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산(2) >
거미 로봇, 지금은 손바닥 크기지만 덩치를 키우면 다각(多脚) 전차로도 불리는 녀석이 다각다각 움직였다. [무음] 덕분에 기계 다리가 벽을 짚는 소리는 퍼지지 않았다.
광산은 개미굴처럼 복잡해서 거미의 속도로 내부를 탐험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했다. 설령 누가 텐트를 방문해서 물어도 피곤해서 눈을 붙였다고 설명해 줄 테니 그건 괜찮았다.
광산 내부에 안개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랜턴을 켜야 했을 텐데, 그러면 잠입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카메라 아이가 기이잉하고 움직이면, 앨런에게 전송되는 영상도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부서진 암석이 서서히 재생하고 있네.’
가루, 파편 등 어떤 형태라도 상관없었다. 슬라임처럼 바닥을 기고, 더 큰 조각에 달라붙어서 큰 덩어리를 이뤘다.
‘찢어진 살이 회복하는 모습 같다.’
그 정도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어떤 마력의 작용인지, 무슨 신비가 그 안에 담겼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호기심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아, 돌아다니기 귀찮네.”
코너 너머에서 들려온 소리에 천장에 매달린 거미가 몸을 바짝 낮췄다. 곧 록하트 소속 탐험가들이 아래로 무리 지어 지나갔다.
“그냥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하면 안 되나? 그러면 하루에 한 번씩만 지하인 청소하면 되잖아.”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해. 지상에서 너무 많이 데려와서 이목이 쏠리면 조사관이 내려올 거야.”
“걔들이 정의감으로 그러겠어? 뒷구멍으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견적 내러 오는 거겠지.”
“모신교 수도승이 캠프에 방문했다는데 들었어? 머무는 조건으로 치료해준대.”
“손목 인대가 뻐근하니 한 번 가봐야겠다.”
“왜 다쳤는데? 싸우다가?”
“아니. 광부가 답답하게 굴어서 대가리를 후려쳤는데 각도가 살짝 어긋나서.”
“어휴. 병신 새끼. 어쨌든 인원 이상은 없으니 다음 근무자 오면 교대하자.”
그렇게 말한 탐험가들은 코너 근처에 기대거나 주저앉아서 농땡이를 부렸다.
비인간적인 대화를 모두 들은 거미가 몸을 일으켰다. 아까보다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그들의 머리 위를 통과했다.
‘저 안쪽에 있나 본데.’
광부만 확인했다고 모든 조사가 끝난 건 아니지만, 일단 한 걸음씩 내디딜 필요가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열 명이 누워있는 작은 방이 나타났다.
‘클리닉보다 대우가 심한데.’
노박은 그나마 침대는 줬는데 여기는 낡은 모포와 삭은 베개가 전부였다. 방도 워낙 좁아서 발을 쭉 펴고 자는 사람이 없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움 때문에 다닥다닥 붙어있기도 했고.
이런 방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앨런은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관찰했다.
‘백 명 정도.’
다른 곳에 더 있을지도 모르나, 일단 보이는 사람 수는 그랬다. 앨런은 예전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
‘밀입국자 혹은 꿈을 꾸다 잡힌 자들.’
멍청하다고 매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더 나은 미래를 원하는 게 어찌 문제란 말인가. 속인 사람 잘못이지.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던 거미가 어느 지점에서 딱 멈췄다. 천장에 매달려서 카메라 아이만 움직였다.
‘익숙한데. 누구였지?’
앨런이 기억을 빠르게 더듬었다. 술집, 실종, 사진, 트럭.
‘아···.’
일부 장면이 선명해졌다. 지금 바닥에 누워서 덜덜 떠는 남자는 메이즈시티에 올 때 함께했던 아저씨와 비슷하게 생겼다. 아들이라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 흡사하게 생겼다.
‘노화가 진행된 것처럼. 그건 아마도···.’
거미의 눈이 구석에서 멈췄다. 채굴을 위한 곡괭이 그리고 피가 묻어 있는 바늘.
랑카에서도 마나배터리를 충전하는 노동자들은 전부 비슷한 바늘을 팔뚝에 꽂았다. 마력이 부족하면 생명력을 치환해서 채우기에, 그들은 항상 피로에 시달렸다.
수명을 대가로 돈과 편안함을 얻은 것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고급 노동자라고 좋아했고.
바닥까지 기어 내려간 거미가 남자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한번 얼굴을 확인하고 뺨을 건드렸다.
“···.”
고단한 일과를 마쳤는지 반응이 없었다.
톡.
“크허어.”
툭.
“크으음.”
딱!
“으···, 뭐야, 돌?”
남자가 잠에서 깨어난 순간, 거미의 꽁무니가 목 뒤를 찔렀다.
“···!!!”
순식간에 해킹당한 남자는 마비 독에 당한 환자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대기업의 상위 라인 제품도 아니고,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뇌 확장 장치 방화벽은 생각보다 뚫기 쉬웠다.
심지어 무선 해킹도 아니고, 아예 케이블을 포트에 꽂아버렸으니까.
남자가 놀랄 틈도 없이, 뇌 확장 장치를 통해 어떤 말이 들려왔다.
[압둘 씨 아들인 핫산 맞으시죠? 반응이 너무 크면 들킬까 봐 해킹했으니 놀라지 마세요. 통화한다는 느낌으로 말하면 됩니다.]
[아빠가 보낸 해결사입니까? 제발 구해···. 아니지, 힘들 겁니다. 기업 놈들이 너무 많아서 어려울 거예요.]
아저씨에게 들었을 때는 철없는 사람 같았는데, 고난이 그의 정신을 성숙하게 했는지 타인을 걱정할 줄도 알았다.
[자세히는 말하지 못해도 방법이 있습니다.]
앨런은 일단 공수표를 날렸다. 아무리 가능성 있는 일이라도 당사자가 희망이 없다면 실패하기 마련, 그러니 의지를 불어넣어야 했다.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려면 일단 내부 구조를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광산 깊은 곳에 출입 금지 구역도 있는데, 그 정보도 도움이 될까요?]
[당연합니다.]
그 안에 소중한 물건이라도 있으면 인질로 삼을 수 있었다. 어쨌든 앨런의 설득이 효과적이었는지, 핫산이 동아줄을 붙잡았다.
[제가 알고 있는 길은 막혀서 지금 진입하긴 어려울 겁니다.]
[광산은 계속 재생하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네. 그러니 내일 일과 때 제가 구멍을 파면 그 안으로···.]
*
눈을 뜬 앨런은 이쪽을 보고 있는 테일러와 시선이 마주쳤다.
“안 주무셨어요?”
“태평하게 어떻게 자겠어. 조사는 잘 됐어?”
앨런은 운 좋게 핫산과 접촉했음을 알렸다. 광산 안쪽에 출입 금지 구역이 있다는 사실도.
“어떻게 대화했는데?”
“일단 방화벽을 뚫어서 육체 통제력을 빼앗은 뒤에 천천히 설득했습니다.”
“오, 잘했···다가 아니라. 왜 이리 담담해?”
“해킹 자체는 별일 아니었습니다. 핫산 씨도 쉽게 이해해줬고요.”
“그게 쉬웠으면 시민들은 맨날 해킹당해서 계좌가 텅텅 빌 거다. 뭐, 미궁에서 혹사당하고, 점검도 못 받았으니 그럴 수 있긴 하지.”
시온은 이 대화에 관심이 없고, 시바는 문외한으로 보여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재밌군요. 저도 뇌 확장 장치가 있긴 한데 그런 위험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방화벽은 마법저항력의 강함과 비례하는 구조라, 개인의 경지가 높아지면 해킹도 어려워집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테일러가 시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성직자가 확장 장치 쓸 일이 있나?”
“저희도 사람입니다. 통화, 삼라만상 접속 등 문명의 편의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꽂혀있는 기억수정은? 짝짓기 동영상이라도 되나?”
“형제님,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시군요. 이건 경전···.”
“설마 외우기 귀찮아서?”
테일러의 발톱이 날카롭게 번뜩였고, 시바는 눈을 감고 못 들은 척했다.
*
다음날, 핫산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터로 향했다. 광부들이 좀비처럼 걸어 다니고, 거미는 천장을 다각다각 기어 다녔다.
핫산은 심호흡을 몇 번 하더니 곡괭이로 바위를 강하게 찍었다. 마스크도 없어서 돌가루가 목구멍에 내려앉았지만, 의욕은 꺾이지 않았다.
마침 지나가던 감독관 하나가 말을 걸었다.
“오늘따라 열심이네, 오늘도 농땡이 피우면 지하인이랑 일대일로 붙여주려고 했는데.”
“특식을 먹으려면 많이 캐야죠.”
“너희 같은 돼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게 똑같냐. 건설적인 사고를 지녀야 발전을 하지. 항상 일차원적인 욕망만 채우려고 하면 되겠어?”
모든 기회를 막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핫산도 알고는 있지만 헤헤거리며 굽실거렸다.
마침내 바위벽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리고, 그 너머로 다른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직진하면 출입 금지 구역이 나와요.”
톡.
핫산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발을 건드렸음을 느꼈다. 평소처럼 눈을 거슴츠레하게 뜨고 곡괭이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거미는 통로를 빠르게 통과했다. 광부들이 있는 곳과 그리 멀지도 않은데, 이쪽은 인기척이 아예 없었다.
더 깊게 들어간 앨런은 수상한 장소를 발견했다. 평범한 통로를 잘 무장한 탐험가 두 명이 막고 있었다.
‘저기구나.’
앨런의 생각대로 그쪽 통로로 들어가자 기이한 시설이 나타났다. 공터 안에는 처음 보는 기계가 가득했고, 바닥과 천장에는 굵은 케이블이 어지러이 얽혀있었다.
케이블을 따라 눈을 움직이니 남자가 있었는데, 그가 누워있는 수술대 밑에 케이블이 다닥다닥 연결되어있었다. 일반인은 아니었다.
‘마법공학자용 의수···.’
연구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남자의 주변에 몰렸다. 무슨 실험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마석과 마정석을 구별하는 방법은 쉬웠다. 광택이 있냐 없냐. 그걸 노리고 광택제를 뿌리는 사기꾼들이 있긴 했다.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여기는 마석 광산이다. 그런데 마정석이 보였다.
‘실험에 쓰려고 준비한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앨런은 다시 한번 공터를 훑어봤다. 마석이 담긴 통, 수술대, 마정석이 담긴 유리관이 하나로 연결되어있었다.
‘마치 마정석을 만드는 실험을 하듯이.’
그 증거로 수술대에 묶인 남자가 비명을 지르니, 마정석의 광택이 조금이나마 강해졌다.
왜 마법공학자가 여기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마법공학이 없었다면 마법사가 되었을 가능성을 품은 사람이니, 실험체로 사용하기 딱 좋았다.
드높은 지성, 마력의 정밀조작, 뛰어난 마력감응력, 거대한 마나하트 등 마법사가 되기 위한 조건 중 몇 개가 빠져있을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다른 능력은 멀쩡할 테니까.
눈을 뜬 앨런은 그 사실을 테일러에게 말했다.
“그린블러드에서 마법공학자를 납치했었죠. 배후가 몇인지 모르겠으나, 최소한 하나는 알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걸 보니, 범인 중 하나가 록하트구나.”
“마석을 마정석으로 바꾸는 실험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마석과 마정석은 에너지의 총량이 같아도 가치가 완전히 달랐다. 금과 은이 같은 무게라도 차이가 어마어마하듯이.
얼마나 대단한지 설명하자면, 방금 죽은 자도 살린다는 전설의 영약인 엘릭서를 신의 피, 마정석은 신의 살점이라 불렀다.
만물의 작용에 마정석을 투입하면, 사람이 원하는 대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물 탄 포션에 마정석 가루를 넣었더니 원본보다 좋아진다든가.
“수류탄에 넣었더니 다이너마이트보다 화력이 강해진다든가. 여러 경우가 있는데, 대충 아시겠죠?”
시바가 고개를 끄덕이고, 테일러는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왜 하필 폭발로 비유를 드니? 사람 불안하게···.”
“설명을 위한 도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표정의 테일러를 겨우 진정시키니, 스릉 하고 검이 살짝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시작하자.”
“잠깐만요. 시작하긴 뭘 시작합니까.”
“회장님은 미궁 탐험에 방해되는 것들은 모두 치워야 한대. 그래야 수질이 좋아져서 후발주자들이 빨리 큰다고.”
인격자나 할법한 소리였다. 브레이커는 탐험가 조합 중에 가장 신뢰도 높은 조직. 회장의 영향이 없을 수 없었다.
“알았으니 일단 진정하고 앉으세요.”
시온은 아쉬운지 자꾸 스릉스릉 소리를 냈다. 재미 들렸나 싶어서 한참을 쳐다보다가 눈을 돌렸다.
앨런이 예상하는 시온의 실력이라면 그냥 들이박아도 가능성이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최후에 서 있는 사람은 그녀 혼자가 될 거라는 점이다.
그녀 혼자라면 불리해도 치고 빠져서 갉아 먹을 수 있지만, 함께 온 일행이 있으니 그것도 힘들었다.
“이럴 때를 위해 계획과 전략이 있습니다. 한 통 가득 흘릴 피를 한 방울로 줄일 수 있죠.”
“심심해.”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앨런은 시온을 달래며 왼쪽 눈을 감았다. 지금도 거미는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특히 무기고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조립과 분해는 의미만 다를 뿐 하나의 영역이다. 앨런은 조립에 일가견이 있었고, 그 뜻은 분해 능력도 뛰어나다는 의미였다.
< 광산(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