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유적(3)
새로이 모습을 드러낸 통로는 아래로 향했다. 하나의 층에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지만, 이렇게 급격한 변화는 처음이었다.
앨런이 신기한 현상을 관찰하고 있으니, 테일러가 어깨를 툭 치며 앞장섰다.
“나중에는 등산도 해야 하는데 벌써 놀라긴 이르지.”
“원시림 말하는 거죠?”
“그래. 거긴 자연 그 자체야. 사람의 문명이 들어서기 전의 대륙도 그런 모습이었겠지.”
새로운 어둠이 통로를 빠져나온 앨런을 반겼다. 아래층은 도서관인 위층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먼저 직진 통로가 눈앞에 펼쳐졌고, 양옆으로는 거뭇한 암석 벽으로 나누어진 방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방과 통로를 구분하는 기준은 녹슨 철창이었다.
“이건 감옥···인가요? 위에는 도서관이었는데, 지식의 전당 아래에 왜 이런 곳이 있을까요?”
“둘 다 지식의 보고는 맞지.”
“네?”
“도서관에서는 책으로, 감옥에서는 고문으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소리도 있잖아.”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을 물의 정령이 듣는다는 뜻인가요?”
“몰라?”
테일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잡아채고 위아래로 흔드는 시늉을 했다. 혼신을 담은 연기도 펼쳤다.
“어푸, 어푸.”
“···?”
“이걸 모르다니. 의외로 순진한 구석도 있네. 설명하려니 묘한 죄책감이 느껴지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뒤따르는 묘사는 생생했다. 얼굴을 담갔다 뺄 때 필사적으로 호흡하려는 죄수의 시도를 엇박자로 망치거나, 기절하면 다시 물에 빠트려서 깨우거나.
설명을 들은 앨런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가 있나요? 브레인이터 계열의 소환수를 사용하거나, 뇌 확장 장치를 뜯어서 읽어보면 되잖아요. 정신이 고문으로 피폐해지면 제대로 답할 수도 없고, 반발심에 가짜 정보를 알려줄 수도 있으니까요.”
“나보다 한술 더 뜨려고 하네. 어쨌든 미궁은 상식으로 이해하려 하지 마. 화장실 문을 열면 초원이 펼쳐질 수도 있는 장소니까.”
두 사람의 대화가 양옆의 방에 부딪혀서 되돌아오기도 했다. 마치 유령이 귓가에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감방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전진하던 도중, 저 멀리에서 어떤 소리가 들렸다. 높고, 찢어지고, 터지는 음성. 비명이었다.
앨런과 테일러는 서로의 얼굴 바라보고 무기를 들어 올렸다. 수집가가 이런 곳까지 기어들어 와서 얌전히 탐험만 했을 리가 없었다.
입을 다물고 비명이 들려오는 장소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감옥은 ‘ㅡ’자 형태라 오직 앞쪽만 주의하면 됐다.
긴장과 동시에 감각도 예민해졌다. 공기가 훨씬 서늘하게 느껴지고, 맥박 뛰는 소리도 훨씬 커졌다. 발걸음 소리도 마찬가지로 크게 들렸다.
철퍽!
작은,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소리였다.
앨런이 고개를 내리자, 헤드랜턴이 검붉은 물을 비췄다. 이상한 살덩이가 워커에 짓눌려서 역한 액체를 울컥 토해냈다.
“정면.”
테일러의 말에 앨런은 앞으로 시선을 던졌다. 맥동하는 살덩이가 감옥을 뒤덮고 있었다. 나무뿌리를 혈관으로 대체하면 이와 같은 모습이리라.
아까보다 조심스럽게 전진하며 주위를 살피던 앨런은 처음으로 감옥에 있는 무언가를 찾아냈다.
“오른쪽 보세요.”
사람이 살덩이에 뒤덮여있었다.
테일러는 파손된 철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레에 실린 파이프로 사람을 덮은 살덩이를 걷어냈다. 동시에 역한 냄새가 확 퍼졌다.
희생자는 사람이 아니라 지하인이었다. 각질이 두껍고 창백한 피부는 탐험가의 그것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테일러는 반쯤 녹은 지하인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 내장이 하나도 없어. 아직도 살아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야. 수집가, 그 새끼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감도 안 잡히네.”
“그게 흑마법이겠죠. 생명을 농락하고 육신과 영혼을 재료로 삼는. 점점 깊이 빠질수록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고깃덩이로 볼 겁니다.”
흑마법사만 해당하진 않았다. 어떤 마탑, 어떤 기업, 어떤 국가의 비밀연구실에서는 지금도 이런 실험이 자행되고 있으리라.
앨런은 노박 클리닉만 그러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그만큼 이상하고 못된 사람도 많았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이곳을 수집가가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앨런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불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아까 내 말 따라 하는 거냐? 이런 ㅆ···. 무슨 냄새가···.”
앨런의 지팡이에서 뿜어진 화염이 살덩이를 태웠다. 고약한 냄새에 질겁한 테일러는 코를 막고 뒤로 피했고.
[화염], [고온], [분사]로 이루어진 화염방사기는 흑마법사의 핏물을 태울 때보다 더 강한 출력을 지녔기에, 감옥을 점거하고 있던 혈관들이 빠르게 오그라들었다.
“넌 냄새 안 나니?”
“마스크 덕분에 괜찮습니다.”
“나도 누님에게 말해서 구매해야겠다.”
“수제작이라 비매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님이라고요? 저번에 만날 때만 해도 요화 님이라고 불렀잖아요.”
“나보다 연상이니 적당한 호칭 아닐까? 계속 ‘님’자 붙이면 뭔가 거리가 멀게 느껴지잖아.”
상호합의 없이 테일러 혼자 그렇게 부른다는 의미였다. 욕설도 아니고, 호칭이 중요한 문제도 아니니 앨런은 관심을 껐다.
화염방사기의 화력이 강해서 감옥 청소는 굉장히 빨랐다. 후덥지근하게 변한 공기를 따라 악취도 점점 심해졌다. 물론 테일러만 인상을 썼다.
용의 숨결처럼 토해지는 불길이 주변을 환하게 비출수록, 멀리 있는 부분은 어둠에 잠겼다. 그 암흑 속에서 앨런은 미약한 반짝임을 목격했다.
화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달아오른 지팡이 끝만이 붉게 빛났다. 앨런은 그것으로 통로의 끝을 가리켰다.
“철문 보이시죠?”
“그래. 저 안에 뭔가 있겠구나.”
“수집가가 무언가를 놓고 갔을까요?”
“흑마법사도 마법사. 깐깐한 족속이 그럴 리가 없지. 중요한 물건을 모두 챙겼겠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놈과 우리의 격차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앨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잔디를 꾸미기 위해서 뿌리는 물은 작은 벌레에게는 홍수일 테니까.
앞장선 테일러가 철문을 조금 열었다. 내부에서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활짝 열어젖혔다.
운동장같이 넓은 방의 구석에는 수집가가 두고 갔으리라 짐작되는 실험도구들이 있었다. 방 중앙에 있는 석관 주변에는 살과 뼈로 이루어진 기괴한 구조물이 있었다.
테일러는 그 옆에 엎드린 사람의 형상을 보며 샷건을 겨눴다.
“누구···.”
퐁퐁퐁!
테일러가 말을 끝마치기 전, 마탄 발사기 특유의 발사음이 뒤에서 들려왔다.
콰르릉!
소리는 귀여워도 위력은 그렇지 않은 마탄이 불벼락을 생성했다. 테일러는 갑자기 달아오른 인조 피부, 시야 한쪽에 떠오른 ‘화상 주의’라는 문구 보며 앨런에게 물었다. 시선은 정면에 고정한 채로.
“누군지 확인은 해야지.”
“프랑수아 님과 싸웠던 흑마법사와 똑같은 자국이 머리에 있었습니다.”
밀가루처럼 하얀 피부, 빡빡 밀어버린 머리, 남녀 구별이 어려운 외형. 봉합 자국이 보이는 이마.
앨런의 눈은 그때를 기억했고, 엎드린 인형은 높은 일치율을 보였다.
“아, 바퀴벌레처럼 질기다던?”
동시에 몸을 일으키는 흑마법사. 갑작스러운 기습에 낭패를 당했는지 관절이 여러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앨런이 다시 마탄을 발사했으나, 이번에는 검은 방어막에 막혔다.
몸을 완전히 일으킨 흑마법사의 상반신은 앨런을, 얼굴은 뒤를 보고 있었다. 양손으로 머리를 붙잡더니 뿌득 소리가 나게 180도 돌렸다.
“그어어···.”
수집가가 철수하는 과정에서 놓고 간 노예로 보였다. 미완성처럼 보이나, 본능적으로 흑마법을 사용하니 무시할 순 없었다.
놈이 앙상한 손가락으로 앨런을 가리켰다. 화살 크기의 검은 투사체 다섯 개가 순식간에 쏘아졌다.
전위는 테일러의 몫. 샷건으로 두 개를 격추하고, 마나소드로 두 개를 베어냈다. 마지막 남은 하나는 앨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표범이 훌쩍 뛰어올라서 처리했다.
앨런의 몸도 뒤로 훌쩍 피한 상태였다. 이전까지는 반사신경과 뇌의 신호를 육체가 못 따라갔지만, 강화외골격의 보조로 반응시간을 꽤 줄였다.
그 사이 흑마법사를 향해 돌진하는 테일러. 앨런은 그 모습을 보며 마탄을 한 발 날렸다.
당연히 휩쓸리게 할 생각은 없기에 폭발 마탄을 무효화 마탄으로 교체했다. 예전에 방어막에 구멍을 뚫었던 [쇠약], [폭발], [집중]이 그려진 마탄이었다.
흑마법사의 방어막에도 구멍이 뻥 뚫렸다. 테일러는 샷건의 총구를 안으로 들이밀었다.
탕탕탕탕탕!
자동 샷건답게 방아쇠를 누르고만 있으니 탄환이 내부로 쏟아졌다. 마력을 머금은 납탄에 두들겨 맞은 흑마법사의 몸이 반죽처럼 뭉개졌다.
방어막을 수복하려 하면 다시 앨런의 마탄이 날아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테일러의 사격.
놈은 그러면서도 손가락을 계속 꺾었다. 뜨개질한 마력이 일정한 구조체를 만들고, 외부의 마력을 빨아들여서 마법으로 승화했다.
까드득!
흑마법사 근처에 있던 살점, 뼈 기둥이 뒤틀렸다. 표면이 꾸물거리더니 굵은 촉수 다발을 여러 개 뽑아냈다. 검붉은 채찍이 테일러의 몸을 휩쓸었다.
그러나 노련한 전사는 기둥이 꿈틀거릴 때부터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리플렉스 액셀을 발동한 육체가 잔상을 남기며 역겨운 촉수를 피해냈다. 때로는 높게 뛰어올라서 천장을 밟기도 했다.
“후레자식이!”
천장에 거꾸로 선 테일러는 이를 드러냈다.
채찍은 그를 지나쳐 뒤까지 뻗어 나갔다. 후방 보조가 거슬렸는지, 테일러를 노리는 척하며 앨런을 공격한 것이다.
에비에 내장된 [공기 폭발]로 살점 기둥을 직접 타격, 채찍의 기세를 죽인 테일러가 후퇴했다.
“괜찮냐? 이러다 다 죽겠다. 일단 물러날까?”
“아직 할 만합니다.”
테일러가 보기에 설득력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마탄 발사기는 크게 휘었고, 룬펜은 두 동강 나서 바닥을 굴러다니고, 그걸 쥐고 있던 손가락에서는 피가 흘렀다.
테일러에겐 탐험도 중요하지만, 앨런의 안전이 우선이었다.
“출혈이 너무 심하잖아!”
“시간만 잠깐 벌어주세요.”
테일러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마나소드를 뽑아 들었다. 형상화된 마력에 상처 입은 촉수들이 피를 흘렸다.
앨런은 손가락에 흐르는 피를 지혈할 생각이 없었다. 테일러의 걱정은 과장된 면이 있었다. 특히 자신이 다쳤을 때 유독 심했다.
‘룬펜은 지금 고치긴 힘들어···.’
앨런은 대신 손가락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자신의 피를.
룬펜의 카트리지에 담긴 금속 그리고 마석 가루로 그린 마력회로는 지속성이 좋았다. 금속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금속으로만 마력회로를 그리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피는 마력을 진하게 담고 있으며, 심지어 신체에서 생성하기에 상성도 좋았다. 단점이라면 피를 뽑을수록 몸이 안 좋아지고, 회로를 오래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회용으로 활용한다.’
마침 무한궤도 상자는 바로 옆에 있었다. 바퀴를 돌돌 굴리며 마법을 열심히 피한 결과였다.
왠지 자신보다 민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앨런은 말없이 손을 뻗었다. 서랍이 차례대로 열리며 거미들이 튀어나왔다.
차례대로 손바닥 위에 올라오는 거미의 등에 피로 룬문자를 그렸다. [화염]과 [폭발]. 시간 관계상 2개까지만 조합하며 줄을 세웠다.
“아직 멀었니?!”
테일러의 다급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탐험복 곳곳이 찢어지고, 망가진 매직웨어에서 기름과 액화 마력이 흘러나왔다.
“끝났습니다.”
거미를 일렬로 세운 앨런은 시선을 앞으로 던졌다. 일견해서는 흑마법사의 방어막이 건재하지만, 앨런은 공기 중의 마력 밀도가 급격히 낮아졌음을 느꼈다.
‘수복과 공격을 위해 끌어갔다는 뜻이겠지.’
효과가 있었다. 그렇다면 더 큰 화력으로 단숨에 찍어누르리라. 피가 굳은 검지가 흑마법사를 가리켰다.
동시에 거미들이 화염으로 둘러싸였다. 불거미로 변한 아이들은 바닥과 천장을 가리지 않고 샤샤샥 기어가서 흑마법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앙!
첫 번째 폭발로 발생한 화염이 가라앉기도 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흑마법사를 향해 뛰어들었다.
콰르릉!
어느새 다가온 테일러가 상자와 수레를 방벽으로 삼아서 날름거리는 붉은 혀를 피했다.
“이러다 타 죽겠다.”
“괜찮습니다.”
앨런은 손짓으로 표범을 불렀다. 주둥이를 벌리게 하고. 가라앉지도 않은 화염 속, 흐릿하게 보이는 흑마법사를 향해 광선을 발사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