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드러시(1) >
튼튼한 요새 위로 높이 50m, 너비 100m의 검은색 문이 보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앨런 일행은 사람이 쑥쑥 빠지는 2번째 줄로 향했다. 1번째 줄에서 대기 중인 탐험가들이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다.
20층 돌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포, 스트레스, 생명의 위협 등을 이겨내며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적었다.
끝없이 내려가는 부류는 보통 3가지로 나뉘었다. 머리의 나사가 풀려있거나, 마력 덕분에 정신력이 튼튼하거나, 너무 무신경해서 반응이 약하거나.
탐험가 대부분은 첫째와 둘째 이유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그 문제에 대해 앨런과 시바가 이야기를 나눴다.
“형제님 왠지 그렇게 말하니 우리에게 장애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게 마음 쓸 일인가요?”
“네?”
“사람은 크든 작든 불편한 부분을 하나씩 지니고 있습니다. 저 사람은 호흡기에 문제가 있고, 저 오크는 시력이 안 좋고, 저 고블린은 피부가 햇빛에 매우 약하군요.”
“보면 아십니까?”
“사람들에 대한 데이터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다 보니 관찰하는 능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통계의 오류를 조심해야겠지만요.”
작정하고 관찰하면 종족, 신장, 대략적인 몸무게, 착용한 매직웨어 등이 왼쪽 안구로 보는 시야에 출력되었다. 물론 앨런만 볼 수 있는 증강현실로.
탐험가를 볼 때마다 색다른 결과가 나와서 입장 대기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앨런은 9층에 대기하다 수문장을 찾으러 내려갔다. 원래라면 귀중한 부품만 챙기고 내려갈 테지만, 이제는 23층에서 팔면 되니 몽땅 챙겨가도 괜찮았다.
미로를 뒤져서 수문장을 찾긴 했는데, 하필이면 11층으로 내려가는 통로 근처에서 누군가와 싸우고 있었다.
‘ㅓ’자로 생긴 길을 지나가며 왼쪽을 쳐다보니 익숙한 모습이 그 자리에 있었다.
몸에 달라붙는 까만 옷과 펄럭이는 검은 망토, 날개뼈까지 닿는 회색 머리 그리고 검이 가득 들어있는 더플백.
시온의 몸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데, 검을 든 팔은 채찍처럼 초고속으로 움직여서 흐릿한 잔상만 보였다. 검이 지나가고 나서야 베였다는 사실을 알아챈 바람이 고통을 호소했다.
한동안 작업에 열중하던 시온이 검을 검집에 밀어 넣었다.
달칵!
작으면서도 또렷한 소리와 함께 3m의 금속 거체에 무수히 많은 실금이 생겼다. 작고 묵직한 조각이 우수수 떨어지며 제법 요란한 소음을 흘렸다.
시온의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고, 투명한 회색 눈동자가 앨런을 바라봤다. 매우 지긋이 쳐다봤다.
“···?”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앨런이 손을 흔들자 그제야 표정을 풀고 저쪽도 화답해줬다.
시온이 잘게 자른 수문장을 검집으로 헤집는 사이, 테일러가 조용히 말했다.
“신기하네. 쟤는 친한 사람이 없는데.”
“요원들이 있잖아요.”
“직장 동료라고 친할까? 모신교는 어때?”
“저희는 가족입니다. 처음 봤어도 같은 길을 걷고 있으면 혈육처럼 대합니다.”
“전부 그렇다고? 솔직히 말해”
“교묘히 남을 속이는 형제님도 있긴 합니다. 그런 분들은 알게 모르게 꺼리게 되죠.”
“잠깐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동일 부서에 배속받아도 친하진 않아. 요원 애들이 좀 유별나긴 한데, 시온은 타고난 아싸라서.”
예전의 앨런이라면 아싸가 무슨 단어인지 물어보겠지만 같이 다닌 지 꽤 되어서 알고 있었다.
“실력이 뛰어난 동료를 배척하는 이유가 뭐죠?”
“배척이라기보다는 시온이 어울리는 걸 싫어해. 내가 천재 검사라고 했던 말은 농담이 아니다. 범인이 보는 세상과 쟤가 마주하는 세상은 형태가 달라. 이해자가 없다는 건 슬픈 일이지.”
“왜죠? 혼자 지내도 딱히 문제는 없던데요···.”
“너도 쟤랑 비슷한 과라 그래.”
“마법공학자와 검사는 하늘과 땅 차이죠. 마력의 흐름이 딴판이고 근육의 형성 구조도 완전히 다릅니다.”
“그거 말고. 사고구조 말이야.”
시온도 미궁탐험가이기에 수문장을 해체해서 중요한 부품을 챙기고 있었다. 축구공만 한 덩어리를 망토 안에 쑥쑥 집어넣었다.
“차원 배낭이죠? 하나 있으면 좋겠네요.”
“구하기 힘들걸. 작은 용량은 저번에 번 돈으로 살 수 있었는데, 내가 보탠다고 하니 네가 싫다고 했잖아.”
“업그레이드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기왕 장만한다면 큰 녀석으로 구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큰 거로?”
“저번에 브레이커가 사용하던 배낭 정도요.”
“1000억짜리? 하늘에서 별이라도 떨어지면 모를까···, 그거 사려면 뼈 빠지게 일해야겠구나.”
앨런 일행은 속도를 냈다. 수문장을 놓친 건 어쩔 수 없지만, 미궁은 넓으니 하나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이번에는 근위병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20층 궁전 복도가 텅 비어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깔끔하게 썰린 오토마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앨런의 지팡이가 잔해를 뒤적거렸다.
“마석과 영혼석만 빼갔네요.”
강한 기시감이 솟아올랐다.
“로렌조 씨를 만났을 때와 비슷하군요. 칼 솜씨를 보면 이번에는 시온 선배겠죠.”
그녀는 혼자 다니고, 이동속도도 굉장히 빨라서 어쩌면 당연한 추측이었다.
대전에 도착했는데 안쪽이 조용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여니 근위병의 파워슈트 위에 시온이 앉아있었다.
그녀가 갑자기 칼을 뽑자 테일러가 당황했다.
“왜? 어째서?”
“스토커.”
“우리가?”
“프랑수아가 스토커는 응징하래.”
“오해다. 우리처럼 착한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고···.”
“착한 사람이 유적을 선수 쳐서 빼앗아? 거긴 어떻게 들어갔어?”
“잘?”
“그것 때문에 회장님에게 혼났어···.”
시온이 어깨를 늘어트리자 검 끝이 바닥에 긁혔다. 시무룩한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시온의 실력을 아는 사람에게는 새를 놓친 호랑이처럼 보였다.
시온이 저벅저벅 다가오자 앨런이 앞으로 나섰다.
“봉우리의 유적은 재생하죠? 이번에 내려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맞아.”
검을 바로 집어넣었다. 차별이 느껴지는 태도에 테일러가 고개를 흔들고, 시바가 키 차이 때문에 어깨 말고 등을 토닥여 줬다.
“우회할 수 있는 열쇠가 사라져서 이제는 못 들어가니 안심해도 됩니다.”
“진짜지? 이번에는 따라오지 마. 너라도 용서 안 해줄 거야.”
파워슈트 몸통을 중점적으로 챙긴 시온이 옥좌의 문을 통해 사라졌다. 테일러는 그녀가 남기고 간 팔다리를 챙기며 말했다.
“대우가 너무 다르잖아···.”
“교관 하셨을 때 서운했던 점이 많았나 봐요.”
“내가 얼마나 잘해 줬는데.”
“형제님, 가해자는 보통 그렇게 말합니다. 장난이었다. 우린 친한 친구다. 오해다.”
“아니···.”
시바는 테일러가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하하. 시온 자매님은 앨런 형제님께 너그럽군요.”
“천재끼리 통하는 게 있나?”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앨런은 둘의 대화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그들도 생각나는 대로 내뱉으며 심심한 여정을 달래고자 하는 시도였다.
원시림에서 천천히 사냥하며 23층에 도착했는데, 평소라면 죽일 듯이 달려드는 맹수들이 코빼기도 안 보였다.
“동물이 없군요.”
“위를 봐.”
테일러가 가리킨 하늘에 아르겐타비스라 불리는 맹금류가 있었다. 날개를 쫙 펴면 6m가 넘는, 하늘의 거대한 사냥꾼이었다.
그런데 녀석의 발톱에 줄이 묶여있고 그 아래에는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원래는 지랄발광해야 정상인데 얌전하구나.”
“로렌조 씨에게 건넨 원통으로 길들였겠죠.”
“아, 그렇지. 새로 구상한 사업인가? 정찰이면 골렘이나 드론을 띄우는 편이 훨씬 좋을 텐데···.”
“실험 단계에서는 손익을 따지면 안 됩니다. 사업에서 해야 할 일을 미리 끌어오면 어떠한 발전도 없습니다.”
앨런의 말투에는 평소의 덤덤한 어조는 어디 가고 강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테일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니면 부자들을 상대로 하는 관광상품일 수도 있지. 그치들은 특이한 경험을 좋아하니까.”
“음, 다시 보니 탐험가라기엔 풍채가 좋네요.”
23층 브레이커 기지에 도착한 앨런은 전리품을 정리하려고 판매소를 찾았고, 테일러와 시바는 잘 곳을 찾으러 갔다.
미궁 현지 가격으로 거래를 마친 앨런은 주머니를 챙기고 건물을 나서다가 시온과 마주쳤다. 그녀는 앨런이 얻은 물건과 반대로 문자가 하나도 없는 밋밋한 지팡이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내가 이겼다는 느낌의 흐뭇한 미소를 보고 있으니, 앨런의 입이 근질거렸지만 참았다.
“벌써 해결하셨네요?”
“내가 뛰어나긴 해.”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의 얼굴에 금칠한 시온은 앨런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여기는 내성 방향이 아닌데요.”
“몇 층까지 내려가?”
그녀는 앨런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질문을 던졌다.
“알려줘야 합니까?”
“선배!로서 조언해줄 수도 있어.”
“26층입니다.”
“늪지대 지나서 나오는 산 많은 곳?”
“네.”
“로만 컴퍼니 탐험대가 거기로 우르르 몰려갔어. 다른 탐험대도 있는데, 로만 쪽이 제일 많아.”
시온의 입장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흘리는 정보겠지만, 철저한 대비를 선호하는 앨런에게는 귀중했다.
작별인사를 나눈 앨런은 브레이커에서 제공하는 천막 중 하나로 들어갔다. 내부 정돈과 마도구 배치를 마친 테일러에게 둘이 나눴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온이 그런 정보를 알려줬다고? 무슨 꿍꿍이지?”
“선의를 그렇게 포장하시면···.”
“잠깐, 목적지를 알려줬다고 했지?”
“층만요.”
“지팡이도 얻었으니, 그때의 복수를 하겠다고 따라오려는 속셈인가?”
“요원이 유치하게 그럴까요?”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검에 대한 부분만 천재라고. 다른 쪽은 그냥 바보야.”
“너무 극단적인데요.”
“서번트 증후군 알지? 그리고 생명학파는 유전자 조작을 수시로 하고, 수련법 중에는 오감 중 하나만 극대화하고 나머지는 억제하는 종류도 있지. 그런 걸 생각하면 마냥 이상한 일은 아니다.”
동방대륙에 있다는 동자공도 그런 부류였다. 하나를 얻는 대신 하나를 잃는. 너무나 당연한 세상의 이치였다. 앨런 자신도 그 증거 중 하나였다.
충분한 휴식으로 몸을 달랜 앨런은 다음 층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가 고개를 갑자기 뒤로 돌렸다.
빽빽한 나무와 무성한 식물이 가득했다. 주인의 옆에서 걷던 표범도 머리를 갸웃거리며 후방을 살폈다.
“형제님, 왜 그러십니까?”
“마력 파장 탐지기가 오작동했나 봐요.”
그렇게 말한 앨런은 정면을 보는 척하다가 다시 뒤쪽을 응시했다. 녹색과 갈색이 가득한 장소에 회색 실 하나가 떨어졌다.
그럴 줄 알았다. 앨런은 자신이 만든 물건을 신뢰했다. 누군가가 부수거나, 시간이 고장 내지 않는 한 작동하리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나오세요.”
테일러와 시바도 제자리에 멈춰 섰다.
“선배, 왜 쫓아 오시는 겁니까?”
앨런이 콕 집어서 말하자 다리가 풀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나뭇가지가 후드득 떨어지고, 시온의 모습이 보였다.
“같이 가려고.”
“왜죠?”
“대신에 누가 귀찮게 굴면 내가 치워줄게.”
“괜찮습니다.”
“잘 생각했···. 싫다고? 왜?”
시온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테일러도 앨런의 귀에 속삭였다.
“왜? 쟤만 있으면 저번의 마법사가 또 나타나도 쉽게 쓱싹할 수 있어.”
“아저씨가 요원은 문제를 몰고 다닌다면서요.”
“형제님, 저의 짧은 식견에 의하면 우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단 저도 찬성입니다.”
확실히 시온이 동행하면 원시림에서 발생할 문제 대부분은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앨런도 그녀가 알려준 정보가 마음에 걸리긴 했다.
‘에셀 마탑의 소문이 퍼져서 탐험대들이 우르르 몰려든 건가?’
그렇다면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소문을 듣고 욕심에 눈이 벌게진 사람들이 모였는데 얌전히 넘어갈 리가 있겠는가.
“알겠습니다. 대신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무슨 부탁?”
“동작 감지 센서를 옷에 달아도 될까요?”
“좋아.”
신체 강화도 그냥 알려준다고 했던 시온이니 흔쾌히 허락할 줄 알았다.
그녀는 앨런이 아는 사람 중에 육체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었다. 오로스 교수도 있으나 힘을 앞세운 그의 전투방식은 앨런에게 맞지 않았다.
테일러는 앨런과 달리 전사들이 몸을 다루는 비법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알고 있기에 시온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래도 괜찮겠니?”
“알려줘도 아무나 따라 할 수 없음!”
천재의 자신감이지만, 테일러의 생각은 좀 달랐다.
< 골드러시(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