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118화 (118/193)

< 골드러시(5) >

드래곤을 닮은, 전신이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골렘은 아주 컸다. 발바닥부터 머리까지의 높이가 4m, 접은 날개를 폈을 때의 길이는 10m로 추정되었다.

‘몸과 비교하면 날개가 작아.’

앨런의 의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마력이었다. 매끈한 도금 아래에는 룬문자와 마력회로가 무수히 숨겨져 있었다.

‘날개는 비행과 공격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적으로 상대했다면 풍압과 칼바람을 동시에 견뎌야 했겠지.’

풍압이 몰아치면 균형을 잡기 힘들고, 칼바람은 문자 그대로 방어 장비와 마법을 찢었으리라.

심지어 발밑에 가득한 금화는 또 어떤가. 지반이 불안정해서 힘을 뿜어내기도 힘들뿐더러, 드래곤이 파괴되면 수복 재료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앨런은 골렘의 동체를 천천히 살피면서, 기웃거리는 탐험가들도 물리쳤다.

“접근하지 마세요. 이 녀석이 작동하게 되면 큰 낭패를 볼 겁니다.”

탐험가들이 ‘너는?’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병사들이 공격하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리고 나름의 비법이 있겠거니 하며 물러났다.

앨런의 발언은 독점욕에서 우러나오기도 했지만, 걱정도 섞여 있었으니 영 거짓말은 아니었다.

골렘의 도금 부위를 긁어내서 금화와 비교했는데, 둘은 비슷한 느낌을 지녔다. 아쉽지만 가지고 나갈 수 없단 뜻이었다. 게다가 덩치가 너무 커서 미로와 동굴에서 운용이 불가능했다.

‘축소하면···, 아니, 의미가 없겠지.’

골렘이나 타이탄을 왜 그렇게 크게 만들겠는가. 무게는 파괴력의 다른 말이고, 덩치가 클수록 강력한 마력로를 탑재할 수 있었다.

원시림에서는 가능하겠지만, 그러려면 골렘을 조각조각 분해해서 수레에 줄줄이 싣고 다녀야 했다. 지상에서라면 몰라도 미궁에서는 썩 좋은 계획이 아니었다.

‘브레이커에서 사용하던 대용량 차원배낭이면 수납이 가능하겠지. 우선 지상에서 똑같이 만들 수 있게 최대한 분석해보자.’

전투 병기의 제원은 극비였다. 자세히 풀어놓으면 온갖 파훼법이 생기거나 복제품이 시중에 나도니 당연한 조치였다.

엿이나 먹으라고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풀어 놓는 예도 있었다. 앨런이 삼라만상의 정보를 함부로 믿지 않는 이유였다. 가끔 멋모르고.

마력☆수련법 지금 접속시※※전원☜☜성장100%보장@@무료증정@

이딴 광고에 홀려서 수련한 아이들이 수술 및 기억절제술을 받았다고 뉴스에 나왔다.

어쨌든 이런 전투 병기를 마음대로 조사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게다가 골렘만 만들 수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연구 과정에서 사방으로 가지를 뻗는 파생 기술도 큰 이득으로 돌아왔다.

분석을 시작한 지 10시간, 여기저기 누워서 전투의 피로를 풀던 탐험가들도 슬슬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엘프 탐험가가 시바에게 물었다. 앨런 일행 중에는 가장 친근한 외모였고, 성직자라는 직함도 한몫했다.

“저 친구의 조사가 끝나면 나갈 수 있겠죠?”

“믿음을 가지세요. 지상의 함정은 적을 처치하려고 활로를 아예 차단해버리지만, 여기는 미궁입니다.”

“맞습니다. 미궁에는 탈출구가 무조건 있죠.”

“힘을 모으면 함정이 있더라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탐험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시바의 이야기를 들었다. 금화로 만든 임시 단상 위에 서서 주의를 끄는 모양새가 썩 어울렸다.

테일러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성직자라 그런지 말빨이 좋아. 매일 좋은 글귀만 보고 있어서 그런가?”

“···.”

테일러는 무료함을 달래려고 시온에 말을 걸었지만, 대꾸 하나 없었다. 그녀는 계속 검을 손질했다. 섬뜩한 날을 닮은 분위기가 동작 하나하나에 묻어있었다.

요원은 브레이커의 무력 담당.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은 사람 같다가도, 그 실상은 브레이커의 수뇌부가 휘두르는 무기였다.

테일러는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후학 양성 쪽으로 빠르게 전향한 사례지만, 같은 조직에 몸을 담고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가 조사하라고 시켜서 왔을 텐데.’

테일러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온은 광택 나게 닦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품에 꼭 안았다. 마치 애착 인형을 찾은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그냥 심심해서 따라왔나?’

대화 상대도 없으니 하품을 길게 하며 다시 벌러덩 누웠다. 적절히 쌓은 금화가 등받이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앨런은 주위에서 어떤 소음이 발생해도 전부 무시하며 골렘에 집중했다. 그 너머로 굵은 기둥과 골렘이 날아다녀도 충분한 높이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유적과 골렘도 지하인이 만들었을까?’

그들의 특징은 새하얀 몸, 돌 같은 피부 각질, 큰 신장이었다. 미궁에 출몰해서 지하인으로 뭉뚱그려놓긴 했지만.

‘그들이 대지를 거닐던 때도 지금처럼 다양한 종족이 살지 않았을까?’

앨런의 추측이지만 학자들도 대부분 그렇게 예상하였다. 위층의 조각에 새겨진 사람의 형상은 뭉뚱그려놨으나, 자세히 보면 제각각이었다.

‘다름은 분쟁의 사유고,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확실해. 그러니 자신들이 숭배하는 존재를 본떠서 골렘을 만들고, 보물고로 위장한 함정도 만들었겠지.’

자신들은 비밀통로를 통해 피신했다가, 보물고에서 힘이 빠진 적들을 처리한다. 이 얼마나 좋은 계획이던가.

그 사이, 탐험가들은 심심함을 달랠 방법을 찾았다. 금화 썰매, 금화 수영, 금화성 쌓기가 주류를 이뤘다.

평생 살면서 언제 이런 보물을 만나보겠는가. 이런 것 하나하나가 미궁을 탐험하는 이유이자 두고두고 회자할 안줏거리였다. 가져갈 순 없으니 최대한 즐기는 중이었다.

그렇다가 썰매 속도를 너무 과하게 냈는지 탐험가 하나가 골렘 쪽으로 향했다.

“야, 야! 거긴 가지 말라고 했잖아!”

누군가의 외침에 시선이 쏠렸다. 그러나 여기까지 내려올 실력의 탐험가라면 충분히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주목을 받은 탐험가는 몸을 옆으로 강하게 굴려서 골렘과 꽤 간격을 두고 지나갔다. 바닥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용수철처럼 튕기며 일어났다.

“내가 애냐? 내 걱정 말고 놀기나 해!”

기이잉!

그때 드래곤의 머리가 푸른 빛을 뿜어냈다.

“···?”

“너 때문이야!”

“내가 뭘 했다고?”

“미끄러지면서 골렘 쪽으로 금화를 흩뿌렸잖아!”

깨어난 골렘, 다시 일어날 병사. 둘을 동시에 상대할 생각에 피로감이 곱절로 증가했지만, 그들의 걱정이 실현되는 일은 없었다.

드래곤이 눈을 뜨긴 했지만, 오직 그것뿐이었다. 파워슈트를 입은 마법공학자도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앨런은 그제야 탐험가들의 시선을 눈치채고 차분한 어조로 설명했다.

“제가 깨웠습니다.”

“미리 말하라고!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상태는 사람으로 치면 식물인간, 음···, 전신 마비에 가깝겠군요.”

마력 회로를 모두 끊어놨으니, 생물을 예로 들면 신경계와 혈관이 모두 망가진 상태였다.

“그럼 이제 만져도 되나?”

호기심을 못 이긴 삼십 대 정도의 탐험가 하나가 다가오니 드래곤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기함을 토했다.

“으헉!”

“머리 쪽으론 오지 마세요.”

놀란 탐험가가 재빨리 달아나고, 앨런이 지팡이로 머리를 두드리자 눈이 다시 파랗게 빛났다. 앨런을 아군으로 인식한다는 뜻이었다.

앨런은 마력을 끌어올리다가 혹시 몰라서 헬멧의 바이저를 아래로 내렸다. 마력을 강하게 운용할 때 나타나는 특유의 현상을 남에게 보이긴 싫었다.

이마와 양쪽 눈을 중심으로 원 3개가 그려지고, 미간을 중심으로 겹쳤다.

끄드득!

그러자 드래곤의 머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앨런은 손바닥을 보이며 무기를 뽑아 드는 탐험가들을 진정시켰다.

드래곤을 살피던 앨런은 구동부의 마력회로만 되살렸다. 목이 자유로워진 골렘은 머리를 내려서 앨런과 눈높이를 맞췄다.

즈으으―

이상한 소리가 앨런의 귓가에 들렸다. 다른 크기와 높이의 소리가 반복적으로 전해졌다.

‘대화를 시도하는 건가? 단순히 입력된 음성만 출력?’

미궁에서 발견하는 책이 그렇듯, 음성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문자가 깨진 형태로 보이는 것처럼 골렘의 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룬문자와 별문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우였다. 그 둘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지만, 미궁의 창조자는 그런 점마저 예상했는지 어떤 단서도 남겨놓지 않았다.

앨런은 포기라는 단어를 바깥으로 밀어냈다. 위대한 마법공학자 카탄도 무슨 방법이 있었으니 별문자를 해독했으리라.

‘이 상태로 영혼석만 만져볼까?’

그건 어렵지 않았다. 해체당한 골렘은 회 떠지고 뼈만 남은 물고기 같은 꼴이었으니까.

이미 골렘의 별문자는 앨런이 외우고, 기억수정에 담아서 상자에 보관한 상태였다. 그래도 가동하면서 변화가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 합리적 판단이기도 했다.

앨런은 장갑을 벗고 빛을 뿜어내는 영혼석 위로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대로 별문자들이 튀어나오리라 예상했지만, 빛 하나 없는 검은 장막이 앨런을 감쌌다.

‘여긴···.’

주위를 둘러보기도 전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파란 구체가 생겼다.

‘주위를 도는 구체는 설마 달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파란 구체에 둥둥 떠 있는 커다란 조각이 무엇인지 감이 왔다.

‘대륙이구나.’

대륙에는 점이 하나 찍혀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으니.

‘모든 땅이 하나로 합쳐져 있어.’

초대륙은 언젠가 갈라지고 이동하기 마련이다. 점이 어디로 갔는지 지금 시대를 사는 앨런이 어떻게 알겠는가. 심지어 저런 형태의 초대륙은 앨런도 처음 봤다.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으니,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빛도 나타나서 앨런의 몸을 스캔했다.

처음에는 전신을.

[1차 확인, 불일치.]

다음에는 눈을.

[2차 확인, 보류.]

마지막에는 이마를.

[3차 확인, 일치.]

빛이 구체로 뭉치더니 부르르 떨었다.

[판정 결과 부적합. 마지막 접촉 후, □□□ 주기. 현재, 비상상황. 재판단···.]

음성이라기보다는 머릿속에 직접 꽂히는 말이었다. 텔레파시라는 현상과 매우 유사했다.

‘내가 확인했을 때는 전투와 구동을 위한 별문자만 있었는데, 숨겨진 부분이 있었구나.’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날 리 없었다. 앨런이 잠자코 있으니 다시 빛이 말했다.

[언어 전송 가능. 뇌의 과부화에 따른 기절 주의. 눕길 권장함.]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빛의 구체가 촉수를 뿜어내더니 앨런의 미간을 콕 찔렀다. 동시에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흘러들어왔다.

[기초 전송 완료. 다음 단ㄱ⁑⁂⁋§!]

그러다 빛이 꺼져버렸다. 검은 장막도 사라지고, 어느새 보물고가 앨런의 눈에 들어왔다. 테일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니? 멍하니 서 있던데···.”

바이저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숨겼을 텐데, 테일러는 미세한 변화를 느낀 듯했다.

“멀쩡해요. 얼마나 지났죠?”

“30분?”

“꽤 지났네요.”

앨런은 뇌 확장 장치를 통하지 않고 머릿속에 들어온 지식을 살폈다. 그건 어떤 언어였다. 동시에 에셀 마탑이 얻었던 원통이 무엇인지도 알아차렸다.

‘안쪽에 『동물 기억 재설정』이라고 적혀있었지.’

쉽게 말해서 맹수를 애완동물로 만드는 도구였다. 키워준 부모의 얼굴을 지우고, 그 자리에 주인이 될 사람을 끼워 넣는 기억 변환 장치기도 했다.

‘그럼 이건 용들의 말인가? 아니면 지하인들의 언어?’

그건 차차 고민할 문제였다. 탐험가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에 쏠려있어서 전신이 따가웠다. 그들은 골렘이 사라진 자리에 나타난 문을 보며, 앨런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거 들어가도 되나?”

문 너머로는 원시림의 풍경이 보였다. 피라미드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왕좌왕하는 탐험가들도 있었다.

“네, 여기가 탈출구입니다. 대신 이곳의 물건은 챙기지 마세요. 어떻게 되는지 알죠?”

탐험가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우르르 빠져나갔다. 달아났던 로만 측 탐험가도 진즉에 잡혀 와서 남은 사람은 없었다.

원시림에 발을 디디자 탐험가들이 로만 측 인원에게 말했다.

“매직웨어는 입장료와 교환한다. 내놔.”

“뭐? 그건···.”

“통제는 무슨. 일도 똑바로 못하면서 돈이나 처먹으려고 하고.”

탐험가들은 좋게 말하면 심지가 단단하고, 나쁘게 말하면 거칠었다. 마찰이 싫어서 입장료를 냈지만, 얻은 게 없으니 돌려받을 생각이었다.

앨런이 으름장을 놓는 탐험가에게 물었다.

“얼마나 내셨어요?”

“사람당 10만 코인. 너희는?”

“전부 합쳐서 1천만이요.”

“도둑 새끼들. 너희가 되게 만만해 보였나 보다. 제일 고생했는데 건진 게 없어서 속 좀 쓰리겠네.”

앨런은 어깨만 으쓱거렸다.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소문이 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언제나 그렇듯 보물을 쟁취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 골드러시(5)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