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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85화 (85/193)

< 원시림(2) >

앨런을 습격하려 했던 뱀은 가죽이 벗겨져서 고기와 뼈만 남았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소꼬리를 잘라놨다고 착각할 모양새였다.

탐험가들은 고기에는 손도 안 대고 걸음을 재촉했다. 앨런 역시 그들의 뒤를 따랐다.

“처음부터 반겨주는 뱀이 14m나 되는군요. 환영식이 생각보다 거칩니다.”

“주둥아리를 쭉 찢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잖아. 길이는 언제 계산했대.”

“토막을 보고 대충 더했습니다.”

“티타노보아는 원래 커. 아니지 원시림에 살아가는 놈들은 전부 크구나. 고기가 저렇게 많이 나오니, 먹는 법만 알면 굶어 죽을 일은 없다. 잡아먹히지 않는다면.”

“고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챙겨가지는 않네요.”

“맛이 별로거든. 이곳에서 몇 달 머문 사람도 아니고,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보급대의 입맛을 충족시키긴 어렵겠지.”

앨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면을 바라봤다. 브레이커에서 사용하는 수레들이 전부 위로 떠올라서 울퉁불퉁한 바위나 땅거죽 밖으로 튀어나온 뿌리들을 피했다.

자신이 수레에 적용한 수법을 저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사실 플로팅 왜건이 원본이고, 앨런은 원리를 보고 따라 했을 뿐이다.

아직 자신은 새싹이고, 주변에는 거목이 가득하다. 그러니 똑같이 자라날 때까지는 그들의 자취를 잘 살피면 됐다.

원래 세상은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선구자를 따라가는 법이니까. 지금 사용하는 파워슈트, 룬펜 그리고 간단한 컵까지, 모두 누군가가 먼저 발명했다.

길이 사라지면 당황할 수도 있으나, 사실 그때부터가 가장 재밌는 부분이다.

자신이 개척자가 되고, 다른 이들은 자신을 따라올 테니까. 선두에 오래 머물러서 세계에 이름을 남기거나, 안정을 찾아서 타인과 함께 천천히 걷거나.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당연히 앨런은 누군가를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앞에 길이 있다면 걷고, 없으면 만들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다.

아우우우!

갯과 특유의 하울링이 앨런을 생각의 바다에서 끄집어냈다. 깊은 사유에 매몰되었던 감각이 제 역할을 찾으며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급 대열의 가장 선두에 있던 탐험가가 지팡이 하나를 높게 들어 올렸다. 동시에 무언가가 빠르게 펴졌다. 마치 바람 때문에 거꾸로 접힌 우산 모양의 접시였다.

“탐색 개시!”

저 마도구의 이름은 마력 파장 탐지기. 사방으로 마력파를 발산, 어딘가에 부딪혀서 돌아오는 반사 파장을 분석해서 지형이나 생명체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 결과는 홀로그램으로 나타난다. 탐지기 주변에 파란색의 삼차원 미니맵이 떠오르고, 붉은 점들이 곳곳에 찍혔다.

“추정 개체 다이어울프! 20마리! 도착까지 2분!”

전투대상이 사람이 아니라서 큰 소리로 알아낸 정보를 전달했다. 다른 이들도 큰 목소리로 따라 했다.

일반적인 야생동물은 사람을 보면 경계하기 마련이고, 다수의 인원이 우르르 몰려다니면 도망가기 바쁘다.

그런데 미궁의 동물들은 창조자의 입김이 들어가 있기에, 탐험가를 감지하면 무조건 적대적으로 돌변했다. 새끼를 지키는 어미 곰도 영역을 침범받은 호랑이도 그 정도로 사납진 않으리라.

바닥에 놓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면, 지금 접근하는 괴물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예상할 수 있었다.

‘표범보다 크겠는데.’

가죽을 제대로 입은 진짜 표범을 말하는 것이다.

곧, 수풀이 양옆으로 쫙 갈라지며 회색 털의 늑대 무리가 나타났다. 앨런의 예상대로 놈들은 거대했고, 몸길이만 2m에 가까웠다.

늑대답지 않게 주변의 나무를 박차고 위로 뛰어오르는 놈들도 있었다. 심지어 2마리가 그런 방식으로 앨런을 노렸다.

‘동물들은 연약한 개체부터 먼저 사냥한다지.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드워프도 있으니 키 문제는 아니고, 체구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잡념은 일부분이었다. 앨런의 정신 대부분은 자신을 노리는 다이어울프에게 집중되었다.

“왼쪽!”

시바의 목소리가 고막에 제대로 꽂혔다. 테일러의 어깨를 밟고 뛰어오른 시바가 미사일처럼 날아갔다.

공중에서도 송곳니가 번뜩이는 아가리를 용케 피하더니, 그대로 몸통에 드롭킥을 날렸다. 힘에서 밀린 다이어울프는 나무에 처박혔고, 하필 뾰족한 가지에 몸 일부가 관통당해서 샌드백으로 전락했다.

이제 남은 늑대는 하나. 앨런의 기계 팔이 움직이기도 전에, 앞에서 가만히 엎드려있던 표범이 수직으로 솟구쳤다.

[은밀] 덕분에 다이어울프는 표범을 늦게 눈치챘다. 그 대가는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표범이 목덜미 아래를 깨물고, 송곳니가 가죽을 단숨에 꿰뚫었다.

표범의 인공 근육이 강하게 수축, 동체를 180도 회전시켰다. 다이어울프를 짓밟은 표범은 그대로 추락했다.

뚜둑!

표범은 한번 문 적을 놔주지 않았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목뼈로 전달되었다. 살 곳을 찾아 밖으로 튀어나온 기다란 혀가 축 늘어졌다. 어쩌겠는가. 혀와 늑대는 운명공동체인 것을.

테일러의 발치에도 머리를 잃은 몸통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앨런의 시선이 데굴데굴 구르는 머리를 따라 움직였다.

보급대는 잘 싸웠다. 실력이 되면 혼자 처리했고, 모자라면 팀을 짜서 함께 맞섰다.

찰나의 실수로 목숨이 오가는 미궁에서 분수를 아는 것은 정말 중요했다.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구하는 능력은 만용이 아니라 냉철한 판단력이었다.

사람이라면 자존심 때문에 객관화가 힘들 수도 있지만, 브레이커의 직원에게서 그런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톱니바퀴 같다고?”

“네.”

“저게 조직의 무서움이다. 개인이 단체를 이길 수 없는 이유지. 제이크, 수집가, 재봉사 등 예외는 있지만, 걔들은 사람이 아니니 빼자고.”

부상자 없이 다이어울프 무리를 처리한 보급대는 바로 해체를 시작했다. 원시림쯤 되니 전부 마석을 품고 있었다. 괜찮은 값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크고 순도도 높았다.

“초반부터 동물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니 나침반을 가동할 마석 모으기는 쉽겠군요.”

“감당할 수 있으면. 객기 부리다 냄새나는 유기물로 변한 놈들이 한둘이 아냐.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날걸. 그나저나 지금쯤이면 22층으로 가는 마석은 전부 모았을 텐데.”

테일러의 예상대로 보급대의 이동 경로가 확 바뀌었다. 지금까지 가던 방향에서 거의 수직으로 움직였다.

한동안 걷다 보니 이동 중인 문과 마주쳤다. 거길 통과하니 22층. 22층 역시 동물을 사냥하고 마석을 모아서 나침반을 가동했다.

이번에는 23층으로 향하는 문 근처에서 다른 기업의 탐험대와 마주쳤다. 장비 전부를 칠성의 마크로 도배해서 어디 소속인지는 눈을 감고도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사이는 괜찮아 보이네요.”

“밖에서는 나빠도 여기에서는 좋아야지. 목숨 걸고 싸울 생각 아니라면.”

“어, 저 사람 허리띠는 칠성이 아니라 헥스테크에서 만들었네요.”

“그려진 마크는 육망성이 아니라 북두칠성이잖아.”

“상표 바꾸기는 쉽죠. 칠성의 허리띠가 이번에 원가절감을 했다더니, 그 영향인가 봐요.”

가장 선두에서 움직이던 탐험가가 앨런과 테일러의 대화를 들었는지 대열을 한번 훑어봤고, 어떤 탐험가는 가방을 슬그머니 당겨서 허리춤을 가렸다.

23층에 도착한 두 무리는 지형을 살피다가 반대 방향으로 갈라졌다. 우뚝 솟은 봉우리를 기준으로 브레이커는 오른쪽, 칠성은 왼쪽으로.

“칠성도 브레이커처럼 자신들의 기지가 있지. 이 위치면 브레이커의 기지가 곧 보일 거다.”

테일러의 장담대로 빽빽한 나무 밀도가 낮아지고, 평야가 나타났다. 저 멀리, 장벽으로 둘러싸인 브레이커의 기지가 있었다.

앨런의 왼쪽 눈이 망원경처럼 작동했다.

“미궁에 있는 기지라고 해서 아담한 규모를 상상했는데 생각보다 크네요.”

커다란 마대를 철사로 둘둘 감아서 모래를 담는, 헤스코 베리어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그 너머로는 콘크리트 구조물도 보였다.

“머무는 사람이 꽤 있으니까. 마대 자루 안쪽이 외성, 콘크리트 장벽 너머는 내성으로 부른다.”

내성은 브레이커의 직원들이 사용하고, 바깥쪽은 일반 탐험가에게 개방했다. 다른 기업들은 처음에 기지 이용료를 비싸게 받았지만, 브레이커의 무료 개방 때문에 그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 지급하겠죠.”

“예리해. 기지 이용료라고 따로 받는 것보다 정산 수수료가 올랐다는 식으로 처리하는 쪽이 반발이 적지. 그래도 이용료 내던 때보다는 싸게 먹히니까.”

기지가 보이자 시바가 힙 플라스크를 꺼냈다. 꽃에 유혹당한 꿀벌처럼 테일러가 슬그머니 다가갔다.

“브레이커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많이 전파하는군요. 그런데 테일러 형제님은···.”

“내가 어때서?”

“맨날 저만 보면 음해하시지 않습니까.”

“장난이지. 어쨌든 브레이커도 다른 기업처럼 수상한 구석이 있긴 한데, 사회에 많이 베푸는 편이야.”

“어릴 때 키워주신 수녀님도 젊은 시절에 탐험가를 잠깐 하셨는데 브레이커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어쩌면 테일러 형제님과 만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쎄, 만난 사람이 워낙 많고,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져서···.”

브레이커는 여러모로 이상한 기업이었다. 욕을 먹는 횟수보다 칭송을 더 많이 받는 기업을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대기업이.

제이크 마셜 회장의 취임사대로 브레이커는 오직 미궁을 돌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회사 소속이 아니더라도 편의를 많이 제공했다.

보급대는 어떤 검문도 없이 문을 통과했다. 내성으로 향하는 길을 경계 삼아서 상업과 거주 구역으로 나뉘었다.

아로마아의 항구와 똑같이 사람들은 바삐 움직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희망의 크기였다. 얼마냐 크냐에 따라 얼굴빛이 달라졌고, 당연히 이쪽 사람들의 피부가 훨씬 반짝였다.

“대기업의 회장, 심도 7의 강자. 힘과 부를 모두 갖췄으니 명예를 추구하는 걸까요?”

“미궁 정복은 어쩌면 사람이 멸종할 때까지 이름이 오르내릴 수도 있는 업적이지.”

“다른 행성을 식민지로 삼으면 모르죠.”

“아직 멀었어. 이제야 달에 작은 정착지를 만들었는데 우주 식민지? 내가 죽을 때까지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어쩌면 테일러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미궁이라는 거대한 꿀단지가 있는데, 밖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원 탐사는 우주 탐험의 큰 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미궁에서 자원이 계속 쏟아지니, 그럴 필요를 크게 못 느꼈다.

오죽하면 솔도스 연방의 시민들이 여론 조사에서 우주 탐험 예산을 낮추고, 미궁 관련 예산을 늘리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솔도스 연방은 어떻게든 미궁 관련 이권을 되돌려받고 싶어 하지만, 메이즈시티 시 정부는 콧방귀만 꼈다.

미궁 발견 초기, 로비에 눈이 멀어서 특별자치시의 지위를 부여한 의원들은 백골이 된 지금도 가루가 되도록 씹히고 있었다.

보급대의 속도가 살짝 느려졌다. 내성 문 앞에서도 검문이 있으나 이번에도 빠르게 넘어갔다. 그때, 중간쯤에 있던 물자 관리자 하나가 앨런의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는데 실력은 좋네. 그런데 등록 탐험가라도 여긴 출입금지. 즐거운 탐험 되길.”

그렇게 내성 문이 코앞에서 닫혔다. 앨런은 틈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내부를 살폈다.

“시설 괜찮은데 아쉽네요.”

“프랑수아 이 녀석. 오크 주제에 쓸데없이 깐깐해선.”

“하프 오크 아닌가요?”

“인적사항에는 오크라고 적혀 있어서 지금까지 그렇게 알았는데. 그래서 인상이 순했나?”

물론 순하다는 것도 일반 오크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의미였다. 인간을 옆에 두면 당연히 사납게 생겼다.

“그렇게 적혀 있었으면 아저씨 말이 맞겠죠. 제가 착각했나 봐요. 자, 그럼 다시 밖으로 나가죠.”

“안 쉬고?”

앨런의 손가락이 태양을 가리켰다.

“아직 대낮이에요.”

“여긴 밤이 없잖아. 너도 땡중이랑 똑같이 행동하면 나 힘들어.”

“불필요한 기억은 빨리 잊는 편이라서···.”

“네가 기계니?”

“생물도 유기체로 이루어진 기계니 틀린 말은 아니네요.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나가자는 말은 아니었어요.”

앨런은 품속에서 약하게 진동하는 나침반을 꺼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바늘만 떨렸다. 마석을 먹이기 전까지 침묵하는 바늘이 미약하게나마 떨리는 현상은 평범하지 않았다.

나침반은 무언가를 가리키는 물건. 그 끝에 문이 있든지, 유적이 있든지, 아니면 괴물이 있을 것이다.

< 원시림(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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