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1)
전체적으로 어두운 창고. 한쪽 벽에 설치된 선반에는 윤활유나 코팅 스프레이 등이 가득하고, 그 아래에는 활동을 중단한 오토마톤 몇 개가 쌓여있었다.
기름과 쇠 냄새가 가득할 것만 같은 창고는 대부분 어두웠다. 단 한 곳만은 밝았는데, 앨런은 책상 등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독서를 했는지 흰자위가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피곤함을 느낀 앨런은 눈 주위를 주무르며 책을 덮었다.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침대를 아래로 내리고, 그 위에 털썩 누웠다.
눈을 감고 있어도 감지 않았다. 왼쪽 눈은 삼라만상에 접속해서 무한한 세계를 항해하는 중이었다. 약식으로 접속하면 2차원의 창만 보이겠지만, 지금은 정식 접속이라 3차원의 세상이 앨런을 반겼다.
빛과 빛으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구름을 뚫고 세워진 빌딩 사이를 유령들이 날아다녔다. 저 유령들은 삼라만상에 접속한 사람들이었다.
앨런은 설정을 바꿔서 그들을 시야에서 차단했다. 그래도 광고는 남아 있어서 주위를 맴돌았다.
뇌 확장 시술이 반값이라는 칠성의 광고가 풍선의 형태로 옆에 따라붙었고, 발치에는 합성육을 사용한 핫도그를 몸통으로 삼은 닥스훈트가 있었다.
앨런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몸이 붕 뜨더니 도심을 지나, 시골을 건너, 바다 위를 날았다. 그러다가 하나의 섬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브레이커의 홈페이지였다.
‘공고문?’
광고가 아닌 팝업창은 오랜만에 봤기에 그 안으로 접속하자, 거대한 석판이 앨런의 앞에 생겼다.
‘미궁탐험가 육성을 위한 원정이라.’
가장 위의 제목을 읽은 앨런은 아래로 내려가며 밑의 내용을 천천히 살폈다.
‘먼저 신청 자격.’
브레이커에서 등록했다면, 그러니까 앨런이나 데니스처럼 직속 탐험가가 아니라도 신청할 수 있다는 문구가 상단에 있었다.
미궁탐험가 육성을 위해 계획했으며, 파티마다 인도자로 직속 탐험가가 따라붙는다는 글자는 다른 색으로 강조되었다.
정규 파티가 없는 탐험가도 걱정하지 말고 신청하라는 구절도 크게 새겨져 있었다.
‘그다음은 주의사항.’
첫 번째, 통제를 무시해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지 않음.
두 번째, 예상 탐험 기간은 20~30일이니 기초탐험물자는 신청자가 알아서 챙겨올 것. 단, 기간 초과 시 브레이커에서 보급대를 편성.
굉장히 친탐험가적인 내용이었다. 말만 잘 들으면 다쳐도 보상금을 지급하고, 추가 물자도 걱정할 필요 없었다.
앨런은 팔짱을 끼고 석판 앞을 둥둥 떠다녔다.
‘심지어 수강료도 없지. 조건은 굉장히 좋아.’
전리품 판매 수수료가 다른 곳보다 높은 이유가 있었다. 로만 컴퍼니의 경우 수수료가 7%, 브레이커는 무려 20%인데 이런 복지사업도 없으면 섭섭할 뻔했다.
그렇다고 로만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브레이커는 공방 대여도 해주고, 탐험가의 편의를 위해 투자를 많이 했으니까.
머리가 아래로 향하는 자세가 됐음에도 앨런은 곰곰이 따져보는 중이었다.
놓칠 수 없는 기회긴 했다. 그런데 푸랑수아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집가가 미궁에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미궁탐험가를 고기 방패로 삼으려는 행위는 아니었다.
사실 교습이라 불리는 브레이커의 대규모 원정은 정기적으로 벌어지는 행사며, 최근 두 차례의 원정에서는 사망자나 중상자도 없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공고를 내도 의심할 구석은 모자랐다.
앨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석판을 응시했다. 머릿속에서 빠르게 조합된 정보들은 바로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수집가를 진짜 잡으려는 생각인가? 그렇다면 교습을 핑계로 강력한 탐험가들을 투입해서 몰이 사냥을 할 계획이겠지.’
비밀유지서약서의 기간이 한 달인 이유도 있었다. 내려갈 때까지만 입을 막으면 될 테니까. 수집가와 관련된 일이니 설령 기간이 끝나더라도 떠벌리고 다닐 사람도 없으리라.
앨런은 서약으로 인해 심장을 구속하는 마법의 느낌을 무시하며 석판을 쭉 훑었다. 그 아래에 적힌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위험할까?’
원래 미궁은 위험한 장소였다. 혼자 다니는 앨런이 할 생각은 더더욱 아니었다.
가장 아래에 적힌, 브레이커에서 공개한 인솔자 명단을 살펴봤다. 그곳에 접근하자 새로운 팝업창이 떠올랐다.
최상단에 ‘제이크 마셜’이 적혀있었다. 브레이커의 회장이자 현역 미궁탐험가이며, 심도 7의 강자였다.
심도 7은 도달계층이 61~70층 사이라는 뜻이다. 앨런은 1~10층의 미로만 다녔으니 심도 1이고.
심도는 미궁 발견 후 새롭게 탄생한 구분법이며, 같은 심도 7이라도 다른 대륙이나 나라의 미궁보다 메이즈시티 출신을 더 높게 쳐주는 경향이 있었다.
메이즈시티의 미궁은 전 세계에 있는 미궁 중에서 가장 거대하기에 대미궁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어쨌든 심도 7의 강자는 세계 어디를 가나 선두에서 달리는 초인이었다.
‘마셜 회장이 함께하면 걱정 없지 않을까? 심도 7이라···.’
‘심도’라는 단어를 발견하자마자 앨런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 습관이었다.
‘61층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앎은 힘이고, 지식은 가치여서 귀중한 것들은 삼라만상이라 이름 붙은 정보의 바다에서도 찾기 불가능했다.
그나마 30층까지의 정보는 그나마 퍼져있었다.
‘21~30층에는 과거의 생물들이 나온다고 했지. 현생 생물과 비슷한 종이라도 덩치가 훨씬 크다고···.’
앨런은 다시 석판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는 원정에 참여할지, 아니면 위험하니 지상에 머무를지 선택할 시간이었다.
*
미궁 역 근처의 공터, 앨런은 표범이 끌고 온 수레의 내부를 살폈다. 안에는 탐험물자가 차곡차곡 정리되어있었다.
‘식량은···.’
먼저 파운드 케이크 상자가 보였다. 엄청나게 압축해놔서 딱딱하고, 설탕으로 범벅된 과일도 알알이 박혀있었다. 그냥 먹으면 이가 부러질 수 있으니 물과 함께 먹어야 했다.
‘그리고 물통.’
그나마 물 문제가 마도구로 해결돼서 다행이었다. 1~20층은 식수를 구할 곳도 없기에 30일분을 챙겨야 했다면 탐험의 어려움은 제곱으로 상승했을 것이다.
이제는 룬문자 두 개를 동시에 새길 수 있기에 물통이 망가져도 상관은 없었다. 물론 그런 상황을 안 만나는 편이 최선이고.
필수 비타민과 무기질이 담긴 알약 통도 원래 자리에 잘 있었다.
혹시 몰라서 공구 벨트 사이사이마다 고칼로리 압축 비스킷도 끼워 넣었다. 이건 웬만하면 먹을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영양소만 맞춘 물건이라 맛이 최악이지. 이걸 맛있다고 하는 탐험가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커.’
앨런은 우스갯소리를 속으로 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데니스 파티는 아쉽게 미참여였다. 그래도 카크다는 호전 중이라니 언젠가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공터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최근 참가자는 신청 불가고, 미로 계층만 주로 다니는 탐험가 중에서 골랐는데도 이백 명은 돼 보였다.
워낙 특이하게 생긴 탐험가가 많아서 앨런의 마스크는 평범한 축에 속했다.
앨런이 그들의 면면을 살피고 있는 도중,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 어딘가의 도련님이야?”
말을 건 사람은 고블린이었다. 그냥 고블린이 아니라 신체의 상당한 부분을 매직웨어로 대체한 탐험가였다.
“아닙니다.”
“그럼 저 뒤의 오토마톤은 뭔데? 대충 봐도 개조가 상당히 된 물건이잖아.”
“제가 직접 만든 표범입니다.”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 지금 보니 나랑 같은 마법공학자였구만. 내 이름은 키키.”
“앨런입니다.”
악수를 마친 키키가 앨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봤다.
“매직웨어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순수주의자?”
“왼쪽 눈만 빼면 타고난 신체긴 합니다.”
“일반인처럼 보여서 비싼 매직웨어를 착용했나 했지. 그래서 도련님인 줄 알았고.”
키키의 말대로 매직웨어가 비쌀수록 본래의 신체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 다른 형태로 얼마든지 개조도 가능하고.
고블린 마법공학자는 그럴 돈이 없었는지 외관만 보면, 특히 머리 부분이 로봇처럼 생겼다.
뇌 확장 장치가 너무 커서 부품이나 파이프가 머리를 뚫고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키키는 그런 예시 중 하나였다.
앨런은 투명한 파이프를 따라 움직이는 기포를 보며 물었다.
“기포의 흐름을 보니 수랭식인가요?”
농담이 아니었다. 연산과 제어력이 높을수록 발열 처리는 중요했고, 마법사 중에도 저렇게 개조한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카크다는 ‘없는 재능도 만들 수 있는 대단한 시대.’라고 평가하며, 자신은 머리에 그 정도로 큰 장치를 달 필요가 없다고 자랑하긴 했다.
앨런의 말을 들은 키키는 버럭 화를 냈다.
“기포? 내가 제대로 처리해달라고 그렇게 비싼 돈을 처먹였는데···. 혹시 거품이 많아?”
“아뇨. 숫자는 한 개고, 크기는 0.3mm 정도 되는 듯합니다.”
“그 정도는 금방 사라지겠지. 서 있는 장소를 보면 같은 6조 같은데 잘 지내보자고. 그런데 저거 끌고 다니면 효율이 나오나? 잠시 살펴봐도?”
“외부만요.”
“그건 당연하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키키는 표범을 살폈고, 앨런은 그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파이프투성이여서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잘 때 안 불편할까?’
앨런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관찰을 대충 끝낸 키키가 다시 옆으로 돌아왔다.
“진짜 어딘가의 도련님 아니지?”
“···.”
“아니, 매직웨어도 눈밖에 없는데 마법공학자라고 하질 않나, 표범은 외부에 적힌 룬문자만 봐도 미로는 그냥 쓸고 다니겠던데.”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긴 수문장이 좀 강하긴 하지. 늑대 기수들도 뭉치면 무시하기 힘들고. 그런데···.”
의심이 깃든 질문이 이어지려는 순간, 줄줄이 나타난 브레이커의 항공 차량이 공터에 착륙했다.
각양각색의 옷과 장비를 입은 탐험가들이 내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60살이 넘었음에도 백발 하나 없는 제이크 마셜이 하차했다. 회색 머리카락을 뒤로 전부 넘겨서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하차한 직속 탐험가들은 각자가 맡은 조를 향해 움직였다.
앨런과 키키의 앞에도 인솔자가 도착했는데, 새까만 헬멧으로 머리를 모두 가린 사람이었다. 헬멧은 상당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왠지 익숙한데···.’
앨런이 인솔자를 보고 있으니 눈이 멋대로 판별을 시작했다.
<분석>
이름 : 시온
종족 : 인간
몸의 외곽에 초록색 선이 그려지며 체형의 일치를 확인했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증거는 그녀가 메고 있는 가방이었다.
공방거리에서 시온이 보여준 적 있는 가방이었다. 지금도 칠성과 헥스테크의 검이 잔뜩 담겨있으리라.
앨런과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 말하면 앨런의 눈과 시온의 새까만 바이저가 서로를 바라봤다.
시온은 그 상태로 탐험가들에게 말했다.
“이 자리에 있는 열 명은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그럼 걱정할 필요 없···.”
“잠깐, 여기는 내 담당인데 뭐 하는 거냐?”
굵고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앨런에게 서약서를 내밀었던 프랑수아였다.
시온의 새까만 바이저가 프랑수아를 지긋이 응시했다.
“여기···, 9조 아냐?”
“6조다. 숫자 6. 차에서 구획지도 보여줬잖아.”
“거꾸로 봐서···.”
코를 씰룩거린 프랑수아가 손가락으로 9조가 기다리는 장소를 가리켰다.
“저기가 네 담당이야. 그런데 전투용 헬멧은 왜 착용하고 있어?”
“···.”
시온은 말없이 몸을 돌렸다. 헬멧이 해제되며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걸음걸이가 묘하게 빨라서 머리카락이 거세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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