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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82화 (82/193)

< 재회(3) >

앨런은 노박을 유심히 관찰했다. 빠르게 들썩이는 어깨와 가슴, 핏발 선 눈, 출력의 불안정으로 뿜어내는 빛의 세기가 자꾸 변하는 매직웨어.

‘괜찮네.’

테일러가 알려준 도발은 성공적이었다. 사실은 그때 파워슈트에 집중하고 있어서 제대로 듣지 못했기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어 보였다.

‘도발도 훌륭한 무기라고 했지.’

마치 안부를 묻거나, 날씨가 좋다고 하는 일상 언어처럼 수시로 주고받는다고도 했다.

앨런은 다음 말을 고민하다가 관뒀다. 도발 적성이 부족한지 생각나는 단어도 없고, 무엇보다 노박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뒤에 펼쳐진 연막 속에서는 전투가 한창인지 비명과 폭음이 수시로 들렸다. 그러니 노박은 혼자 막아야 했다.

‘아니지.’

표범과 상자가 있었다. 그 아이들과 함께라면 예전과 달리 무장을 잘 갖춘 노박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어금니를 어찌나 강하게 깨물었는지, 턱 근육이 도드라진 노박이 양팔을 교차하며 전면을 막았다. 마탄을 날리는 상자를 견제함과 동시에 그대로 밀고 들어오겠다는 의도였다.

좀 전의 전기공격에는 큰 타격이 없어 보였고, 앨런도 어느 정도 예상하는 바였다.

‘마법저항력으로 도배해놨겠지.’

그렇다면 무수히 두드려서 그 방패를 깨주면 될 뿐이다.

우선, 앨런은 황소처럼 돌진하는 모습과 지축을 울리는 진동 속에서 차분하게 물었다.

“눈을 원하는 이유가 뭐지?”

“···.”

앨런이 그랬던 것처럼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노박의 주의가 잠시 앨런에게 향하는 동안, 몸을 숨기고 있던 표범이 옆구리를 습격했다.

[강화], [강력], [가속]. 버프 3종 세트를 몸에 두른 표범은 호랑이의 덩치를 지녔음에도 치타처럼 신속했다.

골렘 의체로 억지로 몸을 키운 사람과 금속의 맹수가 충돌했다. 표범이 앞발을 옆으로 휘두르고, 노박이 손등을 이용해서 그걸 쳐냈다.

콰직!

마치 차끼리 충돌한 듯한 소리가 났다. 표범의 금속 근육과 관절이 한계까지 가동하며 앞발의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쾅쾅쾅!

노박의 골렘 의수가 조금씩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별 피해는 없어 보여도, 저 정도면 훌륭했다. 외장갑이 어긋나면, 속에 감춰둔 무기를 꺼내기 어려우니까.

노박은 그걸 잘 알기에 우직하게 밀고 들어왔다. 양옆으로 펴져서 방패로 변한 왼팔을 앞세우고, 표범의 가슴 부분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동시에 오른손을 아래로 휘둘러서 표범의 뒷다리를 낚아챘다. 조금만 늦었으면 푸른빛을 뿜어내는 마나클로에 의해 왼팔이 걸레가 됐으리라.

“흡.”

호흡을 멈춘 노박이 오른팔을 그대로 끌어당기자, 뒷다리가 잡힌 표범의 자세가 무너졌다. 자세가 망가지면 무게중심 또한 엉망이 되고, 그러면 저항이 어려워진다.

표범의 몸이 붕 떠올랐다. 육중한 녀석이 공중에 있으면 당연히 추락하게 되고, 노박의 어깨가 그 현상에 힘을 보탰다.

노박의 팔이 아래로 휘둘러졌다. 당연히 무기처럼 붙잡힌 표범의 몸뚱이가 땅에 처박혔다.

쿵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예 양손으로 잡고 다시 패대기쳤다. 노박은 그러면서도 눈동자를 수시로 굴려서 앨런을 확인했다.

상자도 마찬가지였다. 불쌍한 동료를 구하려고 발사한 마탄을 포착, 표범을 그쪽으로 휘두르며 마탄과 충돌시켰다.

“무의미한 짓거리를 하는구나.”

상자는 계속 마탄을 발사했고, 그럴 때마다 방망이가 된 표범은 마탄을 강타했다.

노박은 다시 앨런을 힐끔거렸다. 이쪽을 보며 두꺼운 팔을 장착하고 있었다.

‘처음처럼 마력 포탄을 쏘아낼 생각인가.’

이쯤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노박이 표범을 휘두르는 방향을 바꿨다. 그대로 앨런을 향해 던져버릴 생각이었지만.

지이익!

가느다란 열선이 목 근처를 훑고 지나갔다. 연속으로 피어오르는 화염이 섬광을 가렸기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운이 좋게도 목에 덧댄 철판만 좀 그을리고 말았다.

노박은 계획처럼 표범을 훌쩍 던지고, 비행하는 표범에 바짝 따라붙었다. 앨런의 꿍꿍이는 모르겠지만, 일단 표범을 방패 삼아 접근하겠단 의도였다.

시도는 훌륭했다. 표범이 미궁에서 막 잡아 온 오토마톤이었다면.

앨런의 개조로 인해 강화되고 추가적인 성능을 얻은 표범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었다. 고양이처럼 유연한 모습에 노박이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물론 그것도 잠시, 노련함을 바탕으로 정신을 차리고, 표범의 몸통을 손바닥으로 강하게 밀었다. 원래 생각대로라면 그리 이루어졌겠지.

“크윽!”

노박의 몸이 휘청댔다. 원인은 자신의 다리를 파고든 금속 발톱과 거기에 연결된 와이어였다. 와이어는 앨런의 손목 안쪽과 이어져 있었다.

달리느라 그리고 표범을 밀어내느라 균형이 한쪽으로 쏠려있던 노박이 기우뚱거렸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앨런의 모습을 쫓았다.

‘빌어먹을.’

자신이 와이어를 쏘아대고도 비틀거리는 꼴이라니.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앨런에게 당했다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앨런은 와이어 조작에 집중했다. 노박의 무게 때문에, 몸치라는 특성 때문에 균형이 어긋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예 왼쪽 팔에서도 와이어를 발사해서 노박의 다른 다리도 봉쇄했다. 그리고 낚시를 하듯 강하게 잡아당겼다.

금속과 몬스터 힘줄을 꼬아 만든 와이어가 팽팽해졌다. 그 끝에 있는 노박은 일어나기 어려워했다.

‘올라타.’

앨런의 신호와 동시에 표범이 노박의 위로 뛰어올랐다. 내부 회로가 망가졌는지, 마나클로 반절 이상이 빛을 잃었지만, 금속의 날카로움 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발톱이 긁고 지나가는 부위마다 불똥이 튀고, 찢어진 장갑 사이로 기름과 냉각액이 새어 나왔다.

발톱이 상당히 깊게 파고들었는데도 피가 없는 모습을 보면, 노박이 얼마나 개조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기회는 기회. 앨런은 혹시나 비장의 수를 숨겨놨을까 봐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해킹을 시도했다.

‘확실히 방화벽이 두꺼워.’

예전에 DT-10을 해킹할 때 썼던 거미를 보내도, 노박은 어떻게든 거미를 짓뭉개며 직접 연결은 필사적으로 피하려고 했다.

테일러와 시바의 생체 신호는 정상이고, 연막 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죄다 카르텔 조직원의 것이었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뜻이라, 앨런은 원격 해킹을 시도했다. 육체적 공격은 표범이, 정신적 공격은 앨런이 맡는 꼴이었다.

몸이 괴로우면 정신도 피폐해지는 법. 정신이 흔들리니 마나도 덩달아 요동치며 마법저항력에 큰 틈이 생겼다.

‘됐다.’

앨런의 정신이 노박의 인공 마나하트에 닿았다. 자신에게 당해서 인공 마나하트로 바꿨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앨런이 영혼석 속의 별문자를 슬슬 건드리니, 노박이 뿜어내는 출력이 훨씬 불안정해졌다. 마법공학자인 노박이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모를 리가 없었다.

노박은 표범을 밀어내면서도 앨런을 노려봤다. 무언가 결심한 듯한 얼굴이었다.

푸슉!

갑자기 노박의 전신에서 김이 뿜어져 나왔다. 연막처럼 진하지는 않아도 사물의 모습이 살짝 흐릿해지기는 했다.

깡!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표범의 몸뚱이가 뒤로 크게 굴렀다. 동시에 노박의 몸이 위로 솟구쳤다.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무언가가 뿜어지는 모습은 로켓의 추진 장치와 비슷했다.

행동 양식도 비슷했다. 어느 시점에서 로켓이 분리되는 것처럼 노박의 팔다리가 차례대로 떨어졌다. 높이 떠오른 노박은 공장에 펼쳐진 연막 속으로 날아갔다.

그가 날아간 경로 아래에는 골렘 의체 잔해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도마뱀 꼬리?’

서서히 연막이 걷히기 시작했다. 테일러와 시바도, 주변에 널브러진 카르텔 조직원도 뚜렷하게 보였다.

그을음과 혈향이 가득한 테일러가 앨런을 쳐다봤다.

“내가 알려준 대로 했어?”

“그냥 못생겼다고 하니까 화내더군요.”

“인신공격이 맞긴 한데, 좀 심심하다.”

테일러는 노박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떠올렸다.

“효과가 있었을지도···. 그런데 랑카에서 살 때 친구들이랑 욕은 안 주고받았니?”

“책이 좋아서···.”

“친구가 없었다는 뜻이구나.”

“아니, 있었어요. 있었는데 몸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서 주로 혼자였죠.”

사실 동갑과의 추억이 별로 없었다. 어쩌면 테일러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공장 쪽으로 다가가는 도중, 대화를 듣고 있던 시바가 의문을 표했다.

“잠깐만요. 테일러 형제님, 저번에 앨런 형제님에게 좋은 것만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도발이라뇨. 저급한 말은 자신의 마음속에도 남습니다.”

“도발도 훌륭한 무기야. 상대가 화를 내면 마력이 흐트러지고, 출력 조절이 불안정해져서 마력 소모가 빨라지지. 판단이 어려워지기도 하고.”

테일러와 시바의 생각은 달랐지만, 논쟁을 지속할 순 없었다. 지금은 엄연히 전투 중이었다.

완전히 연막이 걷힌 공장 대지에 널브러진 조직원들을 피하며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부의 소란이 밖에까지 느껴졌다.

시바의 [자애의 포옹]을 몸에 두른 테일러가 먼저 진입했다. 하얀 방어막과 자신의 신체 능력을 믿기 때문이었다.

믿음이 무색하게도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직원들은 공장 내부의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고, 카카와 노박이 2층 사무실에서 여기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뾰족한 코 절반이 사라진 카카가 아래를 보며 으르렁댔다.

“그 눈의 원래 주인이 누군지 아느냐?”

“다 뒤져가는 놈이 그런 거 나불대서 뭐하게?”

테일러가 무기를 들어 올리려 하자, 앨런이 말렸다.

“일단 들어보죠.”

“호기심 해소가 먼저지?”

앨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 이유도 있고, 거미들이 숨어들 시간도 필요했다. 이쪽이 잠잠하니, 카카가 말을 이어갔다.

“바로 산드라 님이다. 아로마아라면 방해받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맡기셨을 텐데, 기르던 가축에게 빼앗길 줄은···.”

카카가 노박을 노려봤다. 어느새 평범한 팔다리로 갈아 끼웠지만, 얼굴이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테일러가 소리쳤다.

“내가 아는 산드라가 맞나?”

“당연하지!”

산드라는 명맥을 겨우 유지하는 순혈 엘프다. 피가 섞인 엘프의 기대 수명은 120년, 순혈은 200년이 살짝 넘는다.

엘프가 긴 세월 동안 마법에 매진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인간 뺨치는 마법사가 된다.

잘 되면 누구에게나 칭송받으나, 안 좋은 예가 있으니 바로 ‘재봉사’ 산드라다.

솔도스 연방이 있는 신대륙은 북반구와 남반구까지 이어질 정도로 거대했다. 앨런이 생활했던 아로마아에서 계속 동쪽으로 가면 거대한 밀림이 나오는데, 산드라는 거기에 똬리를 튼 마녀였다.

수집가와 비슷한 급의 국제 범죄자기도 했다.

앨런은 의구심을 품었다. 진짜 산드라의 물건이었으면 이렇게 카르텔 조직원만 보냈을 리가 없었다.

혹은 빼앗긴 사실을 아직 숨기고 있거나, 산드라와 연관은 있으나 급 낮은, 그리니까 제자의 물건이거나.

앨런은 일단 카카의 말에 경청했다. 속임수가 섞여 있더라도 정보를 주는 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 눈은 무려 카탄···.”

앨런이 눈을 크게 떴다. 최근 들어 얼굴 근육이 가장 많이 움직였다.

별문자의 해독가이자 최고의 마법공학자를 거론할 때 언제나 선두에 있는 카탄. 그 이름을 들은 앨런의 가슴이 오랜만에 뛰었다. 그런 대단한 물건이 자신의 눈이란 말인가.

“···의 제자의 제자가 만든···.”

심장이 다시 차분해졌다. 그래도 카탄에게 배운 기술이 적용됐겠지라는 희망을 품었다.

‘오파츠가 아니었어?’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오파츠 영혼석을 흡수한 걸 보면 오파츠가 맞는데 만들었다니. 물론, 적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다.

“마지막 기회다. 눈만 내놓으면 순순히 물러가겠다. 아니면 산드라 님의 분노에 직면하든가.”

이젠 카카의 물음에 응답할 시간이었다. 폭발 거미들을 내려보내기 전, 앨런은 아까 진행하던 해킹을 재차 시도했다.

팔다리를 버리고 달아날 정도로 정신이 몰린 노박은 앨런의 해킹을 방어하지 못했다.

펑!

무언가가 작게 터지는 소리가 나고, 노박이 입으로 핏물을 뿜어내며 뒤로 쓰러졌다. 2층 사무실이라 그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옆에 있는 카카의 반응만 보면 어떻게 됐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내 대답이야.”

< 재회(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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