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40화 (40/193)

동굴(2)

6조의 머릿수는 총 13명이었다. 조장인 프랑수아와 수레를 끄는 소를 돌보는 직속 탐험가 둘, 그들을 따라 뒤를 걷는 조원 열 명.

데니스의 파티보다 대략 2배 많은 인원이기에 미로의 통로가 좁게 느껴졌다.

적어도 미로에서만큼은 사람이 많은 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전위가 두부같이 물렁물렁하면 후위의 마법사용자나 서포터까지 휩쓸리겠지만, 반대로 든든하면 뚫릴 일이 없어서 차분히 자신의 역할에만 집중하면 됐다.

이번에는 후자였다. 전위가 잠깐만 시간을 벌어주면 마법사용자를 비롯한 원거리 공격 담당들이 순식간에 오토마톤을 정리했다.

프랑수아는 처음에 구경만 했지만, 몇 번 싸우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더 볼 것도 없군. 혹시 미로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조원 있나? 도달계층을 확인하고 신청을 받았으니 없겠지.”

그는 애초에 미로를 빠르게 지나갈 계획이었다. 왜냐하면, 이번 원정의 신청자들은 이미 미로 계층을 수시로 드나드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심도 1이라고 하기엔 약간 넘치고, 심도 2라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정도.

“그럼 속도를 좀 높이지.”

그 말을 끝으로 프랑수아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걸음걸이가 느린 달리기에 버금갔다. 아무리 달리기가 느려도 걷기보다 몇 배는 빠른 법이다.

갑작스러운 강행군에 탐험가들이 힘든 기색을 보였지만, 말로 표현하진 않았다.

앨런은 그들의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다리와 허리를 보조하는 강화외골격을 사놔서 다행이었다.

‘지금도 맨몸이었다면 수레에 탈 뻔했어.’

수레에 탑승해도 되긴 하는데 그러면 표범을 전투에 활용할 수 없거나, 다른 오토마톤을 추가로 제작해야 했다.

그래도 되지만,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앨런이 앉아만 있는 행위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언제까지 수레에 의존할 수도 없기에 직접 몸을 움직이는 연습도 해야 했고.

앨런은 정면의 천장을 응시했다. 안개가 흩어지더니 맨홀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푸슉 소리와 함께 나타난 오토마톤은 호기롭게 6조의 앞을 막아섰으나, 늑대 기수, 버팔로, 가재 등 어떤 형태가 나오든 선두를 맡은 직속 탐험가들에게 썰렸다.

심지어 프랑수아는 구경만 하고, 짐을 담당하는 탐험가만 나섰는데도 그랬다.

나 정도면 조장은 몰라도 짐을 나르는 두 명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헛물켜던 조원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애초에 앨런은 전투를 눈에 담기 바빠서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여유가 있더라도 마찬가지였고.

‘직속, 그러니까 정규직이면 짐꾼도 그냥 짐꾼이 아니군.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최소한 자신의 몸은 지킬 수 있어야겠지.’

그렇게 10층까지 도착한 6조는 잠시 숨을 골랐다. 거의 하루 동안을 쉴새 없이 움직였는데 프랑수아는 땀 흘린 기색도 없었다.

그는 저 앞의 통로를 잠깐 주시하더니 조원들에게 물었다.

“혹시 수문장이 나온다면 연습하고 싶은 조원이 있나? ······없군. 자 일어나라.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조원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키는 앨런에게 슬쩍 다가오더니 수레를 가리켰다.

“신세 좀 져도 될까? 이러다가 관절 망가지겠어.”

“의족이면 진짜 다리보다 튼튼하잖아요.”

“내 피 같은 윤활유가 빠져나가고 있어. 제발!”

키키의 무릎은 멀쩡했다. 엄살에도 앨런은 흔쾌히 수락했다. 몸 대부분을 매직웨어로 교체했지만, 고블린의 키는 120cm 정도. 미로에서 나오는 오토마톤보다는 훨씬 가벼웠다.

수레 덕분에 한층 여유가 생긴 키키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수문장이 보고 싶다고 나오는 놈도 아니잖아. 10층에 내려올 때마다 수문장을 만나는 탐험가가 어딨냐?”

“······, 그리고 경쟁도 심하죠.”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런데 아까 조장이 물어볼 때 왜 오줌마려운 표정 지었어? 설마 싸워보고 싶어서?”

“···.”

“마법공학자가 진짜로? 나는 농담으로 물어봤는데, 진심이었네. 특이한 친구구만.”

앨런은 어깨만 으쓱거렸다. 솔직히 실력을 점검하고 싶긴 했지만, 하루 동안 행군을 지속했기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원래도 약한데 수문장을 상대하느라 무리해서 동굴 경험도 못 하면 자신의 손해였다. 앨런의 목적은 탐험이지, 경유지에 불과한 수문장이 아니었다.

10층을 절반 정도 지나왔을까.

말이 씨가 된다는 격언처럼 커다란 맨홀이 생성되더니 수문장이 통째로 빠져나왔다. 호루라기를 불자 분리되어 쫓아오던 모습과는 달랐다.

수문장이 나타났음에도 프랑수아는 속도를 늦출 기색이 없었다. 조원들은 움찔하면서도 그 뒤를 따랐다. 브레이커의 직속 탐험가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30m, 20m, 10m.

여태 반응 없던 프랑수아가 품에 손을 집어넣더니 보온병과 비슷하게 생긴 물건을 꺼냈다.

프랑수아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뒤를 따르던 앨런의 몸은 반응하지 못했지만, 눈만은 그의 움직임을 어설프게 따라갔다.

‘검붉은 액체가 도끼로 변했어.’

그렇게 쌍도끼를 장비한 프랑수아는 난도질을 시작했다. 얼마나 빠른지 프레임이 뚝뚝 끊기는 영화처럼 보였다.

크게 힘을 들이는 모습도 아니었다. 프랑수아가 붓을 놀리듯 팔을 슥슥 움직이면 수문장의 사지가 몸통과 분리되었다.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정지!”

부조장들이 멈추라고 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수문장이 무너져내렸다. 그들은 가장 비싼 전리품인 외눈과 폭발 망치의 핵심 부품을 챙겼다.

어느새 도끼를 감춘 프랑수아는 수문장의 전리품을 가리켰다.

“실없는 말이었는데 진짜 나올 줄은 몰랐군. 눈과 부품은 동굴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얻은 조원 둘에게 선물로 줄 테니 노력하도록.”

경쟁심을 부추긴 그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수문장도 단 몇 초 사이에 무너졌으니, 검은 옷을 입은 오크의 앞을 막을 장애물은 없었다.

덕분에 10층의 끝까지 빠르게 도달했다. 그곳에는 시온이 맡은 9조도 있었다.

“내가 이겼어.”

“이건 승부가 아니다. 조원들의 안전과 경험 쌓기가 최우선이라고 내가 누누이 강조했을 텐데.”

“내가 먼저 왔어.”

“···.”

프랑수아의 목에 잠깐 보였던 핏대는 착각일까. 앨런은 시온 너머를 쳐다봤다. 그녀의 조원들은 기진맥진한 얼굴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잠깐 코를 긁적인 프랑수아가 시온에게 질문을 던졌다.

“회장님은 벌써 내려가셨나?”

“그럴걸. 가장 선두에서 위험을 제거한다고 하셨으니까. 나도 지금 내려갈 거야.”

“우리는 휴식을 취하고 움직일 생각이다. 너도 좀 천천히 움직여라. 평소처럼 혼자 다닌다고 생각하지 말고.”

“머리 아픈 문제는 부조장들이 알아서 해줄 거야. 자, 모두 일어나!”

시온의 말을 들은 그녀의 조원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앨런은 굉장히 빠르게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프랑수아가 속도를 조절해준 것이었다.

생생한 조장과 뒤를 따르는 좀비들이 사라지자 10층 야영지가 한산해졌다.

식사를 준비하던 앨런은 그제야 자신이 꺼낸 파운드 케이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케이크는 키키의 냄비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뭐 하십니까?”

“내가 미궁 요리를 보여준다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였잖아.”

앨런은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시온과 프랑수아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키키의 물음에 대충 반응한 기억이 있긴 했다.

키키의 냄비 안에 들어있는 수프는 걸쭉했다. 파운드 케이크, 육포, 비스킷 조각이 둥둥 떠다녔다. 이 모습은 마치···.

“꼭 누가 토한 거 같지? 생김새는 이래도 맛은 괜찮아. 자, 먹어 봐. 어서, 어서.”

그릇을 받은 앨런은 최대한 아래를 안 보려고 노력하며 수저를 움직였다.

“어때? 괜찮지? 감상은?”

“겉모양만 좀 개선하면 좋겠어요.”

“미궁에서는 어렵지. 자원의 제한으로 하나는 포기해야 해. 그리고 내 비밀의 조미료는 절대 알려줄 수 없어.”

키키는 앨런이 묻지도 않은 점을 신나게 떠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대충 정리가 끝나자 아래로 내려갔다. 예전처럼 미궁 이명증이 앨런을 괴롭혔다. 단순히 층과 층 사이를 움직일 때보다, 미로에서 동굴로 이동하는 지금이 심했다.

마침 뒤로 돈 프랑수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코를 긁더니 입을 열었다.

“미궁 이명증이 심한 사람 있나?”

앨런이 손을 들자 부조장이 단말기를 꺼내서 무언가를 기록했다. 그 모습에 손을 드는 조원 몇이 있었다.

“가산점 주는 거 아니니까 솔직하게 대답해라. 이건 의학적인 통계를 위한 조사다.”

프랑수아가 그렇게 못을 박으니 손들이 다시 내려갔다. 그중에는 키키도 있었다.

*

“끼악!”

동굴 벽에서 튀어나오던 지하인이 누군가가 내지른 창에 찔리며 괴성을 질렀다.

지하인이 빠져나오자 동굴 벽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괴생물체가 알주머니에서 태어나는 듯한 기괴한 광경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지하인은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차이점이 있다면 하얀 피부에 일어난 각질이 돌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생명체를 죽인 탐험가는 집중력을 잃기도 했다. 오토마톤이야 기계라서 괴물이라는 느낌이 확 들지만, 지하인은 얼핏 보면 오래 안 씻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으니까.

“으으···.”

창을 내지른 탐험가가 몸을 움츠리자, 복부를 꿰뚫린 지하인이 몸을 억지로 앞으로 밀며 달라붙으려 했다. 그 움직임을 따라 창대가 붉게 물들었다.

휘릭, 콱!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도끼가 탐험가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지하인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붉은 피를 몽땅 뒤집어쓴 모험가에게 프랑수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정신 차려! 놈들은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교습으로 위장한 전투는 엄격한 통제하에 이루어졌다. 동굴에 들어서자, 프랑수아는 한발 뒤로 물러나서 조원들의 전투를 지켜보며, 위험한 순간에만 개입했다.

전투가 끝나고, 앨런은 표범의 입가에 묻은 피를 지하인의 옷으로 닦아냈다. 살점 조각도 달라붙어 있어서 보기 흉했다.

“미궁의 창조자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취향이 별로인 건 알겠네요.”

“그런 말 하는 사람치곤 묘하게 침착한데. 경험이 있구나?”

키키가 말하는 경험은 당연히 살인이었다.

앨런이 그를 무심히 쳐다보자,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나무라려고 물은 건 아냐. 고블린 자치구에서는 오히려 살인 경험 없는 놈이 드물어. 영 샌님인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확 바뀌니 무섭네. 그나저나 쟤는 큰일 났다.”

키키의 시선 끝에는 조원을 다그치는 프랑수아가 있었다.

“아까 무슨 생각이었지?”

“모르겠습니다.”

“몰라? 미궁 탐험이 장난으로 보이나? 내가 죽으면, 내 동료도 죽는다. 그런 생각으로 서 있어야 한다!”

“···.”

“평생 미로만 다닐 계획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더 밑을 노린다면 나약한 정신을 뜯어고쳐야 해.”

프랑수아는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서 탐험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시선을 피하지 마. 상황이 너무 안 좋으면 이 피를 마셔야 할 때도 있다. 시체가 사라지기 전에.”

탐험가가 주변에서 사라지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지나면 미궁은 남은 물질을 흡수했다. 탐험가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어도 미궁이 깨끗한 이유였다.

앨런은 그것보다 피를 마신다는 말에 주목했다. 프랑수아의 분위기를 보면 아무래도 경험이 있어 보였다.

한차례의 전투가 끝나고, 6조는 다시 휴식을 취했다. 층과 층이 만나는 장소에 야영지를 꾸렸던 미로와 달리 동굴은 중간마다 공동이 있었다.

앨런이 동굴에서 나오는 오토마톤의 영혼석을 분석하는 도중, 키키가 말을 걸었다.

“별문자 다룰 줄 알아? 어···, 방해하는 거 아니지?”

“네.”

앨런은 짧게 대답하며 별문자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별의 이동, 소멸과 탄생을 지켜보던 키키가 감탄했다.

“나는 룬문자밖에 못 다루는데. 대단하네.”

“뇌 확장에는 별문자 관련 매직웨어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있지. 그런데 추가로 매직웨어를 장착했으면 머리가 지금보다 두 배는 커졌을걸. 인형도 아니고 꼴이 그게 뭐야.”

키키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뇌 확장을 담당하는 매직웨어는 다양하지만, 본질적인 목적은 뇌의 보조였다.

중심은 뇌였다. 아무리 매직웨어의 성능이 좋아도 뇌가 감당할 수 없다면 그림의 빵이었다.

뇌가 아니라 매직웨어가 중심이라면, 그건 사람으로 불러야 할까, 아니면 골렘으로 칭해야 할까.

앨런은 왼쪽 눈으로는 별문자를 보고, 오른쪽 눈으로 키키를 힐끔 바라봤다.

아직도 다른 곳에 집중하다가 키키가 갑자기 보이면 움찔하곤 했다. 고블린을 닮은 오토마톤으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왠지 분위기가 무거운 것 같아서 앨런은 다른 화제를 꺼냈다.

“발열이 문제면 옷을 벗고 다니면···.”

“그게 무슨 소리야! 옷은 입고 다니라고 있는 거야. 오해해서 총 맞으면 서럽잖아.”

“겪어 봤습니까?”

“예전에 미로에서 그런 적이 있었어. 진짜 착각했는지, 아니면 강도질을 하려다가 만만치 않으니 오해였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별문자를 이리저리 조율하고 있으니 다른 무리가 공동으로 들어왔다. 헥스테크 소속 미궁 탐험대였다.

알고 있었는지 처음부터 팔짱을 끼고 있던 프랑수아와 그쪽의 대장이 이야기를 조용히 주고받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서로 의견을 조율해서 길이 겹치지 않게 정하는 모습으로 보이겠지만, 앨런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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