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드러시(4) >
보물산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병사는 전신을 크롬으로 도금한 것처럼 번쩍거렸다. 물론 이 경우에는 은백색이 아니라 황금색으로.
병사 하나하나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동굴에서 나오는 오토마톤 수준이라 원시림을 밥 먹듯 다니는 탐험가들은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처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녀석들이 무한히 재생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기력과 마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숫자의 힘 앞에 점점 뒤로 밀렸다.
“그냥 튈까?”
“문이 닫혔는데 어디로? 딴생각하지 말고 하나라도 더 잡아!”
탐험가들의 어깨가 축 처지는 모습과 달리 앨런 일행은 여유로웠다.
앨런과 테일러는 무슨 짓을 해도 공격받지 않았고, 시온은 실력이 뛰어나며, 시바는 수도승답게 매우 단단했다.
사람은 여유가 있으면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외부를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시바는 성직자답게 자비심이 어찌나 충만한지 누군가 위험한 꼴을 구경만 하지 않았다.
“저 형제님들을 도와주겠습니다.”
“알아서 해.”
테일러가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병사의 목을 치며 말했다.
시바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병사의 방진을 몸으로 뚫었다. 검과 창 등의 고전적인 무기를 방어막과 몸뚱이로 무시하고, 벽을 박차고 천장까지 뛰어올랐다.
걸음을 크게 디딘 시바가 천장에 거꾸로 섰다. 중력의 방향이 바뀐 듯한 모습이었다.
“합!”
추락 직전, 짧은 기합과 함께 굽혔던 다리를 강하게 폈다. 다릿심과 중력이 더해지자 무시무시한 속도를 냈다. 신성력의 빛이 그를 감쌌다.
시바는 팔을 교차해서 머리 앞을 막고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하얀 유성이 병사들을 볼링공처럼 치고 지나갔다.
시바가 다시 복귀했고, 도움을 받은 탐험가들도 슬그머니 따라붙었다.
“앨런 형제님, 너무 앞에 나왔습니다. 후방으로 이동하시죠.”
“저는 공격을 안 받으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에 사용했던 기술은 육체에 부담이 클 텐데요.”
“드워프는 원래 강골이고, 어머님의 은혜까지 있으니 괜찮습니다. 기술명은 ‘추락하는 샛별’인데 어떻습니까?”
“···? 왠지 성직자와 안 맞는 명칭 같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이상하게 꺼림칙했다. 마침 다른 병사가 달려들며 대화가 끊기고, 앨런이 정권을 준비하는 시바의 앞을 막아섰다.
“앨런! 맡기고 그냥 뒤로 빠지라니까!”
테일러는 앨런에게 뒤로 빠지라고 종용했지만.
“생생한 신비를 눈앞에서 관찰할 기회를 놓칠 수 없죠.”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병사들도 아군으로 대하니 테일러도 이해하며 몸을 돌렸다.
앨런이 자신을 지나치려는 병사에게 손을 뻗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온의 동작을 입력한 파워슈트가 움직이고, 앨런은 탑승객에 불과했다.
강철의 손아귀가 병사의 어깨를 붙잡고, 뿌리치려는 녀석의 오금을 발로 찼다. 병사의 몸이 붕 뜨며 등으로 떨어져 내렸다.
지이잉!
앨런의 손은 부르르 떨렸다. 시온의 파동을 흉내만 낸 수준이라 파괴적이지는 않지만, 내부에 파고들어 마력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됐다.
‘진동 마사지기라···.’
앨런은 테일러가 했던 말이 자꾸 떠올라서 머리를 거세게 흔들고, 병사에게 집중했다.
양팔을 붙잡힌 개체는 미약한 반항만 보였다. 그 상황에서도 머리와 무기만은 무조건 다른 탐험가를 향했다.
오크 탐험가가 변장한 시온에게 왜 저러는지 물으려다가, 단칼에 서넛을 베어내자 움찔하며 수도승인 시바에게 접근했다. 모신교 성직자는 악인에겐 가차 없지만, 법규를 준수하는 사람에게는 천사였다.
“금색 오토마톤이 왜 파워슈트 탐험가를 무시합니까?”
“형제님, 몸은 괜찮으신지요.”
“성직자님 덕분에···.”
빈말이 아니었다. 천장을 박차고 추락하는 이상한 공격으로 구원받았으니까.
“저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예? 하지만 저 방법을 알면 다른 탐험가들도 편히···.”
“마법의 비밀에 대해 밝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 제가 실수했습니다”
앨런도 수련법 덕분이라고 짐작만 하는데 시바가 어떻게 알겠는가. 대신, 친하지도 않은데 능력에 대해 자세히 캐묻는 행위는 금기라는 점을 적절히 써먹었다.
앨런은 병사를 살피는 중이었다. 상자가 두 팔을 잡고, 표범이 두 다리를 깔고 앉았다.
‘금을 통째로 부어서 주조한 형태 같으면서도 부서지면 금화로 변화···,’
금화 자체에 신비가 담겨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보물고 전체이거나.
갑자기 병사가 크게 꿈틀거려서 자세히 보니, 자유를 얻은 손 하나가 떨어트린 무기를 찾으려 했다.
앨런이 눈을 살짝 들자, 상자가 집게발 하나로만 병사를 잡고, 나머지 집게로는 금화를 줍고 있었다. 눈살을 살짝 찌푸리니, 상자가 재빨리 팔을 봉쇄했다.
작동을 정지시키면 금화로 변하니, 팔팔한 상태에서 병사의 내부를 투시했다.
‘마력이 어떻게 흐르는지는 대충 확인했고, 가슴 쪽의 장치는 발신기 같은데···.’
앨런은 주먹을 쥐고 병사의 가슴을 두드리거나, 마력을 주입했다. 그럴 때마다 발신기가 작동하며 마력을 밑으로 보냈다.
‘충격을 에너지로 전환해서 무언가에게 보내고 있군.’
시온과 위치를 바꾸며 뒤로 살짝 빠진 테일러가 물었다.
“아직도 그러고 있니?”
“대략적인 구조 파악은 끝났습니다. 보물산 밑에 무언가가 있으니 병사들 먼저 정리하겠습니다.”
구성을 완전히 몰라도, 모든 신비의 원료가 마력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통하는 진리였다. 그러니 방법이 없을 때 마력을 차단하면 대부분은 해결됐다.
앨런은 몸을 일으키며 지상에서 테일러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앨런, 뇌 확장 장치 안 만드니? 연산이나 룬문자 그릴 때 머리만 쥐어짜면 힘들잖아.’
‘그게 왜 힘들죠?’
‘당연히···. 음···.’
도움이 왜 필요하냐는 표정에 테일러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앨런의 뇌가 자신과 다르다는 점을 잠시 잊은 것이다.
‘다른 쓸모가 많잖아. 효율은 극도로 떨어지지만, 액세서리 형태로 외부에 장착하면 귀찮게 통신용 단말기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그게 그거 아닐까요?’
‘파워슈트에 부착하면 되잖아. 마력 신호 탈취나 간섭의 위험 때문에 외부 장착은 꺼린다지만, 네 정신 방벽을 뚫을 마법사가 얼마나 있겠니?’
뇌 확장 장치의 해킹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기계는 별문자를 건들면 된다지만, 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의 정신은 생각보다 견고하고 복잡했다.
그래서 앨런의 해킹도 확장 장치를 직접 건들기보다 외부로 빠져나오는 신호나 다른 매직웨어에 간섭했다. 그런데 외부에 있으면 말이 좀 달라졌다.
‘정신 방벽이요? 그런 마법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을까요?’
‘널 압도할 정신력을 지녔으면 그냥 마법으로 태워 죽이는 게 더 빨라.’
건설적인 토론 후, 앨런은 확장이 아니라 보조 장치를 만들었다. 안쪽에 심는 녀석보다 배는 비싸고 효율은 반토막이지만, 자잘한 일을 맡길 순 있었다.
게다가 또 다른 기능을 담았으니,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 형상변환합금이다.
원래는 적합도를 높이려고 피를 첨가하려 했지만, 테일러의 만류로 인해 마력만 쏟아부었다.
앨런이 마력으로 범벅을 만들어놔서 한동안 창고 내부의 마력 농도가 엄청 높았다. 덕분에 비토가 여기에 올 때마다 몸이 무겁다고 징징거린 건 덤이었다.
형상변환합금의 용도는 여럿이나, 앨런은 그중에서도 마법진의 역할을 기대했다.
[침투], [부식], [혼란], [차단]
파워슈트 내부의 합금이 주인의 의지에 따라 모습을 변형했다. 마력회로를 망가트리는 마나펄스 수류탄의 원리를 개량하고 강화해서 그 안에 담았다.
한순간 파워슈트가 강하게 빛났다.
“제 앞에서 나오세요.”
앨런의 차분한 목소리가 탐험가들의 고막에 꽂혔다. 병사들을 밀어낸 탐험가들이 길을 열고, 앨런이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마법사 특유의 영창은 없어도, 앨런은 속으로 기술의 이름을 되뇌었다.
‘적막’
앨런의 전방, 부채꼴 형태로 푸른빛이 쏘아졌다. 빛이 닿은 장소에서는 병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명칭대로 병사의 마력수신기와 마력회로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범위를 벗어난 병사가 존재하나 극히 일부였다.
테일러가 그 모습을 보고 자랑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마법이지.”
“심상이 더해지지 않아서 마법은 아닙니다.”
“내 눈에 그게 그거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병사가 완전히 사라지고 봉쇄됐던 문이 열렸다.
눈치를 살피던 로만 측 탐험가 둘이 문으로 내달렸다. 하나는 무사히 통과했지만, 하나는 그렇지 못했다.
지그재그 형상의 빛줄기가 왜소한 탐험가를 강타했다. 그냥 번개가 아닌지 맞은 사람을 삭제했다.
짤랑!
탐험가가 완전히 소멸한 장소에는 깨끗한 금화가 후드득 떨어졌다.
“보물창고 따위가 아니라 함정이구나.”
“아저씨, 주머니가 두둑해 보이네요. 아쉽지만 금화는 버리세요.”
테일러는 베테랑 탐험가답게 이동에 방해 안 될 정도로만 챙겼다.
시바는 분명 마법사와 싸우면서 수염이 많이 불탔는데도 수염을 터니 금화가 짤랑거리며 쏟아졌다.
시온은 애초에 금화에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의 말대로 검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짤랑짤랑!
유난히 큰 소리가 들린 장소를 보니, 상자가 금화를 쏟아내고 있었다. 떨어지는 금화가 조명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났다.
“앨런, 우리는 괜찮지 않을까?”
“······.”
“알았다. 알았어.”
목숨 걸고 실험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힘을 써야 하니 다른 분들에게···.”
앨런은 도움을 요청하려고 고개를 돌렸다가, 로만 소속의 탐험가가 신문 받는 모습을 발견했다. 우르르 둘러싸고 으르렁거리니 다른 절차 없이도 술술 털어놨다.
“문을 열었더니 그랬어. 다른 건 정말 몰라!”
“이렇게 갇힐 줄 알았으면 했겠냐? 니들도 생각해봐. 새로운 문을 발견했는데 구경만 할 거야? 안 열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거냐고!”
마지막 말은 탐험가들도 공감하는 바였다. 그래서 적개심은 유지하되 고문이나 폭력으로 신체를 손상하지 않았다.
공격하지 않았다뿐이지, 매직웨어를 무력화하거나 떼어버리긴 했다. 장비를 벗겨내니, 줄어든 덩치만큼 자신감도 하락한 모습을 보였다.
“형제님들! 그쯤 하시고 이야기 좀 들어주시죠!”
시바가 소리치자 수십 명의 탐험가가 주의를 기울였다. 성직자라는 명함과 그의 행동에서 나온 결과였다.
“성직자님이 무슨 말을 하시려고?”
“저 말고 이쪽을 봐주시죠.”
“금화가 없으면 보물고의 문을 통과할 순 있지만, 단지 그것뿐입니다. 피라미드는 여전히 아래에 파묻혀서 탈출이 요원합니다.”
“그건 맞아. 공기는 저절로 생겨나니 상관없는데 식량이 문제지.”
“아까 병사를 살펴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를 쳐서 앨런의 말을 끊었다.
“맞아! 병사가 쟤는 공격 안 하더라고! 저 녀석이 우릴 끌어들인 거 아냐?”
“저 탐험가가 미궁을 조작했단 뜻이냐?”
“그래! 악!”
누군가가 의구심을 표출하는 탐험가의 뒤통수를 때렸다.
“네 눈엔 쟤가 수집가로 보여? 만약 변장한 수집가라고 치자.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그 말과 시바의 선행까지 더해져서 의혹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시온이 살짝 뺐던 검을 집어넣었다.
앨런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합리적인 의심이긴 했습니다. 지금은 확인할 수 없지만 병사의 내부에는 일종의 발신기가 있었는데, 충격을 받을 때마다 마력으로 전환해서 아래로 흘리더군요.”
그 말에 탐험가들이 보물산의 밑을 내려다봤다. 앨런의 말은 명백했다.
‘지금부터 삽질을 시작하세요.’
보물고는 갑작스럽게 공사현장으로 변했다. 원래라면 쌓여있는 황금을 보며 없던 힘도 쥐어짤 테지만, 지금은 그림에 그려진 빵이었다.
시바는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탐험가들도 힘을 냈지만, 앨런은 진상을 알았다. 그냥 황금이 가득해서 즐거운 것이었다.
매직웨어로 떡칠하거나 마력을 수련하는 탐험가 수십이 매달리니 보물산이 빠르게 옮겨졌다. 이제는 산이 아니라 분지라고 불러야 할 형태가 되었다.
깡!
개처럼 양손으로 금화를 밀어내던 탐험가의 손끝이 단단한 무언가와 부딪쳤다. 그것의 정체는 높이 4m는 되어 보이는 드래곤 형태의 황금색 골렘이었다.
테일러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원래대로라면 쟤랑 싸워야 했겠군. 근위병도 그렇고 은근히 패턴을 무시하는구나.”
대답을 기다리던 테일러는 옆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앨런은 이미 골렘 근처에 있었다.
< 골드러시(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