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1)
사격장에서의 조사가 끝나고 며칠 뒤, 앨런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미궁으로 향했다.
수집가를 피해서 탈출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몸이 근질근질하는 현상을 보면 심각한 수준의 탐험 중독이 아닌가 싶었다.
미궁 역을 빠져나온 앨런은 자연스럽게 줄에 섰다. 오히려 수집가가 난리를 부리기 전보다 줄이 길어졌다.
기다리는 시간조차 아까운 앨런은 표범이 끄는 수레에 몸을 싣고 생각에 빠졌다.
‘룬문자와 회로 마법은 서로가 서로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어.’
며칠 사이 얻은 결론이었다. 룬문자를 작게 그린다면, 그러니까 밀리, 마이크로 그리고 나노의 영역에서 이어지게 새긴다면? 눈으로 봤을 때는 회로 마법이 되는 것이다.
그 반대도 당연히 성립했다. 새길 때는 회로인데 멀리에서 보면 룬문자인 경우다.
어떤 설계, 어떤 재료에는 무슨 방법이 좋은지는 지금 연구 중이다. 앨런 혼자의 몸으로는 며칠 사이에 전부 밝혀내기 불가능하고, 자금 문제도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응용하거나 연구하는 기관이 있을까?’
앨런은 있다고 생각했다. 혼자 생각해낸 개념을 내로라하는 지성들이 모인 연구소에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 개념을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앨런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삼라만상에는 없는 지식이었어. 아무도 모른다는 가정은 너무 비현실적이니, 시중에 풀기 싫다는 의미겠지.’
지식은 힘이며 돈이다. 별문자 초급 해석본의 가격이 500만 코인임을 생각하면, 앨런이 연구하기 시작한 개념은 값을 얼마나 매겨야 할까.
물론 앎과 활용은 다르다. 그래서 앨런은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밖으로 꺼내지 않은 상상은 허상에 불과하기에.
수레에 타서 편하게 가던 앨런도 요새의 출입문을 지나칠 때는 내려야 했다. 탐험가들이 새로 생긴 보안검색대를 차례대로 통과하고 있었다.
헬멧 바이저를 위로 올린 군인이 앨런에게 손을 내밀었다. 탐험가들이 신분증을 건네는 모습을 본 앨런은 똑같이 행동했다.
인공 안구에서 뿜어진 빛이 신분증을 스캔하고, 보안검색대는 앨런의 몸을 조사했다.
“확인 끝. 앞으로.”
군인이 메마른 음성으로 허락했다. 온종일 말을 할 테니 목구멍이 건조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요새 안으로 완전히 들어선 앨런은 주변을 둘러봤다. 예전보다 경계가 한층 강화됐다. 타이탄과 자동 포탑의 수가 늘어났고, 벽에 그려진 마법진도 많아졌다.
‘다른 사람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려는 시도겠지.’
그러나 마셜 회장과 포위망에서 무사히 탈출한 수집가는 심도 7의 실력자였다. 그런 사람이 작정하고 속이면 다시 뚫릴 수밖에 없다.
‘경계가 삼엄해졌으니 다른 나라의 미궁을 노리려나.’
앨런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내 할 일도 바빠 죽겠는데 범죄자가 잡혔는지 척살 당했는지 알게 뭔가.
문을 통과해서 미로를 앞에 두니 잡념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이번 탐험의 목표는 수문장···.’
수문장을 혼자 잡아보려고 강화외골격도 구매했으니 기왕이면 대면해보고 아래로 내려가는 편이 심적으로 깔끔했다. 부디 대면할 기회가 있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동굴.’
단체로 적을 마주했을 때와 홀로 감당할 때의 차이도 알고 싶었다. 협력하면 개인의 단점이 타인의 장점에 가려지지만, 혼자라면 여과 없이 드러날 테니까.
*
9층 야영지에 도착한 앨런은 제작과 공부를 병행하며 수문장을 기다렸다. 가끔 답답하면 탐험가들의 마도구를 수리해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벌써 두 번째 놓쳤어.’
처음에는 잡혔다는 소식만 들었고, 두 번째는 코앞에서 우선권이 넘어갔다. 안타깝지만 먼저 교전한 파티가 우선이라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왜 유독 9층 야영지에 탐험가들이 많겠는가. 저들은 전부 경쟁자였다.
‘오토마톤 몇 무리보다 수문장 하나가 이득이니 어쩔 수 없지.’
시계를 힐끔 바라본 앨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수문장이 재생성될 시간이기에 다른 탐험가들도 아래로 향했다.
수레에 탑승한 앨런은 오토마톤 무리를 마주치면 눈으로 잠시 멈춰놓고 자리를 피했다. 원래는 죽어라 달려들 오토마톤도 앨런이 그렇게 사라지니 쫓아갈 수가 없었다.
미로 10층을 얼마나 헤맸을까.
푸슉!
이번에는 하늘이 도왔는지 앨런의 바로 앞에 커다란 맨홀이 생성되었다.
‘하늘이 돕는다고?’
앨런 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자신이 떠올리고도 왠지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드는 문구였다.
어쨌든 지금은 수문장에게 집중할 시간이었다. 오토마톤은 탐험가가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혹은 다수든지 혼자든지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수레에서 해방된 표범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다만, 앨런이 입력해둔 명령 때문에 공격보다는 회피를 택했다.
망치가 공기를 강타하는 끔찍한 소리가 미로를 가득 채웠다. 표범은 납죽 엎드리고, 벽을 박차며 공격을 피했다.
수문장은 표범에게 집중하면서도 드문드문 앨런을 확인했다.
‘영혼석에 별문자가 많아서 그런지 확실히 행동 패턴이 다양해. 다른 오토마톤이었다면 표범만 죽어라 쫓아갔을 텐데.’
앨런은 수레에 실어뒀던 마탄 발사기를 꺼냈다. 드럼 탄창을 옆으로 빼서 상태를 확인했다.
‘문제없어.’
탄창을 손바닥으로 툭 치니 딸깍 소리가 들리며 발사기와 완전히 결합하였다. 수문장에게 겨누고 조준경에 눈을 붙였다.
조준점이 수문장의 가슴에 찍혔다. 오토마톤의 마력로와 영혼석의 위치는 무작위나, 가슴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수문장은 투시가 제대로 안 되니 어쩔 수 없지.’
앨런은 엎드리지 않고 바르게 섰다. 강화외골격이 고정되며 사용자의 몸을 튼튼하게 받쳐줬다.
손잡이에 마력을 부여하니, 회로를 타고 발사기 내부로 들어가서 [폭발]과 [척력]을 자극했다. 총구에 부여된 [나선]과 [가속]도 마찬가지로 마력을 머금었다.
수문장의 외눈이 한순간 밝게 빛났다. 자신을 노리는 적의 움직임을 확인한 탓이다. 앨런을 향해 달려오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늦었어.’
퉁!
무거우면서도 가벼운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상체의 반동이 허리를 통해 하반신으로 흘러 들어가고, 강화외골격이 대부분을 해소했다.
그리고 날아간 마탄. [관통]의 룬문자가 새겨진 앞부분이 수문장의 외장갑을 파고들었고, 몸통에 자리한 [폭발]이 한차례 늦게 반응했다.
콰앙!
외장갑이 들썩거리더니 뚫린 구멍에서 화염과 연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래도 수문장의 내구도는 대단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앨런이 다시 발사하려는 순간, 수문장의 덜렁거리던 오른팔이 떨어졌다. 꽉 잡고 있던 폭발 망치도 마찬가지였다.
콰앙!
재차 들려온 폭음은 앨런의 작품이 아니었다. 운 좋게도 힘을 모으던 폭발 망치에 충격이 가해져서 추가적인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오른쪽 다리까지 파열된 수문장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수문장의 충전은 완벽하지 않아서 안구 광선을 발사할 수도 없었다.
앨런은 발사기를 아래로 내리며 입술을 살짝 열었다.
“물어.”
여태 구경만 하던 표범이 뛰어올랐다. 몸의 균형이 망가진 수문장은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기이잉!
드릴 송곳니가 목 부분의 외장갑을 갉아대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잘했어.”
앨런은 수문장의 머리를 뜯어온 표범의 얼굴을 문질러줬다. 오토마톤이라 반응 없이 멀뚱히 서 있긴 했지만, 성능이 이렇게 좋은데 그게 뭐가 대수겠는가.
앨런은 수문장의 머리를 수레에 싣고 몸통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지팡이를 꺼내서 몸을 이리저리 굴려보며 내부를 확인했다.
‘관통력은 괜찮은데 폭발이 좀 아쉽네. 발사기의 조준 성능도 개선할 필요가 있고.’
회로 마법과 룬문자를 섞었더니 예상치 못한 결과가 발생하거나 불량품이 되는 경우가 있지만, 첫 실전치고는 훌륭한 결과를 얻었다.
앨런 혼자서, 마탄 한 발로 수문장을 침묵시킨 것이다.
“아, 너도 있었지.”
그리고 주인처럼 무뚝뚝한 표범도.
수문장의 몸을 뒤적거리며 비교적 가볍고 귀한 부품만 수거하던 앨런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아, 놓쳤네.”
다른 탐험가들이 뒤늦게 도착했다. 이곳은 야영지가 아니라 서로 피해 다녀야 하나, 앨런이 혼자 있어서 그런지 멀뚱히 서 있었다.
“구경은 사절입니다.”
앨런은 바로 마탄 발사기를 겨눴다.
미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강하게 대응해야 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피식자로 인식될 위험이 있었다.
마탄 발사기와 수문장을 번갈아 보던 파티는 고개를 젓더니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앨런은 비싼 부품만 챙겨서 다시 9층 야영지로 이동했다. 혼자여서 불편한 점은 무언가를 조사하려면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석에 자리를 잡은 앨런은 평소처럼 연구를 시작했다. 수리가 필요한 탐험가 몇이 기웃거리긴 했지만, 장사 팻말이 없어서 접근하지 않았다.
전부 그러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가까이 접근하자 앞에 엎드려 있던 표범이 몸을 일으켰다.
“잠깐, 나야. 나. 누군지 모르겠어?”
앨런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여유로운 표정의 금발 남자, 칼슨이 눈앞에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여전히 무뚝뚝하구나. 지금 날 노려보는 오토마톤이랑 마스크 때문에 못 알아볼 뻔했어.”
“그럼 어떻게 알았습니까?”
“눈 때문에. 무감각한 눈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헤어진 지 얼마나 지났지? 두 달 좀 넘었나?”
“그쯤 된 것 같습니다.”
앨런이 표범을 옆에 앉히자 그제야 칼슨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예전처럼 역장 방패와 샷건을 장비했다.
“얘는 듬직하게 생겼네. 너는 안색이 좋아졌고.”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좀 알려줘.”
투머치토커인 칼슨의 부탁에 앨런은 어쩔 수 없이 정보를 약간 풀었다. 표범을 직접 만들었다거나, 원래 몸이 안 좋았는데 요즘은 나아졌다거나.
“그럼 여기까지 혼자 내려온 거야? 잠깐···.”
말을 멈춘 칼슨이 앨런의 손과 수레를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수문장 부품 맞지? 우리는 6층에서 함께 빌빌대던 사이였잖아. 설마 나와 아웅이 족쇄였던 거야?”
“···.”
“섭섭하게 부정도 안 하네.”
칼슨은 말로는 서운하다면서 얼굴은 웃고 있었다. 화목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살아온 티가 났다. 자신을 긍정하니, 남을 긍정하는 방법도 잘 알았다.
서로의 근황을 묻는 일이 끝나고, 앨런이 입을 열었다.
“칼슨은 여기까지 무슨 일입니까? 지금 한창 대학 다니느라 바쁠 텐데요.”
“그래서 왔지. 내가 다니는 미궁학과는 가만히 앉아서 탐험가들이 가져오는 전리품만 받아먹지 않거든. 알려면 직접 경험해야 한다는 풍조가 있어.”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눈으로만 보는 것과 경험의 차이는 매우 컸다.
칼슨이 고개를 돌리더니 한쪽에 몰려있는 무리를 가리켰다.
“좀 어설퍼 보이면 미궁학과 학생들이야.”
“무장이나 기세가 만만치 않은 사람들은 호위겠군요.”
“맞아. 그리고 저쪽에 계신 분은 오로스 교수님.”
오로스 교수는 덩치가 큰 오크였다. 앨런은 처음에 그가 교수가 아니라 호위인 줄 알았다.
칼슨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웃었다.
“나도 처음에 그랬어. 첫 수업 때 교재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쿵쿵 소리가 들리더라고. 무슨 소리인가 해서 고개를 들었더니 웬 거구···.”
“칼슨 학생.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합니까?”
묵직한 목소리였다.
당황한 칼슨의 어깨가 요동쳤다.
“하하···. 지인을 만나서···. 아, 이름은 앨런 그리고 마법공학자입니다.”
“오···.”
오로스의 눈에 앨런의 장비와 곁에 누워있는 표범이 동시에 담겼다. 그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귀한 인재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마법공학자가 혼자 다니는 겁니까? 정말 보기 드문 일이군요.”
앨런 역시 마찬가지였다. 종족 차별주의자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오크들은 모두 행동거지가 거칠 거나 투박했다.
그런데 오크의 눈에 지성이 깃들어 있다니. 심지어 교수기도 했다. 세상은 참 넓고 신기한 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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