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59화 (59/193)

그린블러드(2)

키리가 미리 전해준 정보에 대한 파악이 끝났다. 이제 남은 일은 그녀가 정보의 바다에서 쓸만한 자료를 찾길 바라는 것이다.

앨런은 주변을 훑어봤다. 다이버의 집이라 그런지, 아니면 쌍둥이 남매의 취미라서 그런지 신기한 기기들이 많이 보였다.

‘경호 골렘, 정신간섭 방해기, 광학위장 장치···.’

정보원의 특성상 안전을 지키는 물건이 많았다. 쓸만한 것들이 거실에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으니, 키리의 작업실 안은 훨씬 굉장하리라.

어질러진 거실을 대충 정리한 유타가 앨런 맞은 편에 앉았다.

“원래는 보안상의 이유로 안까지 손님을 들이지 않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평소에는 어떻게 합니까?”

“삼라만상에 임시 공간을 열어서 의뢰를 받거나, 지정된 위치에 편지를 놓고 가면 수거하는 식이지. 너랑 저분은 할아버지 때문에 여기까지 들어왔지만.”

“흠···.”

테일러가 빤히 쳐다보니 유타가 추가 설명을 했다.

“비꼬거나 탓하고자 꺼낸 말이 아닙니다. 테일러 씨가 할아버지의 무모함을 덮어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감옥에 있거나 몸 성히 은퇴할 수 없었겠죠.”

“그 친구가 배짱 하나는 두둑해서 여러모로 괜찮았지.”

“설마 브레이커의 서버를 건들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혹시 이번 일도 그쪽과 연계된···?”

“아냐. 나도 은퇴했다.”

“대단하시군요. 이 바닥은 몸 성히 물러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게다가 다시 발을 들이기까지.”

유타의 말에 테일러가 앨런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한다더니, 휠체어 타고 다닌 기억을 벌써 잊었음이 분명했다.

철수라는 공감대가 생긴 둘은 계속 대화를 이어갔고, 자연스럽게 소외된 앨런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아지 골렘 하나가 콘센트 근처에 누워있었다. 꼬리를 플러그로 사용해서 스스로를 충전하고 있었다.

화석연료, 핵연료, 나무 등 다양한 형태의 자원이 현대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나, 역시 주류를 이루는 것은 마력.

마력발전소에서 생산, 혹은 포집한 마력은 전격 계열로 변환되고, 전선을 통해 가정이나 공장까지 전달된다.

그런 이유로 새로 생긴 격언이 있다.

‘전봇대 근처에서는 전격 계열 마법사와 싸우지 마라.’

도시에 전선이 없는 장소가 있겠는가. 그러니 괜히 혈기 부리지 말고 자존심 상하더라도 전격 술사와는 거리를 두란 뜻이었다.

마침 충전이 끝난 강아지의 카메라 눈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앨런을 발견했다. 벌떡 일어나더니 우다다 달려와서 종아리에 몸을 비볐다.

“해피. 이리와. 손님 귀찮게 하면 안 되지.”

“괜찮습니다. 덕분에 영감을 얻기도 했고요.”

“그래? 실례가 아니라면 알려줄···.”

“야! 손님에게 그런 거 물어보지 마!”

작업실에서 나온 키리가 유타를 밀어내며 소파에 앉았다. 테일러와 눈이 마주치고 푸른빛이 잠시 번쩍, 그것으로 정보 전달은 모두 끝났다.

말로 몇십 분, 몇 시간 설명할 내용을 초 단위로 끝내는 뇌 확장은 참 편리했다.

앨런도 욕심이 생겼지만, 원래부터 없이 살아와서 불편함을 못 느꼈고, 테일러 수련법은 장치가 없을 때 뇌 강화 효율이 높아서 마음을 접었다.

새로운 인연과 안면을 튼 앨런은 테일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안, 정보를 대강 정리한 테일러가 인공 안구로 허공에 화면을 만들었다.

“이게 놈들의 구성원이다. 죄다 오크 새끼들이네. 두목의 이름은 ‘달리’. 놈의 똘마니는 대략 40명.”

그린블러드 특유의 대머리와 두피 문신을 빼면 달리는 전형적인 오크였다. 흉터가 얼굴과 몸 전체에 가득했다.

“이렇게 생겼군요. 구성원은 왜 대략이죠?”

“갱단 놈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누굴 받아줄지도 모르니까. 지금도 실시간으로 숫자가 바뀌고 있을 거다. 일단 달리는 강화외골격을 착용하고 광전사처럼 돌격하는 스타일이다.”

“오크답네요.”

“사실 부하들도 죄다 똑같아. 마도구를 사용하긴 하는데, 기본 전술이 개돌이라고 생각해. 무식한 방법임에도 터프한 오크의 특성상 굉장히 효과적이야.”

달리의 사진이 사라지고, 4개로 분할된 영상이 동시에 재생되었다. 어두운 색깔의 밴이 물류창고를 들락거렸다.

“키리가 근처 감시카메라를 해킹해서 영상을 빼돌렸다. 네가 봐도 이상하지?”

“차량 운행이 주로 밤과 새벽에만 몰려있네요.”

달이 뜨면 범죄율이 높아지는 건 만국 공통. 메이즈시티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이들을 집에만 있게 했다.

번화가면 사정이 좀 다르지만, 거길 거니는 사람들도 골목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자제했다.

“딱 봐도 납치지.”

다음 영상은 도시 곳곳에 있는 감시카메라가 협찬해줬다. 물론 이쪽에서만 협찬이고 저쪽에서는 강탈이지만.

“방금 보여준 동영상은 밴이 목격된 장소. 그리고 이건.”

화면 왼쪽에 추가로 떠오른 실종자 포스터. 묘하게도 그 위치가 밴이 찍힌 곳 근방이었다.

“더 중요한 게 있어. 포스터 밑을 봐. 공통점이 보여?”

“전부 마법공학자네요.”

“너를 특정해서 공격한 건 아니고, 마법공학자를 무작위로 납치 시도하다가 비밀통로의 공장까지 따라온 거다. 오늘내일하는 노인이랑 어린 마법공학자는 좋은 먹이였겠지.”

“오히려 그 조합을 미궁에서 마주치면 더 수상하지 않나요? 저것들은 뭘 믿고 여기까지 내려왔을까?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편이 자연스러운데···.”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면 오크가 아니지. 그리고 범죄자 새끼들은 우리랑 뇌 구조가 달라. 그냥 범법 자체가 일상이야. 밥 먹고, 자는 것처럼.”

테일러는 목이 타는지 맥주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예전처럼 환자였다면 제지했겠지만, 이제는 멀쩡하니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앨런은 작은 부품을 담은 상자를 가져와서 이것저것 결합하기 시작했다.

“왜 납치했는지 알겠어? 마법공학자는 옛날이었다면 수준이 어쨌든 마법사가 되었을 인재야. 한마디로 말하면···.”

“재능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인체실험을 위해 데려갔다는 말이죠? 나라 자체의 치안이 엉망인 곳이나, 강대국인 솔도스 연방이나 어디를 가나 똑같네요.”

너무 냉소적인 반응에 테일러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비슷한 일이 있었니?”

앨런은 노박 클리닉에 대해 설명했다. 너무 차분한 어조라 타인이 겪은 경험을 제3 자의 입장에서 관찰한 것 같았다.

“삶이 순탄치 않다고 짐작은 했는데···.”

테일러가 한참이나 어린 청년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러다가 앨런의 손에서 점점 형태를 완성하는 기계를 보고 물었다.

“그건 뭐냐?”

“노박 클리닉 정찰에 사용했던 장난감 이야기도 했었죠.”

“쥐를 닮은 고양이용 장난감?”

“유타의 집에서 강아지를 보니까 떠올랐습니다. 폭탄 설치를 굳이 어렵게 접근해서 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 아이들을 만들어서 뿌리면 일이 간단해집니다.”

“잠깐, 귀여운 강아지 로봇을 보고 얻었다는 영감이 폭발 로봇이야?”

잠시 기묘한 표정을 지은 테일러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주물렀다.

“움츠러드는 놈들보단 낫긴 하네···. 그래, 메이즈시티에서는 한 대 맞으면 무조건 똑같이 돌려줘야 해. 가만히 있으면 호구로 보고 달려드는 숫자가 점점 늘어날 테니까.”

앨런이 시제품으로 만든 형태로는 쥐, 거미 등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으며, 어디든지 수월하게 다니는 종들이 선정되었다.

테일러는 최종 선택을 받은 거미가 점점 늘어나는 모습을 보다가 물었다.

“적극적이네. 설마? 요새 강화외골격 노래 부르더니, 달리의 사진을 보고 그러는 거냐?”

“겸사겸사죠.”

“겸사겸사는 무슨. 그게 목표구만. 화끈하게 터트리는 건 좋은데, 잡혀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

“아···.”

테일러는 작게 탄성을 터트리는 앨런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서운 집중력 때문에 세세함을 간과하기 쉽지만, 그거야 자신이 채워주면 될 일이었다.

*

준비를 마친 앨런과 테일러는 구공업지역에 도착했다. ‘구’라는 문자가 붙은 이유는 도시의 확장으로 소외되고, 더 넓은 부지를 원하는 기업들이 이전했기 때문이다.

유동 인구가 급격히 줄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여전히 돌아가는 공장들이 있어서 높게 솟은 굴뚝 위로 하얀 연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근처의 버려진 공장 옥상에 올라간 앨런은 그린블러드의 아지트를 관찰했다.

“기관총 포탑, 감시카메라, 지붕의 경계 인원. 생각보다 삼엄하네요.”

“예전엔 더 대단했어. 제이크만 안 건드렸으면 끗발 날리는 조직이 됐겠지. 정면에서 부수는 것도 좋은데 사람이라면 스마트하게 행동해야지. 키리가 알려준 비밀통로로···. 왜, 무슨 일이야?”

앨런이 한곳을 주시하자, 테일러도 고개를 돌렸다. 낯익은 인물이 인도를 걷고 있었다.

“키키인가 뭔가 하는 애송이 맞지?”

“여기는 왜 왔을까요? 옆에 있는 오크는 홀로스킨을 썼네요.”

“눈썰미 좋네.”

“마도구 주위는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거든요.”

앨런은 시야를 확대했다. 동시에 오크의 진실한 모습을 보고자 투시를 시도했다.

수더분하게 생긴 환상 안에는 사나운 얼굴이 자리했다. 빡빡 민 머리와 두피 문신도 드러났다.

“오크는 그린블러드 소속입니다.”

“쥐똥만 한 고블린도 한패란 뜻인가? 첫인상부터 내 이럴 줄 알았지.”

“일단 내려가 보죠. 눈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면 방송 중이라는 뜻인데, 갱단원이라면 이 근처에서 스트리밍하진 않겠죠.”

바닥에 내려선 앨런은 빠르게 그들의 뒤로 따라붙었다. 동시에 눈으로 그들의 뇌 확장 장치를 해킹, 외부와의 연결을 끊었다.

테일러를 치료하기 위해 별문자를 빽빽하게 채운 눈은 훨씬 강화됐고, 덕분에 그들은 해킹당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갑작스레 방송이 꺼져버린 키키만 당황스러운 음성을 내뱉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키키. 여기서 보네요.”

“어, 어? 앨런?”

앨런이 앞에 나서서 키키와 오크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사이, 담으로 몸을 숨긴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그들의 뒤로 움직였다.

“며칠 전에도 통화했는데, 직접 얼굴 보니 더 반갑네.”

“여긴 무슨 일로 왔습니까?”

“시청자 참여 콘텐츠로 마도구 수리하는 영상을 찍으려고 했거든. 그런데 갑자기 먹통이 돼버렸네. 왜 이러지?”

“재밌겠네요.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저기.”

키키가 망설임 없이 가리킨 곳은 그린블러드가 비밀통로로 사용하는 창고였다.

“아, 여기 있는 분은 애청자인 ‘고블린학살자’ 씨. 이름은 좀 무서운데 친절한 분이야.”

“후···.”

앨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제 발로 감옥에 들어가는 키키를 보니 그냥 가슴이 답답했다.

저 오크는 순진한, 테일러의 말로는 멍청한 키키를 손쉽게 납치하는 중이었고.

우드득!

한숨이 끝나기도 전에 들리는 닭목 비트는 소리. 닭이 꽤 커다란 녀석인지 목뼈 부러지는 소리도 우렁찼다.

“뭐야? 뭐야!”

머리가 한 바퀴 회전한 오크를 보고 화들짝 놀란 키키가 앨런의 뒤로 숨었다. 그리고 범인과 눈이 마주쳤다.

“성격 더러운 노인네잖아.”

“초록색 똥 같은 녀석아. 예절은 어디에 팔아먹었니?”

“앗. 죄송. 속마음이 저도 모르게···.”

“푼수 같은 꼬락서니를 보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

셋과 시체 하나는 다시 폐공장으로 들어갔다.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 키키가 앨런에게 이유를 물었다.

“도대체 왜 죽인 거야?”

“혹시 전생에 나라 팔아먹었습니까?”

“왜?”

“어떻게 꼬여도 이런 사람이 꼬입니까?”

앨런은 그린블러드가 자행하는 납치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오늘의 제물은 키키였다는 사실도.

“죽다 살았네. 그럼 난 이만···.”

“어딜 가려고. 우리 일이 끝날 때까진 여기 있어야지.”

테일러에게 뒷덜미를 잡힌 키키가 동물 새끼처럼 축 늘어졌다.

“두 분이 비밀통로로 함께 들어가 주셔야겠습니다.”

키키는 앨런의 말이 들리자 다시 발광했다.

“안 돼! 미쳤어?”

“오크의 홀로스킨을 활용할 셈이지? 좋은 생각이다. 비밀통로는 지키는 인원도 별로 없겠지. 약속대로 동료가 먹이를 데리고 나타나면 문을 그냥 열어줄 거다.”

“통째로 날려버리면 일이 쉬워지지만, 그러면 전리품도 날아가고 안에 잡혀있을지 모르는 사람들도 위험하니 고생 좀 해주세요.”

테일러가 오크의 옷을 벗겨 입고, 홀로스킨을 착용했다. 체형도 엇비슷해서 입을 다물고 있으니 동일인 같았다.

“제발 살려주세요.”

“누가 죽인데? 인상 펴라. 그리고 앨런은 더 위험해. 우리가 잠입하는 동안 정문에서 시선을 끌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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