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탄(2)
회로 마법은 룬문자 없이, 마도구에 새겨진 마력회로만을 이용해서 마법을 펼치는 방법이다. 선을 그으면 되기에 몸에 문신처럼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룬문자가 마법의 전부는 아니었다. 신비는 불가해의 영역이며, 밝혀진 부분보다 아직도 답파하지 못한 지평이 더 넓었다.
사용률 1위의 룬문자도 마찬가지다. 마법 학자들이 규명한 부분 밖은 사용자의 상상력, 감 혹은 직관으로 채워야 했다.
그래서 같은 룬문자를 그리더라도 누가 그리냐, 어떤 생각을 하며 각인하냐에 따라 성능과 효과가 달라졌다.
‘어려운데, 재밌네.’
앨런은 책을 덮었다. 숙소이자 공방으로 사용하는 창고 안으로 오늘의 마지막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단 회로 마법 책을 사긴 했는데 익숙한 방식이 아니니까 룬문자로 먼저 시도해보자.’
마탄을 제작 및 사용하려는 이유는 몇 개 있었다.
미로나 동굴은 안개로 뒤덮여서 교전하려면 일단 얼굴을 마주쳐야 했고, 좁은 통로형태여서 룬문자 카드를 대충 던져도 괜찮았다.
그러나 더 아래로 내려가면 효용이 떨어졌다. 동굴 아래는 야생의 땅이며, 미궁의 창조자는 원시의 들판, 숲, 계곡 등을 구현해놨다.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몰랐다. 심지어 해와 달이 뜨며 밤낮이 바뀌기도 하는데.
아무튼 시야가 확 넓어지기에 교전 거리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미궁의 괴물만 사냥한다면 모를까, 그 상대가 사람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너무 작아. 면적과 부피 때문에 마력을 많이 담기 힘들어.’
총에 사용하는 탄환은 너무 작았다. 뛰어난 마법사가 실시간으로 직접 마법을 부여하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손대기 힘들었다.
앨런은 소총탄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다가 대충 서랍에 넣어놨다. 그다음에 꺼낸 물건은 작은 원통 형태의 탄환, 유탄이었다.
스탠드의 빛 아래에서 유탄의 탄피가 반짝였다. 이 정도 크기와 넓이면 앨런이 무언가를 시도하기 좋았다. 룬문자를 그려도 되고, 반응성을 높게 개조한 마석을 넣어도 됐다.
생각을 마친 앨런은 삼라만상에서 찾은 공장의 연락처를 이용, 물건을 주문했다. 유탄 발사체 껍데기는 금방 앨런의 공방으로 배달됐다.
‘내가 이런 것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 공산품이 얼마나 좋은데.’
다음은 발사를 해결할 차례였다.
‘화약을 넣으면 너무 무겁다.’
화약이 들어있는 유탄 다섯 개면 1kg이 넘는다. 미궁을 내려가면 전투를 한두 번만 하진 않으니, 유탄 무게로만 수십 킬로그램을 훌쩍 넘게 된다.
심층으로 원정을 떠나는 탐험대에겐 보급대가 따라붙거나 공간 마법이 적용된 오파츠가 있다지만, 앨런에겐 머나먼 이야기였다.
‘비행과 폭발을 위한 화약을 룬문자로 대체하면 무게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겠지.’
앨런은 종이 위에 글자를 적었다.
[압축], [폭발], [척력]···.
‘[압축]을 빼고 대신 [나선]과 [가속]을 넣자.’
시발점에 [폭발]과 [척력]을, 강선이 있는 곳에 [나선]과 [가속]을 그리면 될 일이었다.
앨런이 펜을 움직일수록 종이 위는 새까맣게 변했다. 대충 그린 마탄 발사기의 각 부위에 주석이 빼곡하게 달렸다.
‘발사기 외형이 좀 이상하지만 일단 완성하고 고치자. 다음은 마탄.’
발사체 껍데기에 사용할 룬문자는 많았다.
‘[화염], [충격], [빙결], [폭발], [관통]···.’
뭘 새겨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다양한 특징의 마탄을 준비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룬문자의 종류 대신 새기는 방법도 문제지.’
앨런이 신경 써야 할 과제는 유탄에 룬문자를 새겨서 마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었다.
룬문자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몇 개나, 얼마나 크게 새길 수 있나.
룬문자는 상형문자, 회로 마법은 잔뿌리와 비슷했다. 룬문자는 형태와 행태의 동일성으로, 회로 마법은 잔뿌리의 모양에 따라 신비를 생성했다.
룬문자는 사용하기 편하지만, 문자의 형태가 왜곡될수록 성능이 떨어졌다.
회로 마법은 새기기 어렵지만, 원통이나 상자처럼 굴곡진 곳에도 선만 제대로 그으면 의도대로 작동했다.
앨런은 각 방법으로 시제품을 만들었다. 공방 안에서 빵빵 쏴댈 수 없으니 연습할 장소가 필요했다. 기왕이면 야외로.
*
메이즈시티 외곽에 사격장이 있다. 멈춘 과녁을 상대로 점수 놀이를 해도 되고, 팔팔하게 뛰어다니는 동물들을 사냥해도 됐다.
진짜 야생동물 사냥은 기본적으로 불법이기에 사격장의 숲을 뛰어다니는 동물들은 모두 홀로스킨을 적용한 골렘이었다.
홀로스킨은 공방거리에서 만난 시온처럼 모습을 속이거나, 사격장처럼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응용할 수도 있었다.
탑승자를 태운 무인 택시가 사격장의 넓은 주차장에 멈췄다. 앨런은 내리기 전에 인공지능에 물었다.
“여기에서 기다릴 수 있나요?”
[고객님, 당연히 가능합니다. 대신 추가 요금이 발생하니 좌석의 화면을 확인해주세요.]
앨런은 시간당 불어나는 요금을 보고서도 수락했다. 도시가 워낙 넓어서 여기까지 오는 데만 반나절이었다. 다시 돌아가려면 이동수단이 있어야 했다.
“호출하면 언제 올지도 모르니···. 그럼 기다려주세요.”
[고객님, 감사합니다!]
갑자기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쾌활해진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회사 입장에서는 운행이 없어도 돈을 버니 좋겠지. 아니면 영혼석의 작용으로 인공 정령이나 영혼이 깨어났나?’
앨런은 밖에 나와서도 자꾸 연구에 매진하려는 생각을 억지로 끄집어 올렸다. 고개를 흔들고, 넓은 주차장을 가로질러서 사격장으로 향했다.
화약을 사용한 총성이 자주 들렸다. 마법과 달리 손맛이 좋고, 특유의 냄새 때문에 선호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마침 총에 맞아서 떨어지는 새가 있었다. 홀로스킨이 망가졌는지 골렘 특유의 투박한 몸체가 드러났다.
사격장 외부에는 상점이 있었는데, 유리창에 붙어있는 의자에 앉아서 인스턴트식품을 먹는 손님들이 보였다.
앨런은 배 위에 손을 올렸다. 너무 들뜬 나머지 아침을 거른 사실을 깨달았다. 연구는 힘이 있어야 하고, 머리도 돌아가려면 당분이 필요했다.
“어서오슈.”
주인으로 추정되는 오크 아저씨가 인사를 건넸다. 앨런 역시 화답하며 식품이 진열된 매대로 향했다.
무얼 먹을지 고민하던 앨런의 귀에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로 걷어찼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예의가 없네.’
실제로 예의가 없었다.
“전부 엎드려!”
무장한 사람 몇이 상점으로 들어와서 손님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강도?’
다른 장소도 아니고 사격장에서 강도질을 한단 말인가. 안 그대로 메이즈시티에는 무기 소지자가 많은데, 사격장쯤 되면 무조건 있다고 판단해야 했다.
앨런과 비슷한 생각인지 비장한 표정의 상점 주인이 계산대 아래로 손을 내렸다. 손님들도 허리춤을 매만지거나, 식탁에 기대놓은 총으로 손을 뻗었다.
삐이이!
동시에 울리는 요란한 소리. 주인과 손님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원인은 강도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남자가 들고 있는 상자였다. 매직웨어에 잠깐 오작동을 발생시키는 해킹 장치로 보였다.
‘저런 물건을 구해놓고 하는 일이 고작 상점 털이? 차라리 은행을 가지···. 어려우려나?’
생각해보니 은행은 위험했다. 순수주의자가 경비로 있을 수도 있고, 보안장치가 살벌하거나 대응팀 출동이 빨랐다.
‘뇌 확장 장치에만 적용되는 물건인가? 아니면 나에게는 마법저항력이 있어서?’
고민하던 앨런은 상점을 감시하던 강도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넌 뭔데 멀쩡해? 죽기 싫으면 엎드려!”
총격보다 대화를 선택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 친절한 강도였다. 아니면 앨런이 들고 있는 마탄 발사기의 외형 때문에 무시했을 수도 있고.
방어막 발생기를 가동한 앨런은 대화를 시도했다.
“그냥 나가시면 안 될까요?”
“미친놈이 있네. 방어막은 예상외긴 한데, 고철은 왜 들고 있냐?”
“이거 위험한 물건이라 가까이 오시면 위험합니다.”
“흐흐흐. 들었냐? 망가진 고물이 위험하댄다.”
강도와 동료들이 전부 웃었다. 앨런이 들고 있는 마탄 발사기는 부서진 사격장 골렘에서 떼어낸 부품으로 착각할 만했다.
“얌전히 고철 수집이나 할 것이지. 짜증 나게.”
강도의 인내심은 거기까지였다. 돌격소총의 총구를 방어막에 겨누고 드르륵 긁었다. 언젠가 망가지겠지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방어막의 동력은 앨런의 마나하트라 쉽지 않았다. 진짜 깨고 싶다면 자잘한 공격보다는 묵직한 한 방이 필요했다.
“이 새끼가 끝까지···.”
마나소드를 든 강도가 접근했다. 그리고 모습이 사라졌다.
뻥!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큰지 고통에 시달리던 사람들도 손으로 귀를 막았다.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박살 난 문의 유리가 후드득 떨어졌다.
그 너머, 강도들이 타고 왔던 밴의 차 문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앨런에게 접근하던 남자는 그곳에 처박혀 있었고.
강도는 잔뜩 구겨진 고철처럼 보였다. 인공 안구가 튀어나와서 덜렁거린 덕분에 그나마 머리와 상반신이 어디인지 찾을 수는 있었다.
“매직웨어 덕분에 멀쩡하네요.”
강도들은 말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앨런은 무감각한 눈빛으로 새로운 마탄을 장전하고 있었다.
앨런은 ‘저게 멀쩡?’이라는 표정을 짓는 강도들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살아있으면 된 거 아닌가요? 이번에는 출력을 좀 낮춘 녀석입니다. 골렘 대신 사람으로 실험할 줄은 몰랐네요.”
마탄 발사기가 슥 움직일 때마다 벼락이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강도들이 하나씩 실종됐다.
나중에 도착한 경찰은 검은색 밴에 처박힌 강도들을 보고 견인차를 불러야 할지, 구급차를 호출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가 밴 앞에 서서 손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어깨너머로 보니 무언가를 적고 있었는데, 조금만 읽어도 머리가 아픈 단어가 가득했다.
“흠흠.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
일부러 헛기침했는데도 상대방은 묵묵부답이었다. 처음처럼 자기 일에 몰두했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경찰에게도 들렸다.
“마력 공급을 줄여서 그런가? 그래도 계산한 화력과 달라. 원통이라 룬문자가 좀 왜곡됐겠지. ······. 여기는 회로를 잘못 그렸나 효과가 살짝 다른데.”
보다 못한 경찰의 동료가 청년의 어깨를 붙잡고 힘을 줬다. 그제야 청년이 고개를 돌리는데.
“말 좀 묻겠···.”
감정 없는 눈에는 차가움이 살짝 담겨있었다. 갑자기 엄습한 오싹함에 경찰이 입을 멈춘 순간, 앨런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자세한 경위나···.”
“전 그냥 손님입니다. 세세한 이야기는 저쪽에서 구경하는 주인과 나누세요.”
앨런은 깨진 유리를 치우는 오크 아저씨를 가리키며 딱 잘라 말했다. 경찰을 뿌리친 앨런은 다시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에 집중했다.
밴에 몸이 박힌 강도들의 형이상학적인 자태를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멀쩡한 강도와 부서진 강도는 결국 동일인이지. 그렇다면 회로를 죽죽 그은 최종 결과물이 룬문자와 비슷해지면 그건 회로 마법일까, 아니면 룬문자일까?’
가까이에서 보면 회로의 집합체나, 멀리에서 보면 룬문자가 되는 것이다. 마치 아스키 아트처럼.
만족스러움에 고개를 끄덕인 앨런은 돌아가려다가 뛰어온 경찰에게 팔이 붙잡혔다.
“아니, 당사자 맞잖습니까.”
“아닙니다.”
“감시카메라 확인 끝났습니다.”
“바쁜데···.”
“···잠깐이면 됩니다. 조사에 협조하면 금방 끝내겠습니다.”
경찰차를 힐끔 보는 경찰. 타고 서까지 이동할지, 아니면 여기에서 끝낼지를 묻는 무언의 의사표시였다.
앨런은 순순히 조사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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