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71화 (71/193)

< 광산(4) >

“이게 어찌 된 일이냐?”

테일러의 물음에 앨런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핫산이 그러지 않았던가. 마석 수송대는 얼마 전에 방문했다고.

“교대도 아직 남았다고···. 아, 실험실 때문에···.”

‘실험실’이라는 짧은 단어를 포착한 테일러가 이를 드러냈다.

“방위군 새끼들. 아무리 탐험가나 기업에 간섭 안 하는 게 방침이라고 하지만···. 아니지, 똥구멍으로 돈을 처먹어서 그런가?”

그 사이, 시온은 캠프의 병력과 일행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모습이 무언가를 계산하는 사람 같았다. 이번에는 캠프로 오는 통로를 슬쩍 보더니 낮게 말했다.

“저긴 내가 갈게. 위험한 사람이 느껴져.”

“얼마나 위험···.”

앨런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시온은 사라지고 바람만 남았다. 그조차도 빠르게 흩어졌다.

시온이 사라지자, 관리자의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았다. 셋 정도는 아무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3명 그리고 30명의 대치. 시바와 테일러가 한마디씩 내뱉었다.

“오늘이 어머님을 뵈러 가는 날이군요. 극락에는 발효 음료가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재수 없는 소리 그만하고 정신 제대로 붙잡아.”

“하지만 형제님···.”

“주둥아리를 그냥 확! 믿는다.”

앞말은 시바에게, 뒷말은 앨런을 보며 말한 테일러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신병처럼 얼타던 시바도 눈을 질끈 감고 테일러의 뒤를 따랐다.

적이 얼마나 있던, 앨런의 마음은 고요했다. 눈동자만 슬쩍 움직여서 캠프 곳곳에 세워진 가로등을 바라봤다.

가로등은 단순히 조명의 역할만 하지 않는다. 또 다른 기능은 아군으로 인식한 존재에게 베풀어주는 강화 마법이었다.

점점 강해지는 가로등의 빛이 주변을 밝게 비췄다. 2명과 30명이 부딪치기 직전, 빛줄기가 30명을 뒤덮었다.

“좋아.”

“건방진 새끼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응?”

그제야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앨런은 가로등에 새겨진 [가속]과 [강력]을 [둔화]와 [약화]로 바꿔 놓은 지 오래였다.

알았다면 저항력을 끌어올려서 강화 술식을 거부했겠지만, 이미 온몸으로 받아들인 후였다.

준비 시간은 짧고 해야 할 일은 많았기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테일러는 느릿해진 적들의 모습을 보며 자동 샷건을 들어 올렸다.

쾅쾅쾅!

묵직한 반동이 개조를 마친 육체마저 뒤흔들었다. 무수히 많은 납탄이 적들을 향해 쏘아졌다.

사람과의 전투는 까딱 잘못하면 원거리 화력전으로 끝나기에 방어막이나 역장 방패가 필수였다.

록하트의 병력도 그 사실을 알기에 버클러를 닮은 역장 방패를 하나씩 갖고 있었다. 그들은 샷건을 보자마자 방패를 앞세웠다.

“고작 샷건 하나로?”

구경이 수상할 정도로 커 보이나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쾅!

단 한 발에 방어막이 깨지더니, 다음 총성에는 납탄이 몸을 두들겼다.

“으악!”

“왜 이래? 분명 마나팩을 오늘 아침에 갈아 끼웠는데···.”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구멍 뚫린 역장 속으로 마탄 하나가 쏙 들어와서 폭발했다.

콰앙!

착탄지점 근처에 있던 병력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방어복 때문에 멀쩡한 사람도 꽤 있으나, 그런 사람조차도 팔다리 하나쯤은 사라진 상태였다.

가중되는 혼란, 피어오르는 연기 속으로 시바가 뛰어들었다. 작은 키와 짧은 다리로도 통통 튀어 다녔다.

“회개!”

“속죄!”

“참회!”

단어를 기합처럼 내뱉을 때마다 사람이 한 명씩 쓰러졌다. 바닥에 풀썩 쓰러진 적들의 턱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때로는 시바의 공격에 대응하는 자들도 있었다.

“땅딸보 새끼가!”

“저의 수양은 그런 말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나소드가 시바의 얼굴을 찔러왔다. 몸을 앞으로 살짝 굽히는 더킹으로 검을 피하고, 권갑을 낀 손으로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뿌득!

드워프의 손아귀 힘은 안 그래도 강력한데, 수행까지 더해졌으니 얼마나 위력적이겠는가. 검사의 손목에서 무언가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바는 동시에 손목을 회전시켰다. 팔을 붙잡힌 검사의 몸이 아래로 당겨지며 머리도 함께 딸려왔다. 시바의 어깨에 장전된 주먹이 그대로 발사됐다.

종을 때리는 소리가 3번 들렸다. 남들보다 2대 더 얻어맞은 검사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이야아!”

마침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적 하나. 시바는 검사의 발목을 붙잡고 무기처럼 휘둘렀다.

깡!

얼굴에 매직웨어를 장착했는지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다시는 드워프를 무시하지 마시오.”

시바는 축 늘어진 둘을 놔두고 앞으로 몸을 날렸다.

버프를 걸려고 했더니 오히려 디버프가 걸리고, 마나팩은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금방 비어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펑!

앨런을 향해 겨눈 마탄 발사기가 성대하게 폭발했다. 하나가 터지니, 탄창에 들어 있던 다른 마탄까지 뒤이어 성질을 부렸다.

뜨끈한 공기 속에서 관리자는 앨런을 노려봤다.

‘관리 소홀도 정도가 있지···.’

납품 과정에서 약간의 비리가 있었지만, 이렇게 엉망인 물건을 받은 기억은 없었다. 지금 사태는 누군가의 수작임이 명백했다.

전신을 개조한 노인, 치료사 주제에 달려드는 드워프가 그리 똑똑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당연히 저 뒤에서 화력을 지원하는 마법공학자였다. 전장의 지휘자라도 되는지 무심하게 훑어보는 모습에 속이 뒤틀렸다.

‘DT-10에 캠프 그리고 광산까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자신의 커리어는 끝났다. 이건 자신이 속한 라인의 윗선에서도 보호해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감정에 호응한 마나하트가 들끓었다. 전신 구석구석 마나가 스며들고, 양팔에 부착한 의수도 부풀어 올랐다.

지면을 강하게 박찼다. 목표는 일직선 끝에 있는 저놈.

“안 돼!”

노인 흉내를 내는지, 아니면 진짜 노인인지 모를 개조 인간이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표정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소중한 존재가 망가지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노인은 협공당하는 상태라서 자신을 막을 여력이 없었다.

퐁!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저 소리였다. 함께 쏘아진 마탄이 캠프를 불바다로 만들고 혼란을 부추겼다.

관리자는 앞으로 손을 뻗었다. 보통 마탄은 어떻게 폭발하는가. 일정 거리 이상 비행해야 내부 신관이 정렬되고, 착탄의 충격 때문에 폭발한다.

그러니 부드럽게 흘리면 피할 수 있었다. 리플렉스 액셀로 가속된 시간 속에서 감독관의 손이 마탄의 옆을 가볍게 쥐었다.

동시에 눈은 이쪽으로 달려오는 드워프를 목격했다. 치료사라고 해서 캠프에 들였더니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손을 옆으로 뿌리자 마탄이 드워프를 향해 날아갔다.

콰앙!

등 뒤에서 뜨거운 열기가 덮쳐왔다. 그래도 감독관은 웃었다. 이제 마법공학자와 자신을 막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덤덤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애송이. 귀를 잡아 뜯고, 눈알을 파내고, 이빨을 뽑아도 그럴 수 있을까.

잔혹한 미소를 머금은 관리자는 시야 한쪽이 붉게 물들었음을 깨달았다.

‘이 빛을 어디에서 봤더라?’

그걸 떠올리기도 전에 시뻘건 열선이 관리자를 긋고 지나갔다.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두 다리가 꿰뚫림과 동시에 익어버렸다.

앨런은 머물던 텐트에서 머리만 살짝 내민 표범을 힐끗 보고, 자신의 앞에 엎드린 관리자를 내려다봤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는지 이쪽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빌어먹을···.”

깡!깡!

앨런의 화답은 거친 쇳소리였다. 높게 치켜든 지팡이가 관리자의 머리를 수차례 두들겼다. 골격을 금속으로 바꿨는지 청명한 소리가 났다.

관리자가 쓰러짐과 동시에 전투가 끝났다. 테일러가 너덜너덜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나도 표범을 깜빡 잊고 있었네.”

“치료가 필요하신가요?”

“보면 몰라?”

“매직웨어는 괜찮아 보이는데, 육체 부분은 제가 판단하기 어려워서요.”

테일러는 앨런다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대자로 누워있는 시바가 있었다.

“지금은 무리야.”

“시바 씨가 크게 다쳤나요?”

“아까 기억 안 나? 네 마탄을 맞고 저렇게 됐어. 그걸 우리는 팀킬이라고 부르지.”

“그건 관리자가···.”

앨런은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마탄을 쏜 사람은 자신이었으니까. 조용해진 전장 위로 테일러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이니 조금 지나면 일어나겠지. 드워프라 엄청 튼튼하긴 하네. 그런데, 힐러가 쓰러지면 치료는 누가 해주냐고.”

그 시각, 핫산은 몇몇 광부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앨런이 약속을 지켰는지 감시자 숫자가 30% 이하로 줄어들었다.

밖에서 벌어진 소란 때문에 경계가 삼엄해지긴 했으나, 인력이 줄어드니 구멍이 숭숭 뚫릴 수밖에 없었다.

핫산은 팬티 속에 숨겨둔 마석을 꺼내서 곡괭이의 홈에 끼웠다. 그와 동시에 자루가 진동했다.

‘효과가 있다.’

침을 꿀꺽 삼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채굴이 멈추니 감시자 하나가 핫산의 뒤로 다가왔다.

“너, 이 새끼! 죽고 싶어!”

캠프에서 전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기에, 감독관의 언성은 평소보다 날카로웠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지?”

평소보다 인내의 끈이 짧아진 남자가 핫산의 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일단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다른 광부에게 본보기를 보일 생각이었다.

“평소에 좋게좋게 넘어가니까 만만해 보여?”

“좋게? 우리 피 빨아서 사는 놈들이 할 소리야!”

“이게 미쳤···. 끅!”

감독관의 눈이 뒤집혔다. 원인은 명치에 틀어박힌 곡괭이. 일정 속도 이상의 물체가 접근하면 자동으로 방어막이 펼쳐져야 하는데. 마도구는 묵묵부답이었다.

핫산은 떨리는 손으로 자루를 강하게 붙잡았다. 사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는데, 곡괭이가 방어판까지 뭉개버릴 줄은 몰랐다.

아직 남아있는 감독관들 사이에 당연히 난리가 났다.

“저거!”

“저 새끼 죽여!”

이곳은 강제 노역장. 공포로 광부들을 조종하기에 위에서 군림하는 이들은 절대 얕잡아 보이면 안 됐다. 이쪽이 얻어맞으면, 저쪽은 갈기갈기 찢어놔야 했다.

감독관 하나가 고무탄이 장전된 총을 버리고 마나소드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팔다리를 잘라서 제대로 경고할 속셈이었다.

“윽!”

그러나 그의 바람이 제대로 성사되는 일은 없었다. 몸을 낮추고 있던 광부가 벌떡 일어나서 그의 등에 곡괭이를 휘두른 것이다.

또 다른 감독관이 쓰러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동안 억눌려 왔던 감정이 일순간에 터져 나왔다.

“이런 새끼들한테 붙잡혀 있었다고? 제대로 작동하는 장비가 하나도 없는 놈들한테?”

“죽여! 죽여!”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삐쩍 곯았어도 100명에 달하는 사람이 뿜어내는 기세는 무시무시했다. 감독관들은 무엇을 해보기도 전에 바닥에 쓰러져서 몰매를 맞았다.

방어막이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무수한 곡괭이 세례를 버텨내진 못했다.

“이대로 지상까지 탈출합시다!”

“함께 가면 문제 없다!”

기세 좋게 광산을 빠져나온 광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멈춰 섰다. 엎드려 있는 DT-10이 그들의 발에 제동을 걸었다.

DT-10의 정체를 모르는 자들은 없었다.

“저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으아!”

“아냐, 아냐! 잘 봐! 멈췄잖아!”

급격하게 번지던 공포가 누군가의 외침에 겨우 진정됐다. 광산 입구가 좁아서 망정이지, 100명이 전부 저걸 목격했으면 그것마저 힘들 뻔했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광부들이 캠프를 천천히 관찰했다. 저승사자처럼 생각했던 기업의 병력이 전부 누워있고, 그 중앙에는 대화를 나누는 앨런과 시온이 있었다.

“지원병력은요?”

“이젠 없어.”

앨런의 눈이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분명 위험한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시온의 겉모습은 멀쩡했다. 잠깐 조깅 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분명 위험하다고···.”

“응. 나는 빼고.”

앨런이 쳐다보는 시간에 비례해서 시온의 어깨가 조금씩 상승했다.

< 광산(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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