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4)
나침반은 거대한 자석이라 할 수 있는 행성에 반응해서 바늘이 움직이는 도구다. 자침이 남쪽과 북쪽을 동시에 가리키기에 지도와 함께 쓴다면 길 찾기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미궁에 나침반이라니. 각층의 입구와 출구가 남북에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 저 오파츠는 나침반의 이름만 빌린, 완전 다른 도구였다.
오로스는 동그랗고 투명한 수정을 흔들었다. 두꺼운 팔뚝이 생성하는 진동에도 안쪽에 떠 있는 바늘은 가만히 있었다.
“이 바늘은 마석 혹은 마정석을 원료로 사용해요. 예를 들어서 40층의 괴물을 잡아서 나오는 마석을 흡수시키다 보면 41층으로 향하는 문이 어디 있는지 알려줘요. 무조건 그 층의 마석을 사용해야 다음 층을 가리키니 꼭 기억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 미궁은 진입자, 그러니까 탐험가를 막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의 위치를 알려주는 나침반이 왜 여기에 있나요?”
어떤 학생의 질문에 오로스가 검지를 세웠다. 주름진 눈꺼풀도 오크 교수의 빛나는 눈을 숨길 수 없었다. 그 빛깔은 호기심과 탐구욕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그렇죠? 탐험가를 막으려고 배치한 괴물, 아래를 가리키는 나침반. 그야말로 모순적인 상황이에요. 미궁 자체가 하나의 시련이라는 가정도 있어요. 누군가가 세운 훈련장이란 뜻이죠. 그렇다면 스스로를 입증한 사람에겐 어떤 보상이 주어질까요? 어쩌면 미궁의 주인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교수님. 너무 낙관적인 전망 아닙니까? 훈련장이라고 가정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이 죽습니다. 주인을 가리는 시험이라기엔 너무 가혹합니다. 설령 그게 맞다 하더라도 사람들을 욕망의 소용돌이 안에 빠트려 놓은 창조자는 반사회적 성향일 겁니다. 당연히 보상도 이상하겠죠.”
어떤 학생의 반박에도 오로스는 빙긋 웃으며 경청할 따름이었다. 나침반을 발견했을 때처럼 즐거워하기도 했다.
“다른 견해 고마워요. 학생 말대로 그런 의견도 있죠. 하지만 모든 논쟁은 누군가가 미궁의 끝에 도달해야 끝날 겁니다. 나보다는 여러분이 가능성이 커요. 취향이 맞다면 유명한 탐험가조합이나 파티에 합류해서 계속 내려가 보세요.”
“교수님. 저희는 학자인데 그들이 받아줄까요?”
“제가 평소에 뭐라고 했죠? 학자라고 건물 안에만 틀어박히면 안 됩니다. 문무겸전.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그 말에 반박하는 학생은 없었다. 문무겸비를 동시에 일궈낸 산증인 앞에서 힘들다고 하면 변명일 뿐이었다.
오로스는 시립대 미궁학과의 교수이면서, 심도 5의 실력자. 지금이야 후학 양성에 집중하고 있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열성적으로 미궁을 탐험했다.
심도 1. 사실 심도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민망한 위치다. 마도구와 매직웨어의 보급 덕분에 누구나 시간만 쏟는다면 도달할 수 있으니까.
심도 2부터는 약간 달라지긴 했다. 마나하트 없이 매직웨어만으로도 달성할 수 있으나, 극기와 전투에 대한 재능이 꼭 필요했다.
심도 3부터는 점점 가혹해진다. 여기에 해당하는 탐험가들은 스스로 만들었든지, 아니면 인공으로 박아넣었든지 마나하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심도 4는 같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맹수보다 빠르고, 초식동물보다 예민하며, 살과 뼈로 기계의 출력을 뿜어냈다.
심도 5는 오로스가 있는 위치. 마법으로 잘 무장한 전차도 이들 앞에서는 도마 위에서 해체를 기다리는 생선과 똑같았다. 재능, 기연, 노력 중 하나라도 부족한 사람의 최대 도달점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심도 5인 오로스 앞에서 힘들다는 반론을 펼쳐봐야 씨알도 안 먹혔다. 아니면 거대한 팔뚝이 무서워서 그럴 수도.
어쨌든 싸움이 끝났으니 즐겁게 전리품을 수거할 차례였다. 호위 1명당 학생 2~3명씩을 데리고 공터 안을 돌아다녔다.
오토마톤을 열심히 분해하는 앨런 옆에는 오로스가 딱 붙었다.
“외장갑이 이렇게도 분해되는군요. 처음 알았어요.”
수레에서 빠루를 꺼낸 앨런은 오토마톤의 장갑 틈에 끼워서 휘저었고, 그럴 때마다 철판이 손쉽게 분리되었다.
눈의 투시 능력과 오토마톤의 구조에 익숙한 앨런의 지식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러면 교수님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십니까?”
“저는 이렇게···.”
오로스는 사자를 닮은 오토마톤의 배에 손을 얹더니 좌우로 벌렸다. 개복된 사자는 마치 해부실의 개구리 같은 꼴이었다.
“머리가 좋으면 몸이 덜 고생하고, 몸이 좋으면 머리가 덜 고생하죠.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저는 둘 다 해당하는지라···.”
“그보다 쉬운 설명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앨런은 오로스의 튼튼한 육체를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그런 몸이라면 밤을 새워서 책을 읽어도 멀쩡하겠죠?”
“하하. 맞아요. 하지만 우리의 뇌는 휴식이 필요해요. 적당한 수면을 취해야 집중력이 최고조에 도달한다는 사실은 잊지 마세요.”
크게 웃은 오로스는 입을 다물고 앨런의 해체쇼를 지켜봤다. 학생 6명이 분해하는 속도보다 빨랐다. 말도 안 되는 손놀림이었다.
이러다가는 학생들이 수업할 분량까지 모조리 해치울 게 뻔해서 앨런을 만류했다.
“앨런 탐험가. 혹시 피곤하지 않나요?”
“즐겁다면 피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음···,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정론이군요. 그래도 시간을 좀 내주세요. 저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을 위해서도요.”
앨런이 고개를 돌리니 이쪽을 주시하는 대학생들이 몇 있었다. 그들은 기름 묻은 손으로 앨런이 해체를 해줬으면 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오로스의 팔뚝 근육이 그쪽을 향해 꿈틀거리니 화들짝 놀라서 전리품 수거에 다시 집중했다.
“복귀할 예정이던 탐험가를 억지로 끌고 와서 분명 지쳤을 겁니다.”
오로스는 앨런의 등에 손바닥을 얹더니 마석등이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힘이 너무 세서 강화외골격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앨런은 포기하고 순순히 따라갔다. 마석등 옆의 난로를 켜자 따뜻한 기운이 몸을 노곤하게 만들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바로 본론인가요? 저도 미사여구가 없는 대화를 좋아해요. 다른 교수나 각계 인사들을 만나면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고철을 구겨 만든 의자에 앉은 오로스는 깍지를 꼈다.
“혹시 괜찮다면 대학에서 일할 생각이 있나요? 요 며칠, 앨런 탐험가를 계속 지켜봤는데, 아무래도 마법공학을 특이한 스승에게 배웠거나 독학한 것 같아요.”
“홀로 수학했습니다.”
“역시, 내 판단이 맞았네요.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앨런 탐험가가 지식의 보고인 대학에서 일한다면 더 큰 날개를 달 수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조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런데 저는 사정이 있어서 대학에 입학할 수 없습니다.”
“···무슨 문제인지 알겠어요. 신분증 때문이죠?”
“네, 맞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쌓인 경험은 노련함이 되어 앨런의 사정을 대번에 맞췄다. 막 성인이 된 나이, 미궁탐험가, 독학. 단서 몇 개만 조합해서.
“신성한 배움이 신분증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시청이나 행정실의 입장도 이해는 되는군요. 시립대는 인재들이 다니는 대학. 흉악한 마음을 품은 이가 침투해서 문제를 일으키면 여러모로 곤란하죠.”
“저도 매우 아쉽습니다.”
앨런도 아깝긴 마찬가지였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언제나 지식을 곁에 둘 기회였다.
그러나 제약이 많았다. 일단 요화의 피살이꽃은 원가만 30만 코인이었다. 그것도 한 송이에.
‘한 달에 씨앗을 2~3개 받으니 그것만 해도 소비금액이 꽤 돼.’
현상 유지만으로도 저런 금액이 빠져나갔다. 나이가 들수록 몸 상태는 안 좋아질 테니 지출은 늘어날 터였다.
“우회해서 고용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월급이 터무니없이 적을 테죠.”
“그건 내가 좀 보태서 300까지는···.”
갑자기 말을 멈춘 오로스가 앨런의 눈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돈 이야기를 해서 속물적인 구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군요. 이런 눈을 지닌 사람이 그럴 리 없죠.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고 자부해요. 설령 속였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어쨌든 양해 부탁드립니다.”
“말 못 할 사정은 누구나 있는 법이니까요.”
돈이나 몸 문제 말고 다른 이유도 있었다. 미궁 탐험도 즐거워지기 시작했는데, 대학에서 일하면 내려올 기회가 사라질 게 뻔했다.
그뿐이랴. 미궁학과에 맞춰진 스케쥴에 따라 움직이면 앨런이 하고자 하는 연구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능력만 있다면 혼자 다니는 편이 가장 편했다.
아무튼, 여러모로 안타까웠다. 대학 조교는 보통 엘리트인 석사와 박사가 맡는 자리니까.
*
창고이자 숙소로 돌아온 앨런은 마탄을 개조하는 한편, 눈의 조정도 시작했다.
영혼석을 깨우는 것처럼 눈을 문지르니 은하수가 창고에 나타났다. 일반 영혼석보다 거대하고, 별도 많았다. 입력창이 크다는 말은 앨런의 마음대로 능력을 추가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별문자를 잘 조정하면 수문장처럼 안구 광선을 쏠 수 있지 않을까?’
출력만 괜찮으면 굳이 절단기나 용접기를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시간이 단축되면 다른 분야를 학습할 여유가 늘어나는 이점도 있었다.
혹은 비장의 무기로 사용해도 됐다. 갑자기 눈에서 고출력의 열선이 뿜어지면 누구나 놀라지 않겠는가.
앨런은 바로 실험에 착수했다. 표범의 목구멍에 장착한 안구를 토대로, 별문자 해석본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별을 생성했다.
배치가 끝나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왼쪽 눈으로 종이를 똑바로 바라봤다. 마력을 불어넣으니 가느다란 붉은 선이 눈에서 뛰쳐나왔다.
“윽!”
갑자기 느껴지는 후끈함에 앨런은 바로 마력 공급을 끊었다.
‘안구는 멀쩡해도 발열 때문에 주위 피부가···.’
심지어 민감한 눈 부위가 아니던가. 그나마 바로 멈춰서 다행이었다.
자칫하면 큰 화상을 입을 뻔했지만, 앨런의 눈은 자연스럽게 열선의 목표인 종이를 훑어봤다.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 태운 것처럼 구멍이 뚫려있었다.
앨런은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넝쿨 의자에 앉았다. 그러니 요화가 다가와서 잔소리를 늘어놨다.
“여기가 병원인 줄 아니? 엄연히 제약 공방이야.”
“약효가 너무 좋아서요.”
앨런의 칭찬에 미소를 감추지 못한 요화가 슬쩍 물었다.
“미궁에서 어떻게 싸웠기에 눈 쪽에 화상을 입어?”
“찰나의 방심이 불러온 상처입니다.”
“매사에 조심하렴. 미궁에서는 자나 깨나 마음을 다잡고···. 잠깐, 화상의 원인이 외부가 아니라 안쪽이잖아.”
“···.”
“너···, 그렇게 안 봤는데 거짓말도 할 줄 아는구나? 뭐, 지금이 훨씬 사람 같긴 해. 그런 말도 있잖아. 인공지능이 스스로 거짓말을 할 줄 알면 인격체라 생각해도 된다고.”
“지금까지는 기계 같았단 말인가요?”
“잘 아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다쳤어? 뭐라고 안 할 테니 사실대로 말해봐.”
앨런은 실험을 하다가 다쳤다는 말을 꺼냈다.
“어휴. 마법공학자들은 이런 괴짜들밖에 없나?”
“분명 질책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쓰읍.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니 새겨들어. 두 시간 정도 누워있으면 완전히 나을 거야. 혹시 모르니 돌아가기 전에 나한테 확인받아.”
정원을 가꾸다가 앨런을 맞이했던 요화는 하던 일을 하러 떠났고, 앨런은 차가운 이끼를 눈에 붙인 채 누웠다.
눈꺼풀을 감고 있어도 눈의 기능은 여전히 작동했다. 푸른 창이 암흑 속에서 갑자기 솟아났다.
앨런이 개통한 통신 번호로 전달된 프랑수아의 메시지였다. 브레이커에 번호를 등록해뒀으니 프랑수아가 알아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 내용은.
[저번에 나눈 이야기 기억하나? 좀 만나지.]
앨런은 이끼를 붙인 상태에서 슬쩍 일어나려다가 몸을 묶은 덩굴 때문에 실패했다.
“다 보고 있어!”
요화는 꽃의 요정. 웨스턴스카이 전체가 그녀의 시선 아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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