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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42화 (42/193)

동굴(4)

프랑수아 그리고 다른 조의 인솔자이자 마법사인 오마르는 수집가가 사라진 공터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오마르가 움켜쥔 피 묻은 마법봉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마법사인 동시에 근접전투가 특기라 하프오크의 으르렁거림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앨런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싶었지만, 소리도 안 들리고, 몸도 저쪽으로 돌리고 있어서 입 모양도 볼 수 없었다.

공터 벽에 붙어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탐험가들과 달리, 앨런은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왜 교습을 핑계로 탐험가를 모았을까?’

마침 미궁 교습을 진행할 시기기도 했고, 인솔자로 강한 탐험가들이 따라붙는 건 당연한 상식이다.

‘그렇다면 수집가의 부하나 조력자가 있다고 판단하고 눈을 속이기 위한 계략이었겠지.’

그런데 그 계획이 단번에 틀어져 버렸다.

저 아래에 있는 수집가는 층을 넘어서 감시의 눈을 뿌려놨고, 덕분에 그에게는 눈속임 따위가 통하지 않았다.

미궁은 층과 층이 다르면 간섭할 수단이 없다고 알려졌지만, 수집가는 그 규칙을 깨고 좀비로 시체폭발을 일으킴과 동시에 ‘망자의 속삭임’이라는 흑마법을 사용해서 의사까지 전달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긴 했다. 수집가가 강력한 흑마법사인 건 알아도, 그동안 사람들이 믿어왔던 미궁의 법칙을 깰 줄은 몰랐을 테니.

이제부터 새로 깨달은 법칙이 아는 사람들에겐 통용될 것이다.

다만, 앨런과 달리, 내막을 모르는 탐험가들은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집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갑자기 탐험가가 왜 폭발하는데? 지하인이 만든 새로운 형태의 오토마톤인가?”

“내 수레···, 내 돈···.”

“방금 흑마법이지? 브레이커를 건드는 미친놈이 있네. 이러면 놈을 잡아야 하니 교습은 끝인가?”

앨런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수레를 털어냈다. 방어막 생성기가 시체폭발을 먼저 막았고, 조립식이라 분리되며 충격을 흘려냈기에 그나마 굴러가긴 했다.

‘여기저기 휜 부분은 히팅펜치로 대충 모양만 잡고, 나머지는 공방을 빌려서 금속 성형 기계를 쓰자.’

생각을 마친 앨런은 멍하니 있는 키키를 불렀다.

“바퀴 부분 좀 잡아주세요.”

“닦아서 쓰게? 올라가서 새로 사지?”

버리고 신품을 구매한다. 앨런에게는 아직 낯선 행위였다. 랑카와 노박 클리닉에서는 재활용이 일상이었다. 온전한 내 것이 없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거쳐왔기에 ‘고칠 수 있는 물건은 고쳐 쓰자.’가 앨런의 마음에 박혀있었다. 물론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수레 타고 다닌 값은 하셔야죠. 이동하기 전에 고치게 빨리 잡으세요.”

“으···.”

키키는 질색하면서도 붉게 칠해진 수레를 잡았다. 그러다가 물컹함을 느끼고 기겁하기도 했다.

둘이 수레를 대충 원상복구 했을 무렵, 조장 두 명도 마침내 의견을 합일했다. 조원들을 향해 다가오는 그들의 목소리가 제법 뚜렷하게 들렸다.

“회장님은···.”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 오마르, 우린 조원들을 데리고 나가면 된다. 놈도 여력이 있었다면 추가적인 수작을 부렸을 거다.”

“회장님이 추적하는데 그럴 여유는 없겠지. 그리고 회장님이라면 지금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계셨을 테고.”

영문도 모를 소리를 마친 그들은 각자의 조원이 뭉친 곳으로 향했다.

프랑수아가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탐험가들 앞에 섰다.

“문제가 생겨서 복귀하기로 했다.”

“고작 미친 흑마법사 아닙니까?”

“정신이 이상한 건 맞지만, 그 흑마법사의 칭호가 수집가라면 이야기는 다르겠지.”

웅성거림이 대번에 커졌다. 삼라만상에 올라왔다가 금방 지워지는 짤막한 영상만으로도 수집가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잘 알 수 있고, 그렇기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탐험가는 없었다.

“그만!”

오크 특유의 저음이 탐험가들의 귀에 박혔다. 마법이라도 사용한 듯, 들불처럼 일어나던 혼란이 주춤거렸다.

“회장님이 놈을 잡으러 갔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서 빠져나가는 것이고.”

브레이커의 회장, 제이크 마셜을 언급하자 웅성거림은 완전히 사라졌다. 심도 7의 강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 프랑수아와 오마르는 다른 통로로 향했다. 혹시나 마주치는 조들이 있다면 정보를 알려주려는 의도였다.

6조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동했다. 내려올 때는 힘들다면서도 입이 쉬질 않았는데, 올라갈 때는 수집가의 이름을 들어서 그런지 대화가 뚝 끊겼다.

전투화가 거친 돌바닥을 스치는 소리, 폭발로 부품이 어긋나서 삐걱대는 수레의 소음만이 가득했다.

불편한 침묵은 13층을 빠져나오자 조금 해소되었다.

관절에서 윤활유가 샌다고 수레를 탔던 키키는 이번에는 한사코 거부하며 앨런의 옆에서 걸었다. 고요 속에서 그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도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수집가 말입니까?”

“그래. 우리가 공터에서 쉴 때 헥스테크 탐험대도 지나갔잖아. 브레이커 말고 다른 단체도 이번 일에 협력했다는 의미겠지. 수집가가 위험인물이긴 한데, 메이즈시티의 거물들이 협력하면 죽을 수밖에 없어.”

떠드는 사람이 없다 보니 키키의 말소리는 생각보다 잘 퍼졌고, 근처의 조원들은 안 그런 척하며 귀를 쫑긋거렸다.

“그러니 도망치겠지.”

“걸리적거리는 탐험가들은 전부 치우고요?”

“그래. 마셜 회장이라면 몰라도 우리 같은 탐험가들은 수집가가 코 푸는 휴지처럼 찢어버릴걸. 운 나쁘면 아까 그 친구들처럼 생체 폭탄이 될 수도 있고.”

12층의 커다란 공터를 지날 무렵에도 키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수집가가 어떤 경로를 선택할지 모르니 일단 흑마법의 재료가 될만한 탐험가들을 미리 치우는 거야. 보아하니 놈도 꽤 준비한 듯싶은데.”

“맞습니다.”

“그치? 내 말이 맞지?”

키키는 앨런을 쳐다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조금 전에 들린 목소리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어느새 6조는 멈춰있었다. 수레와 부딪칠뻔한 키키는 앨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고블린치고는 똑똑하군요. 머리에 박은 매직웨어 덕이겠죠. 파이프 구조가 궁금한데 잡아당겨도 되겠습니까?”

검은 후드를 깊게 뒤집어쓴 인물이 공터를 빠져나가는 통로 가운데를 떡하니 막고 있었다.

6조의 탐험가들은 그의 얼굴에 헤드램프를 비췄다. 원래는 다른 방향으로 빛을 쏴서 누군지 확인하는 게 예의지만, 갑자기 나타나서 길을 막은 인물이 좋은 목적을 지녔을 리가 없었다.

“정말 너무하시는군요.”

“너무한 건 네놈 얼굴이고.”

프랑수아가 내뱉은 인신공격을 아무도 책망하지 않았다. 그만큼 후드 안쪽의 얼굴은 충격적이었다.

밀가루를 펴 바른 것처럼 창백한 피부, 허물 같은 입술 각질, 털 하나 없는 머리, 성별을 짐작하기 어려운 외모. 무엇보다 충격적인 광경은 꿰맨 눈꺼풀과 절개의 흔적이 보이는 이마였다.

모든 탐험가는 인공 안구 덕분에 시력이 좋아서 흉한 광경이 가감 없이 뇌리에 박혀 들었다.

앨런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왼쪽 눈은 주인이 어떤 마음을 품든지 상관 않고, 흑마법사로 추정되는 인물을 자세히 관찰했다.

‘방금 피부 안쪽에서 꿈틀거린 건 뭐지? 기생충?’

수집가가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특별함을 지닌 사람들의 ‘뇌’를 모으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는 뇌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정신지배 목적으로 집어넣었겠지.’

앨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글로만 읽었을 때와 직접 마주쳤을 때의 괴리 때문에 스스로 질문을 던졌을 뿐.

흑마법사에게서 느껴지는 불온한 기운을 느낀 프랑수아가 검붉은 도끼를 빼 들었다.

“놈의 꼭두각시냐?”

“위대한 스승님께 놈이라뇨. 제가 그쪽 회장을 비하하면 참을 겁니까?”

“당연히 아니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흑마법사는 어느새 앙상한 손으로 검은 플루트를 들고 있었다. 프랑수아가 도끼를 던지는 속도보다 플루트의 마우스피스가 입술에 닿는 게 빨랐다.

퍽!

뒤늦게 날아간 도끼는 흑마법사의 방어막을 파고들었다. 날 부분이 적의 이마 앞에서 멈췄다.

흑마법사는 도끼의 날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손가락을 대자마자 검게 죽은 피가 손과 팔을 따라 흘러내렸다.

상처가 생겼는데도 흑마법사는 뭐가 좋은지 방긋방긋 웃었다.

“아쉽겠군요.”

“전혀.”

프랑수아가 그렇게 외친 순간, 도끼의 날 부분이 뾰족한 창으로 변하며 흑마법사의 이마를 꿰뚫었다. 창과 피부 사이에 생긴 자그마한 틈에서 기생충 몇 마리가 기어 나왔다.

“흐흐흐.”

그래도 흑마법사는 죽지 않았다. 그의 기분 나쁜 웃음이 공터를 가득 메웠다.

“스승님의 계획을 방해한다고 느꼈습니까? 아뇨. 망치기는커녕 도와주게 되겠군요. 희생자는 강하면 강할수록 좋죠,”

“속셈이 뭐지?”

“그쪽의 잘나고 잘난 회장에게 물어보시죠.”

다시 방어막을 펼치고 수인을 맺는 흑마법사, 그를 막고자 돌진하는 프랑수아.

앨런은 둘의 전투를 관찰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여유가 없었다. 흑마법사가 사용한 플루트는 예전의 호루라기처럼 미궁에 간섭했다.

단단한 동굴 벽이 끓어오르는 물처럼 부글거렸다. 저 안쪽에서 비치는 그림자가 점점 많아졌다.

“오버플로다! 이리 모여!”

사태를 깨달은 부조장들이 조원들을 끌어모았다.

이로써 수집가가 미궁에 간섭할 수 있는 오파츠나 지식을 획득했다는 가정은 확실시되었으나.

“전위 앞으로! 마법사용자도 준비!”

지금은 그런 문제를 따질 시간이 아니었다. 세기 어려운 숫자의 지하인과 오토마톤이 벽을 찢으며 탄생하고 있었다.

프랑수아와 흑마법사는 그들에게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다.

부조장 두 명이 앞뒤를 막고, 그들을 중심으로 전위들이 둥글게 방어진을 만들었다. 마법사용자라고 뒤에만 서 있는 건 아니라서 방패를 들고 그들과 함께하기도 했다.

오토마톤은 지하인의 통솔 때문에 확실히 미로와 달랐다. 포위하고 있음에도 바로 달려들지 않고, 기회 혹은 명령을 기다렸다.

“후욱후욱. 빌어먹을.”

키키는 멍청하고 겁이 많은 고블린의 일반적인 행태와 다르게 움직였다. 그의 손목 두 개가 뒤로 완전히 접히더니 안쪽에서 뾰족한 송곳이 튀어나왔다.

준비를 마친 키키는 정작 자신도 전위들에게 보호받는 신세면서 앨런의 앞에 우뚝 섰다.

“너는 형님만 믿어. 너처럼 고블린에게 친절한 사람은 처음이야. 그러니 죽으면 안 돼.”

“···.”

앨런은 어떤 행동이 친절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키키가 말을 걸 때마다 받아주고, 다리 아프다고 하면 수레에 태워주고, 마법공학에 대해 질문하면 답변해주고. 다른 사람이 부탁했어도 똑같이 수용해줄 만한 범위였다.

어쨌든 지금은 잡생각 할 시간이 없었다.

황소, 코뿔소, 장수풍뎅이 등 덩치 큰 오토마톤을 앞줄에 세운 지하인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앨런은 오토마톤을 응시했다. 눈에 들어가는 마력이 많아질수록 푸른 안광이 강해졌다.

동굴의 오토마톤은 미로에서 만나는 적들보다 마법저항력이 강하다. 하지만 탐험을 하고, 지식을 쌓을수록 앨런도 성장한다.

시야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눈이 두툼한 외장갑 속을 투시했다. 복잡한 부품, 빠르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가속하는 실린더에 동력을 공급하는 회로를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 끝에 있는 건 마석과 영혼석.

앨런의 눈에 담긴 힘이 영혼석의 보안체계를 억지로 뚫고 안쪽으로 침입했다. 그리고 보이는 광경은 사방에 가득한 별. 가만히 박혀있는 별들이 앨런의 의지에 따라 운행하기 시작했다.

왼쪽과 달리 오른쪽 눈은 지하인들을 관찰했다. 그들 중 하나가 천장을 향해 권총 비슷하게 생긴 물건을 겨눴다.

딱!

동시에 내달리는 오토마톤. 덩치가 주는 압박감에 탐험가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놈들은 마음껏 달리지 못했다. 많아야 다섯 발자국. 오토마톤들은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뭐지?”

“오토마톤도 불량품이 있나?”

“정신 차리고 집중해라! 아직도 적은 많다!”

부조장들이 탐험가들을 다그쳤다. 고개를 흔든 조원들이 지하인과 오토마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키키는 저도 모르게 앨런을 올려다봤다. 그는 바짝 붙어있어서 알 수 있었다.

우연이 아니었다. 정지한 놈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앨런의 시야각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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