬을 수복했다.

데니스를 앞세운 전위들이 돌격했다. 그들의 움직임이나 공격을 피하는 솜씨는 제법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단하다고 하겠지만, 앨런은 그 안에 담긴 어색함을 읽어냈다.

‘뇌 확장 시술로 얻은 능력이겠지.’

평소에 마도구를 투시할 때처럼 전위들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목과 머리가 연결되는 부분, 그러니까 소뇌 밑에 작은 매직웨어가 달려있었다.

‘반사신경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매직웨어. 이름이 리플렉스 액셀이던가.’

거기에 더해서 마력으로 감각을 추가로 강화하면 더욱 뛰어난 능력을 소유할 수 있었다.

사슬 때문에 수문장의 움직임에 제약이 걸렸더라도, 저 덩치와 질량을 생각하면 한 방, 한 방이 치명타였다.

탐험가 기준으로 느릿하다는 의미였지, 일반인이 보면 웬 중장비가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낸다고 할 정도였다.

어쨌든 전위들은 수문장의 손을 곧잘 피했다. 허리를 뒤로 젖혀서 팔을 피하고, 그대로 코어 근육으로 몸을 당기며 둔기를 내리쳤다.

깡! 깡! 깡!

전위만 셋이니 타악기를 때리는 듯한 소리가 미로를 쩌렁쩌렁 울렸다.

마법사용자들이 탈진해가며 마법을 사용했듯이, 전위들도 수문장을 빠르게 쓰러트리고자 했다.

급속충전 동안 약화된 지금이 기회였다. 실제로 수문장의 몸도 처음과 달리 고철과 비견할 수 있었고.

“얼마 안 남았어! 더 빨리!”

수문장이 비틀거리자 데니스가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전위들의 몸에서 푸른빛이 잠시나마 번쩍거렸다.

깡깡깡깡!

내리치는 동작이 훨씬 빨라졌다. 수문장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매직웨어와 마력을 동시에 사용하여 손에 닿지 않는 힘을 잠깐 빌리는 행위를 오버클럭이라고 부르는데, 부작용은 차치하더라도 효능이 굉장했다.

수문장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고 무기를 내지른다. 설령 타격을 허용하더라도 얕거나, 빠르게 움직이는 데니스가 도와주기에 상관없었다.

마치 나무를 찍어내는 듯한 유기적인 합동 공격이었다. 그렇게 수문장은 옆으로 쓰러졌다. 마석등만큼 밝던 안광도 완전히 꺼졌다.

“와아아!”

잠시지만 함성이 터졌다. 전위들은 전위들끼리, 마법사용자들은 자기들끼리 얼싸안았다.

앨런의 도움 없이도 수문장을 처리했다. 수문장을 잡겠다고 작정하고 내려온 파티다운 면모였다.

‘말벌 무리에 대한 부실한 대응만 빼면···.’

잠깐의 휴식으로 기력을 채운 데니스가 앨런에게 다가왔다.

“나는 수문장을 상대하느라 몰랐는데 다른 오토마톤 무리가 덮쳤다면서?”

“말벌을 닮은 개체들이었습니다.”

앨런은 수거해온 마석과 영혼석을 보여줬다.

“미로가 야외보다는 좁다 해도 날아다니는 것들은 상대하기 어려웠을 텐데···. 고맙다.”

“덕분에 저도 좋은 구경 했습니다.”

미궁탐험가들이 힘을 합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협력은 단순한 덧셈에서 벗어나 그 이상의 결과를 얻어냈다.

또한, 수문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직접 봤다. 데니스와 이야기하면서도 머리 한구석에서는 나였다면 어떻게 상대할지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말을 꺼내던 데니스가 반가운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필요한 부품이 있어? 아니면 돈으로 주고.”

“그렇다면 수문장의 눈이나 영혼석을 받고 싶습니다.”

앨런은 거절하지 않았다. 한 번쯤은 거절하는 게 예의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다.

데니스는 잠시 동료들과 의견을 나눴다. 인상을 찌푸리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앨런이 아니었다면 수문장을 잡기는커녕, 지금 한창 도망 다니고 있었으리란 사실을. 당연히 생사와 부상은 장담할 수 없었다.

논의는 금방 끝났다.

“수문장의 안구를 줄게. 대신 잡았다는 증거가 필요하니 밖에 나가서 확인이 끝나고.”

“그 정도는 당연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아, 올라가는 도중에 영혼석을 좀 살펴봐도 될까요?”

“망가지지만 않게 살살 봐줘.”

“그건 당연하죠.”

수문장의 눈은 영혼석과 더불어 가장 비싼 전리품이었다. 눈은 고출력 빔을 뿜어낼 수 있어서 산업용이나 전투용으로 바로 채용할 수 있고, 영혼석은 보행 전차나 컴퓨터의 보조 인공지능으로 수요가 높았다.

수문장의 몸이 해체되어 수레에 담기는 동안, 앨런은 망가진 마도구를 살펴봤다. 기운을 차린 카크다가 옆에서 기웃거렸다.

“방어막 생성기는 고칠 수 있겠네요.”

“그러면 나중에 수문장을 다시 잡아도 되겠는데.”

“방어막 강도가 약해져서 안 됩니다. 원래 일회용이란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좋다 말았네. 그래도 비상시에 몸 지키긴 좋겠는걸.”

“그게 핵심입니다.”

“맞아. 비록 위험한 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목숨이 최우선이지.”

앨런은 카크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미궁탐험가가 내뱉으니 굉장히 어색했다.

미궁탐험가는 일종의 스릴 중독자였다. 탐험은 위험한데 항상 그것을 추구했다. 익스트림 스포츠에 매달리는 사람들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목숨을 거는 데서 오는 짜릿함에 마음이 사로잡힌 것이다. 육체의 개선과 지식을 쫓아 미궁으로 들어온 앨런도 언젠가 그렇게 변할 수도 있었다.

수문장의 해체가 끝나고, 파티가 한자리에 모였다.

“11층 구경이나 할까?”

“지도 펴봐.”

종이 대신 마법사용자의 안구에서 빛이 뿜어졌다. 허공에 네모난 지도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이쯤이지? 한 시간 정도만 걸으면 되겠는데.”

“수문장도 처리했으니 최소 2일은 안 나와. 한 번 가보자.”

“난 예전에 구경해봤는데 별것 없어.”

“다른 파티가 수문장 처리했을 때?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해치웠으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의견은 구경 쪽으로 쏠렸고, 앨런 역시 파티의 뒤를 따랐다.

11층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을 채운 어둠은 평소보다 짙었다. 미궁의 문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내려가는 길. 앨런은 저도 모르게 관자놀이와 귀를 주물렀다. 지잉하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옆에서 걷던 카크다가 그 모습을 지켜봤다.

“미궁이명증?”

“네. 미로의 층을 왔다 갔다 할 때보다 심하네요.”

“마력감응력이랑 감각이 진짜 예민한가 보다. 어째 마법사인 나보다 더 좋은 것 같지? 혹시 마법사에는 관심 없어?”

“뭘 만드는 쪽이 훨씬 즐거워서···.”

앨런이 입을 다물었다. 11층은 인공적인 흔적이 물씬 풍기는 동굴이었다.

원래라면 울퉁불퉁했을 바닥은 수레가 다니기 좋을 정도로 연마되어있었다. 꼭 다듬기 전의 미로 같기도 했다.

애초에 깊게 들어갈 생각은 없어서 다시 10층으로 올라갔다.

수문장을 잡았으니 10층은 어려운 일이 없었다. 운 좋게 다른 오토마톤 무리를 마주치지도 않았다.

수문장을 노리고 왔는지 이쪽의 수레를 보고 탄식을 자아내는 파티가 있긴 했지만,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어기진 않았다.

9층 야영지에서 힘을 보충하고 다시 지상으로 향했다.

앨런은 쉴 때마다 수문장의 눈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케이블을 쭉 빼내서 영혼석과 연결해보기도 했다.

데니스가 수프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뭐 하려고? 저기 있는 호랑이에게 달아서 수문장처럼 눈깔 광선이라도 쏘게? 불 지를 때나, 사람과 싸울 때도 비장의 무기로 활용하긴 좋겠네.”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비밀입니다. 아, 그리고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입니다.”

“그래? 이름이야 어쨌든 이렇게 보니 수레도 끌고 꽤 쓸만하네. 우리도 채용해 볼까?”

“마력 공급만 원활하면 괜찮습니다. 마법공학자가 없으니 전투는 불가능하겠지만, 수레만 맡겨도 부담이 덜하겠죠.”

“아, 마력 공급. 그게 문제였지.”

데니스가 심층까지 내려가는 탐험가면 모를까, 지금의 벌이로 오토마톤을 운용했다가는 저금을 못 할 게 뻔했다.

“잠깐. 그러면 너는 그 정도로 마나하트가 크다는 말이잖아. 아니면 어딘가의 도련님?”

“도련님은 아닙니다.”

“하긴, 부잣집 자제가 미궁을 혼자서 다닐 리가 없지. 야영도 꽤 익숙해 보이고.”

말을 마친 데니스가 빈 수프 그릇을 들고 냄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앨런은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리고 왼쪽 시야에 어떤 문자들이 보였다.

<분석>

이름 : 데니스

종족 : ??

특징 : ????, 의족 사용자, 속도전

눈은 데니스의 정보를 작성했다.

앨런의 뇌, 그러니까 기억과 연동해서 정보를 출력했다. 당연히 앨런의 이해를 넘어가는 것은 표시할 수 없었다.

눈에는 기억수정의 기능도 포함되어 있어서 불필요한 정보를 일일이 외우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앨런은 물음표를 지우기 위해 눈을 깜빡거렸다.

<분석>

이름 : 데니스

종족 : 인간

특징 : 파란 머리, 의족 사용자, 속도전

이번에는 제대로 나왔다.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으나 그건 조율로 해결하면 될 터. 빅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앨런의 판단 없이도 눈이 알아서 생명체나 사물을 분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만물을 꿰뚫어 본다는 ‘아카샤의 눈’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겠지.

미궁을 빠져나온 나온 앨런은 탐험가의 인파를 쭉 훑어봤다. 눈이 성벽 위에 웬 화살표를 그려냈다.

<분석>

이름 : ??

종족 : ???

특징 : 검은 망토, 브레이커 배지

평소라면 그냥 스쳐 지나갈 것도 이런 식으로 특징을 잡아냈다. 의식의 밖에 있는 존재를 알아챌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앨런은 브레이커의 요원이라고 임시 명명한 존재를 조심스럽게 쳐다봤다. 저번에 봤던 여성은 아니었다.

<분석>

이름 : 불명

종족 : 인간

특징 : 검은 망토, 브레이커 배지, 요원?

이름은 당연히 모르고, ‘요원?’은 앨런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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