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회(2) >
오크와 맞먹는 크기의 고블린, 카카는 부하들과 달리 아예 일어나 있었다. 자신에게 마력 포탄 하나가 날아오자, 팔을 바깥으로 휘둘러서 쳐내기도 했다.
“마력과다증이면 병신이잖아. 그런데 이런 난사가 가능하다고?”
“저놈은 원래부터 마력통제력이 뛰어났다. 물론 그만큼 마력도 많이 생성되고, 난폭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해. 이곳에서 어떤 조치를 받았음이 분명하다.”
“똑같은 공돌이 새끼 아니랄까 봐 이런 상황에서도 분석하고 지랄이야.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그 말을 들은 노박이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공장 쪽으로 움직였다.
카카는 그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눈을 빛냈다. 푸른 빛이 점멸하며 다중 통화 상태가 되었다.
“피해 상황은?”
[기관총 포탑이 대다수 무력화됐습니다.]
[외부 경계조 4명에게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카카는 아까 사무실 창문으로 봤던 거미를 떠올렸다. 부하의 머리를 다리로 감싸고 폭발한. 분명 죽은 놈들도 비슷한 수법에 당했으리라.
[운송수단은 무사합니다.]
[외부 인원에게 복귀 명령 하달했습니다.]
“한 명씩 말해···. 아니, 됐다. 손해는 보더라도 한꺼번에 몰아쳐야겠다.”
카카의 눈이 다시 빛나며 명령을 내렸다. 자신은 계획대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몸을 믿고 나서는 돌격대장이었다.
고블린임에도 2m에 달하는 육체를 보라. 어릴 때부터 성장호르몬, 골밀도 강화제, 스테로이드 등을 적절한 비율로 적용한 결과물이 여기에 있다.
“신호하면 바로 뛰쳐나가라.”
[알겠습니다.]
부하 좀 잃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코로나 카르텔 밑으로 들어오려는 젊은이들은 널렸으니, 부하는 또 받으면 됐다.
아로마아를 주름 잡는 조직이라는 이유와 누군가를 짓밟아서라도 살겠다는 사고방식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짓밟히지 않으려면, 짓밟는 쪽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연막탄 사용!]
[마법사용자들은 바람계열 마법으로 연기 퍼트려!]
카르텔 조직원들 사이에 짧은 소통이 오가고, 공장 전체에서 연막탄이 터졌다. 어차피 원거리 화력전에서 밀리니 아예 포격을 막아버리겠다는 의지였다.
짙은 연막은 땅에 깔린 구름이 되어 주변의 풍경들을 하나씩 집어삼켰다. 에비 착용자들이 바람까지 만들어서 구름의 확장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지금이다. 달려!]
동시에 공장 뒤편에서 거친 엔진음이 들렸다. 마력으로 구동하는 차에 삽입되는 인공 엔진음은 끌 수 있지만, 침입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일부러 켜놨다.
조직원들이 메이즈시티까지 타고 왔던 병력 수송용 전술 차량 두 대가 공장 뒤편으로 동시에 빠져나갔다. 이 차들은 트럭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딱 하나가 달랐다. 병력이 탑승하는 짐칸이 사각형 철판으로 보호받았다.
연막이 터지기 직전, 앨런이 사방에 풀어놓은 정찰 거미들은 적들의 이상 행동을 포착했다. 정보의 조각이 하나씩 모여서 앨런의 뇌를 통해 재구성되었다.
“연막으로 눈을 가린 뒤, 단숨에 들이닥칠 생각인가 봅니다. 트럭 두 대도 주변을 돌아서 여기로 올 것 같습니다. 움직입니다.”
연막 속에서 다수의 발소리가 들렸다. 점점 커지는 소리는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뜻이었다.
앨런의 사각을 보호해주던 테일러가 구멍 뚫린 차 문을 옆으로 던졌다.
“이 정도면 충분하니 근접전은 우리에게 맡겨라.”
“형제님, 트럭은 누가 맡습니까?”
“앨런이 알아서 할 거야.”
앨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강화외골격의 보조를 받았는데도, 파워슈트 장갑을 착용한 팔이 뻐근했다.
‘무게균형이 안 맞아서 이러겠지.’
판금 갑옷처럼 부위 하나하나만 착용하면 무게 때문에 균형이 어그러지지만, 모두 착용하면 무게가 분산되어 편해지는 구조였다.
물론 가장 문제는 앨런의 육체였다. 그나마 치료와 단련을 병행하며 몸의 내구력을 끌어올려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어깨가 빠졌을 수도 있었다.
쿵!
강화외골격에서 파워슈트 팔 부분을 분리하니 땅에 떨어져서 묵직한 소리를 냈다. 그것마저도 저 앞에서 들리는 비명과 폭음에 빠르게 묻혀버렸다.
각자의 역할을 나눴으니, 앨런이 트럭을 저지할 차례였다.
앨런의 어깨 위로 중계기 역할을 맡은 거미가 올라왔다. 녀석은 정찰 거미가 보내는 신호를 증폭해서 앨런에게 전달했다.
앨런의 시야가 반으로 나뉘었다. 오른쪽 눈은 지금 있는 장소를 보고, 왼쪽 눈은 공중에 정찰기를 띄운 것처럼 주변을 단번에 살폈다.
코로나 카르텔의 수송 차량은 두 갈래로 나뉘어서 이쪽을 향해 접근 중이었다.
‘둘 중 하나에 노박이 있다.’
기왕이면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최대한 피해를 누적시키고 싶었다. 원래 어떤 전쟁이든지 먼저 이기는 조건을 만들어두고 싸움에 임해야 편했다.
‘상자?’
삐―!
‘아니야, 잠시 대기.’
삐···.
주변의 소음 때문인지 묘하게 고저 차이가 느껴지는 반응이 되돌아왔다. 물론 앨런은 신경 쓰지 않고 트럭에 집중했다.
근처 건물 위에 배치된 정찰 거미들이 실시간으로 트럭의 위치를 전송했다.
‘거리는 200m. 위치는 10시 방향.’
앨런은 먼저 왼쪽으로 접근하는 트럭을 노리기로 했다. 주변에 버려진 건물이나 공장이 꽤 있어서 각도가 살짝 안 맞기에, 몇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그제야 무너진 담벼락의 틈으로 그 너머가 살짝 보였다. 그쪽에도 벽돌담이 있긴 했지만, 둘보다는 하나가 뚫기 쉬웠다.
오른쪽 눈으로는 마탄 발사기를 조준하고, 왼쪽 눈으로는 접근하는 트럭의 위치를 살폈다. 앨런이 노리는 장소로 트럭이 도달하기 직전.
마탄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관통], [나선], [가속]이 새겨진 철갑탄이 벽돌담에 구멍을 만들며 뛰쳐나갔다.
그 과정에서 각도가 약간 틀어지긴 했지만, 앨런의 예상대로 트럭의 휠에 틀어박혔다.
“이런 씨···!”
트럭이 심하게 휘청거렸다. 운전자가 욕설을 전부 내뱉기도 전에 벽돌담과 충돌했다.
강력한 충격에 운전자가 갈피를 못 잡는 사이, 꿋꿋이 전진하던 트럭은 다른 담벼락과 충돌하고, 아예 기울어진 상태로 미끄러졌다. 바퀴가 땅에 안 닿으니 트럭은 금방 멈췄다.
흔들림이 사라지고, 운전자의 몸속에 박힌 약물 투여 매직웨어가 각성제를 뿜어냈다. 고통 조절기가 작동하며 통증을 덜어내기도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운전자의 눈앞에 주먹 크기의 무언가가 보였다.
“저···.”
‘저건 뭐지?’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입이 느리게 움직였다. 이건 도대체 무슨 현상인가 고민하는 순간, 저 물체의 정체를 깨달았다.
마탄이었다. 그제야 운전자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현상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죽음이 다가오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더니.’
그게 운전자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콰앙!
큰 폭음과 함께 수송 차량의 유리창이 박살 나고, 화염이 운전석을 전부 차지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추가로 날아든 마탄이 차를 아예 뜨거운 오븐으로 만들었다.
‘무슨 황소였지. 사람을 안에 가두고 아래에 불피우는 형벌이 있었는데···.’
앨런은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을 접어두고 다음 트럭에 집중했다. 남은 트럭도 철갑탄을 날려서 휠을 박살 낸 순간.
콰직!
짐칸을 덮은 금속판이 찢어지며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거대한 형체가 아스팔트 도로 위를 미끄러지며 불똥과 파편을 뿜어냈다.
노박은 노박인데, 키리가 준 정보보다, 앨런이 직접 확인한 모습보다 덩치가 컸다. 팔과 다리가 두툼해지고 길쭉해졌다. 몸통도 마찬가지였다.
‘언제 갈아 끼웠지?’
신체 비율을 망가트릴 정도로 거대한 매직웨어를 보통 골렘 의체라고 부르는데, 노박은 머리 빼고 전부 착용한 상태였다.
얼핏 파워슈트와 비슷하다고 착각할 수 있으나, 차이점이 명확했다. 파워슈트는 몸 위에 입고, 골렘 의체는 신체 부위를 대신했다.
7등신에서 11등신 정도로 변한 노박이 아스팔트를 즈려 밟으며 전진했다. 고릴라의 몸통에 사람의 머리만 달아놓은 모습 같았다.
그만큼 무게도 많이 나가서, 금속으로 이루어진 발이 바닥을 박찰 때마다 아찔한 굉음이 들렸다.
‘발사해.’
앨런의 신호가 숨어있던 표범에게 전달되었다. 가로등과 달빛을 속이고 있던 녀석은 입을 쩍 벌리고 광선을 뿜어냈다.
지이익!
붉은 열선이 그어진 자리에 새까만 그을음이 자리 잡았다. 근처 담벼락까지 닿은 광선은 너덜너덜한 플래카드도 불태워버렸다.
아쉽게도 노박은 잔상 남기며 불의의 일격을 피했다.
‘리플렉스 액셀을 사용했겠지.’
그러니 발사 직전에 터져 나온 섬광을 보고 자리를 피했으리라.
반사신경과 신호 전달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매직웨어가 아니라면 저런 능력을 보여주기 힘들었다. 노박이 육체수련자라면 몰라도 그는 마법공학자니까.
“예나 지금이나 깜찍한 재주를 부리는구나.”
욕설이 하나도 담겨있지 않지만, 꽉 다문 잇새 사이로 분노가 절절 흘러내렸다.
노박은 말을 하면서도 몸을 멈추지 않았다. 표범의 위치를 확인하고, 광선 발사가 어려운 각도만 선택해서 접근했다.
“내 눈은 잘 가지고 있나?”
“···.”
앨런은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한쪽이 불통이니, 노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래에 두었다고 생각한 실험체에게 당한 일도 서러운데, 이제는 대화까지 거부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얼굴 근육은 남아있네. 인조 피부인 줄 알았는데, 얼굴은 원래 그쪽 걸 사용했구나.”
“이···.”
자신의 물음과는 동떨어진 대답이 돌아왔다. 무표정한 얼굴과 무기물을 분석하는 듯한 시선을 마주하니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저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어야 했다. 상하 관계가 있다면 자신이 위에, 앨런이 아래에 있어야 했다.
노박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며 다시 말했다.
“눈을 내놓으면 적어도 편히 죽게는···.”
퐁!
근처 건물 옥상에 대기 중인 상자가 마탄을 발사했다. 말을 멈춘 노박의 몸이 흐릿해졌다.
느릿해진 시간 속에서 노박의 손이 마탄을 향해 뻗어 나갔다. 손 위로 푸른 안개가 서렸다.
앨런은 저 수법을 알았다. 마탄을 쳐내려는 동작은 이미 광산에서 경험해봤다. 덕분에 테일러가 한동안 팀킬 했다고 놀리지 않았던가.
노박의 손을 감싼 푸른 안개는 아마도 [둔화]와 비슷한 작용을 할 테니, 저것에 닿으면 마력의 이동이나 충격 감지가 늦어질 것이다.
그러면 마탄이 당연히 제때 폭발하지 못하지만, 지금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앨런이 신호를 줌과 동시에 마탄의 껍질이 깨지고, 화염 대신 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저 마탄에 적힌 룬문자 셋 중 둘은 [침수]와 [기우]. 앨런의 발밑에도 물이 얕게 흘렀다.
근위병을 얼릴 때처럼 대량의 물은 필요 없고, 노박이 푹 젖기만 하면 됐다. 노박을 중심으로 흐른 물이 거미줄처럼 퍼졌다.
노박이 다시 질주했다. 발바닥에 채인 물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앨런의 눈과 뇌는 테일러 마력수련법 덕분에 강화되어서 노박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물론 몸이 제대로 따라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범위 공격을 계획했다.
앨런은 마탄 발사기로 땅을, 정확히는 물줄기를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발사.
타다닥!
이번에는 폭발하는 대신 스파크 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고압의 전류가 물을 전기분해하고, 피어오른 수소에 전류가 닿으며 작은 화염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노박의 몸 곳곳에서 푸른 정전기가 발생하며 그나마 남아있던 눈썹도 전부 타버렸다.
보통의 전기였다면 앨런과 노박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겠지만, 이건 마나로 만들어진 전기였다.
게다가 아까 말하지 않은 룬문자는 [표적]. 노박에게 일종의 점을 찍었기에 전류는 그에게만 향했다.
짜릿한 충격 덕분에 몸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던 노박이 다시 자세를 잡았다.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기회를 줬는데도 거부해? 두 눈을 직접 뽑아도 그렇게 건방지게 나오는지 보겠다.”
“대화는 사람과 해야지.”
기껏 돌아온 반응이 저런 식이니, 노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못생겼어.”
인신공격 덕분에 더욱 일그러졌다.
< 재회(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