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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84화 (84/193)

< 원시림(1) >

미궁의 문이 존재하는 구역은 요새나 경찰서 등 시청에서 만든 시설 말고는 건물 자체가 없다. 기껏해야 인도나 차도, 지하철이나 모노레일 역만 존재하기에 공터도 상당히 많다.

주차장 대용으로 활용하는 공터 안, 앨런은 수레에 걸터앉아서 주변 풍경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면면을 관찰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처럼, 구역 밖에 늘어선 건물을 배경 삼아 탐험가들이 오간다. 미궁에 존재하는 괴물과 싸우러 가는데도 평범한 직장인과 똑같은 모습은 미궁이 얼마나 삶과 가까운지 알려주는 지표였다.

머릿속에 담긴 생각이 일확천금에 대한 욕망인지 숨겨진 지식에 대한 탐구심인지 모르겠지만, 겉모습만은 모두 비슷했다.

이제는 익숙한 풍경에서 공터로 시선을 돌렸다. 브레이커의 정직원 탐험가들이 질서 있는 모습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 중이었다.

신입으로 보이는 탐험가는 선배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관리자들은 원시림 기지로 운반할 짐들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힘 좋은 유전자 조작 생물과 오토마톤의 몸에 수레가 묶여있었다. 수레가 많긴 하지만, 저것만으로 기지의 보급품을 감당하긴 어려워 보였다.

그때, 앨런의 눈이 수레에 얹어진 차원 배낭을 발견했다. 사각형을 닮은 모양새는 여행 가방과 흡사했다.

“용량이 얼마나 되죠?”

“25톤 덤프트럭 3대 정도.”

하품을 하던 테일러가 바로 답변을 해줬다. 브레이커의 탐험가로 일했던 경험은 잘 정리된 백과사전처럼 앨런의 궁금증을 빠르게 해소해줬다.

“용량만 따지면 1000억 코인입니다. 실제 가격은 더 비싸겠네요.”

“벌써 계산 끝냈어?”

“75L 차원 배낭이 1억이고, 1000L를 1t으로 잡아서 계산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겠지. 그런데 저런 물건은 시중에 나돌지 않아서 값을 매기기 힘들다.”

“물건의 가격은 언제나 상대적이니까요. 누군가는 몇 배의 금액도 흔쾌히 지급하겠죠. 아니면 전략물자로 취급해서 아예 유통을 안 하든지.”

“후자에 가까워.”

차원 배낭에 들어있는 물건은 모두 생필품이나 기지 방어에 쓰일 물자였다. 음식과 물은 원시림의 동물을 잡거나 강에서 구하면 되니 최소화했다.

23층까지 빨리 도착해도 10일이 넘게 걸리고, 주변에는 오직 대자연만이 있다. 그런 장소에서 휴지, 칫솔, 세제 등을 사용하는 것도 사실은 사치였다.

“효율적이네요.”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그런 것만 먹고 살겠니. 저 안에 주전부리도 많이 들어있어. 오직 그것만 기다리는 애들도 많을 거다.”

“형제님, 주전부리라는 단어를 들으니 옛 생각이 납니다. 저를 키워주신 수녀님도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셨는데, 간식 주실 때마다 주전부리라고 하시더군요.”

“···지금 세대 차이 난다고 놀리는 건가?”

“섭섭한 말씀입니다. 예에에엣날의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외의 의미는 없습니다.”

테일러는 시바의 얼굴 방향 허공에 주먹질을 몇 번 하고 앨런 옆에 앉았다.

“예의 없게 어른을 놀리기나 하고.”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좋네요.”

“사이 좋긴 무슨. 그런데 이 수레 말이다. 원시림의 험한 지형만 피해 다니면 그럭저럭 다닐 만···, 아니구나. 복잡한 지형은 아예 돌아다니기 힘들겠다.”

“계곡이나 늪이요?”

“그래, 잘 알고 있네. 어차피 처음이기도 하니 그런 장소는 피해 다니자.”

“이러면요?”

수레에서 홀로 일어난 앨런이 밑을 만지작거리니, 바퀴가 지면에서 20cm 정도 떠올랐다. 몸을 움찔 떤 테일러가 옆면을 붙잡았다.

“[부유]를 중첩해서 새겼어요. 이러면 길이 없더라도 다닐 수 있어요.”

“마력 소모가 감당되겠···, 상관없겠구나. 하긴, 플로팅 왜건도 비슷한 물건이고, 원시림에 갈 정도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지출이니까.”

테일러가 몸에 반동을 주며 수레를 아래로 밀어도 바퀴는 바닥에 완전히 닿지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네. 이런 걸 생각하고 상자의 바퀴도 무한궤도로 만들었구나?”

“아뇨. 마침 TV에 전차가 보여서 따라 했어요.”

“아니면 말고.”

대화를 나누던 앨런은 누군가가 쳐다보는듯한 감각을 느꼈다. 고개를 휘휘 돌리니, 방금 도착한 항공 차량에서 내린 시온이 이쪽을 지긋이 보고 있었다.

맑은 회색 눈동자는 마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앨런이 손을 작게 흔드니 그제야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때 옆에서 불퉁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쟤도 왔어?”

“불만이라도 있으세요?”

“쟤들은 문제아야.”

“네?”

앨런은 자신이 잘 못 들었나 다시 확인차 물어봤다.

“그런 뜻이 아니라 문제를 찾아다니는 아이들이란 뜻이다.”

“아···.”

브레이커의 요원은 무력이 특히 강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 투입되겠는가. 주로 비밀 임무나 분쟁 해결일 가능성이 컸다.

앨런이 아무 생각 없이 시온과 테일러를 번갈아 쳐다보니, 테일러가 발끈했다.

“뭐, 왜? 쟤들이랑 네가 이상한 거야. 내가 평균이라고.”

“아무 말 안 했는데요.”

“다음 보급에 합류했어야 했나. 내려가다가 이상한 싸움에 휘말리면 귀찮은데.”

“보급대가 내려가니 겸사겸사 따라가겠죠. 브레이커의 일은 그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네 말도 맞다.”

시온은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고개를 이따금 돌리는 모습은 마치 주변이 보이는 듯했다.

유심히 관찰하던 테일러가 한마디를 던졌다.

“쟤도 은근히 컨셉충이야.”

앨런이 입을 열려는 순간, 숫양의 뿔을 달고 있는 관리자 하나가 다가왔다.

“어이 신입들. 갑자기 인원이 빠져서 고용했으니 정신 차리라고. 우리 회사 등록 탐험가 둘에 모신교 사제 하나면 충분히 쓸만하겠군. 괴물 놈들의 수레 접근을 막고, 이상한 짓거리만 삼가면 돼. 그것만 지켜주면 터치는 없어.”

관리자는 그 말만 남기고 사라졌다. 꼼꼼한 성격인지 수레를 계속 확인했다.

“대기업의 행차라 그런지 생각보다 여유 있군요.”

시바는 힙 플라스크라 불리는 휴대용 병을 꺼냈다. 앨런은 저게 술임을 알고 있음에도, 이번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 일부러 질문을 던졌다.

“병 안에는 뭐가 들었어요?”

“생명의 물이라고 부르는 투명한 녀석입니다. 간이 외부의 물질에 의해 자극받으면, 위협을 느낀 몸이 저절로 긴장할 테니 일종의 예열 행위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도한다고 고개 푹 수그리고 그런 변명만 생각하지?”

“테일러 형제님. 자꾸 그런 식으로 음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서 출발할 때가 되었다. 깨진 유리를 형상화한 브레이커 특유의 문양이 여기저기 보여서 그런지, 탐험가들이 슬슬 피해 다녔다.

미궁도 두 번째 줄로 들어갔기에, 입장이 매우 빨랐다. 평소보다 한 시간은 단축되었다.

“어때?”

“우리도 이번에 성과를 많이 내서 탐험가 신분증의 정보를 바꾸죠. 정산은 기지에서도 가능하죠?”

“값을 좀 후려치긴 하는데, 계속 들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긴 하지. 사냥하다 보면 도달계층은 자연스럽게 변경될 거다.”

미로에서 튀어나오는 오토마톤은 보급대의 발걸음을 조금도 늦추지 못했다. 접근과 동시에 분해 당해서 마석을 기부할 뿐이었다.

동굴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인이 튀어나오면 일부가 떨어져 나가서 처리하고, 빠른 걸음으로 보급대에 합류했다.

앨런 일행은 아예 나설 필요도 없었다.

“편하긴 한데, 뭔가 이상하네요.”

“대기업이니까. 넌 또 왜 그래?”

테일러가 시바를 쳐다봤다. 수레에 앉아서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를 취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게 대기업입니까? 힘들다고 예측해서 앨런 형제님의 파티에 합류했는데···.”

“설마 이직하겠다고?”

“지금은 아닌데, 테일러 형제님이 자꾸 다그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네, 네. 알아서 모실···생각 없으니까 정신 차려. 가든지 말든지.”

“제가 없으면 치료 약품이 많이 필요하겠군요. 그러면 웨스턴스카이 방문이 잦아질 테고···.”

“어허, 나를 뭐로 보고.”

동굴 20층의 궁전도 마찬가지였다. 오토마톤이 끊임없이 몰려와도 이번에는 대응할 탐험가들이 많았다. 차분히 정리하며 이동하니 어느새 도착한 대전.

이번에는 시온이 앞으로 나섰다. 굵은 돌기둥 사이에 놓인 중앙 통로를 뚜벅뚜벅 걸어가니, 기다리던 근위병이 오토마톤을 대동하며 앞으로 나섰다.

앨런이 그녀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던 그때, 갑자기 오토마톤과 근위병이 허둥대기 시작했다. 마치 눈을 잃은 사람처럼.

휘익!

휘파람에 담긴 마력 파동이 사방을 때리고 다시 시온에게 돌아갔다.

휘파람이 메아리치는 와중에 시온의 몸이 흐릿해졌다. 오토마톤이 절단되는 순간, 번뜩이는 검날만이 그녀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는 지표였다.

사선으로 잘린 오토마톤의 윗부분이 천천히 미끄러지고, 가장 처음에 당한 녀석의 상체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을 때.

시온이 가볍게 쥔 검이 파워슈트의 바이저를 뚫어버렸다. 파워슈트는 그대로 근위병의 관으로 변했다.

검을 슥 뽑아내고 마력을 둘러 아래로 휘두르니, 날에 묻은 이물질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시온은 홀로 원시림으로 향했고, 브레이커의 탐험가들은 바닥에 그려진 붉은 꽃을 밟으며 휴식 준비를 했다.

앨런은 아까의 장면을 떠올렸다.

“단순한 컨셉이 아닙니다. 이상한 마력 작용이 느껴졌어요.”

“내가 퇴사하고 얻은 능력인가? 아니면 비밀로 했거나.”

“진짜 명칭이나 하는 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글을 접했었는데 앞장서서 근위병을 해치우는 모습을 보니 낭설이었나 봐요.”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을 목격한 테일러가 어깨만 으쓱거렸다.

“나도 전부 아는 건 아니라서···. 생각해보니 나를 왜 그쪽으로 전출했나 모르겠네. 아, 그건 좋았다.”

“뭐가요?”

“인공 안구나 뇌 확장 장치 등이 처음 나왔을 때 회삿돈으로 장착했던 일. 막 입사했을 때만 해도 언제더라···, 그게 벌써 40년이 넘었네. 그때만 해도 매직웨어가 대중화되진 않았지.”

“그럼 왜 도전하셨어요?”

“내가 예전에 말했잖아.”

“재능의 한계요?”

“역시 기억하고 있구나. 그래서 우직하게 수련하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았지. 부작용이 발생하면 회사에서 책임져준다고도 했으니 망설일 틈도 없었다. 회사를 위해 위험을 짊어졌다고 판단했는지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계속 바꿔주더구나. 지금은 내 돈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고개를 끄덕인 앨런은 수레 근처에서 상자를 불렀다. 부름을 받은 녀석은 수레에서 새로운 기계 팔을 꺼내더니 주인의 등 쪽에 장착해줬다.

“그 팔이 계속 뚝딱거리던 거지? 어, 이동한다.”

“파워슈트를 만족스러운 수준까지 완성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서요. 그렇다고 팔 부분만 따로 운용하자니 제 팔이 아파서 개량했어요.”

많은 관절과 인공 근육으로 이루어진 장비는 마치 연체동물의 촉수를 연상케 했다.

“독립적인 시스템을 넣진 않았지만, 제 의도에 따라 잘 움직여줘요. 팔이 네 개가 됐으니 작업도 편해지고요.”

“보통 사람은 그걸 조종하는 것부터가 일인데.”

“그리고···.”

어느새 풀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이곳도 밤이 되었는지 어두웠다. 정확히 말하면 앨런이 있는 장소만.

“앨런!”

테일러가 손을 뻗었다. 10미터를 가볍게 넘는 거대한 뱀이 나무 위에서 앨런을 향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놈의 아가리가 떨어져 내리는 순간, 기계 팔이 반응하며 뱀의 입을 위아래로 붙잡았다. 그리고 주둥이를 쫙 찢어버렸다.

“···힘도 세요.”

바닥에 떨어져서 발광하는 뱀은 근처에 있는 탐험가들이 순식간에 토막으로 만들었다.

“너도 참 강심장이다.”

“살짝 놀라긴 했어요.”

“그럼 얼굴에 경악했다는 표시라도 하든가.”

앨런이 잡은 뱀은 변종이 아니었다. 마석은 있으나, 의식적으로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개체였다.

뱀의 마석은 보급대의 대장이 챙겨갔다. 22층으로 향하는 문의 위치를 알려면 나침반에 마석을 흡수시켜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 원시림(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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