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사(1) >
죄수를 이송하는 방법은 많고, 그들에게 전달하는 액세서리도 다양하다. 일반적이라면 수갑을 채우거나 발목에 족쇄를 매달아서 행동을 제한했다.
매직웨어가 널리 퍼지기 전의 일반인이라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단련 없이도 구시대의 운동선수를 압도하는 육체를 지닐 수 있고, 아무런 전투 경험이 없어도 뇌 확장 장치에 꽂은 기억수정을 읽어서 타인의 동작을 재현할 수도 있었다.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꾸린 사람들보다는 범죄자에게 훨씬 와닿는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에는 폭력이 큰 비율을 차지하기에 몸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포박 도구도 발전했다. 예전처럼 수갑만 달랑 채워놓으면 손쉽게 끊고 도망갈 테니까.
그들을 무력화하는 방법에는 매직웨어 내부의 마력회로를 무효화하거나, 마법을 부여해서 착용자를 부정적인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 등이 있다.
앨런의 선택은 즉석 마도구 제작이었다.
최후의 자존심인지 아직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남자의 팔과 다리에는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고, 표면에 새겨진 룬문자는 마력 특유의 푸른 빛을 흘렸다.
[혼란], [차단], [쇠약], [둔화].
마력을 어지럽혀 기세를 줄이고, 회로를 틀어막고, 힘을 잃은 육체를 쇠약하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느릿함도 부여했다.
이빨 몇 개 빠진 것 말고는 상처가 없으니, 물건으로 따지면 보존 상태가 썩 좋았다.
“싱싱하군요.”
23층에 있는 연구기지의 연구원도 같은 생각인지 식품매장에서나 쓸 법한 말을 내뱉었다.
연구원이 안경, 아마도 장식품을 고쳐 쓰며 테일러에게 물었다. 가장 연장자기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미꾸라지보다 잘 도망치는 놈을 도대체 어떻게 사로잡으셨습니까?”
“낚싯바늘에 녀석이 걸리더군. 얼마 전에 로렌조, 음···.”
“그냥 팀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새끼손가락을 계기로 로렌조 팀장과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침 이놈도 손가락이 없었지.”
테일러와 연구원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앨런은 주변을 살폈다.
에셀 마탑의 연구기지는 브레이커와 다르게 폐쇄적이고, 마탑 구성원과 관계자만 드나들 수 있는 시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외형도 교도소와 비슷했다. ‘연구’라는 단어가 괜히 앞에 붙었겠는가.
대화를 마친 연구원의 눈동자가 일행을 빠르게 훑다가 상자 뒤에서 멈췄다.
“혹시 황제도롱뇽도 파는 겁니까?”
그는 플로팅 왜건 위에 실린, 둘둘 말린 천을 콕 집어서 가리켰다. 연구로 눈썰미를 다졌는지, 도롱뇽의 신체 일부만 빠져나와 있음에도 바로 알아차렸다.
앨런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의뢰인이 따로 있습니다.”
“가격을 더 쳐줄 수 있지만, 계약이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군요.”
요화가 도롱뇽을 꼭 집어서 생포해오라는 말은 안 했지만, 피살이꽃의 변화 이유를 알려면 텃밭이 되어준 생물이 필요했다.
그러는 편이 앨런에게도 좋았다. 약효가 좋아질수록 몸을 좀먹는 마력을 빠르게 잠재울 테니까.
앨런의 마력은 요즘도 통제를 벗어나서 무섭게 불어났다. 가끔은 몸이 풍선처럼 뻥 터져버리는 꿈을 꾸기도 했다.
앨런은 요화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세균과 항생제.’
‘무슨 뜻인가요?’
‘항생제는 피살이꽃, 세균은 마력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니?’
‘몸이 튼튼해지면 마력이 많아도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수용량이 늘어나니 마력 용량도 덩달아 늘어났다는 뜻이군요. 세균이 항생제 내성을 얻는 것처럼요.’
‘똑똑한 애들은 이게 좋아. 대충 말해도 이해해서 계속 설명할 필요가 없거든.’
피살이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시한폭탄의 시계를 뒤로 미루는 행위에 가까웠다. 여유를 얻어도 폭탄을 해체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었다.
마나하트를 파괴하면 단번에 나을 병이지만, 마법공학에서 멀어진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랑카에서의 탈출과 그 사건 이후, 마법공학은 앨런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아니, 그 자체라고 해도 좋았다.
슬픔을 잊으려고 술이나 마약에 손대서 중독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앨런이 그런 경우였다. 물론 이쪽은 훨씬 건전한 방향의 몰입이었다.
연구원은 아쉽다는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지만, 응대는 제대로 했다.
“보상은 로렌조 팀장님과 이야기하셔야 합니다. 오시려면 며칠 지나야 할 테니 객실을 내어드리겠습니다. 내부를 돌아다니셔도 괜찮은데 파란 막이 존재하는 통로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어차피 뚫지도 못하겠지만요.”
안 그래도 폐쇄적인 시설인데 추가적인 조치도 있었다. 보안이 많을수록 비밀을 지키기 좋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연구원이 소개해준 객실은 킹사이즈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갈 면적이었다.
그래도 미궁에서는 사치였다. 노숙할 때 쓰는 텐트와 비교하면, 온도와 습도가 적당하고 안정감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나에 몰아넣을 줄 알았더니 개인실로 주는군요.”
포켓 술병, 아니 성수병을 꺼낸 시바가 한 모금 마시고 재빨리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말할 시기를 놓친 테일러가 입맛만 쩍쩍 다셨다.
“표범이랑 상자가 들어갈 수는 있나? 앨런, 좁아서 괜찮겠니?”
“복도에 대기시키면 됩니다.”
마침 앨런의 방은 복도 끝에 있어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문제 삼을 사람이 없었다.
“그럼 저는 구경 좀 할 테니 쉬고 계세요.”
연구 시설에 운 좋게 들어왔으니, 이 기회를 놓치긴 아쉬웠다. 비록 실험을 볼 수는 없지만, 연구원 대부분은 마법사였다. 달리 말하면 그들만 사용하는 매직웨어를 관찰할 기회라는 의미였다.
“나는 푹 자야겠다. 손님용 목걸이 잘 걸고 다니고.”
“네. 주무세요.”
앨런은 파워슈트를 입고 건물을 나섰다. ㄷ자 형태의 건물 안쪽에는 공터가 있었다.
표지판을 보니 공터의 원래 역할은 건강을 위한 운동장이나, 마법사, 그것도 연구하러 온 사람들이 운동을 선호하겠는가?
가볍게 걸으며 대화를 나누거나, 벤치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자거나, 아니면 한쪽에서 마법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앨런은 운동장 구석에 있는 벤치를 찾아서 앉으려고 했지만, 마법사 아니랄까 봐 그런 자리에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가운데에 앉았다. 파워슈트는 저쪽에서 펑펑 터지는 마법에 비해 임팩트가 부족했기에 주목받지 못했다.
앨런이 원하는 바였다. 없는 사람처럼 굴며 주변을 관찰했다.
‘마법사가 왜 전문직 중에서도 3등 안에 드는지 알겠어.’
일단 마력 자체가 굉장히 정순했다. 통제력도 뛰어나서 낭비하는 마나도 거의 확인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가장 빛나는 부분은 높은 지능일 것이다.
“상이한 마력 원소를 합성하려고 하면 물질과 반물질의 쌍소멸처럼 에너지가 분출되잖아.”
“그렇지.”
“그런데 마력은 질량이 없잖아.”
“그래서?”
“내가 생각해봤는데 허수 차원에 기원을 둬서 그런 거 아닐까? 질량은 거기에 놔두고 우리는 효과만 경험하는 거지. 홀로그램처럼 덧씌운다고 해야 하나?”
“그럼 우주수(宇宙樹) 가설은? 음의 마력을 흡수해서 양의 마력으로 분출하려면 마력이 현실 차원에 존재해야 하잖아.”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가자.”
물론, 그들도 사람인지라 욕구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지나가는 마법사들이 앨런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으나, 손님용 목걸이를 보고는 그냥 지나쳤다.
보내는 시선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마치 한 단계 아래의 존재를 보는 눈빛이랄까.
마법사가 되려면 재능이 가장 중요하고, 그런 만큼 선택받았다는 인식도 강했다. 그런 이유로 팽배한 선민의식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마법공학의 발달로 마법사의 위세가 높아진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정작 앨런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운동장 왼쪽에서는 인간형 오토마톤끼리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콰직!
쾅!
무언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쉴 틈 없이 들렸다. 단단한 금속이 바닥에 미끄러지며 사방으로 풀을 휘날렸다.
지나가던 마법사도 잠시 구경하고, 건물 유리창에도 동그란 얼굴들이 포도송이처럼 붙어있었다. 연구가 주는 피로감을 시각적 쾌락으로 해소하는 것이리라.
맞부딪침에서 나오는 우레같은 굉음과 외장갑 사이로 보이는 인공 근육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앨런의 관점에서도 호쾌했다.
“오늘은 해머가 복수하나?”
“저번에 거머리한테 관절기로 털렸잖아.”
오토마톤은 생물을 닮아서 관절이 존재하긴 하나, 가동범위가 훨씬 자유로웠다. 부엉이처럼 목을 막 돌려도 망가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관절기라···.’
앨런은 두 기계의 몸체를 유심히 살폈다. 오토마톤보다는 사람과 거의 일치하는 관절 구조였다. 움직임도 전문적인 무술가와 흡사했다.
‘모션을 캡처해서 기억수정에 담았구나.’
덕분에 무술가의 동작이 오토마톤의 몸으로 재현되었다. 인공 피부만 덮어놓으면 진짜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세밀했다.
앨런은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매끈한 피부와 머리카락만 만져질 뿐, 그곳에는 뇌 확장 장치에서 파생되는 소켓이 없었다.
‘나도 저렇게 움직이면 좋겠지.’
연구소에 도착하기 전에 테라굴라를 직접 쓰러트리는 과정에서 보인 추태를 생각하면, 밖으로 표현은 안 해도 부끄러웠다.
저런 움직임이 가능했다면, 개미지옥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는 속도를 이용해서 단번에 처리했을 것이다.
다만, 그러려면 뇌 확장 장치가 필요했다.
앨런은 그걸 부착할 생각이 없으니, 파워슈트와 연동시켜야 했다. 무술가와 본인의 체형에 따른 괴리감을 조정할 뇌가 없으니 훨씬 어려운 작업이 되리라.
앨런에게는 험난한 과정 자체도 즐길 거리였기에 난이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벤치에서 일어난 앨런은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아저씨, 매직웨어 점검할 시간입니다.”
“원래는 지상에서 한 번에 했잖아?”
“여유가 생겼으니 하는 편이 좋죠. 우리는 몸을 쓰니까요.”
마침 미궁에서 수십 년을 견디고, 교관으로서 일도 했던 좋은 참고서가 옆에 있었다. 본인은 재능의 한계를 느껴서 힘들었다고 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면 그것도 대단했다.
앨런은 매직웨어를 점검하면서 고장 상태를 감지하는 센서를 조금 손봤다.
“끝났어요. 멀쩡하네요.”
“역시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앨런은 입을 다물고 자신의 방으로 재빨리 돌아갔다. 웨스턴스카이에 자주 들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물론 테일러의 움직임을 복사해도 항상 그렇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날달걀을 강하게 흔들면 어떻게 될까? 노른자가 터져버린다.
누군가에게는 심심한, 앨런에게는 알찬 시간이 흘렀다. 이틀 후, 로렌조가 연구소로 복귀했다.
앨런이 그를 바로 보는 일은 없었다. 연구원에게 물어봐도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평소처럼 벤치에 앉아서 마법사들을 관찰하는 도중, 서늘함을 느낀 앨런이 고개를 홱 돌렸다.
로렌조가 20m 정도의 거리에서 이쪽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앨런과 눈이 마주치자 뚜벅뚜벅 걸어왔다. 마법사임에도 체형이 단단하고 컸다.
“감이 좋군. 환상 마법으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나인 줄 알아보고 여기까지 온 것도 그렇고···.”
“보니까 알겠던데요.”
“운도 실력···. 아···.”
평소에 아랫사람들에게 ‘운이 좋았다.’라는 겸손한 말을 많이 들어서일까. 앨런의 대답을 엉뚱하게 이해했다.
“구더기와 이야기는 끝났습니까?”
“그래. 보상에 대해서는 여러 말 안 하지. 2억. 세금은 이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 신경 쓸 필요 없다.”
“잘 쓰겠습니다.”
낚시로 큰 물고기를 낚았더니 2억이 생겼다. 기회만 된다면 종종 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오셨습니까? 거리상 다른 두 분이 훨씬 가까웠을 텐데요.”
“중심은 너니까. 나이는 제일 어려도 의사결정 권한 상당수는 너에게 있겠지.”
로렌조의 평가가 맞았다. 앨런이 평소에는 조용히 있어도 탐험의 방향 결정에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게 보이시나요?”
“보니까 알겠더군.”
로렌조는 앨런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물론 앨런은 그와 달리 말실수하진 않았다.
“단순한 의사 전달은 부하 직원을 부려도 되셨을 텐데···.”
“혹시 이쪽 의뢰받을 생각 있나?”
“의뢰요?”
앨런이 조용히 눈만 깜빡였다. 압도적인 실력을 지니고 왜 우리를 쓰냐는 뜻이었다.
“호랑이도 쥐새끼는 잡기 힘든 법이지. 하지만 개와 고양이라면 좀 다르다.”
말투에는 오만함과 자부심 가득했지만, 정작 내용은 얼굴이 팔려서, 혹은 구더기들이 너무 잘 숨어서 찾기 힘들다는 의미였다.
앨런은 이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
< 조사(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