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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75화 (75/193)

< 근위병(3) >

“달려! 전리품에는 눈독 들이지 마!”

궁전에 진입한 테일러가 가장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그가 가장 선두, 시바가 가운데, 수레에 탑승한 앨런이 제일 뒤였다.

처음 마주친 장소는 격자 형태의 복도였다. 제법 넓어서 트럭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가도 될 정도였다.

쾅!

주변을 모두 둘러보기도 전에 폭음이 들렸다. 테일러의 자동 샷건에서 탄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떨어진 탄피가 쨍그랑 소리를 내기 전에 또 폭발이 발생했다.

“자폭벌이다!”

어른 주먹보다 커다란 벌이 나타나서 사방을 날아다녔다.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이 영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내구도가 형편없고 불안정한지, 작은 납탄이 몸을 두드리면 바로 폭발했다. 앨런이 다루는 거미보다 위력은 약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였다.

아무리 가랑비라도 옷은 젓는 법. 테일러가 길을 뚫는 사이, 시바가 성법 주문을 외웠다.

“자애로우신 어머니, 모진 풍파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자식들을···.”

펑!

시바 근처에서 벌 하나가 터졌다. 피해는 없었지만, 집중력과 함께 주문도 깨져버렸다.

“이다음이···. 모르겠다. [자애의 포옹]”

시바는 주문을 생략하고 바로 성법을 펼쳤다. 그를 중심으로 뿜어진 하얀 파동이 앨런과 테일러의 몸 위를 코팅하듯이 덮었다.

앨런은 잠시 시바를 향해 눈길을 줬다가 돌렸다. 과정이 많이 생략되었으나, 어쨌든 성공했으니까.

과정이 많이 생략된 하얀 방어막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가끔 화망을 뚫고 몸에 달라붙는 벌이 있었는데, 폭발해도 따끔한 정도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여유가 생긴 앨런은 자폭벌의 비행경로를 파악, 놈들이 어디에서 몰려오는지 확인했다.

‘안개 너머, 저기다.’

검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는 않으나, 대충 위치는 가늠했다.

‘전방 200m, 천장.’

마탄 발사기를 꺼낸 앨런은 정면을 조준하고 무효화 마탄을 발사했다. 쏘아진 마탄은 안개 속으로 파고들었고, 곧 파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무언가가 떨어지는 진동도 느껴졌다. 어차피 달리는 도중이었기에 그 정체는 곧 확인할 수 있었다.

황소처럼 커다란 벌이 바닥에 떨어져서 다리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꽁무니에 붙은 기관총을 보면 어떻게 싸우는지 대충 짐작이 됐다.

천장에는 벌집이 있었는데, 무효화 마탄을 직격으로 맞았는지 자폭벌들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가끔 바닥에 떨어져서 폭발하긴 했지만 큰 위협은 아니었다.

테일러는 전리품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형제님! 그냥 가십니까?”

“가만히 있으면 계속 몰려들어! 내가 멈추라고 할 때까지 움직여!”

테일러의 말대로였다. 뒤를 힐끔 바라본 앨런은 안개 너머에서 무수히 많은 날갯짓 소리를 포착했다. 발사기를 뒤로 겨누고, 다시 발사.

쾅!쾅!쾅!

무효화 마탄에 당한 벌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연속적인 폭발을 일으켰다.

복도를 빠져나가자, 시바가 목소리를 높였다.

“도시와는 완전히 다르군요!”

“궁전 밖에서 나타나는 적들은 굉장히 약했죠. 대신에 궁전에 몰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나마 여유 있는 앨런이 대답했다.

“다음은 어디로 갑니까?”

“그건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 말대로였다. 몰려오는 오토마톤을 보다가 가장 밀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면, 그곳이 다음 경로가 되는 방식이었다.

시바는 뭔가 아쉬운지 뒤를 힐끔 쳐다봤다.

“전리품은 아깝군요. 마석 하나면 무료 급식으로 열 명을 먹이고도 남을 텐데···.”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챙겼습니다.”

앨런이 손짓하자 의외로 잘 달리는 상자가 서랍을 혀처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억지로 떼어낸 마석이 들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게발을 더 달아줄 걸 그랬습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이번에 도달한 장소는 호수였다. 안을 채운 액체는 새까매서 물인지 기름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약한 냄새로 판단했을 때, 입에 대면 좋은 꼴 못 볼 확률이 100%였다.

테일러는 호수를 쓱 살피고 입을 열었다.

“여기는 최대한 빠르게 지나가자.”

“저것들이 문제죠?”

“그래.”

앨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장소에는 조각배들이 있었는데, 이쪽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중이었다.

배를 덮고 있던 검은 천이 스르륵 내려가더니 지하인들이 몸을 일으켰다. 길쭉한 원통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략 어떤 식으로 탐험가들을 괴롭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무반동총처럼 어깨에 걸치더니, 이쪽을 향해 겨눴다.

“느려.”

콰앙!

물론 그 전에 앨런의 마탄이 배를 폭파했다. 시바나 테일러도 근처에 없겠다, 화력전 전용 마탄을 사용했기에 물기둥이 높게 솟아올랐다. 지하인은 지/하/인이 되어 사방을 날아다녔고.

상자의 카메라가 게 눈처럼 움직이더니, 앨런과 폭파 지점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바퀴를 돌돌 굴리며 호수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멈춰.”

앨런은 상자를 바로 말렸다. 저 호수는 뒤지기도 힘들고, 검은 물이 조금이라도 묻으면 정비가 힘들어질 거라는 감이 딱 왔다.

일단 냄새부터가 문제였다. 앨런은 마스크 덕분에 상쾌한 향기를 누리고 있지만, 테일러와 시바의 찡그린 표정을 보면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일방적인 포격으로 탐험가를 괴롭히는, 사실 얻을 게 없어서 무시하는 경향이 큰, 배들은 앨런의 포격에 가라앉았다.

덕분에 호수를 무사히 통과한 일행은 회랑에 도착했다. 복도에 둘러싸인 정원은 생기가 조금도 없었다.

삐쩍 마른 식물을 손질하는 정원사가 있긴 했다. 허수아비처럼 생겼고, 가지치기할 때 사용하는 거대한 가위를 들고 다녔다.

나무를 다듬는 시늉을 하던 정원사들의 머리가 일제히 돌아갔다. 오토마톤이라 그런지 머리만 돌리는 꼴이 꽤 기괴했다.

불청객을 확인한 놈들은 가위를 철컥철컥하며 다가왔다. 포고스틱과 유사하게 통통 튀며 접근하는 모양새와 외형이 합쳐져서 불쾌함을 자아냈다.

기다란 가위 날이 마나소드처럼 푸른빛을 뿜어내기도 했다.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 물건이 맞습니까?”

“네.”

앨런이 시바의 의문을 해결해줬다. 마나소드 자체가 정원사의 가위를 참고로 만든 무기였다.

테일러는 샷건과 마나소드를 동시에 뽑아 들었다. 위에서 덮쳐오는 정원사에게 마법공학으로 강화한 산탄을 먹여주고, 끈 떨어진 연처럼 펄럭거리는 놈을 마나소드로 두 동강 냈다.

시바는 근접전을 벌이는 오토마톤을 만나자 다행이라는 눈치였다. 안 그래도 드워프라 신체적으로 불리한데, 전투 스타일마저 팔다리를 사용해서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탓이었다.

목을 노리는 가위를 통통 튀는 스텝으로 피하고, 탄탄한 다릿심을 살려서 정원사의 품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온몸을 내던지는 슈퍼맨 펀치로 정원사의 가슴을 노렸다. 하얗게 물든 주먹은 연약한 외장갑을 짓뭉개고, 단숨에 파고들었다. 팔이 짧아서 등을 뚫고 나가진 못했지만.

정원사를 털어낸 시바가 짧은 기도를 외웠다.

“한 방에 어머님 곁으로···. 평안하길.”

앨런은 가만히 서서 구경했다. 자신을 덮쳐오는 정원사는 표범이 빠르게 정리한 덕분이었다. 발톱 하나하나마다 마나소드가 달린 셈이라 굉장히 위력적이었다.

하늘하늘하게 생긴 정원사는 표범의 앞발에 너무나 쉽게 찢어졌다. 속도까지 느려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적들을 처치하며 회랑을 통과하고, 이어진 복도를 따라 얼마나 내달렸을까. 전투에 집중하던 앨런은 덮쳐오는 지하인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이제 끝인가요?”

“그래. 이제 따라오는 오토마톤도 없으니 좀 걷자.”

테일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행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제야 외부로 확산했던 감각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피부를 흐르는 땀이 느껴지고, 강한 맥박이 전신을 쿵쿵 울렸다.

시바는 물을 좀 마시고 수염에 뿌렸고, 물통을 받아든 테일러는 머리를 적셨다. 몸이 어찌나 뜨거운지 수증기가 살짝 보였다.

“저기에 문 보이지? 저 앞에서 좀 쉬자.”

테일러의 말을 들은 앨런은 주변을 둘러봤다. 컴컴한 복도 양옆으로 창문이 주르르 늘어서 있었는데, 동굴과 똑같은 재질의 암석으로 막혀있었다.

복도의 끝에 도달하자, 반원형의 홀이 앨런을 반겼다. 둥그런 부분에는 홀로 들어오는 복도들이 부챗살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평평한 부분에는 큼지막한 문이 있었다.

테일러는 수레에서 꺼낸 접이식 의자에 앉았다. 새빨갛게 달궈졌던 피부가 원래 색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저 문 너머에 근위병이 있다. 그리고 여기는 오토마톤이 나오지 않기에 쉴 수 있는 유일한 구역이야.”

“다른 파티는 없네요.”

“있었으면 돌파가 훨씬 쉬웠을 거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좀 빡세서 힘을 합치기도 하니까.”

“여기는 왜 지하인이 없을까요? 왕이 기거하는 구역이라 그럴까요?”

“아니면 어전 앞이니 조용히 하란 뜻일 수도 있지.”

일행은 수차례에 걸쳐 수분을 조금씩 보충했고, 당도가 높은 음식으로 열량을 채웠다.

수염에서 물기를 짜내던 시바가 테일러에게 물었다.

“형제님, 근위병과 싸우는데 다른 파티가 올라오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기억수정 준 거로 기억하는데.”

“어머님의 말씀을 뺄 수가 없어서···.”

“아까, 기도 완성 실패하지 않았나? 도대체 뭘 끼우고 다니길래···.”

테일러의 눈이 뾰족해졌다가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지. 원시림부터 다음 층으로 향하는 문이 움직인다고 했지? 여기도 반절 정도는 적용돼. 21층으로 내려갈 때는 근위병을 통과해야 하지만, 20층으로 올라올 때는 도시의 건물 중 하나에서 나타난다.”

“미궁은 참 제멋대로군요.”

“하루 이틀도 아니지.”

자리에서 일어난 앨런은 천천히 몸을 풀었다. 가볍게 뛰어다니자 식었던 육체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로 체조를 마치고, 대전의 문을 열어젖혔다.

육중한 생김새와 별개로 문은 정말 쉽게 열렸다. 노후화된 경첩에서 으레 들리는 끼익 소리도 없었다.

앨런은 헤드 랜턴으로 이곳저곳을 비췄다. 어른 네 명이 양팔을 벌려도 감싸지 못할 굵기의 돌기둥이 가득했다. 천장의 암석에 파묻힌 상태라 원래 높이를 알기 어려웠다.

“신전 같은 느낌도 드네요. 그만큼 왕의 권위가 대단했다는 뜻이겠죠?”

테일러와 시바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닫았다. 여기에서 대답해주면 다른 질문이 튀어나올 테니까.

앨런은 담합도 모르고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돌기둥에는 문자와 부조의 형상이 남아 있었는데,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아니면 미궁 창조자의 의도인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미궁에서 얻는 책도 마찬가지로 번역할 수 없기에 익숙한 일이었다.

앨런은 저 멀리 시선을 던졌다. 높은 단상에 올려진 옥좌가 보였다. 텅 빈 대전에 있는 유일한 의자였다.

운동장보다 넓은 대전의 중간쯤에 도달하자.

쿵쿵!

옥좌와 가장 가까운 돌기둥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3m를 가볍게 넘는 거대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속 갑주로 이루어진 괴물, 근위병이었다. 중갑병의 파워슈트보다 두껍고 파괴력 있게 생겼다.

근위병은 옥좌로 향하는 길 가운데에 우뚝 섰다. 그의 바이저는 올라가 있었는데, 안쪽으로 지하인 특유의 하얗고 꺼끌꺼끌한 얼굴이 보였다.

다른 지하인은 탐험가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달려드는데, 근위병은 침착하고 무감각한 눈으로 침입자를 훑어봤다.

철컥!

마침내 바이저가 닫히고, 갑자기 내부가 밝아졌다. 돌기둥들이 은은한 빛을 내뿜은 탓이었다. 빛이 생기자 기둥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쿵쿵쿵쿵!

그림자가 뒤틀리더니, 아까보다 격렬한 발소리와 함께 돌기둥 뒤에서 오토마톤들이 걸어 나왔다.

< 근위병(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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