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66화 (66/193)

수도승(1)

드워프 브로커 롤프의 술집. 사나운 음악과 잔잔한 클래식이 공존하는 장소 여기저기에는 드워프 특유의 도수 높은 술에 취한 해결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해결사 역시 미궁탐험가처럼 목숨을 걸고 돈을 버는 직업이기에, 한탕 뛰고 나면 겹겹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유흥에 매달리거나, 어디에 틀어박혀서 푹 쉬곤 했다.

문이 열리고, 알코올과 담배 냄새로 찌든 공기에 상쾌한 흐름이 끼어들었다. 새로이 등장한 청년은 구석으로, 노인은 롤프가 있는 바 카운터로 향했다.

“영감님. 문 좀 닫고 다니지. 자꾸 그러면 나 같은 서민이 난방비를 어떻게 감당하라고.”

“그럼 환기 장치를 작동하든가. 돼지우리도 여기보단 향기롭겠다. 여기가 동굴도 아니고···.”

“흠, 흠. 입에 모터 달린 걸 보니 거부반응 같은 부작용은 없나 보네.”

“누가 치료해줬는데. 당연하지.”

“재수 없긴 한데, 내 동생 솜씨가 좋긴 해. 뭐, 나야 알선 대가로 두둑이 받으니 상관없지.”

“난 앨런 말한 거다.”

“그럼 둘 다 좋다고 합시다.”

앨런이 구석에 자리를 잡자, 해결사들이 하나둘 다가왔다. 지상에 있을 때는 이곳에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그들의 장비를 수리했다. 실력 검증은 예전에 끝났기에 간단한 장비의 경우에는 그들도 안심하고 맡겼다.

어떤 해결사의 의족에 새겨진 룬문자를 긁어내는 도중,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미궁에 관련된 방송만 송출하는 채널이었다.

대사제이자 사랑병원장, 리베리오의 인터뷰가 진행 중이었다.

[대사제님 안녕하십니까.]

[그냥 리베리오라고 불러주시지요.]

[알겠습니다. 리베리오 님, 이번에 사제들이 메이즈시티에 정착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저희는 그저 교리에 따를 뿐입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구원. 그중에는 미궁 속을 떠도는 불쌍한 영혼의 해방도 포함되어있습니다.]

모신교는 미궁에 등장하는 괴물들을 지옥에 붙잡힌 영혼이라고 판단, 그들을 처치하는 일이 해방이라고 믿었다.

방송을 보는 해결사들의 평가도 드문드문 들렸다.

“저 새끼, 돈 떨어져서 지 새끼들 미궁에 밀어 넣는 거 아냐?”

“야, 야. 적당히 해라. 자원봉사도 열심히 하는 분들인데 굳이 성낼 필요 있어?”

“어릴 때 마음씨 좋은 사제분을 만나서 부러진 팔을 치료했지. 본받을 점이 많은 종교야.”

“그런 놈이 해결사가 돼서 머리 수집하고 다니냐?”

“새꺄! 그래서 의뢰는 가려 받잖아. 속세 자체가 고통이라고 하는 종교도 있으니, 내가 현상범들의 대가리를 날리는 건 숭고한 고행이 아닐까? 그러니 나 역시 수도승이라 할 수 있지.”

“지랄···.”

술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의견이 갈리니, 사회 전체에서도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무료봉사가 늘었다고, 의사들이 친절해졌다고 좋아하고. 자신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속내를 알 수 없다고 싫어하고.

각계의 반응이 어떻든 탐험계는 후끈 달아올랐다. 물론 주로 탐험가조합과 기업 같은 커다란 단체만.

회복 마법의 전문가인 사제는 누구나 원했고, 그건 아무나 얻지 못한다는 뜻과 같았다. 공급보다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또한, 사제도 사람이었다. 미궁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구제하고자 하는 그들도 기왕이면 안전을 원했으니, 기업들의 접촉에 끌리는 건 당연했다.

원하는 곳이 많고 대우마저 좋으니, 앨런 같은 영세 탐험가에게 만남의 기회가 주어질 리 없었다. 그건 대부분의 탐험가 파티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다 불량품이라고? 이런 시이벌. 다 뒤졌다.”

야매 시술소에서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드워프 손님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수리 장사는 끝났다.

앨런은 바 카운터 앞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테일러 옆에 앉았다. 목 뒤에 꽂힌 기억수정은 그가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뭘 그리 열심히 보세요?”

“나도 소일거리나 찾아볼까 해서.”

“지상에서는 편히 쉬시지. 굳이 여기서까지 일할 필요 있나요?”

앨런의 말에 테일러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은 표정이었다.

“너 때문이잖아. 너, 너, 너.”

“···?”

“어휴, 저 순진한 눈망울. 손발 꽁꽁 묶어서 강제로 쉬게 만들 수도 없고.”

“손자가 일하고 있으니 염치가 없으시댄다.”

대화에 슬쩍 끼어든 롤프는 실실 웃으며 테일러와 거리를 벌렸다. 그제야 이해한 앨런이 입을 열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수리도 제가 좋아서 하는 취미인걸요.”

“일이 어떻게 취미니. 아무리 좋아해도 생계 딱지가 붙으면 골치 아파지는 게 사람이야.”

“그래요? 전 언제나 새롭고 즐거운데.”

테일러는 말을 하려다가 앨런의 진심 가득한 눈빛을 보고 그만뒀다. 이건 진짜였다.

취미와 업이 일치하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심지어 스트레스도 안 받는다? 그게 바로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었다. 아니면 머리 나사 하나가 풀려서 고통도 희열로 받아들이든지.

테일러가 보기에 앨런은 둘 다 해당했다. 마법공학을 즐기면서도,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마저 기쁨으로 승화했다. 한마디로.

“변태 녀석.”

“네?”

절차를 따른 논법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단어에 앨런이 어리둥절한 사이, 테일러는 기억수정을 뽑아서 롤프에게 건네줬다.

“쓸만한 일거리는 찾았수?”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일들이라 생각 좀 해봐야겠어. 난 미궁이 제일 어려운 줄 알았는데 지상의 일도 만만치 않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지.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심심하다고 손자 너무 들볶지 말고.”

롤프는 웃으며 조손을 배웅했다. 테일러도 처음에는 손자라고 하면 반박했는데, 이제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인도를 걸으며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슥 살펴본 앨런은 테일러에게 물었다.

“아까 보신 의뢰는 뭐였어요?”

“별것 아닌데. 자꾸 궁금해하니 내가 특별히 보여주마.”

테일러의 인공 안구에서 뿜어진 빛이 허공에 홀로그램을 만들었다. 앨런이 봤다고 신호를 보내면 책장을 넘기듯 내용이 바뀌었다.

“탈취, 호위, 운반, 체포. 참 많기도 하네요.”

점점 빠르게 바뀌는 화면, 앨런의 눈도 바삐 움직였다.

“잠깐만요.”

“왜 그러니?”

앨런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남자의 흉상이 천천히 회전했다. 테일러의 물음에도 입을 다물고 기억을 더듬었다.

‘약간 곱슬기 있는 주황색 머리카락···. 분명 어딘가에서 봤는데.’

앨런의 뇌가 구석구석 숨겨진 기억의 조각을 끄집어냈다.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가 한 명의 이미지가 불쑥 솟아올랐다.

“그때 그 아저씨.”

“무슨 소리냐?”

앨런은 어떤 아저씨의 차를 얻어타고 메이즈시티에 입성했음을 알렸다. 흉상 아래에 ‘실종’이라고 적힌 남자는 그때 봤던 사진과 똑같이 생겼다.

테일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안타까움과 당연하다는 표정이 공존했다.

“미궁에서 기웃거린다고 했지?”

“네. 근처에서 본다면 때려서라도 쫓아내라고 부탁했어요.”

“시민들은 미궁으로 이룩한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 시 정부나 기업들도 그런 점만 선전하기도 하고.”

“일장일단이 있겠죠. 어떤 현상이든 마찬가지니까요.”

“그래, 네 말이 맞다. 빛과 그림자가 있으면 사람은 보통 빛으로 눈을 돌리기 마련이지. 어둠을 자세히 보려고 해도 숨겨져 있으니 관찰하기도 쉽지 않아. 이것 좀 봐라.”

테일러의 눈이 만들어낸 화면은 연간 미궁 사망자 통계였다. 조사한 기관마다 데이터가 전부 달랐다. 심지어 가십 전문 잡지나 신문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 통계도 있었다.

“이게 현실이야. 빛이 너무 밝은 나머지 그 누구도 그림자를 똑바로 보지 못해. 미궁을 주무르는 큰손들도 치부를 보여주기 싫어하고.”

“랑카도 마찬가지였죠.”

앨런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여기 와서 가장 놀란 점은 랑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구석에 처박힌 최빈국이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삼라만상에서도 제대로 된 소식을 찾기 힘들었다.

발전은 언제나 무언가를 소모한다. 그게 자원이든, 사람의 목숨이든. 당연히 소모 당하는 쪽은 금방 잊히기 마련이다.

그걸 알리는 게 언론의 역할이지만, 기업들이 목숨줄을 붙잡고 있어서 마음대로 기사를 쓸 수 없었다. 사실 그들의 선전탑이 된 지 오래였다.

테일러는 혀를 끌끌 찼다.

“젊은이가 안타깝게 됐어. 실종이 아니라 미궁에서의 사망이겠지. 아직도 포기 못 한 부모가 의뢰를 돌렸을 테고.”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메이즈시티에서 실종은 사망과 같은 말이다. 다른 곳도 다를 바 없겠지만. 아니면 어디에 붙잡혀서 노예처럼 일하고 있을 수도 있지.”

“짐작되는 장소라도 있나요?”

“지상은 몰라도 미궁이라면 있지. 엄청 깊게 들어가진 않았을 테니, 동굴 19층에 있는 마석 광산?”

앨런도 전에 들어서 알고 있는 장소였다. 지하인의 요새처럼 특별한 공간이며, 마석이 계속 생성되는 보물고였다.

광부들은 마석을 캐고, 탐험가들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지하인으로부터 광부를 보호했다.

*

미궁에 진입한 앨런은 이번 목표를 되뇌었다.

“저번에 18층까지 도달했으니, 이번에는 20층까지. 여유 되면 21층도 구경할까요?”

“근위병이 없으면.”

근위병은 외눈의 수문장과 비슷한 역할이었다. 중갑병 중에서도 특히 강한 개체이며, 근위병이라 부르는 이유는 텅 빈 옥좌를 지키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상대한 흑마법사보다 약간 강하다면서요.”

“그건 참고하라고 개인의 강함만 대충 비교해 본 거다. 전투 스타일도 다르니 섣불리 예측하면 안 돼. 부하도 잔뜩 대동하는 녀석이라 더 조심해야 하고. 수문장이 거기에선 잡몹이야.”

“미로와 비교하면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네요.”

“근위병의 또 다른 이름이 뭔지 알아? 뉴비 절단기야. 청운의 꿈을 품고 들어온 탐험가들이 거기에서 벽을 느끼지. 슬슬 야영지가 나올 때가 됐는데···.”

테일러의 말대로 인기척이 다수 느껴졌다. 조금 더 걸어서 모서리를 돌아가니, 9층 야영지가 보였다. 평소처럼 탐험가들이 붐볐다.

자리를 잡고 음식을 준비하던 앨런은 점점 커지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영업 안 합···.”

왼쪽 눈이 회색 머리카락의 여성을 빠르게 훑었다. 검은빛 일색의 옷에 두툼한 진검 가방을 메고 있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인사를 마친 시온이 여전히 등을 돌리고 있는 테일러를 지긋이 쳐다봤다. 10분 넘게 그러고 있으니 테일러도 몸을 슬쩍 돌렸다.

“교관님도 안녕.”

“천재 검사가 이 늙은이에게는 무슨 일로?”

“꼭 용무가 있어야 해?”

“아니, 그건 아니지···.”

어색한 기류가 흐르는 도중, 작고 단단한 체구가 불쑥 끼어들었다. 철판도 제대로 안 달린 얇은 옷을 입은 드워프였다.

“미궁에서 지인을 만났으면 저도 소개 해주시지요.”

“이쪽은 시바. 여기는 테일러, 앨런.”

“간단하니 좋군요. 저는 모신교의 수도승입니다. 이번에는 브레이커의 도움을 받아 미궁을 탐험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인도로 이렇게 만났는데 같이 탐험하는 건 어떻습니까? 두 명보다는 네 명이 즐거울 겁니다.”

시온은 별생각 없어 보였고, 테일러는 혹시 꼬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수락했다.

시바는 기쁜 날이라며 수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희미하게 나는 알코올 냄새에 시선이 몰리니, 수염을 닦으며 웃었다.

“곡차가 너무 발효됐군요. 쓰레기는 버리면 안 되니 제가 전부 처리하겠습니다.”

“모신교는 음주 금지 아닌가요?”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꿈속에서 어머님께 여쭤봤는데 웃으시더군요. 괜찮다는 증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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