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거리(1)
기화요초가 가득한 웨스턴스카이의 내부는 계절과 상관없이 일 년 내내 온난하다. 지하에 특수한 생육환경을 조성해놨다고는 들었지만, 앨런이 그곳까지 갈 일은 없었다.
“후.”
앨런이 마주하는 공기는 언제나 따뜻했다. 마스크를 벗으니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깨끗한 공기가 폐를 정화했다.
웨스턴스카이의 인기가 좋은 이유는 약효도 약효지만, 도시의 사람들이 쉬이 느낄 수 없는 공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공원이나 식물원으로 착각하면 곤란했다. 이곳은 엄연히 사업장. 상인의 능력을 단련한 요화는 단순 구경꾼이다 싶으면 쫓아냈다.
“손님에게 이래도 돼?”
“무려 두 시간이나 가만히 놔뒀습니다. 여기는 상점이지 휴식처가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몰라? 이거 전부 찍고 있어! 내가 거느린 구독자 수만···.”
“네, 네. 열심히 올려주세요.”
마침 블랙컨슈머가 종업원에게 끌려나가는 중이었다. 몸을 비틀어보려 하나, 엘프 드루이드 앞에서는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둘을 지나친 앨런은 웨스턴스카이를 투명한 잎으로 돔처럼 감싸고 있는 나무를 쳐다봤다.
수액의 흐름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나무의 구멍에서 날개를 접은 페어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녕. 안녕.”
몇 번 봐서 익숙해졌다고 반갑게 인사하는 페어리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요화가 기다리는 구역으로 향했다.
앨런이 앞에 다다르자 입구를 지키던 나무들이 스르륵 움직이며 길을 내줬다.
요화는 앨런의 허리춤에 걸린 마스크를 보더니 손뼉을 쳤다.
“내가 시킨 대로 잘하고 있네. 착해, 착해.”
“흡입하는 공기가 바뀐다고 검사 결과에 차이가 있는 겁니까?”
“연구자로서는 변수를 최대한 줄여야 좋은 결과를 얻지 않겠니? 필터도 갈아줄 때가 됐네. 거기 있는 나무에 걸어놔.”
앨런이 마스크를 걸자, 어딘가에서 나타난 페어리가 기존 필터를 버리고, 새로운 필터를 가져와서 나사 돌리듯 끼웠다
몸집이 필터 통과 비슷한데도 힘들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신비가 살아 숨 쉬는 세계라 이상할 것도 없었다.
덩굴이 만들어낸 의자에 앉으니 민들레 홀씨와 비슷하게 생긴 씨앗들이 앨런의 몸 이곳저곳에 달라붙었다.
평소처럼 책을 펼치지 않고 천장을 쳐다보고 있으니, 임상시험 대상자를 떠나보낸 요화가 말을 걸었다.
“내가 말 걸어도 책 보느라 반응도 없더니 오늘은 웬일이래. 무슨 고민 있니?”
“11층에 도달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마법공학자면 그 근처에서 노는 파티에 합류하면 되잖아. 평균보다 실력이 뒤떨어지는 사람도 ‘어서 오세요!’하고 받아줄걸.”
“기왕이면 혼자만의 능력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마법공학자가 전투까지 한다고? 아예 없는 일은 아닌데···.”
요화는 말을 줄였다. 타인의 사정을 함부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오래 살아왔기에 잘 알고 있었다.
앨런 역시 침묵했다.
랑카 그리고 노박.
어린 나이에 그런 사건을 겪고 나니 주관이 뚜렷해졌다.
무력은 무조건 필요했다. 나락으로 향하는 절벽에 내밀렸을 때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뿐.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기만 하면, 언젠가는 저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요화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손짓하니, 나비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서 다리로 잡고 있던 솜털을 손 위에 올려놨다.
“네 덕분에 얻은 데이터로 개선한 피살이꽃이야. 보양 효과가 한층 강해져서 씀씀이 큰 고객들도 좋아하더라.”
“드디어 이름을 지으셨군요. 피살이는 동방대륙의 언어입니까?”
“맞아. 메이즈시티의 부자들은 동방대륙의 단어가 붙으면 신기해하는 경향이 있거든. 그런 취향을 겨냥한 작명이야. 네 생각은 어때?”
“이름보다는 약효가 먼저 아닐까요?”
“효능은 당연히 좋지. 지금 내 능력을 의심하는 거니?”
“죄송합니다.”
앨런이 진지하게 대답하자, 요화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농담이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니까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 사실 부자나 권력자들이 찾는 물건은 전부 최상품이야.”
“세세하게 계산하면 효과나 능력은 비슷하다는 의미입니까?”
“그래. 정말로 특출한 물건이 아닌 이상 고만고만해. 그중에서 선택을 받으려면 이름이나 형태가 특이하거나, 나름의 스토리가 있어야지. 팔뚝 내밀어볼래?”
요화는 솜털을 조심스럽게 파헤치더니 깨만 한 씨앗을 꺼냈다. 피부 위에 올려놓으니 예전처럼 앨런의 마력을 양분 삼아 빠르게 자라났다.
예전과 다르게 붉은 꽃잎은 투명해져서 너머가 보일 정도였다.
마치 빨간 수정을 깎아 만든 듯한 아름다운 꽃은 금방 말라비틀어지고, 앨런의 몸에는 활력이 솟아났다.
꽃의 효능은 혹사당한 마력회로의 안팎에 스며들어, 흠집이 생긴 곳을 보강했다. 마치 깨진 치아에 아말감을 씌우는 것처럼.
한결 몸이 편안해졌다.
“어때?”
“확실히 저번보다 효과가 좋습니다. 댐으로 비교하면 훨씬 높고 두껍네요.”
앨런의 마력통제력이 아무리 높아도 회로에는 상처가 생겼다. 상처를 비집고 나온 마력은 몸도 상하게 했다.
마력과다증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앨런의 제어능력이 성장하면, 체내의 마력이 ‘이 정도는 버티는군요?’라며 덩치를 또 부풀렸다.
숨만 쉬어도 마나하트가 커지는 건 축복받은 재능이나 너무 과해서 문제였다. 몸에 필수인 비타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병이 생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앨런의 몸에 붙어있는 홀씨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 요화가 아까의 화제를 다시 꺼냈다.
“11층에 간다고 했지? 그럼 장비나 재료는 어떻게 구하니?”
“삼라만상의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캡슐호텔에 묵어도 배달을 해주니 편하더군요.”
“그것도 장점이 있는데 정말 뛰어난 물건을 구하려면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할 거야. 요즘은 기성품도 워낙 잘 나오지만, 정밀한 조정을 하려면 제작자를 만나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 틀에 대고 장비를 찍어내는 세상에서 장인들이 괜히 살아남은 게 아니야.”
“저도 마법공학자입니다.”
“자존심을 건드렸니?”
요화가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귀여운 아이를 보며 미소짓는 할머니 느낌이 물씬 풍겼다.
당연했다. 웨스턴스카이는 이 자리에만 40년을 있었고, 주인은 처음부터 요화였다.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 진짜 귀여워서 저렇게 행동했다. 사람과 사람, 더 나아가 가족 사이의 관계도 메마른 메이즈시티에서는 오히려 저런 느낌이 좋아서 방문하는 손님들도 있었다.
아니면 앨런이 소중한 표본이라 친근하게 대할 수도 있고.
앨런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요화의 웃음이 짙어졌다.
“표정 하나 안 바뀌어서 감정 없는 골렘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구나. 그래, 사람이라면 자신의 분야에 자부심을 지녀야지. 마침 검사는 다 끝났으니 일어나도 좋아.”
“평소에는 조금이라도 오래 앉아있게 하려고 하더니 오늘은 다르군요.”
“여기까지 왔으니 근처 들러보라고 인심 쓴 거야.”
앨런이 넝쿨 의자에서 빠져나오니, 요화가 단말기로 지도를 보여줬다.
“왜 그런 표정으로 봐? 나도 단말기는 다룰 줄 알아. 요즘 이런 물건도 못 만지면 가게 홍보를 어떻게 하겠니?”
“혹시 손님으로 위장해서 약효리뷰 쓰십니까?”
앨런의 날카로운 질문이 화살처럼 날아갔지만, 요화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동작으로 가볍게 튕겨냈다.
“혼자 힘으로 11층에 가려면 장비가 더 필요하겠지. 그러면 여기에 찍힌 공방거리를 방문해 봐. 여러 가지 장비들을 보다 보면 어떤 무기나 보호구가 필요한지 떠오를 거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구매하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의 작품을 보다 보면 제작에 대한 영감이 생길 수도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앨런은 탐험용 구급상자를 챙기고 밖으로 나갔다. 마침 공방거리로 향하는 모노레일 정거장이 근처에 있었다.
‘수요가 있으니 정거장도 있겠지.’
정거장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빌딩 사이를 롤러코스터처럼 빠져나온 모노레일이 멈춰 섰다.
앨런의 생각대로 모노레일의 내부에는 사람이 많았다. 은은하게 흘리는 마나를 보니 전부 공방거리가 목적으로 보였다.
굳이 마나가 아니더라도 판단하기는 쉬웠다.
언제든 기관총으로 바뀔 수 있는 의수형 매직웨어를 착용한 드워프, 오크의 허리춤에 삐죽 튀어나와 있는 마나소드의 손잡이, 걸을 때마다 쿵쿵 소리를 내는 전신개조자.
전부 무력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다. 일반인이라기엔 무장이 과했다.
앨런의 예측대로 공방거리 정거장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앨런은 육교처럼 생긴 정거장의 계단을 내려가며 고개를 돌렸다.
공방거리를 처음 본 감상은 이랬다.
‘복잡해.’
방문객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건물도 콩나물시루처럼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높이나 형태도 제각각이라 2층 건물 옆에 15층 이상의 빌딩이 바짝 붙어있기도 했다.
앨런의 시선은 거리 가운데에 있는 상인에게 향했다.
시에서 허가받은 노점상은 마도구를 튼튼하고 투명한 진열장 안에 보관했다. 건물 안에 있는 가게보다는 보기가 편했지만, 접근하기 쉬운 만큼 급이 떨어지는 장비가 많았다.
‘장비마다 룬문자를 2~3개 쓰긴 했는데, 획도 대충 그렸고, 회로의 마석 함유량도 적어서 제 성능은 못 뽑겠는데.’
앨런이 마도구를 투시하고 있으니,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있던 주인이 성을 냈다.
“지금 설마 내부 설계 훔치는 거요?”
앨런은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갔다. 노박 클리닉 시절의 자신이 만들어도 저렇겐 안 만들겠지만, 굳이 말을 섞어서 분쟁 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 후로 몇몇 가게와 공방의 견학을 마친 앨런은 목표를 똑바로 정하기로 했다.
신기한 장비, 눈에 띄는 설계를 발견하면 직업병인지 철저하게 뜯어보고 개선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구경만 하다가 밤이 되겠어.’
당면 과제는 수문장을 혼자서도 상대하는 것. 그러려면 압도적인 화력으로 찍어누르거나, 수문장의 공격을 피할 기동력이 필요했다.
첫 번째 방법은 무리가 있었다. 수문장을 단번에 잠재울 무기는 가격이 어마어마할 테고, 설령 구한다고 하더라도 앨런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기동력을 살리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데니스처럼 의족을 달아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몸에 칼을 대기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방법도 있었다.
‘강화복.’
최상급의 물건은 우월한 방어력으로 전신을 빈틈없이 보호하고, 출력은 10m 높이의 타이탄과도 비견할 만했다.
당연히 앨런이 생각하는 강화복은 그런 물건이 아니라 강화외골격이었다. 일반인도 마력사용자만큼의 신체 능력을 지니게 해주니, 몸이 약한 앨런에게는 딱 맞는 장비였다.
앨런은 강화외골격을 파는 가게로 향했다. 공방거리라고 공방만 있는 건 아니어서 거대 매장이 종종 보이는데, 방문한 가게가 그중 하나였다.
1층에 전시된 강화외골격은 종류가 다양했다. 헥스테크나 칠성처럼 너무 유명한 대기업부터, 가격으로 승부를 보는 중소기업, 장인이 수제작 한 것까지.
성능과 가격을 계산하며 제품을 고르던 앨런의 왼쪽 눈이 갑자기 화살표를 생성했다. 앨런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화살표를 따라 움직였고, 그곳에는 2층에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화살표는 라이딩 재킷과 청바지를 입은 여성을 가리켰다.
‘누구···.’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성의 얼굴에 노이즈가 생기더니 본래의 모습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오른쪽 눈은 홀로그램이 보여주는 환상을, 왼쪽 눈은 환상을 꿰뚫어 안쪽을 봤다.
회색 머리카락의 여자였다. 미로에서 봤을 때처럼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앨런은 못 본 척하려고 했으나, 눈을 감고도 주위의 상황을 어떻게 아는지 여자의 고개가 이쪽으로 향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