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회(1) >
키리에게 코로나 카르텔의 정보를 부탁하고 7일 후.
[지정한 장소에 현금 칩으로 700만 코인 넣어둬. 그럼 동생이 가서 챙길 테니까.]
“알겠습니다.”
키리의 거주지를 알고 있긴 하나, 그녀의 집에 계속 드나들면 민폐였다. 가뜩이나 동방타운은 치안도 안 좋은데, 그곳에 다이버가 산다는 소문을 흘릴 순 없었다.
[지금 놈들이 있는 장소는···. 기억수정이나 데이터 전송이 아니라, 말로 설명하려니 어색하네. 아, 옆에 영감님 있지?]
“네.”
[너랑 대화하다 보니 깜빡했어.]
키리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테일러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정보를 받고 있다는 의미였다.
옆에 있던 비토가 조용히 물었다.
“700만? 그렇게 큰 금액을 의뢰로 태워? 하루에 100만 코인이면 진짜 비싼 인력이네.”
“다이버는 능력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데, 키리는 실력이 괜찮습니다. 뇌가 과부하 되어서 좀 쉬어야 할 테니 적절한 금액이죠.”
“나도 마법공학자말고 다이버나 할까? 어떻게 생각해?”
삼라만상은 정보의 바다다. 그러나 물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정보도 오염되고,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뇌 확장 장치의 편리함 속에 감춰진 이면이다. 일반인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거의 없지만, 다이버는 잘 꾸며진 가상 세계를 한 꺼풀 찢고 심해까지 잠수하기에 언제나 주의해야 했다.
“정보 오염뿐만 아니라 다이버를 노리는 상어들도 주의해야 합니다.”
“상어는 뭔지 알겠다. 다이버 사냥하는 사람들이지?”
“네. 다이버는 쓸만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고, 일 특성상 현금 칩을 쌓아두기에 좋은 먹이가 되곤 하죠. 그렇다고 경찰에 하소연했다가는 바로 잡혀갈 테고요.”
“하긴, 다이버도 데이터베이스를 뒤지고 다니니 경찰이 실적 올리긴 좋겠네. 그냥 마법공학자나 해야겠다.”
[무탈하길 바랄게. 다음에도 이용해줘.]
키리의 목소리가 끼어들며, 정보 전송이 끝났음을 알렸다. 테일러는 눈 주위를 가볍게 주무르며 소파에 앉았다.
“바로 시작하자.”
인공 안구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소파 앞에 놓인 탁자에 평평한 화면이 만들어졌다. 누군가의 흉상이 그려졌다.
“노박···.”
앨런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반백의 머리털이 전부 사라진 자리는 두꺼운 금속판으로 뒤덮였다. 턱 주위도 금속으로 보강해서 투박한 형태가 그대로 보였다. 그래도 얼굴은 예전과 똑같아서 알아보긴 쉬웠다.
비토가 침을 꿀꺽 삼켰다. 두려움을 숨기고자 그 나름대로 농을 섞기도 했다.
“풀메탈 노박이 됐잖아. 우리에게, 아니지, 너한테 당해서 치료하기 힘들었나 보다. 테일러 씨, 가슴 아래도 정보가 있습니까?”
“그럼.”
화면이 위아래로 길어지며 노박의 전신이 드러났다. 입체적으로 변한 형상이 천천히 회전했다. 가슴 아래도 금속 골격으로 꽉 찬 상태였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오토마톤에 인간의 얼굴 가죽만 붙여놨다고 이해할만한 모습이었다. 그만큼 예전과 지금의 괴리가 심했다.
시바가 테일러를 힐끔 쳐다보다가, 둘의 눈이 마주쳤다.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형제님.”
“눈빛이 불손하잖아. 입 꾹 다물고 있으면 누가 모를 줄 알아?”
“왠지 비슷해서 그랬습니다.”
“비슷? 완전히 달라. 나도 신체를 많이 갈긴 했는데 저 정도로 바꾸지 않았어. 그리고 인조 피부도 제대로 붙이고 있잖아.”
테일러가 시바와 아옹다옹하는 사이, 앨런은 비토와 대화를 나눴다.
“분명 머리에 구멍을 뚫었는데 무슨 방법으로 살아났을까요?”
“그걸 알면 나도 의사하고 있겠지.”
“납탄이었으면 속을 아예 휘저어놨을 텐데 마력 탄환이라 저절로 소멸했나 봅니다. 그럼 기억은 얼마나 보존하고 있을까요? 분명 뇌 손상은 있었을 텐데요.”
“뇌 확장 장치에 백업 해두는 사람도 있지만, 기억 전부를 담진 못 해.”
“사람의 기억은 그만큼 방대하니까요. 그래도 여기까지 쫓아온 걸 보면 우리에 대한 복수심은 확고해 보입니다.”
비토는 눈을 감으며 팔짱을 꼈다. 손으로 다른 팔뚝을 강하게 붙잡아도 어깨의 떨림까지 숨기긴 어려웠다. 노박을 쓰러트리며 해방됐다고 생각했지만, 어릴 때부터 각인된 공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앨런은 비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가만히 있었다. 떨림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다음 정보 보여주세요.”
노박의 전신상이 사라지고 낡은 공장 하나가 나타났다. 직사각형 건물 위에는 반원 형태의 지붕이 얹어져 있었다.
“도시 외곽이라고 해도 이런 장소를 잘도 구했네요.”
“코로나 카르텔이 마약 유통하는 곳이라며. 메이즈시티에 놈들의 물건 받는 갱단이 있는데, 그 새끼들을 통해 소개받았다고 적혀있다.”
“경찰은요?”
“딱히 경찰 탓만 하기도 힘들어. 특별자치 도시라는 지위, 고삐 풀린 기업들, 미궁으로 몰리는 사람들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으니까. 일단 창고나 살펴보자.”
“낙후된 시설 같아도 보안은 삼엄하네요.”
공장 옆에 조립식 건물이 붙어있고, 옥상에는 기관총 포탑이 배치되어있었다. 카르텔 조직원들은 2인 1조를 이루어 주변을 순찰했다.
“내부는 어떻게 생겼어요?”
“저쪽도 다이버가 있어서 거기까진 뚫지 못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이상하지 않니?”
앨런은 테일러의 물음에 담긴 뜻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노박이 쫓아왔다고 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창고의 시설이나 인력을 보니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막 성인이 된 마법공학자 둘을 잡으러 왔다기엔 병력이 많네요.”
“내가 말하고 싶은 게 그거야. 그 눈이 그렇게 중요한가?”
“몇 가지 가정이 떠오르긴 하네요.”
“뭔데?”
“노박이 분노에 미쳤거나, 진짜로 눈을 소중하게 생각하거나, 눈이 상상 이상으로 비싸서 포기할 수 없거나, 마지막으로 주인이 따로 있거나.”
“전부 일리 있긴 하네. 아, 이 녀석을 빼먹을 뻔했네.”
테일러가 눈을 깜빡이자 창고가 사라지고 녹색 덩치가 나타났다. 역병 의사처럼 새 부리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카르텔 간부 또는 두목인가요? 종족은 오크?”
“키리의 정보에는 간부라고 하더구나. 본명인지 모르겠는데 카카라고 불리는 녀석이야.”
“왠지 고블린 작명 같네요.”
“네 짐작이 맞아.”
가면이 없어진 자리에는 고블린 특유의 얼굴이 나타났다. 뾰족하고 길쭉한 코, 욕심 많게 생긴 눈, 태생적인 대머리는 고블린 그 자체였다.
“고블린이 왜 이리 크죠? 2m나 되네요.”
“그건 나도 모르지. 분유 대신 프로틴을 처먹었나.”
브리핑을 끝낸 테일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의 위치를 알았으니 미적거릴 필요는 없었다.
전투는 피하는 게 가장 상책이나, 굳이 싸워야 한다면 그 장소는 상대의 진영이어야 했다. 내 땅에서 승리해봐야 끝나고 남는 건 폐허밖에 없었다.
“오늘 바로 가시죠. 저쪽 다이버가 여기 위치를 알아내기 전에 끝을 내요.”
“나는?”
“비토는 여기에 있으세요. 룬프린트 밑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패닉 룸이 나타날 텐데, 불안하면 거기에 있어도 됩니다.”
비토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이 따라가면 보호할 대상이 하나 늘어나는 꼴이니까. 예전에 노박 클리닉을 탈출할 때면 몰라도 지금은 차이가 너무 많이 벌어졌다.
앨런은 두려워하는 비토를 창고에 두고 밖으로 나섰다. 비토에게는 공포를, 앨런에게는 짜증을 유발하는 일의 해결책은 간단했다. 바로 원인 제거.
‘연구해야 할 거리가 정말 많은데 하필 여기까지 쫓아와서···.’
*
허름한 건물 내부, 녹슨 기계가 여기저기 방치된 모습을 보면 창고가 분명했다.
안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겐 규율 따위가 전혀 없었지만, 전부 화기나 냉병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대충 봐도 험난한 인생이 예상되는 외모는 덤이었다.
거리낌 없어 보이는 이들도 꺼리는 장소가 있었는데, 그곳은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설계된 2층 사무실이었다.
“빌어먹을!”
사무실 내부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흠칫 놀란 카르텔 조직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도 잠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들의 일에 몰두했다.
사무실 내부, 낡은 소파에 노인이 앉아있었다. 얼굴만 노인이고, 몸은 금속으로 가득했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소파에서 그가 앉은 부분은 푹 꺼져있었다.
노인은 근처 통에서 주사를 꺼내서 거꾸로 쥐었다. 다른 손으로 가슴 장갑을 열자, 그나마 살덩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보였다. 주삿바늘이 그곳을 망설임 없이 찔렀다.
텅 빈 주사기를 휙 던진 노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약물의 효과 덕분인지 호흡이 점점 안정되었다.
“노박.”
누군가의 부름에 노박이 눈동자만 돌렸다. 거기에는 근육이 꽉 찬 카카가 있었다.
“···.”
“진통제와 신경안정제, 부작용 완화제는 내가 알려준 비율로 투여하고 있나?”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알아서 하기는. 내가 누구 때문에 공기 더러운 이곳까지 왔는데. 일을 마치기 전에 사고를 친 누군가가 쓰러져버리면 내 기분이 어떨 것 같나?”
“···.”
“그런 일이 있었으면 우리랑 함께 갔어야지. 아니, 혼자 처리할 자신이 있었으면 해결했어야지. 그런데 꼬마 둘한테 털려서 몇 달을 골골대?”
“그만해.”
“누구 마음대로?”
심사가 뒤틀린 노박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피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카카의 앞에 서서, 핏발 선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물론 뾰족한 코 때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진 못했다.
“너, 누구에게 그런 말 하는지 알고 있나?”
“당연히 알지. 객기부리다가···.”
쿠르릉! 콰앙!
갑자기 들려온 폭음. 둘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서로의 감정은 많이 상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하면 무엇이 우선인지는 잘 알았다.
카카가 사무실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창고 밖에서 붉은빛이 보였고, 이런 일을 많이 접하는 특성상 화재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야?”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카카에게 대답하는 조직원의 머리 위로 커다란 거미가 떨어져 내렸다. 남자의 얼굴을 다리로 감싼 거미의 몸통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콰앙!
남아있는 신발만이 원래 그곳에 사람이 있었음을 알려줬다. 사라진 남자 옆에 있던 조직원은 기계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는지 그쪽이 움푹 파여있었다.
“어떤 새끼가···. 설마 다른 갱단과의 전쟁에 우리를 이용했나?”
충분히 신빙성 높은 추론이었다. 갱단에게 의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일단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면을 착용한 카카가 사무실을 뛰쳐나가고, 눈이 파랗게 빛나는 노박이 뒤를 따랐다.
“어떤 새끼들인지 몰랐고 다 뒤졌다.”
“방금 보고 받았어. 갱단이 아니다.”
“그럼.”
“우리가 찾던 놈이다.”
“그 꼬마가 여길 쳐들어왔다고?”
카카는 앨런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의 몸, 세상 다 산듯한 눈빛.
“멸치처럼 생긴 새끼가 여길? 네놈이 얼마나 만만했으면 선공을 가하나?”
“좀 닥쳐.”
창고를 완전히 빠져나간 둘에게도 주변의 상황이 보였다. 옆에 붙은 건물에서 화염이 치솟았고, 여기저기에 배치해둔 기관총 포탑은 총구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카카가 애송이라고 칭했던 앨런은 양팔에 낀 두꺼운 장갑으로 마력 탄환, 아니 크기만 보면 포탄을 날리고 있었다.
“저게 동일인물이라고?”
“놈이 맞다. 어차피 저렇게 쏴대면 마력이 금방 바닥날 테니 일단 몸을 숨기라고 해!”
그 명령은 모든 조직원에게 전달되었다. 콘크리트, 트럭, 버려진 기계 등 모든 엄폐물로 몸을 숨긴 후, 응사했다.
그러나 포탄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부하 1/3이 날아가고 나서야 카카가 노박을 쳐다봤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지? 벙어리처럼 입 다물지 말고 말해!”
“하···. 마력과다증···.”
실험할 때는 좋았는데, 화력전으로 만나니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 재회(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