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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68화 (68/193)

< 광산(1)-유료화 시작 >

‘개 같은 미궁. 개 같은 회사. 개 같은 새끼들.’

욕설이 마음속에서만 메아리쳤다. 진짜로 내뱉었다간 보호자 겸 감독관인 탐험가에게 처맞을 테니까. 사실 격무에 시달린 몸은 새로운 공기를 원해서 말할 틈도 없었다.

“헉, 헉, 헉···.”

거친 호흡이 터져 나왔다. 이러다가 폐가 폭발하진 않을까 걱정되지만, 지금은 산소가 우선이었다. 곳곳에 비치된 랜턴 때문에 돌가루와 먼지가 너무 잘 보여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중년과 청년의 사이에 있는 남자가 곡괭이를 높이 들었다가 다시 내려찍었다. 뾰족한 부분이 암석에 닿자마자 파각 부서지며 파편을 이리저리 날렸다.

남자의 기술이 좋아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왜 광산에서 땅이나 까고 있는 걸일까.

그건 아니었다. 곡괭이의 머리에는 금속으로 된 실이 부착되어있고, 자루를 따라 내려온 실은 남자의 손을 거쳐 상박까지 닿아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뾰족한 바늘이 피부에 박혀 있었다. 곡괭이는 남자의 마나를 잡아먹고 국소 범위에 [굴착]을 적용하는 마도구였다.

남자에게 마나하트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생명력을 마력으로 치환하는 물건이었다. 괜히 남자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한 게 아니리라.

“시이이벌. 뒤지겠어.”

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돌아봤다. 다행히 감독관 놈들은 소음 때문에 욕설을 듣지 못했다.

‘빌어먹을, 속았어.’

일정 구역을 뚫으면 계약 완료라고 했건만,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미궁에 있는 마석 광산은 길을 뚫어도, 암석을 부숴도 며칠이 지나면 복원했다. 동맥을 막는 지방처럼 다시 자리 잡는다는 의미였다.

반복되는 굴레라는 사실을 알아도 부숴야 했다. 그래야 드나들기 수월하고, 동시에 마석도 캘 수 있었다.

남자는 잘게 쪼개진 암석들을 노려봤다. 놓친 부분이 있을세라 꼼꼼하게 훑어내렸다.

‘제발 마석···.’

문제는 암석을 캐도 마석이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재생성된 암석은 상자 속의 어떤 고양이처럼 변덕이 심했다. 그래도 할당량을 채워야 하니 눈물을 머금고 부술 수밖에.

“핫산! 지금 농땡이 부리는 거냐?”

“아닙니다. 마석이 있나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할당량 미달이면 네가 문제지, 내가 문제냐? 처신 잘하라고.”

불법 입국자, 밑바닥 인생 혹은 거금에 매혹당한 사람. 처음에는 쉽게 만지기 어려운 돈에 혹해서 내려왔지만, 지금은 오직 살아남기 위해 채굴에 매달렸다.

먼지와 흙을 뭉쳐놓은 듯한 식감의 에너지바, 언제 세탁했는지 감도 안 잡히는 퀴퀴한 잠자리, 차라리 걸레가 훨씬 나을 정도의 옷.

모두 일당으로 사야 했다. 하루의 일감을 충족하지 못하면 당연히 봉급은 없었다.

속았다고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후회는 이미 늦었다는 증거니까.

차라리 죽을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지만, 그놈의 삶이 뭔지.

벽에서 지하인이 튀어나올 기미가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감독하는 새끼들을 향해 내달렸다. 개미굴 같은 광산에서 유일한 구명줄은 그놈들뿐이었다.

“나온다! 도망쳐!”

누군가의 외침에 광부들이 일제히 달아났다. 감독관들은 불룩 솟아오른 벽을 향해 내달렸다.

뒤로 빠진 광부들 사이에서는 자조 섞인 웃음, 안도의 한숨, 기쁜 얼굴이 뒤섞였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에는 쉴 수 있으니까. 물론 할당량을 채워야 하니 조삼모사 그 자체였다.

지하인을 막느라 감시가 소홀해져도 달아나는 이들은 없었다. 어차피 광산을 빠져나가도 캠프가 있고, 하늘의 기운을 받아 운 좋게 탈출한다 해도 지상까지 어떻게 도착할 것인가.

자유를 찾아 솔도스 연방에, 부를 찾아 메이즈시티에 왔지만, 그 어디에도 이들이 바라는 건 없었다.

*

일행이 19층까지 내려올 동안 전투한 횟수는 많아야 층당 한 번.

앨런은 기묘한 현상의 원인이 시온이라고 확신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지는 마력 파장이 마치 초음파처럼 적을 감지하고, 피해갈 최적의 경로를 찾는 것이다.

‘기감(氣感)이 극에 달한 전사들의 재주라고 했지. 재현할 방법이 있을까?’

시온은 브레이커 소속이니 계속 함께 다니기 힘들었다. 그래서 앨런은 그녀의 수법을 모방하려고 연구 중이었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곱게 보관하고, 새로운 구상에 매달렸다.

그러려면 시온을 자세히 관찰해야 하는데, 예민한 그녀가 앨런이 쳐다본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싫어하면 자제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어깨가 처음보다 솟은 것 말고는 딱히 반응이 없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점점 높아지기도 했고.

동물은 일부러 몸집을 부풀려서 상대를 위협하나, 시온의 몸짓에서는 그런 의도를 찾기 힘들었다.

앨런이 열심히 연구 중인 사이, 테일러가 시온 옆으로 붙었다.

“지금 광산 소유주가 누군지 알고 있나?”

“몰라, 관심 없어.”

“흠···.”

테일러는 딱히 기대 안 했다는 표정이었다. 매끈한 턱만 몇 번 쓰다듬고 대화를 이어갔다.

“하긴, 검 말고는 관심이 없으니까. 잘못하면 조직 사이의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도와줘도 괜찮겠어?”

“문제가 생기면, 목격자만 없으면 돼.”

어렸을 때부터 비밀요원으로 길러졌기 때문인지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경직된 분위기 속에 시온이 작은 돌을 던졌다.

“농담~.”

앨런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쾌활한 목소리를 내더니, 목 근처를 매만졌다. 변장 마도구, 홀로스킨 덕분에 약간의 조정을 거치자 인간에서 엘프로 변했다.

시온은 고민 중인 테일러를 두고 앨런을 바라봤다.

“어때, 감쪽같지?”

“머리카락 색과 귀 길이만 달라졌지, 얼굴은 똑같습니다.”

“······나도 알아. 진짜야.”

다시 목 근처를 주물럭대니 이번에는 주근깨 가득한 평범한 얼굴이 되었다. 훌륭한 엘프였다.

요즘은 다른 종족의 피가 섞인 사람이 많아서 혼혈, 순혈 구분 없이 그냥 엘프라고 불렀다. 그래도 외모만 보면 누가 누군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시온은 굳이 따지자면 순혈에 가까웠다.

“이러면 누가 봐도 모를 거야. 혹시 그 눈에는 여전히 내 모습이 보여?”

“아, 그때 공방 거리···.”

시온의 홀로스킨은 앨런에게 간파당한 적이 있었다. 마도구의 방비가 튼튼해졌지만, 앨런의 눈 또한 별문자로 강화한 상태라 어렵지 않게 내부를 꿰뚫을 수 있었다.

“보이긴 하는데 다른 사람은 힘들거나 시간이 걸릴 겁니다. 전투가 벌어졌는데 태평하게 투시할 여유는 없겠죠.”

“흐응···.”

시온이 비음을 흘렸다. 뭔가 불만족스러운 손짓으로 홀로스킨을 매만지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마침 시바가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일?”

“저기 형제자매님들. 아까부터 전투를 상정하고 대화하시는데, 우리는 법과 도덕을 아는 교양인입니다. 불공정계약이 진짜인지 파악도 해야 하고, 막상 진실이라 해도 함부로 공격할 순 없습니다.”

“물러.”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땅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부 형제자매입니다. 어머님을 믿든 안 믿든 상관없이요.”

지하인과 오토마톤을 아작낼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이제야 좀 성직자다운 모습을 보였다.

“앨런 형제님.”

“듣고 있습니다.”

“제가 미궁탐험가에 대해 편견이 있었습니다. 욕심 많고, 참을성 없고, 잔인하고. 광산의 진실을 밝히려는 행위는 문제의 소지가 많고, 해당 기업과 불편해질 수도 있는데 이리 쉽게 동행할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랑카 아십니까?”

“물적, 인적 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가난한 나라라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형제자매님 몇 분도 그곳에서 어머님의 뜻을 전파하고 있을 겁니다.”

정보 왜곡은 성직자에게도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앨런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솔도스 연방의 식민지 비슷한 역할이라고.

앨런은 랑카에 대해 간략하게만 설명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시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동안 수련만 하다 보니 세상사에 너무 무관심했나 봅니다. 그나저나 악의를 경험하고도 선의를 행하시는 형제님의 마음이 저를 감동하게 하는군요.”

팔짱을 낀 테일러가 툭 내뱉었다.

“땡중. 자책은 그만. 여기는 미궁이야.”

“맞습니다. 일단 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 접근할 생각입니까? 분명 다가가면 사라지라고 할 텐데.”

스릉!

시바의 말이 끝나자마자 칼과 검집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이 누구인지는 굳이 찾아볼 필요도 없었다.

“자매님, 생각보다 많이 과격하시군요.”

“시원시원하다는 칭찬 많이 들어.”

“칭찬이 아닙니다.”

“그럼 말고.”

일단 시바가 계획을 읊었다.

“수도승은 이런저런 봉사도 많이 다닙니다. 그러니 관리자에게 말하면 캠프로 들어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말랑말랑한 계획에 테일러가 동의할 리가 없었다. 얼른 끼어들어서 시바의 생각을 교정해줬다.

“봉사? 메이즈시티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까막눈이구만. 차라리 동료가 다쳐서 좀 쉬다 올라가겠다고 해. 그 대가로 다친 사람 있으면 치료해주겠다고 하고.”

“곱게 늙으셨군요. 쌓인 연륜이 느껴지는 방안입니다.”

“단어 선정이 뭔가 기분 나쁜데···.”

“여전히 부족합니다.”

앨런이 의견을 내자, 세 쌍의 눈이 집중했다.

“19층에서 지상까지 도달하는 시간만 4일, 무리하면 2~3일 정도 걸립니다. 물론 전투가 없다는 가정입니다. 그런 거리니 성법의 가치는 훨씬 뛰어오릅니다.”

“형제님. 성법은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베푸는 겁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입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치료해준다는 성직자는 믿을 수 없지만, 돈을 요구하는 수도승은 훌륭한 거래처입니다.”

“앨런 말이 맞다. 내가 그 부분을 간과했군. 미궁에서 무욕을 추구한다? 엄청나게 수상한 탐험가니 항상 감시해야 하지. 계획은 짰으니, 이젠 꾀병 부릴 사람이 필요한데···.”

누가 다칠 것이냐. 당연히 그 대상은 테일러였다.

“나? 왜?”

“탈부착이 가능하니까요.”

눈 깜짝할 사이에 앨런이 테일러의 왼쪽 하박을 떼어냈다. 시바의 눈이 동그래지고, 시온도 잠깐 집중할 속도였다.

“아니, 벌써?”

“평소에도 제가 정비하니 당연한 결과죠. 신경은 놔뒀으니, 필요하면 장착하고 나사만 끼우시면 됩니다. 급하면 그냥 써도 되는데, 그러면 안 떨어지게 조심하세요.”

떼어낸 팔은 수레로 들어가고, 테일러는 붕대를 칭칭 감았다. 현실성을 더하려고 일부러 피를 묻히기도 했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되새긴 일행은 광산 캠프가 있을 공터로 움직였다. 공터에 진입하기 전, 회사의 로고가 보였다.

“록하트 에너지기업.”

테일러가 그들의 정체를 말할 무렵, 저쪽에서도 이쪽을 발견했다.

“정지. 여기는 록하트의 캠프다. 알았으면 돌아가라.”

“아, 저는 모신교의 수도승입니다.”

미리 알려준 대로 시바가 앞으로 나섰다.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일상생활의 경험을 녹여낸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수도승이라는 말에 방문을 허락한 관리자는 잠깐 대화를 나누더니 악수를 했다.

“대가는···.”

“회복약보다 저렴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아, 저는 마석이 좋습니다.”

“뭘 좀 아시는 분이군.”

마석은 무기명채권보다 상위의 재화. 거래 현장을 급습하는 게 아니라면 추적이 불가능했다. 대가와 대가가 오가고, 앨런 일행은 캠프 외곽에 자리 잡았다.

“저쪽 구역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침범하면 경고 없이 공격하니 알아서 사리시고.”

설명을 마친 직원이 사라지자, 수레에서 신세를 지던 테일러가 훌쩍 내려왔다.

“슬쩍 보니 외부 구역은 보여주기다. 누가 봐도 잘 먹고 잘 잔 일꾼들만 돌아다니는군.”

“그럼 슬슬 작전 시작하겠습니다.”

텐트 안에 누운 앨런이 눈을 감자, 근처에 서 있는 상자 서랍이 열리더니 거미 하나가 튀어나왔다. [무음], [동화], [은밀]의 은신용 룬문자 조합을 부여받은 녀석은 순식간에 텐트에서 사라졌다.

시바가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신기하군요. 마법사 같습니다.”

“그쪽 친구들이랑 결이 다르긴 해. 그래도 대단하지?”

“왜 테일러 형제님이 뿌듯해합니까? 진짜 손자입니까?”

“그건 아냐.”

시온의 머리는 거미가 이동하는 방향으로 계속 움직였다. 엄청난 탐지력이었다.

앨런이 거미를 조종하는 사이, 시바가 시온에게 물었다.

“지금에서야 묻는데, 시온 자매님은 왜 도와주시는 겁니까?”

“회장님이 조사하래.”

“네? 그럼 저에게 동행 권유는 왜 하셨는지···.”

“조사도 하고, 경험도 시키고. 같이 처리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안 돼?”

가만히 듣고 있던 테일러가 끼어들었다.

“당연히 안 되지. 광산 조사면 비밀 임무가 맞을 텐데, 외부인을 왜 데려오나?”

“···시간 아깝잖아.”

“검 말고 폐급인 건 여전하구나.”

“나쁜 말.”

고개를 홱 돌린 시온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 광산(1)-유료화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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