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1)
앨런과 데니스는 요새 옆에 위치한 경찰서로 향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경찰서 건물도 성을 연상케 했다. 높은 담벼락과 그 위에 설치한 자동 포탑이 살벌함을 더했다.
정문 입구에서 경비를 서던 경찰이 앞을 막아서며 용무를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미궁에서 발생한 분쟁을 신고하러 왔습니다.”
“강력계에 연락할 테니 저쪽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경찰이 가리킨 곳은 공터였다. ‘미궁탐험가 대기소’라고 적힌 팻말이 눈에 띄었다.
수레와 포로까지 공터에 집어넣은 데니스는 기다란 벤치에 앉았다.
“하아. 이제 좀 살겠다. 너도 그만 두리번거리고 앉아.”
“저 경찰, 시체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네요.”
“원래도 험난하다고 소문난 직종이 메이즈시티 경찰이야. 그런데 미궁 바로 옆에서 근무한다? 말할 것도 없지. 여기 공터도 아예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만들었어.”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를 잔뜩 가져왔는데 정문에서 체포당하지 않은 것부터 이상하긴 했다.
게다가 사건 접수도 안 됐는데 시체들을 가지고 경찰서 내부로 그냥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서 내부의 분위기도 외부와 비슷했다. 딱딱하고 엄정한 기류로 가득 찼고, 지나다니는 경찰 중에는 만만하게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으니, 경찰서에서 나온 북슬북슬한 형사가 다른 경찰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털이 많은 형사는 수레에 실린 시체와 피딱지가 가득한 포로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의 모습을 기초로 동물의 신체가 달린 수인과 달리, 두 발로 걷는 동물처럼 보이는 종족인 라이칸이었다.
형사는 귀여운 수달 라이칸이라서 다른 경찰들처럼 인상을 써도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형사는 경찰 공무원증을 대충 펼치더니 데니스에게 물었다.
“일단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사건 관계자가 또 있습니까?”
“위독한 친구가 있어서 병원에 갔습니다.”
“그럼 일단 살펴보겠습니다.”
수달 형사는 만만하게 보이기 싫은지 최대한 불퉁한 표정을 지으며 수레에 덮은 천을 홱 하고 벗겨냈다.
라텍스 장갑을 끼고 이목구비와 상처를 살폈다. 메이즈시티에서 일하는 경찰답게 담력이 강해서 시체를 통나무 다루듯 했다.
“화염 계열 마법이나 폭탄을 사용했나···. 스테이크처럼 구워놨네. 너희들은 이리 와.”
수달의 손가락질에 포로들은 못 들은 척했다. 아니면 전투를 겪고도 밥을 안 먹인 탓에 기력이 없거나.
형사는 숨을 크게 내쉬며 포로를 묶은 줄을 잡아당겼다. 사람 셋이 동시에 끌려왔다. 귀엽게 생겼어도 강력하다고 소문난 라이칸의 기초 근력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수달은 한 놈씩 잡아끌더니 바코드스캐너를 닮은 장비로 얼굴을 찍고, 마나하트가 있는 가슴에 문질러보기도 했다. 그의 인공 안구가 푸른 빛으로 깜빡거렸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도 안 된 놈들이네. 보나 마나 이 도시에서 밑바닥 해결사로 이름 좀 날려보려고 했겠지. 그러다가 미궁으로 흘러 들어갔고. 어휴.”
고개를 흔든 수달이 손바닥으로 포로들을 내리쳤다. 조사도 제대로 안 했는데 누가 가해자인지 안다는 행동이었다.
손찌검에 휘청거린 포로 하나가 악을 썼다.
“미쳤어? 경찰이 사람을 때려도 되냐! 악!”
“뭐라고?”
“우리도 인권이 있는데 경찰이 사람을 패면. 윽!”
“사람 말로 해야지. 동물처럼 으르렁거리니까 못 알아먹겠다. 그리고 똑바로 기억해. 너희들은 인권이 없어.”
“···증거도 없이 때려도 되냐는 뜻이었습니다.”
포로가 정중한 말투를 사용하니, 그제야 수달의 폭력이 멈췄다.
“증거가 필요해? 보면 알지. 미등록 인원 둘에 로만 컴퍼니 소속이 하나. 조합부터가 너무 수상하잖아. 야, 이리 와.”
“부르셨습니까?”
수달의 부름에 신입으로 추정되는 젊은 경찰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놈들은 수갑 채워서 철창에 집어넣고, 저기 수레에 실린 것들은 냉동실에 잘 보관해놔.”
“네, 알겠습니다.”
하급자가 사라지자, 수달이 멀쩡한 수레를 끌고 와서 걸터앉았다. 그리고 왼쪽 팔뚝을 두드리니, 피부가 열리며 네모난 화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굳이 들어가지 말고 여기에서 끝마칩시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 좀 들어볼까요?”
데니스가 그간 있던 사고를 설명했다. 정확한 사건 발생 시간은 몰라도 순서대로 정리를 잘해서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수달은 듣고만 있었다. 그 역시 뇌 확장 시술을 받았기에 듣는 내용을 그대로 화면에 입력했다. 귀찮게 키보드를 두드릴 필요가 없었다.
“그럼 죽은 파티원 신원 확인이나 합시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셀린과 오토···.”
“이런 씨ㅂ···.”
“왜 갑자기 욕을 합니까? 밑에서 좆같은 일 당해도 참고 있었는데 경찰까지 지랄하네.”
스트레스가 쌓인 데니스는 대번에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앨런은 평소대로 무표정을 고수하며 그를 말렸다.
“이름이 같아서 그래요. 아까 공무원증 못 봤어요?”
“그래? 내가 정신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수달 인간, 오토 형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금 공무원증을 펼쳤다. 죽은 남자 마법사용자의 이름과 똑같았다. 심지어 철자까지.
졸지에 사망자가 됐던 오토도 자신의 실수를 알기에 고개를 살짝 숙였다.
“흠, 미안하게 됐습니다. 갑자기 내 이름이 나오니 성질이 확 뻗쳐서···. 다른 동료들은 부상자를 데리고 응급의료시설로 갔다고요. 그럼 두 분은 가보셔도 됩니다.”
살인에 연루되어 있어서 최소 유치장 신세는 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풀려났다.
경찰서를 나서는 데니스는 앨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둘 다 브레이커 소속이라 그래. 직속이 아니더라도 인원 관리는 깐깐하잖아.”
앨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브레이커 소속인 이유도 있지만, 죽음 자체가 너무 익숙해진 탓도 있으리라. 메이즈시티의 경찰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그냥 놔두진 않을걸. 저기 봐.”
“감시용 비행 골렘이네요.”
데니스가 가리킨 나무에는 참새를 닮은 골렘 두 개가 앉아있었다. 골렘의 눈에 달린 카메라는 앨런을 계속 쫓았다.
“범죄 기록이 생기면 바로 퇴출당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도 그러진 않겠죠?”
“정당방위가 어떻게 범죄야? 쓸데없는 걱정은 넣어둬.”
“그러면 다행이겠죠. 브레이커는 처음부터 인원 관리가 빡빡했나요?”
“마셜 회장의 방침이지. 그가 취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탐험가 솎아내기였어. 문제아를 쫓아내고, 향상심 없는 사람도 잘라내고. 덕분에 탐험가조합 중에는 가장 신뢰도 높고 뛰어난 회사가 되긴 했지.”
데니스의 열정적인 설명과 달리, 그의 얼굴은 왠지 공허했다. 죽은 사람이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으리라.
앨런은 그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동공이 계속 흔들렸다. 시간의 흐름이 기억과 감정을 흐릿하게 만들기 전까지는 괴로움이 그 안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일부러 계속 말을 걸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평소처럼 수리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며 시간을 보낼 계획입니다.”
“나도 그래야지. 경찰서에서 연락 오면 출두하거나, 카크다가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어.”
“마나하트가 무사하면 좋겠네요.”
“꼬리는 새로 달면 되지만 마나하트는 그러기 어렵지.”
인공 마나하트도 존재하나, 진짜 마법사를 꿈꾸는 카크다라면 최대한 멀리해야 할 매직웨어였다.
인공 마나하트에는 의지가 깃들기 어렵고, 의지가 부족하면 마법의 위력은 반 토막 나기 십상이니까.
마법공학자도 마찬가지였다. 룬문자를 새길 때 제대로 심상을 주입하지 않으면 위력이 빈약해졌다.
노박 클리닉 시절의 앨런과 지금의 앨런이 똑같이 [화염]을 새기면, 라이터와 작은 모닥불 정도의 차이가 났다.
카크다의 이야기가 나오자 데니스는 지금 생각났다는 듯이 품에서 호루라기를 꺼냈다.
“이야기 나온 김에 감정사를 방문하자. 수문장을 불러내는 도구면 오파츠가 분명할 거다.”
“오파츠요?”
“오파츠가 맞겠지. 분명 감정가가 높을 거고, 그러면 카크다의 치료비에 보탬이 될 거야.”
앨런은 하얀 호루라기를 쳐다봤다. 데니스는 오파츠라는 상상에 들떠 있지만.
저번에 새의 영혼석을 보고 직감적으로 오파츠라고 알아차렸던 때와는 달랐다. 그저 길거리에 버려진 고장 난 마도구를 보는 듯했다.
‘그때 영혼석에 담긴 황금색은 아름다웠지. 하얀색의 별문자와 달리 찬란하게 빛나는 금빛 가루···.’
그래도 들뜬 데니스에게 찬물을 뿌릴 순 없기에 입을 다물었다. 정확한 판단은 브레이커의 감정사가 해줄 테니까.
“호루라기와 전리품을 처분하면 팔 등분 해도 꽤 나올 거야. 죽은 셀린과 오토의 유가족에게는 충분치 않겠지만, 위로는 되겠지.”
데니스는 마지막 말을 하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위로라는 단어를 말하고도 확신이 없었다.
앨런은 자꾸 화제를 돌리며 데니스의 주의를 환기했다. 잡담을 이어가니 어느새 브레이커의 건물들이 모인 구역에 도착했다.
감정소에 들어간 둘은 엘프 감정사를 만났다. 50년 이상 근속한 전문 감정사였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목제 가구로 가득한 방. 엘프 노인은 김이 올라오는 차를 후룩 마시더니 호루라기를 건네받았다.
“어디 보자···.”
노인의 인공 안구가 접이식 망원경처럼 툭 튀어나왔다.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눈의 끄트머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호루라기를 렌즈 앞에서 회전시켰다.
방 내부에는 침묵이 흘렀다. 한참을 살피던 노인이 멀쩡한 왼쪽 눈으로 앨런과 데니스를 응시했다.
“호루라기 재질이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뼈야. 그것도 사람 뼈. 내가 감정을 해봤는데 오파츠가 아니야. 미세한 흔적은 있는데 지금은 마력도 안 흐르고.”
“자세히 봐주세요. 그걸 가지고 있던 구더기가 호루라기를 부니까 미로의 수문장이 나타났어요.”
“오파츠에는 마정석과 같은 기운이 흘러서 내가 모를 수가···. 잠깐, 수문장이 나타났다고?”
노인은 다시 감정했다. 10분 정도 살펴보다가 망원경이 된 눈을 툭툭 쳐서 원래대로 집어넣었다.
“그래도 특별한 구조나 술식은 안 보이는데···.”
“수문장의 광선에 망가져서 그럴까요?”
“눈깔 레이저? 아, 이런. 예전 버릇이···. 안구 광선에 직격당한 것 치고는 멀쩡해서 그럴 확률은 낮아. 아무래도 수문장을 호출하며 본래의 능력을 전부 잃어버린 것 같군.”
데니스는 호루라기가 원래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며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지만, 감정사의 판단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사기꾼을 보는 눈빛에 데니스와 앨런은 얼른 방을 나왔다. 감정소를 나선 둘은 건물의 음영에서 해를 피했다.
“원래 이런 하얀 모습이 아니라 검은 물질로 뒤덮여 있었잖아. 일회용인가. 그런데 오파츠가 아니라면 지상의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이야기잖아. 맞지? 이게 사람 뼈라고?”
“사람 뼈를 사용한다니 흑마법 계통이겠죠? 대체 누굴까요?”
“주술도 생각나긴 하는데 왠지 흑마법이 맞을 것 같다.”
마력을 원료로 사용하는 마법과 달리, 흑마법은 사람을 재료로 사용했다. 신체, 감정, 영혼 등 사람 전부가 소재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다고 마법사들이 인체실험을 안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떤 관점에서 보냐에 따라 그놈이 그놈인 경우도 있었다.
기대감이 크면 반동도 심한 법. 한껏 쪼그라든 마음이 축 처진 어깨로 표현되었다.
“이러면 전리품이라도 좋은 값을 받아야 하는데.”
데니스는 말을 하며 수레를 쳐다봤다. 그 안에는 전투로 망가진 수문장의 몸뚱이가 있었다. 고철과 비슷하게 생겨서 제값을 받기는 어려워 보였다.
“쓸모도 없는 호루라기.”
데니스가 쌓아온 분노와 스트레스가 호루라기에 집중되었다. 그는 호루라기를 땅바닥에 내던지려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턱!
데니스의 손목을 누군가가 잡아챘다. 회색 머리카락, 검은 망토, 깨진 유리 모양의 배지. 익숙한 복장의 오크 남성이었다. 보통 오크보다 순한 인상을 보면 하프 오크 같았다.
“그 호루라기. 잠깐 봐도 될까?”
“어···.”
데니스는 갑작스러운 오크의 등장에 사고가 잠시 정지된듯했다.
앨런은 고개를 살짝 올려서 감정소를 쳐다봤다. 엘프 감정사가 있던 방의 블라인드가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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