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승(2)
모신교의 수도승, 시바는 교리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탔다. 자신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행위가 일품이었다. 타인의 관점에서는 이미 훌륭하게 타락한 종교인이지만.
기도보다 밝은 갈색 수염을 치장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꼼꼼하게 빗고, 향유를 바르고, 수염에 좋다는 영양제를 먹고.
앨런이 쳐다볼 때마다 시바는 설명을 곁들였다.
“앨런 형제님은 호기심이 정말 많군요. 아, 탐구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머니의 뜻을 설파하는 제가 꾀죄죄한 몰골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성직자가 탐험하느라 고생했다고 여기겠죠.”
“아닙니다. 사람은 의외로 시각적인 자극을 강하게 받아들입니다. 제가 더럽다면 눈살을 찌푸릴 테고, 자연스럽게 성직에 종사하는 형제자매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집니다. 그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기도 시간을 줄이고, 청결에 힘쓰는 겁니다. 이해하셨나요?”
“혓바닥이 길어. 혀만 내밀어서 지하인을 찔러 죽일 수도 있겠어.”
테일러가 툭 내뱉었다. 처음에는 시바를 꾀려고 정중한 말투나 단어를 사용했는데, 지금은 퉁명스럽게 바뀌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어머님의 가르침을 설파하려면 설득력 또한 뛰어나야죠. 늙은 형제님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수행의 성과가 있나 봅니다. 아, 실수. 테일러 형제님.”
시바의 말장난에 테일러도 어깨를 으쓱하고 그냥 넘겼다. 없는 자식도, 사라진 부모도 죽이는 탐험가 입담의 세상에서 저 정도는 안부 인사에 불과했다.
게다가 서로 진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증거로 테일러와 시바는 잘 어울렸다.
“물 대신 술을 마셔도 문제없나?”
“술이라뇨. 저는 우연히 얻은 곡물 혹은 과일 발효 음료를 마시는 것뿐입니다. 음식을 땅에 함부로 버리는 행위 또한 죄악이니 저의 목구멍으로 처리하는 겁니다.”
“알코올만 빠르게 처리하면 물은 물이지. 나도 좀 주겠나?”
“안됩니다. 죄악은 오롯이 제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그 대신 형제님의 각오, 확실히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고···.”
둘이서 작당 모의하다가, 켕기는 게 있는 테일러는 앨런이 있는 방향을 곁눈질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다.
“사람 많은 야영지에서 한 모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니다. 참으마.”
도둑이 제 발 저린 테일러는 계획을 접었다. 한참이나 어린 앨런 앞에서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이 무슨 추태인가.
앨런은 사실 술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전투 상황도 아니고, 사람 많은 야영지에서의 한 모금은 아무 문제도 없었다.
속닥속닥 대화하는 둘을 쳐다보고 있던 이유는 수도승이 어떤 능력을 사용하는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치료하려면 누군가 다쳐야 하나? 너무 못된 생각 같은데,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하고.’
야영을 마치고 시온의 인도를 따라 동굴 12층을 걸을 무렵, 그동안 보이지도 않던 지하인이 벽에서 탄생했다. 갑옷을 든든하게 입은 지하인은 들소 오토마톤과 함께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시바는 뭉툭한 돌기가 포도알처럼 박힌 권갑을 착용했다.
“연옥에 속박된 불쌍한 영혼이군요. 이번에는 제가 나서서 자유를 선사하겠습니---다.”
시바의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그는 짧은 다리로 통통통 내달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지하인의 앞에 도달했다.
지하인은 자신의 앞에 도달한 드워프 성직자를 향해 창을 찔렀으나 창날에는 허공만 걸렸다.
창대를 권갑으로 미끄러트린 시바는 그대로 전진했다. 연어처럼 거꾸로 거슬러 오르더니, 딱 붙은 상태에서 명치를 향해 정권을 내질렀다.
강력한 타격에 지하인의 눈이 반쯤 튀어나왔다. 그것도 모자라서 뒤로 몇 바퀴 구르며, 뒤를 바짝 따르던 들소와 충돌했다.
들소는 그 순간에도 몸을 옆으로 돌리며 지하인을 안전하게 받아냈다. 그러나 그건 잠깐의 평안일 뿐이었다.
시바는 탱탱볼처럼 통통 튀어가서 지하인의 몸에 바짝 달라붙었다. 들소, 지하인, 시바. 가운데에 낀 지하인은 마치 케이지에 갇힌 격투선수 같았다.
권투에서 선수들끼리 껴안고 초단거리 타격을 주고받는 공방전을 더티 복싱이라 하던가.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시바는 지하인의 갑옷을 붙잡고 무자비하게 몸을 두들겼다. 사실 벌써 녹아웃 당해야 했지만, 들소까지 함께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좀 길어졌다.
들소는 지하인을 방패로 삼은 시바의 타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오토마톤에게 지하인은 보호해야 할 대상.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테일러가 전투 장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드워프는 신체적 불리함 때문에 장병기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 그런데 손발로 싸우길래 뭔 짓인가 했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네.”
“가볍고 노련한 몸놀림이네요. 맞죠?”
“그래.”
몸치인 앨런이 보기에도 훌륭한 움직임이었다. 들소가 어떻게든 뿔로 찌르려 해도, 시바는 절대 지하인 뒤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주먹을 내질러 들소의 옆구리를 뭉개버리고, 들이받으려 하면 지하인을 방패로 내세웠다. 반격할 방법을 찾지 못한 들소는 점점 고철로 변해갔다.
“일부러 끝장 안 내고 숨만 붙여뒀네. 저것도 괜찮은 방법이야.”
앨런은 테일러의 설명을 경청하면서도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표범과 상자를 쳐다봤다. 이 아이들 역시 자신을 공격하지 않게 별문자를 입력했다.
‘잘못하면 나도 저런 방패가 되겠지. 개선점을 연구해야겠어.’
앨런이 뒤에만 있으면서 화력을 퍼붓는 시나리오가 가장 좋지만, 세상일이 언제는 뜻대로 돌아갔던가. 시바 덕분에 예상외의 상황을 인지했으니 대비해야 했다.
“짧은 다리를 극복하려고 통통 튀는 동작을 주로 사용하는군. 근데 뭔가 꼴 받는 움직임이야.”
지하인과 들소를 처리한 시바는 다른 지하인의 칼을 휘적휘적 걸으며 피했다. 제멋대로인 동작은 만취한 사람과 흡사했다.
“교관 하던 시절에 내 밑에 있었으면 호되게 굴렸을 텐데.”
“예전에 교관 하셨다고 했는데, 어땠나요?”
앨런은 팔짱 끼고 구경하는 시온을 곁눈질하며 물었다. 왠지 그녀의 귀가 쫑긋거린 것 같았다.
“8살 때부터 미궁에 함께 들어갔지.”
“어릴 때부터 한다는 영재교육인가요? 조기교육치곤 너무 빠른데요.”
“그 나이에도 상층의 오토마톤 정도는 잡았어. 검술에 대해서는 무시무시한 재능을 지녀서 내가 가르칠 게 없었다. 그래서 미궁 경험을 쌓게 하려고 데리고 다녔지.”
무시무시한 재능, 이 대목에서 시온의 고개가 돌아갔다. 귀가 정확히 이쪽을 향하게.
“교관 생활은 어떠셨어요?”
“나에게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시온이 고개를 홱 돌렸다. 약간 멍한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동행인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었지. 미궁에서 더 밑으로 내려갈 수 없는 사람은 교관으로 빠지지. 그건 재능과 가능성의 부재를 의미하고.”
“아, 그렇군요. 제가 잘 개조해 드릴게요.”
“개조? 위로라는 건 알겠는데 단어 선정이 좀 그렇다···.”
“저 위의 타이탄은 어떠세요? 크기는 인간과 똑같은데 강함은 타이탄인 거죠.”
“그건 좀 마음에 드네. 매직스···.”
어떤 단어를 말하려다가 이제야 시온을 확인한 테일러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계획에 있지?”
“필요···할까요?”
“같은 남자인데 공감 능력을 좀 발휘해라. 이번에는 장난치고 섬뜩했다.”
테일러는 씩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지하인 둘과 오토마톤 두 대를 정리한 시바가 손을 탁탁 털며 다가왔다.
“고통받는 영혼을 해방했습니다. 부디 어머니의 품에서 안식을 찾길···.”
“고통이요?”
앨런은 목숨이 간당간당하게 붙어있던 지하인을 떠올렸다. 시바의 손아귀에서 좌지우지될 때야말로 고통이 아닐까. 고개를 흔들며 생각도 털어냈다.
“직접 전면에 나서면 위험하지 않나요?”
“제가 치료사니 다치면 치료하면 되죠, 차라리 대신 다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시온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마석과 영혼석을 회수하고도 피나 기름 한 방울 안 묻은 검이 손에 들려있었다.
“변태···?”
“자매님.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프랑수아가 맞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변태니까 피하라고 했는데.”
“이런···, 들켰군요. ···농담이니 이상한 표정은 푸세요. 전면에 나서냐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치료사의 역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바가 먼저 테일러를 쳐다봤다.
“전황을 파악하고 있다가 시기적절하게 회복술을 걸어줘야지.”
“회복술 말고 성법이라고 불러주시지요.”
“그래, 성법···.”
그다음은 앨런이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때까지 목숨을 붙여놔야 합니다.”
“어떨 때는 그것도 최선이 방법이죠. 신성력은 무한하지 않고 미궁은 깊으니까요.”
시온의 차례였으나 그녀는 왠지 불퉁한 표정으로 앨런을 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의견을 먼저 말했다는 듯이.
시바는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두 분···, 예, 세 분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전부 부상을 전제로 수도승의 역할을 말씀하셨더군요. 저는 어느 날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시바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열띤 목소리와 격양된 감정. 처음으로 진짜 성직자 같았다.
“사람이 다치지 않는다면 성법을 펼칠 필요도 없다는 것을요. 그러기 위해선 문제의 원인을 빠르게 제거해야 합니다. 적이 없으면 다칠 사람도 없죠. 그게 바로 궁극의 치료사입니다.”
“물리치료사?”
테일러의 말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앨런은 표범의 룬문자를 매만졌고, 시온도 깨끗한 검을 다시 한번 닦았다.
고개를 천천히 돌린 시바가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연배가 느껴지는 농이었습니다. 답답한 지하를 탐험하느라 지친 후배들에게 자그마한 기쁨을 주려는 선의였겠죠.”
“그만해···.”
“그 아름다운 마음씨, 기억하겠습니다.”
“비꼬는 거 아니지?”
“그럴 리가요. 나이 지긋한 선배님이나 환자를 만나면 써먹으려고 마음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동년배분들은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절대 놀리려는 의도가 아니니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시바 새끼···.”
“하도 많이 들어서 정겹군요. 허허허.”
전투가 벌어지지 않으니 일행의 이동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동굴 벽에서 깜짝 튀어나오는 소수의 적을 제외하면 마주치지도 않았다.
앨런은 그 이유가 길잡이 역할을 맡은 시온이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또 눈을 감고 있었는데, 울퉁불퉁한 바닥에서도 전혀 미끄러지지 않았다.
‘마력 파장 때문인가?’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느껴지던,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알지도 못할 미세한 진동. 그것은 그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능력에 대해 자세히 캐묻는 건 실례였으니, 기억만 해두고 테일러와 이야기하려고 생각하는 그때.
“훗.”
작은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뜬 시온이 앨런을 보고 있었다. 비난의 용도가 아니라 뭔가 자신만만함 혹은 우쭐함이 담겨 있었다.
앨런은 그제야 자신이 시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탐구심의 발로였으나, 그녀는 다르게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공터에 야영지를 꾸린 앨런과 시바는 마석등 앞에서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시바 님은 어떤 이유로 탐험을 시작하셨나요?”
“‘님’자는 빼주시죠. 원래 병원을 지키는 임무를 맡을 예정이었는데 대사제 형제님이 내려가라고 보냈습니다.”
“솔직하시군요.”
“거짓을 보태서 입을 더럽힐 이유가 있겠습니까? 다른 형제님들을 물들이지 말라던데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되더군요.”
그 말을 들은 테일러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알지?”
“저처럼 신실한 수도승이 어디에 있다고 그러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알긴 아는 모양이네.”
테일러가 마침내 한 방 먹였다는 듯이 킬킬 웃었다. 다시 이어지는 대화 도중, 광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게 진짜입니까? 허···.”
“내가 노예라고 말은 했는데, 감독하는 놈들이 걔들 전부 계약서 쓰게 하고 내려보냈을걸. 원래 그런 것들이 그런 쪽으로는 치밀해. 지들은 법을 무시하면서, 다른 사람이 어기면 지랄하지.”
“그곳의 실태를 두 눈으로 확인해보겠습니다.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테일러는 앨런을 쳐다봤다. 연장자에다가 경험이 많아도 언제나 결정은 앨런이 내리게 했다.
“한 번 가보죠.”
“그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천재 검사님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조직 간의 분쟁이 발생하면 곤란하려나?”
세 명의 시선이 시온을 쳐다봤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여서 수락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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