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장(3)
익히 알던 모습의 수문장은 3m 이상의 금속 거인이며, 폭발 망치를 사용하고, 붉은 외눈에서 광선을 발사한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수문장도 거기까지는 똑같았지만, 관절 부위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류가 온몸을 휘감았다.
“도망칠까?”
“아까 그 모습을 보고도 그 소리가 나와? 어차피 튀어도 맨홀을 사용해서 쫓아올걸.”
사지를 분해해서 쫓아온 수문장을 목격한 탐험가들은 처음 겪는 현상과 수문장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었다.
앨런은 평소처럼 무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속으로는 살짝 놀랐다.
기사가 맨홀로 도망치는 모습은 특이현상이라 치면 되지만, 수문장처럼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괴물이 그랬다는 기록은 없었다.
‘목격한 사람은 전부 죽었거나, 아니면 비밀로 하고 있거나.’
어쨌든 지금은 집중할 시간이었다. 허리춤에서 룬문자 카드를 꺼낸 앨런은 탐험가들의 중심으로 날렸다.
적혀 있는 문자는 [평온]. 앨런은 장비의 마력이 거칠게 날뛸 때 사용하는 룬문자지만, 마력을 사용하는 탐험가들이라면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정신 차리고 앞을 봐!”
“그래, 수문장은 이미 꺾었잖아!”
주변을 흐르는 마력이 피부에 닿으니, 그에 영향을 받은 탐험가들의 분위기도 조금은 끓어올랐다.
앨런은 끝내 죽음의 강을 건너간 탐험가를 수레에서 내려 벽에 기대어 앉혀뒀다. 안타깝지만 시체까지 보호하며 싸울 여력과 의리는 없었다.
앨런이 파티의 수레로 손을 뻗었다. 비상상황이라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빈 마나팩이 꽤 많아. 일단 내 몸에 붙여두고, 오토마톤을 조정하자.’
그사이, 데니스는 과감하게 돌진했다.
지금 상대하는 수문장이 평소와 어떻게 다른지 분석해야 했다. 그래야 동료들의 피해가 크게 줄어들 테니까.
뇌의 신호와 마력을 전달받은 의족이 제 몸처럼 날뛰었다. 점점 탄력이 붙은 데니스는 자세를 낮추고 미끄러지듯이 수문장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놈의 눈은···, 좋아.’
수문장의 외눈은 데니스를 따라 움직였다. 일단 가까운 적을 먼저 포착하고 공격 준비를 하는 순서까지는 같았다.
데니스의 몸이 완전히 뒤로 빠지기 전, 수문장은 왼쪽 손등을 그대로 뒤로 휘둘렀다.
데니스는 첫 번째 타격을 손쉽게 피해냈지만, 두 번째 공격에는 그러지 못했다.
수문장의 허리가 180도 회전하더니, 오른손에 들고 있는 망치를 휘둘렀다. 마치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 담는 듯한 동작이었다.
망치가 워낙 크고 길기에 거리를 단숨에 좁혀 들어왔다.
데니스의 판단은 빨랐다. 그대로 미로 바닥에 슬라이딩하며 공격을 피했다. 의족이 마찰하며 끼익거리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위험한 놈이야.’
수문장을 처리하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맞붙은 지 1분도 안 지났는데 삐걱거림이 생겼다. 간단히 피해야 할 망치의 풍압이 코앞까지 들이닥친다든가, 아니면 수문장이 덩치를 이용해서 도주로를 막는다는가.
자신의 분투로 동료들도 느끼는 바가 있을 터, 데니스는 평소보다 빠르게 의족을 역관절로 변환했다. 부품들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신체를 가속했다.
데니스가 시선을 끄는 사이, 마법사용자들은 바쁘게 주문을 외웠다. 수문장에게 사용할 마법을 준비함과 동시에 아까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춘 구더기들도 경계해야 했다.
“빌어먹을. 마나팩 있는 사람?”
“하나 있긴 한데 지금 쓰는 팩이 거의 닳아서 교체해야 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니, 평소보다 마력의 소모가 빨랐다. 심지어 지상으로 복귀하던 길이라 마나팩이 부족했다.
“이거 쓰세요.”
그 말과 동시에 작은 물체 여럿이 바닥을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나팩이 없어서 투덜거린 카크다가 뒤를 보니, 빈 마나팩을 몸에 붙인 상태로 오토마톤을 만지작거리는 앨런이 있었다.
“저런 식으로 충전되는 물건이야?”
“마석 써도 되고 직접 충전해도 되잖아. 벌써 건망증 걸렸어?”
“나도 알아. 내 말은 마나팩 충전시간이 이렇게 짧냐는···. 방어막!”
대화는 단절되고, 마법사용자들이 쓰고 있는 에비가 정면으로 푸른빛을 발사했다.
데니스를 밀어붙이던 수문장이 기습적으로 전위 셋을 덮친 것이다. 미로의 오토마톤은 가장 가까운 상대를 공격하는 성향이 있지만, 이번에도 예상에서 벗어났다.
벌집 구조의 방어막이 단숨에 깨져나갔다. 오래 버티진 못했지만, 전위들이 숨을 돌릴 시간은 벌어줬다.
“지하인이 조종하는 오토마톤 같아!”
“아끼지 말고 사용해!”
전위들의 인공 안구에서 푸른 빛이 감돌더니 동작이 한층 빨라졌다. 리플렉스 액셀을 사용해서 반사신경과 반응속도를 끌어올린 것이다.
소뇌 밑에 붙어있는 매직웨어가 뇌 전체를 자극하고, 뇌가 뿜어낸 신호는 매직웨어를 통해 가속하며 온몸으로 향했다.
당연히 몸에 무리가 생기기에 수문장이 급속충전 패턴으로 느려지면 사용하는 장비지만, 지금은 과부하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손과 발 그리고 망치에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최소한 전투 이탈이었다. 심지어 적의 움직임은 교묘하고, 평소보다 빨랐다.
“악!”
망치에 부딪힌 전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가볍게 스쳤는데도 의수가 움푹 패어있었다.
그나마 다행은 수문장이 폭발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랬다면 의수만 망가지지는 않았을 테니까.
앨런은 앞에서 어떤 소란이 벌어지든 무시하며 오토마톤을 조정했다. 표범은 손댈 필요가 없으니, 데니스의 파티가 획득한 전리품을 아군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그나마 제일 멀쩡한 오토마톤은 늑대 기수와 황소.’
앨런이 영혼석 두 개를 동시에 문지르자, 희뿌연 안개를 닮은 별문자 입력창이 떠올랐다.
하나만 떠올랐다면 은하수가 펼쳐진 것처럼 아름다웠을 텐데, 두 개가 동시에 펼쳐지니 굉장히 복잡했다.
앨런은 무질서 속으로 양손을 뻗었다. 손가락과 팔이 따로따로 움직이며 별을 제거하거나 탄생시켰다.
손을 바삐 놀리는 도중, 오른쪽 눈은 전체적인 그림을 살피고, 왼쪽 눈은 오류를 찾으려고 빙글빙글 돌아갔다.
자주 사용하는 별문자의 패턴은 눈에 기록해뒀으니 문제가 생기면 바로 피드백이 왔다.
‘화살표, 어디지?’
왼쪽 눈에 보이는 작은 화살표를 따라가니 별문자가 육면체의 꼭짓점처럼 모여있었다.
조금 삐뚤어진 모양새가 눈에 거슬렸다. 실제로도 저러면 작동에 문제가 있었다.
‘각도가 살짝 틀어졌어.’
앨런에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마력을 불어넣은 손가락으로 별을 누르며 끌어당기니, 비로소 정육면체라고 부를 수 있게 변했다.
기수의 영혼석까지 담은 황소가 몸을 일으키자, 앨런은 카크다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전위분들에게 알려주세요.”
자신이 소리를 크게 질러도 전투의 소음과 흥분 때문에 묻힐 가능성이 컸지만, 뇌 확장 시술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혼란한 와중에도 뚜렷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어떻게 할 건데?”
“돌진시킬 겁니다.”
“그걸로 충분할···. 아니다. ·········. 이야기 끝냈어.”
카크다는 토를 달지 않았다. 양봉업자처럼 말벌을 끝장낸 앨런을 봤지 않은가. 게다가 마법사기에 오히려 데니스보다 앨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단거리 통신이 끝나자마자, 앨런은 지팡이로 황소를 두드렸다. 녀석은 붉은 천을 본 투우처럼 미로의 중앙을 내달렸다.
쿵쿵쿵!
무게가 무게다 보니 미로의 바닥과 부딪치는 금속 발굽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앨런의 목소리라면 몰라도 이건 잘 들렸다.
약속한 대로 전위들이 양옆으로 물러나서 벽에 딱 붙었다. 마지막까지 수문장의 시선을 끈 데니스가 훌쩍 뛰어오르고, 그가 있던 자리로 황소의 머리가 불쑥 나타났다.
그리고 충돌.
미로는 앞과 뒤를 빼면 밀폐된 공간이기에 갈 곳을 잃은 충돌음이 뭉쳐서 폭발했다. 듣는 이의 고막이 지이잉거리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별문자를 조작해서 황소의 출력제한을 해제했기에, 머리와 수문장의 하체가 부딪친 순간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렸다.
얼마나 강하냐면 수문장의 왼쪽 다리가 뭉개져서 제 기능을 잃었다. 골반에서 거의 다 떨어져 덜렁거리는 모습은 덤이었다.
그러나 수문장도 터프했다. 충돌의 순간, 황소의 뿔을 왼손으로 움켜쥐며 기어코 버티더니 손목을 빠르게 비틀었다.
콰지직거리는 소름 끼치는 불협화음이 황소의 목에서 들렸다. 꽈배기처럼 변한 목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데구루루 굴렀다.
수문장은 혼자지만, 탐험가는 여럿. 마법이 작렬했다. 원래도 좁은 미로에서는 피하기 힘든데 지금의 수문장은 다리까지 다친 상황.
[꿰뚫는 얼음창]
쾌속으로 날아든, 투명한 수정을 닮은 창이 수문장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삐죽 나온 창대 주변에는 습기가 모여 하얀 김을 만들었다.
수분이 얼어붙는 모습이 보일 정도인데, 얼음과 맞닿은 금속과 내부 부품은 어떻겠는가. 창을 중심으로 수문장의 몸뚱이가 점점 느려졌다.
그러나 치명타를 입힌 광경에 감탄만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후방을 향해 날아드는 큼지막한 망치가 있었다.
그냥 망치도 아니었다. 리볼버 탄창을 닮은 머리는 여섯 개의 붉은빛을 품고 있었는데, 하나하나에 폭발력이 가득 담겼다.
심지어 여섯 개의 빛이 동시에 점멸했다.
고막 바로 옆에 천둥이 치면 이런 느낌일까. 소리가 너무 크니, 오히려 들리지 않았다. 아니면 정신이 잠깐 나갔을 수도.
“음···.”
앨런은 신음을 흘리며 쓰러진 몸을 매만졌다. 탐험복 군데군데가 찢어졌음에도 없어지거나 부러진 신체는 다행히 없었다.
눈동자를 움직이니 연기를 뿜어내는 작은 판이 보였다. 가지고 다녔던 방어막 생성기가 시커멓게 타서 눈앞에 굴러다녔다.
앨런은 몸으로 막고 있는 표범을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리 입력해둔 대로 주인을 보호한 것이다.
몸통은 그나마 멀쩡해도 폭발의 파괴력 때문에 [경화]와 [강화]의 룬문자들이 꽤 많이 지워졌다.
그리고 그 너머, 앨런보다 살짝 앞에 있던 마법사용자 셋은 하나로 줄어있었다.
치료를 담당하던 셀린과 무뚝뚝하던 남자는 핏물과 살덩이가 되어 미로의 벽과 천장을 붉게 칠했다. 그나마 고통은 없었을 거라는 짐작이 위로 아닌 위로였다.
엎드려서 겨우 살아남은 카크다는 등판과 꼬리가 새카맣게 타버렸다. 꼬리의 끝부분부터 푸석한 재로 변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앨런은 잠시 앞을 바라봤다. 동료의 죽음에 눈이 돌아간 데니스와 전위들이 수문장을 고철로 만들고 있었다.
하체는 앨런이 망가트렸고, 외눈은 벌써 텅 빈 상태라 큰 위험은 없어 보였다.
“카크다. 정신 차리세요. 제 말이 들립니까?”
“···.”
숨만 미약하게 내쉴 뿐, 반응이 없었다.
앨런은 셀린의 구급상자와 자신의 것을 동시에 가져와서 내부를 살폈다. 우선 셀린의 상자에 담긴 회복 물약을 등판에 뿌리고 억지로 먹였다.
“···.”
여전히 호흡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상태 그대로였다.
앨런은 자신의 상자에서 피살이꽃의 씨앗을 꺼냈다. 피살이꽃은 보양이 목적이라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바보처럼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그러나 씨앗은 발아하지 않았다. 피부를 뚫고 들어가긴 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카크다의 마력이 거의 없어.’
숨처럼 마력도 끊어질 듯 미약했다.
앨런은 씨앗이 파고든 부분에 손바닥을 붙이며 마력을 부여했다. 원래는 자신의 마력을 사용해야 하나, 지금은 그럴 여유가 아예 없었다.
잠깐 시간이 흐르니 손바닥이 간질거렸다. 손을 떼니 투명한 붉은 잎을 자랑하는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카크다의 머리에 귀를 가져다 대니 새액새액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일단 한숨은 돌렸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발소리가 들렸다.
저벅저벅!
앨런은 뒤를 돌아봤다. 검은 안개 속의 소음은 점점 커졌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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