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52화 (52/193)

마력수련법(2)

앨런이 식탁에 놓인 음료를 지긋이 바라보자, 노인이 툴툴거렸다. 심술궂게 생긴 얼굴이라 퍽 어울렸다.

“식품 단속 공무원이야?”

“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치들처럼 혀에다 미각 센서 달았냐고. 아니면 플라스틱이 들었는지, 오염된 물로 만들었는지 모르니까 그냥 주는 대로 퍼마셔.”

마력을 이용하는 문명은 석유를 사용했을 때보다 오염도가 낮지만, 모여 사는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어쩔 수 없이 자연이 더럽혀진다.

수천만이 거주하는 메이즈시티 역시 공해를 피할 수 없고, 싼값에 풀리는 음식은 문제 있는 땅에서 수확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플라스틱과 톱밥을 섞어서 음식이라고 거짓말을 한다든지.

하지만 앨런이 망설이는 이유는 달랐다. 눈앞에 있는 갈색과 노란색이 혼합된 음료의 정체는.

“보리차니까 그냥 마셔. 브랜드도 없는 싸구려 생수나 대충 퍼 올린 지하수보다 깨끗하니까.”

“보리차요?”

앨런의 눈동자가 슬그머니 움직여서 노인의 뒤 편을 바라봤다. 쓰레기통에는 방금 딴 캔이 버려져 있었다. 거품 빠지는 푸슉 소리도 똑똑히 들었다.

노인은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침을 줄줄 흘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발효된 알코올 보리차를 꿀꺽꿀꺽 마셨다.

‘알코올성 치매인가? 마나하트가 있으면 간의 성능도 올라가는데, 저렇게 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마셔야 하지?’

앨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컵을 입에 대고서도 한쪽 눈으로는 이쪽을 관찰하던 노인이 말했다.

“재수 없는 눈빛 치워라.”

“···?”

“무슨 말인가 싶겠지. 동태 눈깔처럼 축 처진 눈동자라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이 나이 먹으면 분위기만 보고도 대충 무슨 생각하는지 알게 돼.”

대단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속내 파악이 중요한데, 그걸 몰라서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앨런은 가만히 앉아서 노인을 쳐다봤다.

“그럼 왜 다치셨는지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그래야 제가 그 부분에 관해서 실수를 안 할 겁니다.”

“너, 굉장히 끈질겨 보이는데···. 안 알려주면 징그럽게 달라붙겠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앨런은 일부러 말을 꼬았다. 노인은 오히려 그러는 행위가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 웃었다. 헛웃음일 수도 있고.

“하, 이 녀석 보게. 내 대가리가 왜 이러냐면 수련하다가 트러블이 좀 있었어.”

두 손을 머리에 얹고, 입을 벌렸다.

“뻥! 자업자득이니 비 맞은 개새끼 보는 눈은 치워라.”

“이번엔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알아. 그냥 해본 말이다.”

노인은 다시 컵에 집중, 가장자리에 묻은 보리차 한 방울까지 꼼꼼하게 핥았다.

‘뇌 강화’ 항목이 왜 ‘하’였는지 알 수 있었다.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노인은 그걸 극복하다가 문제가 발생했으리라.

뇌와 척수를 괜히 ‘중추신경’이라고 부르겠는가. 그만큼 소중한 부분이라 그런 명칭이 어울렸다. 함부로 건들면 큰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안 마셔?”

앨런이 대답하기도 전에 노인은 보리차라고 우기는 음료를 가져가서 원샷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트림까지 완벽했다.

“끄윽!”

“전 앨런입니다.”

“그래서? 프랑수아가 소개해주면서 내 이름도 안 알려줬어?”

“[은퇴자1]이라고만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하···. 새끼. 난 테일러다. 그럼 소개 끝났으니 가라.”

“프랑수아 님이 이곳에 오면 마력수련법을 배울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자식 목숨이라도 구해줬냐?”

앨런은 미궁에서 있던 일을 말했다. 이야기가 점점 진행될수록 테일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치 음료 없이 고구마를 몇 개나 먹은 사람처럼.

“답답한 새끼. 자존심 버리고 살라니까 그 나쁜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네.”

“자존심이 그렇게 강합니까?”

“그걸 믿어? 물론 자존심 문제도 있었겠지만, 내 생각엔 친분을 쌓아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수작 같은데.”

“요원 말입니까?”

“자꾸 핵심만 집어서 말하네. 그런데 그 자리는 아무나···.”

테일러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미간에 농사를 지어도 될 정도로 깊은 주름이 생겼다.

“금제 때문이라면 안 알려주셔도 괜찮습니다.”

“그것도 말했어? 보기보다 능력이 있나 보다? 하긴, 브레이커는 누구보다 미궁을 돌파하고 싶어 하고, 그러려면 인재가 많아야지.”

“그 이유를 아십니까?”

“제이크는 알겠지. 능구렁이 같은 놈.”

“혹시 마셜 회장님과 친구···.”

“친구라니···. 우연히 입사 시기가 같았을 뿐이야. 그 친구는 로열패밀리에다가 천재였고, 나는 개털···. 아니, 내가 왜 이런 걸 알려주고 있지?”

어이없어하는 테일러가 말끝을 살짝 높여도, 앨런은 평소처럼 고저가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흥미로운 대화였습니다. 경험이 많은 분이어서 그런지 지식의 지평이 굉장히 넓군요.”

“흥미는 개뿔. 처음 보는 놈한테 별 이상한 얘기까지 하고 자빠졌는데. 여기까지 들었으면 빨리 사라져.”

좀처럼 알려주려 하지 않는 테일러를 보며 앨런은 프랑수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혹시 수업료가 필요하십니까?”

수업료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테일러의 표정이 빠르게 변했다. 돈 냄새를 맡은 드워프 사채업자 같았다.

“너 돈 많냐? 그럼 10억 코인···.”

“그 돈이면 다른 수련법을 사면 됩니다.”

“나도 알아. 그럼 이렇게 하자. 두 달 후면 연금 나오거든? 그 돈으로 요양원 들어가기 전까지 수발 좀 들어라. 싫으면 문 닫고 나가면 된다.”

“모은 돈은 아예 없으십니까?”

“오늘 마실 음료 구입···, 아니 집세도 간당간당해. 왜 그러냐면···.”

테일러가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치료비로 사용했다는 뜻이었다.

‘용케 지금까지 연금에 손을 안 댔···.’

그때 앨런의 눈이 무언가를 포착했다. 쓰레기통에 삐죽 튀어나온 종이 뭉치를 향해 시야를 확대하니, ‘경마’라는 단어가 보였다.

용마, 유니콘 등 환수들이 출전하는 경기였다. 그만큼 마권 가격도 높고, 배당도 어마어마했다.

앨런의 시선을 눈치챈 테일러는 휠체어를 슬쩍 움직여서 쓰레기통을 가렸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문을 잠갔는데.”

앨런이 고개를 돌리니, 도베르만과 비슷하게 생긴 골렘이 보였다. 골렘은 앨런을 보자마자 용무를 전했다.

[집세 미납 VVIP. 이번 주까지 퇴거해주시기 바랍니다.]

왜 문이 열렸나 했더니 관리용 골렘이었다. 앨런은 테일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헤···.”

다시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다.

두 달과 마력수련법. 때론 목숨을 걸고서도 배우는 지식이 마력수련법이다. 프랑수아가 시중에 굴러다니는 물건을 소개해줬을 리도 없었다.

마음을 정한, 아니 이곳에 왔을 때부터 결정을 내린 앨런은 휠체어의 손잡이를 잡았다.

*

앨런의 창고 구석에는 침대가 하나 더 생겼다. 그리고 그 옆에는 노인용 기저귀 박스가 있었다.

“너 이 새끼. 저거 가져다 버리라니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테일러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앨런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거 착용하느니 차라리 샷건 물고 방아쇠 당기고 말지.”

“목소리에서 힘이 넘치네요. 정정해서 다행입니다.”

“말이 안 통해···.”

테일러는 휠체어에 달린 레버를 앞으로 밀며 멀어졌다.

앨런이 창고에 와서 가장 처음 한 일은 휠체어에 마력로를 다는 작업이었다. 영혼석에 간단한 별문자를 입력하고, 바퀴를 바꾸고, 레버와 연동시키니 자동 휠체어가 금방 만들어졌다.

테일러는 귀찮게 왜 바꿨냐고 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는지 주변 산책을 열심히 했다.

가끔 치매가 도지는지 눈동자가 회까닥 돌아갈 때도 있고, 멀쩡히 말을 하다가도 갑자기 입술을 닫을 때도 있었다.

‘병과 금제가 양쪽에서 괴롭히니 힘드시겠지.’

그 답답함의 크기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쉬이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다행은 기저귀 박스를 개봉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테일러는 화장실 갈 때가 되면 정신이 돌아왔다.

오늘의 작업을 마친 앨런은 마력수련법을 수행하기 위해 침대 위에 누웠다. 그러자 테일러가 레버를 조작해서 가까이 다가왔다.

“왜 이름이 테일러 수련법입니까?”

“미적 감각이 삼류네. 뭐, 미궁에서 찾아서 내 이름을 붙였지. 좋을 줄 알았는데 내 인생처럼 영 꽝이었어.”

“그럴 수도 있죠.”

“중의적 표현 같다? 수련법이 별로라는 부분에 동의하는 거냐? 아니면 내 인생이 문제라는 부분?”

“···.”

앨런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테일러가 다시 옛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생각해봐. 미궁 깊은 구역을 탐험하는데 갑자기 특이한 건물이 나타났어. 그리고 안에서 책을 발견했는데 마력수련법이래. 당연히 두근두근해야지.”

“아까우셨겠네요.”

“그래도 나에겐 최적의 수련법이었어. 사실 인공 마나하트 때문에 다른 종류를 배워도 그만한 효율을 내긴 어려웠거든.”

입을 쩍 벌리고 하품한 테일러가 앨런에게 요구했다.

“얼마나 배웠나 보게 한 번 운용해봐.”

테일러 수련법에는 특징이 있는데, 마력을 운용하면 이마 한가운데에 원이 생기고, 양쪽 눈을 중심으로 삼아 두 개의 원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세 개의 원은 한 곳에 겹치는데, 그 위치는 바로 미간이었다.

앨런이 마력을 운용하자마자 이마에 원이 생겼다.

“알려준 지 이틀 지났는데 벌써···가 아니라. 좀 느리네. 나는 하루 만에 이마에 만들었는데.”

“저번에는 두 달 넘게 걸렸다고 했잖아요. 삼 원을 만드니 일 년이 훌쩍···.”

“어허! 내가 치매라 기억이 오락가락해서 그래. 너 자꾸 그러면 노인 학대에 장애인 학대로 잡혀간다.”

“사실 적시가 왜 잡혀갑니까?”

말문이 막힌 테일러가 꿍얼거리는 사이, 앨런은 마치 각성한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뇌 강화 효과가 약하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죠?”

“그게 무슨 소리야?”

“머리가 훨씬 맑아지고, 암기력도 좋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하루를 쏟아야 겨우 읽을 책을 복습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비유를 들어도 지 같은 것만. 그럴 리가 없는데···. 무슨 차이지? 원래부터 머리가 똑똑하면 남들보다 효과가 큰가?”

“뇌 확장 시술의 차이일까요?”

뇌 확장 시술을 안 받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억수정만 목 뒤에 끼우면 지식을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그걸 거부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너 안 받았냐? 미친놈이었네.”

“왜 갑자기 욕을 하십니까?”

“아니, 머리에 매직웨어도 안 박은 놈이 마법공학자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새끼들을 때려잡는데 당연히 놀랄 일이이지. 어제 키키였나? 화상 통화로 자기가 만든 오토마톤 자랑하다가 너한테 개 털렸잖아.”

그 당시 키키의 머리 뒤에 달린 수랭 파이프에서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왔다.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는 뜻이었다.

거의 울려고도 했다. 로봇처럼 생겼는데도 감정 표현이 참 풍부했다.

“진심 어린 충고라고 해주세요.”

“개소리할래?”

“왜 이리 개를 좋아하십니까?”

“충직한 동물이잖아. 친숙하기도 하고.”

“말 돌리지 마세요. 자주 사용하는 ‘개’라는 단어는 욕이잖습니까.”

“으으으···.”

다시 입을 벌린 테일러. 불리할 때만 이러는 모습을 보면, 선택적 치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테일러가 질색하는, 병아리가 그려진 턱받이를 달아준 앨런은 침대에 다시 누웠다.

확실히 수련법은 효과가 있었다. 몸을 괴롭히는 마력에 대해 통제력이 올라가니, 집중력도 함께 상승해서 조만간 룬문자 세 개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부터 장인의 반열이다. 명장, 거장이라는 까마득한 목표가 남았지만, 장인도 굉장한 인재였다.

어떤 회사에 지원하든지, 자기소개서에 ‘룬문자 3개 사용 가능’이라고만 쓰면 합격이었다.

슬슬 저녁을 먹을 시간이라 자리에서 일어난 앨런은 바닥에 내팽개쳐진 병아리 턱받이를 목격했다.

휠체어를 슬쩍 바라보니 테일러의 입이 달싹거렸다.

“코카···.”

“하얀 가루 말입니까? 집세도 못 낸 이유가 있었군요.”

“미친놈아 그거 말고. 코카트리스 구이. 으으으···.”

아픈 척하면서도 은근슬쩍 매우 구체적인 희망 사항을 흘리는 테일러.

앨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도락은 지식 습득과 더불어서 돈을 아끼지 않는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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