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수련법(1)
앨런은 유리창에 머리를 기댔다. 현수식 모노레일에서 보는 풍경은 색다른 맛이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면 삶에 찌든 이들도 멀리에서 지켜보니 자연스러운 도시의 풍경이 되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랬나.’
사람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있어서 밀접한 관계가 아니라면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저 아래, 인도에서 걷는 엘프의 생각을 앨런이 알 겨를이 있겠는가.
엘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런 감상도 희미해졌다. 롤러코스터처럼 빌딩 사이를 지나고, 도로 위를 다니는 모노레일은 정체라는 단어를 몰랐다.
다른 사람들처럼 역에서 내린 앨런은 계단을 내려갔다. 그중 일부는 초보 탐험가를 응접하는 건물로 향하고, 소수는 브레이커의 본사로 향했다.
앨런은 본사 뒤의 공원을 걸었다. 사람이 없는데도 동물의 기척이나 소리는 감지되지 않았다. 심지어 작은 새소리조차 없다.
날아가는 그림자를 보고 고개를 들면, 새를 닮은 감시용 골렘이 줄지어 비행했다.
언제나 똑같은 풍경. 아니, 살풍경.
앨런의 표정은 주변처럼 메말라 있으나, 공원 옆에 붙은 건물로 향할수록 발걸음은 빨라졌다.
드나드는 사람 하나 없는 건물 앞에 서자, 감시카메라가 뱀처럼 튀어나와서 앨런을 구석구석 훑어봤다.
[출입승인]
무기질적인 기계음을 뒤로하고, 옛 기억을 더듬어 1층의 응접실을 찾아갔다.
응접실 문을 연 앨런은 잠시 멈칫했다. 브레이커의 교습 때 만난 까무잡잡한 피부의 인간이 소파에 앉아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의 마주 본 손바닥 사이에서 마력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기척이 옅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앨런이 궁금해하니, 왼쪽 눈이 반응하며 남자를 주시했다. 잠시 후, 녹색 테두리가 남자를 감싸고, 앨런에게만 보이는 글귀가 옆에 떠올랐다.
<분석>
이름 : 오마르
종족 : ???
특징 : ???, ???
물음표는 오작동 혹은 무지의 증거. 앨런은 이럴 때면 보통 눈을 깜빡였다. 몇 번 반복하니 제대로 된 정보가 출력되었다.
<분석>
이름 : 오마르
종족 : 인간
특징 : 마법사, 근접전
그제야 기억이 선명해졌다. 마법 지팡이를 둔기처럼 다루던 마법사였다. 마법보다 때려서 부순 오토마톤이 많았다.
왜 여기에서 저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집중하고 있으니 딱히 말을 걸지 않았다. 자신도 연구에 몰두하는데 누가 방해하면 짜증 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앨런은 벽에 붙어있는 탁자로 천천히 걸어갔고, 바구니에 담긴 빵과 과자로 손을 뻗었다. 고급 음식이라 맛이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있다.
“왁!”
갑작스러운 소리에 앨런이 뒤를 돌아봤다. 소파에 앉아있는 오마르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놀랐지? ······아냐?”
“소리를 지른다고 왜 놀랍니까? 집중하고 있어서 일부러 말을 안 걸었습니다.”
“아, 그래? 기척 숨기는 마법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영 꽝인가 보네.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 혹시 좋은 의견이라도 있어?”
“의견이요?”
“신체 강화 마법만 사용하니 이런 쪽에는 영 젬병이란 말이지. 너도 모르면 됐어.”
응접실에 다시 침묵이 감돌기 전, 문이 열리더니 그나마 인상이 순한 하프오크가 안으로 들어왔다.
앨런을 보고 고개를 미세하게 움직인 프랑수아는 오마르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넌 여기에 왜 있지? 열심히 찾아도 안 보이던 이유가 있었군.”
“잠도 안 자고 일했으니 나 없다고 전해줘. 사람은 좀 쉬어야 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너 같은 기계는 모르겠지만.”
“좋을 대로 해라.”
프랑수아의 눈이 파랗게 물들다가 말았다. 통신을 보내려다 그만뒀다는 의미였다.
앨런은 나란히 앉은 둘을 보며 말했다.
“이제 보니 프랑수아 님도, 오마르 님도 머리카락이 회색이군요. 마셜 회장님과 똑같은 색으로 맞춘 겁니까?”
오마르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옅게 웃었다.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가 있어서 비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히려 양아치 같은 얼굴에는 그런 미소가 어울렸다.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지. 간단히 말하면 부대 전통이야. 항상 이러진 않고, 임무가 있으면 잠시 다른 색으로 바꾸기도 해.”
“불필요한 말은 자제해라.”
“예, 예. 알겠습니다.”
오마르는 다시 마나를 구조적으로 쌓는 일에 집중했다. 화려한 볼거리여서 자세히 조사하고 싶지만, 앨런에겐 할 일이 있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했습니까?”
“짐작했겠지만 마력수련법 때문이다. 정보를 전달···. 네가 뇌 확장을 안 했단 사실을 계속 잊어버리는군.”
“시술을 받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착각도 무리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특이한 경우죠.”
“그건 잘 알고 있군.”
앨런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프랑수아가 품에서 단말기를 꺼냈다. 몇 번 두드리더니 앨런에게 보라고 넘겨줬다.
마력수련법이 몇 개 적혀있었다. 앨런이 요구했던 마력 통제력과 뇌 강화의 성능 평가도 함께 있었다.
잠깐 고민하던 앨런은 마력 통제력 ‘상’, 뇌 강화 ‘하‘의 마력수련법을 선택했다.
솔직히 말해서 두뇌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뇌 확장 시술 없이도 미궁을 홀로 내려갈 수준의 장비를 만들지 않겠는가.
앨런이 가리킨 수련법을 확인한 프랑수아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부대에 있다가 은퇴한 사람이군.”
“특이한 사람이네요. 전투 부대에 있으면서 마력을 늘려주는 기능이 없는 수련법에 매진하다니···.”
“···.”
프랑수아가 지긋이 쳐다봤다. 똑같은 요구를 한 네가 할 말은 아니라는 눈빛이었다.
이번에도 앨런이 뭐라고 하기 전에 프랑수아가 말을 덧붙였다.
“이 사람은 그런 이유가 있다. 마나하트가 없어서 인공 마나하트를 박아넣었거든. 그러니 마력 쌓기보다는 통제에 주목했지. 이걸로 괜찮겠나?”
“딱 원하던 물건입니다. 그런데 용케 은퇴했군요.”
“무슨 말이지?”
“영상매체에서 은퇴한 요원은 정보원으로 활동하거나, 아니면 은밀하게···.”
“그만.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
“영화는···.”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
말을 끊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사실 앨런이 보고 싶어서 본 영화가 아니었다. 노박 클리닉을 탈출하고 한동안 함께 다녔던 비토의 취향이 첩보물이었을 뿐.
“대충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죽이는 건 너무 잔인한 처사야. 우리는 금제와 세뇌로 뇌에 자물쇠를 걸어서 비밀을 유지하는 쪽이다. 비밀을 함부로 발설하면···.”
프랑수아는 관자놀이 근처에서 손을 쫙 폈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내 이름을 대면 알려줄 거다. 그쪽에서 수업료를 요구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알아서 처리하리라 믿겠다.”
“다리를 놔준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진짜 이렇게까지 도와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앨런은 큰 걸 바라지 않았다. 그냥 위험한 전투였고 자신이 좀 활약했을 뿐이다.
키키가 자존심을 긁어서 체면치레로 내뱉은 약속인 줄 알고 있었다. 어쨌든 기대가 작았기에 기쁨은 컸다. 오히려 빚이 생긴 기분이기도 하고.
“위험에 함께 대응하는 건 기본 수칙이잖습니까.”
“요즘은 오히려 기본도 못 하는 머저리들이 많지. 그런 점에서 보면 넌 훌륭하다. 물론 내 자부심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고.”
앨런이 떠나고 한참 뒤, 프랑수아의 식탁 앞자리에 앉은 오마르가 입을 오물거리며 물었다.
“왜 불렀어? 진짜 마력수련법 때문에? 아니면 키워서 후임으로 삼게? 그것도 방침이 바뀌어서 안 되잖아.”
프랑수아는 수집가의 노예인 흑마법사 등장, 의도적인 오버플로로 우르르 등장한 괴물 등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앨런 덕분에 사망자 없이 오버플로를 무사히 넘겼다는 이야기도.
오마르의 눈썹 한쪽이 비틀렸다.
“정말 그런 이유로 소개를 해줘? 그냥 무시해도 될 텐데, 너도 참 대단~하다.”
“교습의 목표 중 하나는 참여 인원의 무사 복귀다.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면 내 자존심에 금이 갔을 거다.”
“아, 그러셔?”
“비웃어도 내 생각이 바뀌는 일은 없다.”
“나도 시비 걸려는 뜻은 아니었으니 이쯤 하자고. 너는 진짜 자존심 빼면 시체네. 그런데 왜 말 안 해줬어?”
“무엇을?”
“그 아저씨 노망들었잖아. 몰랐구나?”
“언제? 그것보다 어서 연락해야···.”
“늦었어. 저기 봐.”
프랑수아를 만류한 오마르는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켰다. 오후 2시. 앨런이 떠난 지 5시간이나 지났다.
“시간대를 보면 벌써 도착해서 상황파악 끝났을걸. 욕하고 있지 않을까?”
“음···.”
*
앨런은 높고 거대한 아파트에 들어갔다. 입구부터 퀴퀴하고 습한 냄새가 코를 찔러서 목에 걸친 마스크를 재빨리 착용했다.
삶에 찌들대로 찌든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옷은 허름하고, 얼굴 피부는 수척했다. 인조 피부가 떨어져서 덜렁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아파트는 싼값에 시민들을 몰아넣은 닭장이었다. 앨런이 창고에서 숙박하는 이유였다.
부자들은 이런 곳이 아니라 부촌에 모여 살았다. 으리으리한 저택 하나가 몇천 명이 모여 사는 아파트보다 면적이 넓었다.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어서 태양광도 훨씬 잘 들어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앨런은 무언가에 취한 채 앞에 누워있는 리자드맨을 벽까지 밀어줬다. 몸이 쓸리며 안 그래도 낡은 옷에 먼지나 오물이 잔뜩 묻었지만, 그냥 밟히는 경우보단 나으리라. 실제로 신발 자국이 몇 개 찍혀있기도 했다.
복도에 주저앉은 사람들을 피하며 전진하던 앨런은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약에 취한 줄 알았던 사람들이 앨런이 지나갈 때마다 흐릿한 눈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먹이인지 아닌지 보려고? 표범을 데려올 걸 그랬나.’
그들의 생각은 뻔했다. 앨런은 방어막 생성기를 언제든지 가동할 준비를 하며 시선을 맞받아쳤다.
무심한 눈빛 덕분인지, 좋은 장비 덕분인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걸어간 앨런은 복도 끝에서 멈췄다.
‘3630호’
36층에 있는 마지막 세대란 의미였다. 이 아파트는 50층까지 있으니 이론상 건물 하나에 1500세대가 있었다.
앨런은 살짝 열려있는 문을 보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리 문이 열려있다고 해도 무작정 열고 들어가는 행위는 굉장히 무례했다.
몇 번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외출했나 싶은 순간, 안쪽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으으으···.”
다친 사람의 신음과 비슷해서 앨런은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는 벽 하나 없는 원룸과 비슷했고, 그 중앙에는 휠체어에 탄 백발의 노인이 있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순 없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들어왔습니다. 괜찮으십니까? ······, 브레이커의 소개로 왔습니다.”
“으으으···.”
다시 들리는 신음. 앨런은 노인의 앞으로 다가가서 얼굴을 살폈다. 헤 벌린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한 앨런은 프랑수아에게 연락을 할까 고민하다가 서늘함을 느꼈다.
원인은 노인. 입을 헤 벌린 상태로 눈동자만 굴려서 앨런을 보고 있었다. 끼었던 백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맹수 같은 사나움만 있었다.
노인의 팔이 휠체어 바퀴를 잡았다. 바퀴를 강하게 돌리니, 휠체어가 빠른 속도로 후진했다. 이동 방향이 갑자기 직각으로 꺾이더니 작은 방으로 쏙 들어갔다.
‘방금 드리프트인가?’
문이 열려있는데 거주민들이 안 들어오는 이유가 있었다.
잠시 후, 작은 방에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반짝거렸다. 샷건의 총구였다.
“넌 뭐냐? 복장을 보아하니 여기 사는 쓰레기는 아닌데.”
“브레이커에서···.”
“노망난 늙은이 죽여서 뭐 하려고?”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닙니까?”
“지랄.”
프랑수아에게서 들었던 대로 똑같이 돌려주니 노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앨런은 총구를 보며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브레이커 소속인 프랑수아 님의 소개로 왔습니다.”
“다른 애들이면 몰라도 걔는 그나마 괜찮지. 잠깐 앉아있어.”
노인이 휠체어를 사용해서 그런지 소파 같은 가구가 없었다. 그나마 앉을 만한 장소는 침대인데, 그걸 사용하면 실례였다.
멀뚱히 서 있던 앨런은 음료를 준비하는 노인을 도우려다 핀잔을 들었다.
“내가 휠체어 탔다고 병신인 줄 알아? 어른이 말하면 좀 들어라.”
앨런은 얌전히 기다리며 방 내부를 훑어봤다. 탁상시계 플라스틱 부분에 생긴 이빨 자국을 보니, 내올 음료를 마셔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깨물었길래 찰흙 베어 물 듯 잘라냈지?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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