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거리(2)
홀로스킨은 변장용 마도구로,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환상을 입혀서 본인의 정체를 감출 때 사용했다.
저 밑바닥에서 사람들의 장기를 털고 다니는 스캐빈저부터 저 위의 권력자들까지 하나쯤은 지니고 다녔다.
변장은 당연히 본모습을 숨기려는 행위가 아니던가. 그런데 브레이커의 요원으로 활동하는 여성은 자꾸 앨런 쪽으로 다가왔다.
앨런이 벽에 매달린 장비를 보는척하며 고개를 돌렸는데도 조금씩 접근했다.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오는 거지? 설마 기사를 조종하던 새의 정체를 들켰나? 분명 전투 도중에 새가 탑승한 부분이 완전히 뭉개졌을 텐데.’
그렇다고 새가 뭔가 중요한 것이었나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다른 오토마톤과 다른 별문자가 입력되어있고, 영혼석이 오파츠긴 했지만 겨우 미로에서 나오는 물건일 뿐이었다.
고민하는 도중, 가까이 다가온 여성이 조용히 말했다.
“별일 없었지?”
앨런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무언가 추궁하려고 온 줄 알았는데 안부를 묻다니.
“그게 무슨 뜻인지···.”
“저번에 내가 체포한 탐험가들은 평판이 안 좋은 조합 소속이야. 우리가 지켜보고 있으니 함부로 행동하진 않겠지만, 혹시 몰라서.”
“아, 미궁은 그런 곳이었죠.”
그 안에서 죽으면 괴물에게 당했는지, 같은 탐험가에게 살해당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도 앨런이 능력이 모자랐다면,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 늦었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어떤 조합인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로만 컴퍼니. 미궁 탐험과 용병일 등 무력이 필요한 곳에 전반적으로 발을 걸치고 있어.”
“주의하겠습니다.”
지금보다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의 심층 원정대가 아니면 미궁탐험가가 어디 소속이라는 마크를 달고 다니지도 않으니까.
‘언제든 숨겨도 이상하지 않고.’
사실 저 정도 크기의 조합이 강도질하다 잡힌 조합원의 복수를 하겠다고 앨런을 공격하는 꼴도 웃기긴 했다.
“그런데 저쪽에서 저를 어떻게 압니까?”
“잡혀있어도 면회는 할 수 있잖아. 그리고 미로에서 오토마톤을 데리고 혼자 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아.”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말을 거셨습니까?”
“다른 이유도 있어. 그 눈, 뭐야?”
“···.”
“저번에는 평범한 인공 안구라고 생각했는데, 홀로스킨의 안쪽까지 훑어볼 줄은 몰랐어.”
앨런의 눈이 능력을 발휘한 순간은 찰나, 그렇다면 여성의 마력감지 능력이 굉장히 강력하다는 의미였다.
“어디 물건이야?”
“기업이나 공방제가 아닙니다.”
“혼자 개발 중인 매직웨어란 뜻이야? 그렇구나.”
여성은 쉽게 수긍했다. 사실 개인이 매직웨어를 만드는 행위는 굉장히 어려웠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팔이나 다리도 아니고, 뇌와 직접 연결되는 눈이 아니던가.
왜 이리 쉽게 받아들였나 생각하는 도중, 여성이 앨런의 주위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일이야?”
“강화외골격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기동력을 보충할 필요성이 있더군요.”
“강화외골격? 마나하트가 있잖아.”
여성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앨런의 심장 가리켰다. 정확히는 마나하트를.
“이렇게 마나가 흘러넘치면 신체 강화도 쉬울 텐데.”
마나가 있다고 신체 강화가 수월하진 않았다. 사람은 타고난 재능의 한계가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기는 정말 어려웠으니.
앨런은 재능보다는 몸의 문제였다. 안 그래도 마력과다증이 육체를 좀먹고 있는데, 신체 강화를 한다고 마력을 운용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미 매운 음식에 캡사이신을 들이붓는 꼴이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신체 강화는 지양하고 있습니다.”
“신체 강화가 어려워서? 그러면 내가 도와줄까?”
“···.”
앨런은 입을 다물었다. 마력 인도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한 경로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신체를 강화하는 방법이라면 굉장히 복잡했다. 아무에게나 해줄 만한 일도 아니고.
무슨 생각인가 쳐다보는데, 여성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
‘이 사람에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마력 인도도 ‘호흡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폐가 커지면 내뱉으면 돼.’ 정도로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일종의 천재였다. 총알도 검으로 튕겨내던 사람이니, 어쩌면 당연하기도 했다.
눈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왜 쉽게 수긍한 지 알 수 있었다.
‘육체를 다루는 일이 쉬우니, 비록 다른 분야지만 다른 사람도 그러리라 생각하는 거겠지.’
어쨌든 여성의 제안은 기꺼웠으나, 앨런은 고개를 저었다.
이 여성이라면 몸에 손을 대면 체질을 바로 알아차리리라. 요화는 의사와 똑같아서 어쩔 수 없이 알렸지만, 웬만하면 퍼트리고 싶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쉬운데···. 그럼 이름은 뭐야?”
저번에 사건 경위를 조사하면서 말했는데 잊은 모양이었다. 앨런이 유명한 사람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앨런입니다.”
“난 시온.”
이름을 알려준 시온은 강화외골격을 하나씩 가리키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미궁에 오래 있으려면 대기업 물건만 보는 걸 추천해. 핵스테크는 내구성이 좋아서 일부러 망가트리려 해도 쉽지 않고, 칠성은 출력에 집중해서 안정성과 내구성은 아쉬워.”
“겪어본 듯한 감상이군요.”
앨런의 말에 시온이 들고 있던 길쭉한 가방의 지퍼를 내렸다. 안에는 검들이 들어있었는데, 전부 헥스테크의 육망성과 칠성의 북두칠성이 찍혀있었다.
“무기를 굉장히 많이 들고 다니시네요.”
“검은 소모품이니까.”
“소모품이라기엔···.”
검에 부여한 룬문자나 기술이 굉장했다. 칼날에 새겨진 룬문자만 봐도 [강화], [탄성], [상쇄], [예리] 등 최소 네 가지가 적혀있었다.
“[화염]이나 [빙결]처럼 피해를 주는 룬문자는 싫어하십니까?”
“그냥 검으로 베면 되잖아.”
시온이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대화를 마친 앨런은 칠성의 강화외골격을 선택했다. 검은색으로 무광 코팅된 골격이 발바닥과 다리 외부를 거쳐 허리까지 오는 형식이었다.
내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만 그건 같은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고, 중소기업이나 불법 장비와는 기술 수준이 달랐다.
설령 고장 나더라도 앨런이라면 충분히 고칠 수 있었다. 눈과 표범을 개조하며 룬문자에 대한 조예도 깊어졌기에 지금은 동시에 두 개를 다룰 수 있었다.
얼떨결에 쇼핑을 마친 앨런은 거리를 걸으며 시온에게 물었다.
“브레이커에 비밀부대도 있습니까?”
“알면 다쳐.”
“···.”
“농담이야. 비밀이니까 비밀부대지. 그렇게만 알고 있어.”
추가적인 정보 습득은 어려웠다. 게다가 브레이커가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도시에 비밀부대가 한두 개던가. 칠성이나 헥스테크도 사병은 충분히 거느리고 있었다. 나라의 눈치도 안 보는데, 이곳은 자치시인 메이즈시티라서 말할 필요도 없었다.
거리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시온은 도로 옆에 바짝 붙었다. 앨런은 홀로스킨 너머에 있는 본래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은 건 특별한 수행의 일환입니까?”
“아니, 세상에 더러운 게 너무 많아서.”
시온이 대답함과 동시에 검은색 스포츠카가 인도에 바짝 붙었다. 운전자가 없는데도 핸들과 기어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시온은 자동으로 열리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인연이 닿으면 또 보겠지.”
마침 퇴근 시간이라 차가 도로에 꽉꽉 차기 시작했지만, 시온이 탑승한 차 주변에는 안 오려고 했다. 구급차를 위해 길을 터주는 것도 저 장면보다는 덜하리라.
강화외골격을 착용한 앨런은 모노레일 정거장으로 향했다.
양팔에 골렘 의수를 착용한 오크, 케이블로 서로의 소켓을 연결해서 감각을 공유하는 엘프, 큼지막한 샷건을 메고 다니는 고블린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워낙 개성 넘치는 모습들이 많아서 앨런의 강화외골격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앨런 역시 도시에 익숙해져서 처음처럼 촌스럽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왼쪽 눈만이 바삐 움직이며 마도구와 매직웨어를 게걸스럽게 훑어봤을 뿐이다.
‘보통은 임무 중에 홀로스킨을 착용하고, 일상생활을 본 모습으로 하지 않나?’
앨런은 시온을 떠올렸다가, 도착한 모노레일에 탑승했다. 역시 대중교통이라서 레일을 내달리기만 하니 막힘이 없었다. 정거장에 멈춰도 사람들이 뭐가 그리 급한지 워낙 빨리 드나들기에 오래 정차하지도 않았다.
브레이커 근처의 정거장에서 내려서 캡슐호텔로 향했다. 차가 막힌 도로 옆을 걷고 있으니 익숙한 검은색 차량이 보였다. 고개를 돌리니 아까 그 스포츠카였다.
앨런은 브레이커 근처의 호텔에 머무르고, 시온은 브레이커의 건물 중 하나에 거주할 테니 마주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
“···.”
인연이 어쩌고저쩌고했으면서 당일에 만난 게 문제라면 문제일 뿐.
시온은 눈이 마주치자 못 본 척하며, 신호가 언제 떨어지나 확인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
공방거리 방문 다음 날부터 앨런은 바로 미궁으로 향했다.
동작 보조기구가 생기니 맨몸으로 다닐 때보다 힘이 덜 들고, 걷는 속도도 확실히 빨라졌다.
그렇다고 바로 수문장에 도전하진 않고, 강화외골격에 적응할 시간을 가졌다. 약한 몸이기도 하고, 몸치 기질도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4~5층에서 주로 움직이며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때로는 오토마톤을 하나만 남겨놓고 지팡이로 맞상대하기도 했다.
층과 층이 만나는 야영지에 들러서 부업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항상 같이 다니는 표범 그리고 마법공학자 홀로 다닌다는 특수성 때문인지 앨런을 알아보는 사람도 조금은 생겨났다.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싼 값에 수리해주는 마법공학자 정도로.
“연락처 줘 봐.”
“왜 그러십니까?”
“수리한 장비에 문제 있으면 애프터서비스를 해줘야지.”
“그냥 손 안 댈 테니 다시 가져가세요.”
“거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문제 있는 사람을 만나 마찰을 빚을 때도 있으나, 대부분은 원만하게 해결됐다.
“싫으면 꺼져.”
“대기업 물건인가 했더니, 상표 보니까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업인데.”
야영지는 층과 층을 연결하는 길목인 만큼 탐험가도 꽤 있었고, 그들은 앨런이 계속 수리해주기를 원했다.
앨런이 없으면 지상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괜히 이상한 사람이 꼬여서 장사를 접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이들에게 다른 꿍꿍이가 없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혼자 다니면 전리품도 제대로 못 옮기지 않나? 오토마톤의 동체도 비싼데 그걸 전부 버리면 어떻게 해.”
“우리 파티에 들어오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사람들이 어떤지 확인만 해보는 건 어때?”
소속 없는 마법공학자는 나무에 발린 꿀이나 마찬가지여서, 온갖 곤충들이 모여들었다.
정중히 거절해도 다른 야영지에서는 다른 탐험가가 또 권유하니, 앨런은 수리한다는 내용이 적힌 팻말에 영입 제안 사절이라고 적어놨다.
그래도 제안은 이어졌다. 문에 ‘미시오.’라고 적혀있는데 당기고, ‘당기시오.’라고 쓰여있는데 미는 사람이 한 둘이던가.
9층에 있는 야영지에 도착한 앨런은 평소대로 자리를 잡고 수리를 시작했다.
충격파를 발사하는 둔기를 리자드맨의 꼬리에 부착하는 도중, 야영지로 들어오는 통로 하나에서 다수의 탐험가가 나타났다.
수리를 받던 리자드맨이 작게 중얼거렸다.
“로만 애들이잖아. 얼마 전에 여럿이 구속당했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우글거리네.”
“수문장을 노리고 왔을까요?”
“오늘 처치당해서 이틀은 안 나올 텐데. 그냥 11층으로 가려는 거 아닐까?”
리자드맨도 확신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추측이 맞았는지 로만 소속 탐험가들은 바로 10층으로 내려갔다.
앨런은 내리막길의 짙은 어둠을 바라보다가 다시 수리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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