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장(2)
“뭐야? 뭔데?”
“입 다물어!”
데니스는 동료들의 질문에 짧게 대꾸하고 살짝 앞으로 나갔다.
헤드랜턴의 빛이 아무리 강해도 미로의 검은 안개는 일정 거리 이상 뚫리지 않기에, 직접 나서야 통로를 확인하기 수월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에 데니스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다. 혼자야.”
그 말에 무기를 쥐고 있던 일행이 어깨에서 힘을 뺐다. 물론 긴장을 덜어냈다는 의미일 뿐, 진짜로 안심하진 않았다.
탁탁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안개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 특수섬유 및 소재로 만든 탐험복이 피로 젖어있었다.
나타난 남자는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었다.
잠시나마 느슨해졌던 일행 사이에 긴장감이 솟구쳤다. 전방과 후방을 경계하는 사이, 마법사용자이자 치료사 역할을 맡은 셀린이 남자의 몸을 살폈다.
탐험복을 들춰내자 참혹한 몸뚱이가 드러났다. 온갖 종류의 무기로 공격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총상인가? 여기는 열선을 사용하는 무기에 베여서 시커멓게 탔네.”
그것만으로는 오토마톤의 소행인지, 아니면 사람의 수법인지 알아내기 어려웠다. 오토마톤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그것들이 사용하는 무기도 그만큼 많았다.
셀린은 구급상자에서 주사기와 비슷하게 생긴 급속 지혈제를 꺼냈다. 상처에 대고 쭉 짜면 하얀 알갱이들이 피를 머금고 부풀어 올라서 출혈을 막았다.
셀린이 어떻게든 남자를 깨워보려고 했지만,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했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응급조치는 끝냈어. 숨은 쉬는데, 출혈이 너무 심해서 일어나질 못하네. 지상까지 살아있을지도 모르겠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 사람을 공격했던 것들이 우리에게 오면 상대할 수 있겠어?”
동료의 말에 셀린이 다시 부상자를 살폈다. 상처보다는 그가 몸에 걸친 장비를 주로 확인했다.
“일단 탐험복만 따져도 우리가 사용하는 것보다 비싼 물건이야. 우리보다 실력이 좋다는 의미겠지.”
“골치 아파졌네.”
장비는 곧 실력이었다. 실력이 좋으면 수입이 많고, 그만큼 장비도 비싸지니 대부분 상황에 해당하는 지론이었다.
동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데니스에게 향했다. 잠깐의 시간이 필요한지 손바닥을 들어 올린 그의 얼굴에는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데니스의 파티는 수평적으로 모였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시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었고, 그럴 때는 데니스가 주로 판단을 내렸다.
정찰하는 도중, 소리로만 들었을 때는 최소 5인 이상의 파티였다. 자신들과 비슷한 숫자의 파티를 몰살한 개체 혹은 단체가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면도 없는 탐험가, 심지어 정신을 잃은 부상자는 짐 덩이보다 못했다.
데니스는 순간 못된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가 생면부지의 탐험가를 데려갈 의리가 있나? 만약 정체불명의 무리가 오토마톤이라면 부상자를 미끼로···.’
오토마톤뿐만 아니라 미궁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침입자가 보이면 무조건 공격했다. 탐험가가 정상인지, 부상자인지는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감당하기 어려운 괴물이 나와서 도망치다가 다른 파티를 만나면 일부러 떠넘기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아니야. 우리가 처리할 만한 적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탐험가를 버릴 생각부터 했던 자신에 대한 수치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임시지만 대장이라는 존재는 그 무엇보다 파티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어야 했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은 그 목표를 위해 가려놔야 했다.
앨런은 데니스의 얼굴을 쳐다봤다. 깜깜한 미로에서도 항상 밝던 표정이 지금만큼은 어두웠다.
‘고민이 많겠지.’
삶과 죽음은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생명체의 궁극적인 목표는 삶이 아니던가. 위험하게 미궁을 탐험하는 일도 결국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였다.
앨런은 앞으로 나서서 부상자를 자신의 수레에 실었다. 강화외골격이 하체를 보조해줘서 어렵진 않았다.
“우선, 제 수레로 옮길게요.”
“그래도···, 되겠어?”
“표범은 힘이 세서 괜찮습니다.”
데니스의 물음에는 다른 뜻이 있었지만, 앨런은 일단 그리 대답했다.
주인이 지팡이로 등을 툭툭 두드리니 표범이 터벅터벅 걸었다. 평소와 같은 속도여서 성인의 무게가 더해졌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봐요. 거뜬하죠?”
앨런은 굳이 불편한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거뜬하다는 모습만 보여줬다.
데니스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혼자서도 10층을 돌아다니는 앨런을 잠시 잊고 있었다. 어쩌면 마법공학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한참 아래로 봤을 수도 있었다.
정리가 끝나고 데니스가 다시 정찰을 진행했다. 시체는 이미 미궁이 삼킨 후라 찾을 수 없었고, 파티를 공격했던 무언가도 사라진 후였다.
일행이 전진하는 동안 카크다가 앨런 옆으로 바짝 붙어서 작게 속삭였다.
“곧 죽을 것 같은데 왜 챙겼어?”
“일단 제 눈에 띄기도 했고, 손이 닿는 범위니까요.”
“10층에서도 여유가 있단 소리야? 역시 혼자 다니는 탐험가라 그런지 자신감부터 다르구나.”
“그건 아닙니다.”
앨런의 말에 카크다의 꼬리가 빙글빙글 휘었다. 마치 물음표 같았다.
“지금도 안 하는데,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고 할까요?”
그 말에 카크다의 눈이 똥그래졌다.
“···특이하네. 대부분은 자기 앞가림하기 바쁘던데.”
그렇게 말하는 카크다는 공감하지 않는 눈치였다. 앨런도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기에 부연 설명은 하지 않았다.
랑카에서 누군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앨런의 운명은 목걸이에 갇혔다.
그렇기에 스스로 손을 내민 것이다. 누군가가 없다면, 자신이 되면 될 일 아니던가. 비록 지금은 손이 아주 작지만.
‘그저 자기만족일 수도···.’
앨런은 고개를 흔들며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일행이 생겼다고 방심은 금물이었다.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지상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레에 실린 사람도 살아남으면 더 좋고.
앨런과 카크다가 뒤에서 걷는 사이, 다른 일행들은 지도를 살피며 최적의 경로를 찾고 있었다.
“여기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는 게 어때?”
“직진해도 9층에 도착하려면 4시간 정도 걸리는데 돌아서 가면 최소 2시간은 늘어나.”
“이쪽 길이 그나마 교차로가 적어서 변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어.”
결국, 결정은 데니스의 몫으로 돌아갔다.
“다른 탐험가들도 문제가 생기면 최단 거리로 움직일 테니 직진하자.”
“힘을 합치자고? 그게 좋겠네.”
“물론 최선은 우리의 걱정이 쓸데없는 우려로만 끝나는 거지.”
가장 짧은 길을 선택해서 움직이던 일행은 다른 탐험가 무리와 조우했다. 다수의 전투를 겪었는지 그들의 장비에는 그을음과 흠집이 가득했다.
머리를 바싹 민 남자가 앞으로 나오고, 데니스가 그를 맞이했다.
“혹시 그쪽도 만났소?”
“누굴 말입니까.”
“구더기들이 있더군.”
미궁에서 탐험가들을 상대로 범죄를 자행하는 무리를 일컫는 말이었다. 구더기는 시체에도 들끓는 법이니.
둘이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앨런의 눈이 스킨헤드를 훑었다.
<분석>
이름 : 불명
종족 : 인간
특징 : 로만 컴퍼니
그제야 스킨헤드가 누군지 생각이 났다. 9층 야영지에서 수리하는 동안 아래로 내려간 로만 컴퍼니의 탐험가였다.
“으···.”
그때 수레에 실린 부상자가 신음을 흘렸다.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음성이었지만, 너무 작아서 앨런의 귀에만 들렸다.
수레에 실린 부상자의 얼굴은 평온했다. 고통 속에서 신음했어도 마지막에는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그의 목숨을 거둔 것으로 제일 유력한 상처는 어깨를 따라 가슴까지 이어지는 불탄 흔적이었다.
순간, 앨런의 눈이 다시 움직였다. 데니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스킨헤드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분석>
이름 : 히팅소드
특징 : 고열을 뿜어내는 무기. 생체조직에 효과적.
앨런의 눈에는 야영지에서의 수리와 공방거리 탐문을 통해 꽤 많은 데이터가 저장됐고, 그중에는 히팅소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게 과연 우연일까.
앨런은 일부러 데니스를 크게 불렀다.
“비토가 결국 사망했어요!”
“뭐? 그게···. 잠시만요.”
앨런은 순간적으로 생각난 비토의 이름을 빌렸다. 가족을 찾아 나선 비토는 충분히 이해하리라.
데니스는 황당한 눈빛을 보내다가, 말한 사람이 앨런임을 생각하며 스킨헤드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가까이 다가온 데니스가 수레 안쪽을 들여다봤다. 그러면서 조용히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
“뒤돌아보지 말고 듣기만 하세요. 이 사람에게 난 상처 보이죠?”
앨런은 검게 탄 흔적을 가리켰다. 그리고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저 대머리 허리춤에 히팅소드가 걸려있어요.”
“그것만으로는···.”
“그리고 저 사람. 로만 컴퍼니 소속이에요.”
데니스의 낯빛이 바로 달라졌다. 앨런보다 탐험가 생활을 오래 한 그가 로만 컴퍼니와 언제나 함께 하는 나쁜 소문을 모를 리가 없었다.
“잠깐, 그럼 놈들이 구더기란 소린가?”
데니스는 수레에 실린 동료의 명복을 빌어주는 척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가능성은 충분하죠.”
“나도 놈들 평판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어. 그런데 왜 여기에서? 10층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뒤!”
앨런은 허리춤에서 카드를 꺼내 앞으로 던졌다. 카드에 적힌 룬문자는 [자성] 그리고 [인력]. 금속을 훨씬 강하게 당길 수 있는 조합이었다.
카드는 천장에 거의 붙을 정도로 날아갔고.
두두두두!
로만 컴퍼니 소속 모험가들의 총구 역시 위로 움직였다. 원래는 앨런과 데니스를 노렸는데, 허사로 돌아간 것이다.
스킨헤드의 표정에는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원래는 힘을 합치는 척하며 경계를 낮추고 비수를 찌를 생각이었으리라.
앨런과 데니스의 대화가 길어지자 수상함을 눈치채고 공격을 지시한 판단 자체도 좋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총성이 들리자마자, 아니 총구가 보이자마자 이쪽도 대응을 시작했다. 전위의 방어막 생성기가 푸른 방패를 만들고, 카크다를 포함한 마법사용자의 에비 표면이 번쩍거렸다.
방어막이 펼쳐진 이상, 깨질 때까지는 눈먼 총알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 원거리 타격을 중심으로 누가 먼저 방어막을 깨냐의 싸움이 벌어지지만.
스킨헤드의 대응은 달랐다. 품에 손을 집어넣더니 검게 물든 호루라기를 꺼냈다. 마치 미로의 안개가 뭉쳐져서 만들어진 듯한 모양새였다.
“약간 아쉽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스킨헤드의 뺨이 불룩해지더니 호루라기를 강하게 불었다. 특유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저것들 왜 저래?”
잔뜩 긴장하던 데니스가 마나소드를 늘어트렸다. 스킨헤드가 갑자기 몸을 돌려서 제 무리와 함께 달아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안심하긴 일렀다. 스킨헤드가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맨홀이 생겼다.
“왜 저리 커?”
지금껏 본 적 없는 크기의 맨홀은 입을 쩍 벌리더니 망치를 토해냈다. 리볼버 탄창을 끝에 매단 것과 비슷한 물건이었다. 굉장히 익숙하기도 했다.
“수문장이 저런 식으로 등장한다고? 후퇴!”
데니스의 판단은 빨랐다. 일단 등장 방식도 생소하지만, 수문장을 상대하는 동안 스킨헤드 패거리가 기습하면 곤란했다.
그러나 후퇴도 불가능했다. 앞서서 길을 인도하는 데니스의 머리 위에 맨홀이 생기더니, 수문장의 사지를 뱉어냈다.
철컥철컥, 쿵!
위에서 합체한 수문장이 바닥에 발을 디디자 육중한 진동이 주변을 흔들었다. 뒤이어 맨홀에서 빠져나온 망치가 수문장의 손에 잡혔다.
“이런 등장은 예상 못 했는데···.”
맨홀은 미로라면 어디에서든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러니 수문장이 몸을 분해하는 방식으로 이동하면 도주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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