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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45화 (45/193)

마탄(1)

동굴을 탈출하고, 미로를 거슬러 올라간 앨런은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건 다른 탐험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없네?”

“평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나가기 불편한데 오늘은 텅 비어있으니 어색하다.”

1~3층은 맨홀이 고정형이라서 문이 열리나 안 열리나 지켜보고만 있으면 되니 사냥하기 편했다. 오토마톤도 약해서 한자리에 죽치고 있는 탐험가가 얼마나 많던가.

그런데 오늘은 이른바 작업장이 전부 비어있었다.

초유의 사태에 6조의 탐험가들이 술렁거렸다. 키키도 인공 안구를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내가 미궁을 3년 넘게 다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야. 설마 여기에도 흑마법이? 그래서 전부 죽었나?”

흑마법 이야기가 나와서 소란이 커지려고 하니, 프랑수아가 목소리를 높이며 주의를 환기했다.

“수집가의 층을 뛰어넘는 수법은 위협적이지. 그 범위가 몇 층인지는 모르지만 방치하면 탐험가가 많이 죽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니 놀라지 말고 빠져나가는 일만 생각하도록.”

앨런은 침착한 조장을 보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브레이커 정도의 단체면 어떤 상황에서든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놨을 것이다.

다른 기업이나 조직도 협력했을 테니 미궁 통제는 어렵지 않으리라. 혼자일 때나 힘들지, 합심하면 뭐든 쉬워지는 법이다.

어쨌든 그의 설명에 안정을 되찾은 탐험가들이 빠르게 미로를 주파했다.

미궁을 완전히 나올 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눈치 없는 오토마톤 몇 대가 앞을 막아섰지만, 프랑수아의 도끼에 두 동강 났다.

평소에 여유가 있던 방위군은 긴장 상태였다. 프랑수아는 조원들을 밖으로 내보내며, 자신은 미궁의 문을 둘러싼 요새에 남았다.

요새에서 멀어지자 키키가 앨런의 강화외골격을 두드렸다.

“떼죽음 당하면 여기저기서 귀찮게 해서 그럴걸. 인권단체는 가장 먼저 돌진할 테고, 솔도스 연방정부도 어떻게든 자치시에 간섭하려고 성명을 발표하겠지.”

“소개군요.”

“자기소개?”

“재난에 대비해서 사람들을 피신시키는 일이요.”

“당연히 알지. 고블린식 농담이야. 나도 책 많이 읽는다고···.”

이제 보니 키키의 인공 안구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어른거렸다. 통신하거나 삼라만상에 접속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앨런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스스로 어색한 분위기를 만든 키키는 분위기를 쇄신코자 계속 말을 꺼냈다. 저 멀리 보이는 대기업들의 빌딩을 가리키며.

“꼭대기에 앉아있는 새끼들은 사람의 목숨을 숫자로 판단하잖아. 탐험가들의 목숨이 귀중해서 작업장을 비웠겠어? 이득과 손실을 놓고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겠지. 헉!”

갑자기 숨을 멈춘 키키. 그의 인공 안구 안쪽이 회전하며 배율을 높였다. 앨런 역시 자연스럽게 뒤로 돌았다.

쿠르릉!

구름도 없는데 천둥소리가 괜히 들릴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새에서 화려한 폭발이 발생했다.

앨런은 왼쪽 눈에 마력을 담으며 시야를 확대했다.

상공으로 무언가가 솟구쳤다. 검은 망토를 두른, 사신이라는 단어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올릴 심상과 똑같이 생긴 형상이었다.

사신을 뒤따르는 현란한 마법과 굵은 광선들이 뱀처럼 얽히며 폭발하고, 어마어마한 열기에 뒤틀린 공기가 풍경을 왜곡했다.

연쇄적인 폭발이 빚어낸 화염의 구름이 점점 덩치를 키우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쳤다.

멀리 떨어진 앨런에게도 열기가 전해졌다. 근처에 빌딩이 있었다면 유리창이 전부 깨져버릴 충격파도 함께였다.

근처의 사람들은 재빨리 엎드리거나 무언가를 이용해서 몸을 숨겼다. 시간이 좀 흐른 후에, 앨런의 뒤에서 키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죽었나?”

말을 마치기 무섭게 화염의 구름을 빠져나온 사신이 앞으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마다 끼워진 반지 중 하나가 번쩍거리더니 전이문을 개방, 사신은 그 안으로 사라졌다.

분명 요새에는 마력왜곡결계가 펼쳐져 있을 터. 그렇다면 사신, 아니 수집가의 무력이나 마법의 밀도가 그걸 상회한다는 뜻이었다.

“지금 봤어요? 무슨 원리로 결계를 돌파···.”

앨런은 입술을 멈췄다.

키키는 인공 안구를 카메라로 사용해서 야외 방송을 하는 중이었다. 홀로그램 화면을 앞에 띄워서 시청자와 실시간 소통을 하기도 했다.

“시청자님들. 들어오셨으면 좋아요랑 구독 좀 눌러주세요.”

키키의 애원에도 시청자들은 화려하고 압도적인 광경에 매료되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산타는3대500t : 방금 뭐임? 어떻게 사라짐? 저기는 공간 마법 못 쓰잖아.

루돌프는자유에오 : 아무것도 모르네. 검색 조금만 하면 왜 그런지 나오는데.

산타는3대500t : 답변 안 해줄 거면 아가리. 아는 사람 없음?

산해경 : 수집가가 왜 수집가인지는 알지?

산타는3대500t : 뇌 모으고 다닌다며.

산해경 : 아네. 설마 알면서 물어보는 거 아니지? 쟤가 끼고 다니는 반지의 수정 안에는 사람의 뇌가 들어있어.

산타는3대500t : 어떻게?

산해경 : 공간 압축 마법이라도 썼겠지. 방금 수집가가 사용한 전이문. 정확히 말하면 그걸 가능하게 만든 반지 안에는 동분서주 공간마법학술원 전대 원장의 뇌가 들어있어.

산타는3대500t : 요약 좀 해줘.

루돌프는자유에오 : 이럴 줄 알았지. 저런 놈이 뭐가 예쁘다고 알려주고 있어.

수집가가 사라지자 과열됐던 채팅창은 점점 차갑게 식어버리고, 키키의 애달픈 음성만 메아리쳤다.

“입장료도 안 받았는데 재밌게 보셨으면 좋아요랑 구독 좀···.”

시청자 수가 빠르게 떨어지며 키키의 바람은 헛되이 끝나버렸다. 낙담하는 키키가 고개를 숙이며 홀로그램을 끄는 순간.

고블린학살자 : 난 했다.

짧은 채팅 하나가 올라왔다. 땅바닥을 보던 키키는 당연히 발견하지 못한 채팅이었다. 방송마저 꺼버렸으니 다시 보기를 하지 않는 이상 모를 테고.

앨런은 말을 해줄까 말까 하다가 한 명으론 간에 기별이나 갈까 싶어서 참았다.

키키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좋은 구경하긴 했네.”

“불꽃놀이치고는 화려하긴 했죠.”

“멀리서 보니까 예쁘긴 해. 가까이에 있었으면 녹아버렸을···. 저거 봐라. 저거.”

키키가 혀를 찼다. 수집가가 사라진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탐험가들이 미궁 안쪽으로 입장 중이었다.

돈이 죽음보다 무서운 게 하루 이틀이던가. 앨런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궁 역으로 향했다.

*

이번 탐험에서 얻은 성과는 셋이었다.

동굴에서도 능력이 통한다는 정보.

미궁에는 위험한 놈들이 많으니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사실.

프랑수아가 알아본다는 마력수련법.

마력수련법은 얼마나 좋은 물건을 찾아줄지 모르지만, 무엇이든지 노박이 알려준 것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자금은 충분하고.’

마석과 영혼석을 두둑이 챙겼으니 한동안 생활비나 도서 구매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별문자 해석본은 예외였다. 입문서와 초급 해석본을 머리에 담았으니 다음은 중급 해석본인데.

‘어떻게 책 하나에 숫자 0이 무려 일곱 개나 붙어있지?’

별문자는 어렵고 비싼 학문이었다. 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별문자를 다루는 인력이 적은지 알 수 있었다.

초급 해석본까지만 달달 외우고있어도 밥값 걱정은 없지만, 앨런의 궁극적인 목적은 안빈낙도가 아닌 정보습득, 탐험, 치료였다.

‘휴식한다면서도 일을 생각하고 있다니···.’

앨런은 고개를 흔들었다. 뇌가 벌써 위험에 중독된 것 같았다. 전율이라는 자극이 워낙 크기에 다른 즐거움이 퇴색된다고 할까.

일 중독자의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눈을 떴다. 사람의 체형에 맞춰서 최적의 형태를 유지하는 넝쿨 의자가 꿈틀거렸다.

전극처럼 붙어있는 솜털들 너머로 요화가 보였다. 마침 그녀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뭔가 즐거워 보이네.”

“···.”

“아니야? 맨날 뚱한 표정이니 속내를 알 수가 있어야지···.”

요화는 뜨개질 중이었다. 평범한 작업이 아니라 앨런이 쓰고 다니는 방독마스크의 필터를 만드는 일이었다.

다른 탐험가들이 흑마법사 태운 냄새로 고역을 치르는 동안에도 앨런은 필터 덕분에 상쾌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쪼그마한 페어리들이 식물 섬유를 꼬아 만든 실을 건네면, 요화는 실들을 촘촘하게 교차시키며 천연 필터를 만들었다.

마치 입구 근처에 걸린 태피스트리를 연상케 했다. 살아있는 넝쿨 식물들로 만든 벽걸이는 마력마저 정화하는 효능이 있었다.

약을 구매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이 괜히 몇 시간이고 기웃거리다가 쫓겨나는 이유가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니?”

“요화 님이 수작업까지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 정도로 유명한 제약 공방은 대량생산이 기본이라고 들어서요.”

“당연히 지하에 제약 설비가 있지. 하지만 그런 설비로 시시각각 변동하는 사람의 체내 정보를 포착할 수 있겠니?”

“MRI는요?”

“기계는 별로더라.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난 기계치가 아니야. 그러니 오해하지 마. 진짜야.”

마침 요화의 뜨개질이 멈췄다. 실을 건네주던 페어리들이 뺨을 부풀리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악덕 사장!”

“자유시간을 보장하라!”

“간식이 없으면 죽음을!”

페어리들은 우르르 몰려들어서 소리를 지르다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다른 구역으로 달아났다.

‘도대체 뭘 봤길래?’

앨런의 눈에는 요화의 뒷모습만 보이기에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몰랐다.

몸을 돌린 요화는 평소처럼 귀부인 같은 단아함을 뽐냈다.

“어휴. 얼마 전에 시위대가 지나가면서 확성기를 크게 틀었는데, 구호를 듣더니 계속 따라 하고 있어.”

“휴식시간은 주시나요?”

“당연하지. 30분 일하면 30분은 휴식. 출근은 10시, 퇴근은 5시. 점심은 한 시간.”

페어리는 아이 같은 면이 있지만, 본능적으로 마법을 사용하기에 잘 구슬리면 훌륭한 일꾼이 되기도 했다. 장난이 너무 심해서 가끔은 혼내고 싶긴 하지만.

“귀엽네요.”

“귀엽기는. 쟤들이 너보다 나이 많아. 잠깐, 눈빛이 왠지 불손한데.”

앨런은 어깨만 으쓱거렸다. 저번에 70살인 할머니가 요화에게 언니라고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고 입에 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체내정보수집이 끝났는지, 앨런의 몸에 붙어있던 솜털들이 둥실둥실 날아갔다. 의자에서 일어난 앨런은 나무에 걸어두었던 재킷을 걸쳤다.

“네 덕분에 개선한 피살이꽃 평이 엄청나게 좋아졌어. 이건 선물.”

요화가 구급상자를 건넸다. 미궁 탐험에 필수적인 약품이 가득했다.

화학적 공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천연 재료만 사용한 약들이면서도 약효, 발현시간, 지속시간이 굉장히 뛰어났다.

“몸조심하고. 생각 같아선 콱 가둬두고 자연 식단만 먹이고 싶네.”

“속마음이 표출됐는데요.”

요화는 묘한 미소를 보이며 나무속으로 쏙 들어갔다. 꽃의 요정인 화백다운 움직임이었다.

앨런은 물총으로 나무 수액을 뿌리는 페어리를 피하며 밖으로 나왔다. 웨스턴스카이의 공기가 굉장히 좋아서 그런지 이곳에 올 때마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다음에 제작할 마도구 구상이 대충 끝나서, 남은 과정은 실천뿐이었다.

‘룬문자를 철판에 새겨서 카드처럼 던지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로워.’

더 멀리에서, 더 정확하게 적을 타격할 수단이 필요했다.

마침 시장에 마탄이라는 물건이 있긴 했다. 말 그대로 마법을 담은 탄환이었다.

하지만 탄환이 크면 얼마나 크겠는가. 안에 담긴 마법은 에비로 사용하는 마법보다 약하고, 세밀한 공정 때문에 마탄의 가격은 살벌했다.

화력은 숫자로 채우면 된다지만,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쪼그라드는 잔액이 가장 큰 문제였다. 오토마톤 하나를 잡았는데, 막상 소모한 탄환의 가격은 두 대 분량일 수도 있었다.

마탄이 비싼 근본적인 이유는 원산지와 최종소비지의 가격 차이 그리고 안에 적용된 기술 때문이었다.

그러나 앨런이 유통과정이나 기술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직접 만들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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