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48화 (48/193)

현장학습(2)

노년에 접어들었는데도 근육이 가득한 오로스 교수는 떠날 생각을 안 했다. 아예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앨런 앞에 앉은 후, 뭐가 그리 궁금한지 계속 질문을 던졌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칼슨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교수님. 식사하실 시간입니다.”

“아, 그렇군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오로스의 질문을 받아주다 보니 저녁 7시. 오크 교수는 돌아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식사에 합석했다.

“그냥 끓여서 먹는 것보다 약간의 수고를 들이는 편이 맛이 좋아요.”

그렇게 말하는 오로스의 손에서 단단한 에너지 비스킷이 바스러졌다. 생으로 먹으면 이가 부러질 수도 있는 고형음식을 손가락만으로 간단하게 부쉈다.

‘데려온 학생들이 유독 예의 바른 이유는 교수님을 존경해서일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위압감을 느껴서일까?’

앨런은 건더기가 보이지 않는 수프와 대학생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어쨌든 수프 맛은 좋았다. 잘게 부서진 비스킷에 국물이 잘 스며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오로스의 손맛이 첨가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앨런이 수프로 몸을 따듯하게 데우는 사이, 칼슨의 입술은 바삐 움직였다.

“···그랬다가 오늘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혼자서 수문장도 잡을 실력자고요.”

일부러 말을 안 했는데 칼슨이 수문장을 잡은 사실을 실토했다. 칼슨에게 고정되었던 오로스의 시선이 다시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표범을 살폈다.

“직접 개조했나요?”

“네.”

단답에 말이 막힐 만도 하건만, 오로스는 유연하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독창성이 느껴지는 오토마톤입니다. 마법공학과 학생들이 만드는 마도구에서는 도전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데, 이건 다르군요. 심지어 성능도 좋다죠?”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앨런의 표정은 변화가 없어도 어깨는 살짝 올라갔다.

가볍게 묻던 오로스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만한 성능을 뽑아내려면 당연히 그만큼의 소모 값이 있어야 할 텐데 말이죠. 앨런 탐험가가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

앨런은 입을 다물고, 칼슨은 관심 없는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수익보다 탐구와 학습을 중요시하는 것이겠죠. 실력이 허용하는 만큼 최대한 깊이 들어가고, 탐험으로 얻는 수익을 전부 마법공학에 투자하는 겁니다. 취미 자체가 마법공학이니 가능한 일이겠죠. 제 말이 맞나요?”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력과다증이라 동력공급에 문제가 없는 것이지만, 설득 없이 알아서 착각해주니 그냥 입을 다물었다.

취미라는 말도 맞긴 했다.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면 밤을 새워도 힘이 나는 법이니까.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오로스가 구석에서 씻고 다시 다가왔다.

“혹시 복귀할 계획이었나요?”

“이틀 정도 9~10층에서 머물다가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정을 바꿔서 우리 쪽에 합류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요? 마법공학자가 받는 평균임금으로 고용하고 싶군요.”

잠시 뜸을 들인 앨런이 물었다.

“어디까지 내려갈 계획입니까?”

“교안대로라면 13층이네요.”

앨런은 잠시 고민했다. 전에도 13층에서 발길을 돌렸는데 너무 급하게 이동해서 동굴에 대해 제대로 연구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 앨런의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오로스가 말을 덧붙였다.

“앨런 탐험가가 합류하면 14층까지 내려갈 생각은 있습니다. 더불어 시립대가 최고라는 망상에 빠진 우물 안 학생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군요.”

앨런은 교수를 잠시 쳐다보다가 승낙했다. 기왕 내려왔으니 지하인을 상대로 마탄이 어떤 성능을 내는지 알아보고 싶고, 대학 그것도 교수는 어떻게 미궁을 탐험하고 조사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로스는 저쪽에 알려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슨도 함께 움직였다.

“칼슨 학생. 저번에 말했던 주제에 대해 충분히 숙고할 시간이 지났지 않나요?”

“교수님, 대학원은 아무래도 집안에서 반대를···.”

“그럼 긍정적인 반응은 거짓이었단 뜻입니까? 칼슨 학생도 성인 아닙니까? 그런데 면학의 의지가 타인에게 휘둘려야 할까요?”

짐을 정리하는 앨런의 귀에 둘의 대화가 들렸다.

‘대학원? 더 배우면 좋은 거 아닌가?’

*

현장학습에 참여한 시립대 인원은 열다섯, 호위는 다섯, 거기에 앨런까지 더해서 21명이 동굴로 내려갔다.

“한 학과에 학생이 14명 밖에 없어요? 유동적이라고 듣긴 했는데 생각보다 적네요.”

“너, 대학에 관심이 아예 없구나? 그럴 리가 없잖아. 현장학습은 자율성이 있어서 불참하는 애들도 있고, 다른 교수님을 따라간 애들도 있어. 그리고 너무 많으면 복잡해서 안 돼.”

“붐비면 정신 사납고, 연구도 기왕이면 조용한 편이 좋죠.”

앨런의 말에 칼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칼슨은 앨런과 학과생 사이에 서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몸으로 시선을 가리는 중이었다.

학생들은 갑자기 합류한 마법공학자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실력이 검증되었거나, 노련미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자신들 또래라고 하니 영 못 미더운 것이다.

그래도 교수님이 고용했다고 하니 대놓고 불평하는 인원은 없었다.

‘역시 배운 사람들이라 생각이 달라.’

앨런은 그들의 절제력에 감탄했다. 만약 탐험가였다면 의심되는 순간, 앞으로 나와서 실력을 증명하라고 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미궁에서는 서로의 목숨을 맡겨야 하니, 어찌 서투른 사람을 동료로 삼겠는가.

그러니 앨런은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라, 접근 방식의 우아함을 평가했을 뿐이다.

칼슨은 학생들의 분위기를 보다가 앨런의 나이가 궁금한지 슬쩍 물었다.

“몇 살이야? 나는 20살이고, 3학년.”

“18살입니다.”

“동안인 줄 알았더니 진짜 어렸네. 내 말이 무슨 뜻인진 알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게 아니라 실력이 좋아서 감탄하는 거야.”

“별생각 없습니다.”

“무뚝뚝함은 여전해.”

잠시 말이 끊기고, 동굴 바닥을 터벅터벅 걷는 소리에 이질적인 화음이 끼어들었다.

학생들이 두리번거리는 사이, 앨런은 말없이 무기를 꺼냈고, 오로스는 무슨 소리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시기에 등장했군요. 아무 일도 없었으면 지겨울 뻔했어요.”

단단한 벽이 출렁이더니 지하인들이 튀어나왔다.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동물처럼.

대학생들은 징그러운 걸 본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오로스 교수는 즐거워했다.

교수는 대학생을 지도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 저런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다.

등장한 적은 지하인 둘, 오토마톤 셋.

호위대장인 남자가 적들을 살펴보더니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대장의 명령에 맞춰 대응한 사람은 둘. 각자의 무기를 따라 푸른 빛이 흘러내렸다.

‘한 명은 마나소드, 다른 사람은 오러네.’

앨런은 호위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러니 5명이 15명을 호위하는 것이겠지.

굳이 앨런이 나설 차례도 없이 오토마톤과 지하인은 빠르게 정리됐다.

호위 두 명이 무기를 휘두르면 푸른 선 나타나고, 궤적을 따라 적들의 몸이 분해되었다. 호기롭게 튀어나온 지하인들은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해보고 쓰러졌다.

“굉장히 강하네요.”

저게 다 등록금이야. 귓속말을 전한 칼슨이 아무 말도 안 했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학생들도 어느 정도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내려와. 그런데 크게 다치면 좀 곤란하잖아.”

“학생들도 전투에 참여하나요?”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저기 봐, 덜덜 떨고 있지? 저런 애들은 가만히 있어야 돕는 거야. 쟤는 1학년, 너랑 같은 나이야.”

“경험이 쌓이면 달라지겠죠.”

“맞아. 나도 미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저랬거든.”

미궁이 현대문명을 견인한다는 주장은 주지의 사실이나, 그렇다고 아무나 탐험을 하지도 않았다. 미궁 탐험은 명백히 고되고, 위험하고, 지저분하니까.

오로스는 죽은 지하인을 바닥에 놓고 학생들을 소집했다. 빙 둘러선 학생 가운데에 반듯하게 누운 지하인이 있었다.

“호흡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깔끔하게 처리했군요.”

말을 마친 오로스는 좀 커다란 메스의 끝을 지하인의 배에 붙였다.

“교재로, 그리고 탐험가들이 가져온 샘플로 접한 학생도 있을 겁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지하인의 속내가 여과 없이 학생들의 동공에 새겨졌다.

메스꺼운 표정을 짓거나, 마스크를 끌어 올리거나, 아예 고개를 돌리는 학생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로스의 설명은 이어졌다.

“안쪽을 보면 내장, 골격 등 모든 부위가 우리와 거의 똑같습니다. 밀리엄 학생? 제가 예전에 지하인 해부도를 가리키며 뭐라고 했었죠?”

“우리와 이세가 만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유전자가 흡사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건 불가능하다는 말도 하셨습니다.”

“정확합니다. 미궁의 창조자가 지하인에게 불명의 신비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신비라고 추정할 뿐, 아무도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어요. 어쩌면 너무나 커다란 신비라서 눈앞에 두고도 몰라볼 수도 있고요.”

오토마톤에만 관심 있던 앨런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정보였다. 그냥 사람의 형태를 본뜬 괴물인 줄 알았는데 유전자까지 비슷한 줄은 몰랐다.

오로스는 알코올 솜으로 메스를 쓱쓱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자는 이리 말하기도 합니다. 지하인은 과거에 이 땅을 거닐었던 고대인이거나, 지금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수 있다고요. 하지만 증명하지 못했으니 아직은 가설일 뿐입니다. 저는 세기의 발견을 할 학자가 여러분이면 좋겠어요.”

“교수님이라면 할 수 있어요.”

“하하. 저는 그것보다 미궁의 창조자가 누군지 알고 싶군요.”

학생들의 꿈을 북돋아 주는 듯하더니, 오로스 자신은 더욱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학자라면 응당 저래야 했다. 타인의 발견도 분명 환영할 만하나, 기왕이면 주체가 자신이면 더 좋지 않겠는가. 앨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시 탐험이 이어지고, 정찰하러 갔던 호위 하나가 복귀해서 오로스에게 무언가를 알렸다.

“공터에 방어기지가 있다고요? 숫자는 열이라···.”

학생들을 한 번 둘러본 오로스는 손목과 어깨를 풀었다.

“구경만 하면 현장학습이라는 이름이 아깝죠. 전부 준비하세요.”

전투에 나서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모두 마음의 준비는 하고 내려왔겠지만, 막상 눈앞에 닥치니 생각과는 다른 모양이라, 삐걱대는 학생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짝!

오로스가 손뼉을 치는 소리가 유독 우렁차게 들렸다. 음파에 마나가 담겨있기에 혼란에 빠졌던 학생들도 고개를 돌렸다.

“호위분들이 있고 제가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그렇게 말하며 팔에 힘을 주니 탐험복이 부풀어 올랐다. 아이 몸통만 한 팔근육을 목격한 학생들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칼슨은 앨런에게 딱 붙어서 마탄을 장전하는 모습을 살피고 있었다.

“총포상에 봤던 마탄이랑 좀 다른데. 설마 그것도 직접 만들었어?”

“맞아요. 지금 들고 있는···.”

“잠깐만 내가 맞춰볼게. 역시 사람마다 룬문자 형태가 조금씩 다르긴 하네. 장전한 건 [응결]과 [침수], 지금 손에 들고 있는 마탄은 [빙결]과 [속박]. 맞지?”

“맞습니다. [폭발]을 사용하면 빠르게 정리할 수 있는데, 부품이 망가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포획용으로 따로 만들었죠.”

어느새 도착한 방어기지 앞. 많은 인원이 함께 이동하는 소음은 꽤 컸기에, 지하인들은 이쪽을 향해 가시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학생들이 거칠어진 숨을 뱉으며 충격에 대비하는 사이, 뒤에서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통!

학생들 머리 위로 보슬비가 내렸다. 회전하며 날아간 마탄은 사방으로 물을 흩뿌렸다. 마치 젖은 개가 좌우로 몸을 터는 것처럼.

느릿하게 날아가다 낙하한 마탄은 철퍽 떨어져 내렸다. 다른 마탄과 사뭇 다른 소리였다.

지하인의 발등에 살짝 못 미칠 정도로 물이 차올랐다. 앨런은 물이 완전히 흩어지기 전에 두 번째 마탄을 발사했다.

이번에 날아간 마탄의 궤적을 따라 하얀 눈송이가 내렸다. 웅덩이 한복판에 떨어진 마탄은 물의 성질을 변화시켰고, 하얗게 얼어붙은 족쇄들이 오토마톤과 지하인의 다리에 채워졌다.

학생들이 뒤를 돌아봤다. 시선 끝에 있는 앨런은 앞을 가리키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구경만 하실 겁니까? 아, 기왕이면 다리만 공격하세요. 노란 머리 학생분, 개머리판은 얼굴이 아니라 어깨에 붙이는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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