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사(3) >
마법사는 앨런의 양어깨를 붙잡고 고열을 뿜어냈다. 테일러와 시바가 접근하려 해도 굵은 불꽃 촉수들이 나타나 방해했다.
앨런은 몸이 익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왜 마법사를 주의하라고 하는지 알겠어. 아직은 파워슈트가 버티고 있으니···.’
눈을 이리저리 돌리자 상자가 보였다. 녀석은 쓰러진 표범의 하체를 툭툭 치고 있었다.
나무와 충돌하며 어긋났던 부품이 집게발로 인해 제자리를 찾았는지 표범이 몸을 일으켰다. 푸른 눈동자가 이쪽을 바라봤다.
동시에 마법사가 손날에 생성한 뜨거운 칼날로 파워슈트를 찔렀다. 칼날은 외장갑을 녹이며 조금씩 파고들었다.
“어떤 마력로를 썼길래 이리 오래 버티지? 그건 내가 가져야겠다.”
찰나의 욕심, 망가트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출력이 낮아졌다. 온갖 공격을 다 녹이는 화염에 빈틈이 생기자, 앨런의 기계 팔이 마법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서로에 의해 구속당한 상태에서도 마법사는 태연했다.
“고작 이런 힘으로는 막을 수 없···. 같잖은 수를.”
표범이 뿜어낸 열선이 마법사의 등을 강타했다. 마법사는 타고난 화염 내성으로 버티고, 방어막을 생성해서 도리어 열선을 밀어냈다.
표범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뒤로 밀리려는 녀석의 엉덩이를 상자가 밀어줬다. 거리가 짧을수록 열선의 힘이 잘 전달되지만, 지금은 방어막에 막히며 둥그렇게 번질 뿐이었다.
마법사의 팔근육이 부풀어오르더니 앨런과 본인의 위치를 강제로 바꿨다. 주인이 방패가 되니, 표범이 입을 다물었다.
열선이 끊기는 순간, 마법사가 앨런을 내던지고 표범에게 접근했다. 그의 손날에는 파워슈트를 찔렀던 고열의 칼날이 존재했다.
앨런은 이다음에 벌어질 일을 예상했다.
‘나를 이용해서 그 아이를 끝낼 생각이겠지. 그렇게 놓아둘 순 없어.’
똑바로 누운 자세로 날아가는 와중에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표범의 기척이 느껴졌다.
앨런은 파워슈트 날갯죽지 부분의 마력회로를 과부하 시켰다. 외장갑의 좁은 틈으로 세차게 빠져나오는 마력은 마치 제트엔진 같았다.
강한 흐름이 지면 쪽으로 쏘아지니.
콰아아!
그야말로 공기가 찢어지고, 땅이 패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워있던 몸이 번쩍 들리며 회전하자,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마법사가 보였다.
속도가 급격히 줄어서 마법사와의 거리가 훨씬 가까워졌다.
‘아저씨라면 어떻게 할까?’
앨런은 그에게 붙여놓은 동작 감지 센서에서 읽은 정보를 떠올렸다. 생각과 실행의 간극은 극도로 짧았다.
양 주먹을 번쩍 들고 아래로 내려찍었다. 아직도 등에서는 마력이 제트엔진처럼 분출되기에 더해진 힘이 굉장했다. 꽉 말아쥔 주먹이 마법사의 헬멧을 강타했다. 쩌적하며 금이 생기는 소리가 확실히 들렸다.
마법사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제일 눈에 띄는 유효타였다. 명색이 마법공학자인데 마탄이나 마도구도 아니고 주먹으로 타격을 먹였다는 사실에 기분이 좀 이상하긴 했다.
그러나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무릎 꿇는 줄 알았던 마법사는 앨런의 아래로 길게 미끄러졌다.
지금 앨런의 자세는 머리가 땅으로 향해서 풍경이 거꾸로 보였다. 뒤집힌 세상에서 마법사의 손이 표범을 훑고 지나갔다.
어떤 소리도 없이 상·하체가 분리되었다.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흐르고, 분리된 표/범은 앨런의 몸과 부딪히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앨런은 그 상태에서도 움직이려고 하는 표범을 만류했다.
“얌전히 있어.”
자는 아기처럼 얌전해진 표범을 두고 움직였다. 그사이 테일러와 시바가 딱 달라붙어서 마법사를 압박하고 있었다.
‘저걸 압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매직웨어의 진정한 사용법을 보여주겠다는 말처럼 두 사람의 공격을 적절히 방어하고, 거기에 더해서 간헐적으로 마법도 사용했다.
시바의 방어막이 뚫려서 자랑하던 수염이 불탔고.
“오오, 씨발···. 어머님도 더러워진 제 입을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테일러는 샷건을 들고 있었던 오른쪽 손부터 팔꿈치까지 사라졌다.
“도마뱀 모르냐? 이거나 먹어라!”
팔꿈치가 끼워져 있어야 할 자리는 구멍이 뻥 뚫렸는데, 좀 굵은 마탄이 머리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질긴 그물이 들어있었다.
쫙 펼쳐진 그물이 마법사를 감쌌다. 그물 끄트머리에 달린 추에 새겨진 룬문자들이 번쩍였다. 상대의 마력을 마비시키는 전기가 마법사의 몸을 휘감았다.
외팔이 검사가 된 테일러가 마나소드를 들고 접근했고, 시바가 보조 성법을 외우며 바짝 따라붙었다.
아직도 마법사의 기세는 살벌했다. 공격을 막으며 깨진 헬멧 밖으로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광염 분출]
마법사를 중심으로 원형 파장이 생성됐다. 테일러와 시바의 몸이 주춤거리고, 뒤이어 화염이 거미줄 모양으로 지면을 미세하게 뚫고 나왔다.
범위가 굉장히 넓었다. 시바와 붙어있는 테일러는 성법의 보호를 받지만, 앨런은 그대로 휩쓸렸다.
광염. 날름거리는 열기가 미쳤다는 뜻처럼 사방으로 날뛰었다. 주변에는 태울만한 식물이 전부 사라진 상태라서 앨런 일행만 지독히 괴롭혔다.
너무 뜨거웠다. 어쩌면 파워슈트에 익은 살점이 들러붙었을 수도 있었다.
‘씨앗은 괜찮으려나.’
그러나 앨런의 생각은 육체의 고통과 동떨어져 있었다. 씨앗을 보관했던 부분은 녹아서 일그러졌으니 안 봐도 뻔했다.
계란은 여러 바구니에 보관하는 법. 앨런이 손을 뻗자 다각다각 다가온 상자가 씨앗 하나를 건넸다.
“표범은 네가 챙겨.”
삐―
“분해는 하지 말고.”
삐···
상자는 표범의 상체를 머리에 얹고 주인 근처에 숨었다.
앨런의 손바닥 위에는 작은 점이 있었다. 요화의 특별한 처리가 생략된, 오직 종자만을 얻기 위한 씨앗은 등에서 여러 식물을 키우는 황제도롱뇽의 생명력을 쪽쪽 빨아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씨앗이라도 필요했다. 메이즈시티에 머물며 약간 건강해진 육신이 무너지려 하니, 마력이 그나마 쓰고 있던 고삐도 벗어던졌다.
‘외부의 열기보다 내부가 더 뜨거워···.’
앨런은 씨앗을 장갑과 인공 근육이 아예 사라진 왼쪽 어깨에 심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 아픈지, 간지러운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마력이 꽤 거세게 빨려 나갔다. 누군가가 똑같은 입장이라면 마력을 흡수당해서 쓰러지겠지만, 앨런은 오히려 시원함을 느꼈다.
‘머리도 맑아졌어.’
앨런이 고개를 살짝 내리자 터진 외장갑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가 보였다. 열기 때문에 수분이 증발했는지 점성이 높았다.
머리를 들어 마법사를 바라봤다. 마법사는 프로젝터다. 렌즈를 뚫고 나가기 직전의 작은 빛은 몸속의 마력 구조체고, 화면에 넓게 펼쳐진 영상은 마법이었다.
그러나 앨런은 마력과다증이라 렌즈에 상이 맺히는 작업부터 힘들었다. 아니, 렌즈 자체가 깨져있으니 빛을 쏘아낼 수 있겠는가.
‘그럼 외부에 만들면 되겠지.’
예전에 흑마법사를 상대하며 피로 룬문자를 그린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비슷해.’
물론 마법학자가 들었으면 머리 위로 물음표를 몇 개 띄우고 쳐다봤을 생각이었다. 밀가루로 쌀 빵 만드는 소리 하지 말라며.
앨런은 혈액에 정신을 집중했다. 손가락으로 일일이 그렸을 때와 달리, 이번에는 피가 스스로 움직였다.
마법사의 광역 마법에 거미들이 전부 불타서 비는 이미 멎은 지 오래였다. 당연히 지면은 달구어진 돌과 같았으나, 혈액은 그 위를 기어가면서도 형체를 유지했다.
앨런은 마법사가 가까이에 있었을 때 느꼈던 무언가를 계속 떠올리려고 애썼다.
전사의 마력 조작을 단단하고 투박하게 치부해버리는 섬세한 운용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강력한 심상.
‘화염은 파괴. 마법사는 분노의 감정마저 그 안에 집어넣었겠지.’
그러니 차갑게 식혀줄 필요가 있었다. 앨런의 눈앞에 솟구친 피가 룬문자로 변했다. 손으로 그린 것과 비교하면 너무 어설펐다.
앨런은 정신을 집중했다. 이마와 양쪽 눈을 중심으로 3개의 원이 그려지고, 원들은 미간에서 겹쳤다. 깨진 바이저 너머로 빛이 뿜어졌다.
[빙결] [나선] [가속] [추적]
훨씬 뚜렷해진 룬문자가 사각형의 각 면에 자리했다. 아무것도 없는 네모난 구멍으로 마법사가 보였다.
그 형체가 점점 흐려졌다. 앨런의 눈에 문제가 생긴게 아니라 구멍 사이를 채우는 얼음 때문이었다. 매끈하던 표면에 뾰족한 머리가 올라오고.
발사.
총탄처럼 날아간 얼음 파편이 마법사를 강타했다. 마력방벽에 의해 얼음이 깨지며 반짝임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그마저도 금방 기화됐지만, 앨런이 쏘아낸 얼음은 하나가 아니었다.
투두두두두!
얼음탄이 마치 기관총처럼 발사되며 마력방벽을 두드렸다. 불에 잡아먹히는 속도보다 얼어붙는 게 빨랐다.
지금, 이 순간만은 앨런과 마법사의 제어력이 동일했다. 그렇다면 결정이 나는 부분은 마나하트의 크기였다.
기세를 키우려는 불.
짓눌러서 멈추려는 얼음.
둘은 상극이었다. 어느 한쪽이 압도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밀어내며 피해를 줬다.
마법사의 동작이 점점 굼뜨게 변했다. 테일러의 칼날이 방어 마법으로 강화한 로브를 찢고, 시바의 정권이 묵직한 타격을 내부로 전달했다.
마법사도 사람인지 로브 아래로 피가 흘러내렸다. 그것 자체는 낭보이나, 그는 여전히 [화염의 응보]를 몸에 두른 상태였다.
공격에 반응해서 터져 나오는 화염 때문에 테일러와 시바의 몰골도 처참했다.
순간, 앨런의 눈에는 마법사의 형상이 크게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와.”
앨런은 상자 머리 위에 있는 표범을 집어들었다.
쾅!
불꽃이 크게 폭발하며 테일러와 시바가 날아갔다. 마법사가 있던 자리에는 새빨간 아지랑이만 남았다.
[불꽃 걸음]으로 사라진 마법사가 누구를 노리는지는 명백했다.
앨런은 왼손을 표범의 상체 속에 집어넣었고, 오른손으로 무게를 받쳤다. 상체의 무게만 해도 100kg을 가볍게 넘으니, 파워슈트가 아직 작동해서 다행이었다.
표범의 상체에서 너덜너덜한 인공 근육과 눌어붙은 케이블들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앨런은 왼손을 더듬어서 영혼석과 마력로가 있는 부분을 움켜쥐었다.
왼쪽 눈으로는 마법사의 움직임을 살폈다. 얼어붙어서 처음보다는 느렸다. 상대적인 표현일뿐, 실제로 보면 흐릿한 잔상만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경로를 예측하긴 충분했다. 계산은 앨런이 자신 있는 영역이었다.
‘마법사처럼 빠르게 움직일 필요는 없어.’
그저 마법사가 도달하리라 예상한 곳으로 왼팔을 내밀었다. 가만히 있던 표범이 허공을 강하게 깨물었다.
콰직!
드릴 송곳니가 촘촘히 난 아가리가 그 자리에 나타난 마법사의 헬멧을 덥석 물었다.
“흡!”
송곳니가 깨진 헬멧 안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마법사가 빠져나가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드르륵!
드릴이 회전하며 머리에 두른 마력방벽을 깎아냈다. 마법사는 방어를 유지하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화염을 분출했다.
‘자신에게 돌아갈 피해도 각오했어.’
조절할 수 없는 화염까지 풀어내서 빨리 끝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앨런은 버텼다. 얼음탄을 쐈던 피는 어느새 앨런의 몸에 붙어서 새로운 룬문자로 변한 뒤였다.
[내화] 4 중첩.
덕분에 처음 보다 버틸만했다. 어깨에 자라난 피살이꽃도 보호를 받아서, 불 속에서도 눈에 띄는 빨간 꽃잎을 피워냈다.
“끄으으···.”
마법사가 기묘한 신음을 흘렸다. 앨런은 왜 저러는지 알고 있었다.
표범은 헬멧 정면을 물고 있고, 마법사의 눈에는 그 아이의 목구멍이 보였다. 그리고 목구멍에는 수문장의 열선 안구가 부착되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빛이 강해지는 모습이 보이겠지.’
앨런은 그 자세 그대로 열광선을 발사했다. 화염을 다루는 마법사니 열에 내성이 있겠지만, 자신의 마력까지 보탰으니 오래 쏘다 보면 뚫리리라.
게다가 이만한 실력의 마법사가 주로 다루는 속성에 대해 얼마나 내성을 지니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9, 10, 11, 12···.”
“으아아!”
앨런이 숫자를 세는 소리는 굉음과 마법사의 비명에 때문에 테일러와 시바의 귀에 닿지 않았다.
< 마법사(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