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 속 천재공학자-119화 (119/193)

< 시립대(1) >

용 혹은 지하인이 사용했으리라 추정되는 언어가 앨런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쉬워.’

빛의 구체는 기초 전송을 완료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사라져버렸다. 기초라고 했으니 분명 다음이 있을 텐데 왜 없어졌단 말인가.

‘기초? 무슨 뜻이지? 그 시절에는 문자에 계급이 존재했나?’

몇백 년 전만 하더라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다른 나라가 꽤 있었다고 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라진 골렘도 아쉬웠다. 골렘을 재료로 문이 만들어질 줄 알았다면, 가동한 영혼석에 손을 대지 않고 오래 지켜봤으리라.

타고난, 혹은 학습된 지식욕 때문에 상당한 양의 지식을 얻었어도 아쉬움 한 조각이 더 크게 느껴졌다.

테일러는 앨런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다.

“욕심쟁이 같으니.”

“···.”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만 보내주고, 네가 얻은 성과에 집중해. 천천히 소화하며 미궁을 내려가다 보면 또 기회가 생기겠지. 아쉬움을 차라리 탐험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거라.”

앨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엎드려있는 표범을 쳐다봤다. 드래곤 골렘은 바람을 다루는 능력을 지녔고, 근접전 및 속도전이 주력인 표범에게 어울렸다.

기술을 안다고 바로 적용하긴 힘들었다. 사실 앎은 무지의 다른 표현이며,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표범은 뼈대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아예 외장갑을 떼어내고 기초 마력회로부터 다시 새기는 과정이었다.

테일러는 언어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처음에는 어찌할 줄 모르는 아이처럼 방방 뛰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헛기침을 해댔다.

“험, 험! 내가 잠시 흥을 냈구나.”

“네?”

“못 봤으면 됐다. 어떻게 그런 지식을 얻었는지 정말 신기하구나. 알려달라곤 안 할 테니 너도 웬만하면 비밀을 유지하거라.”

“가르쳐주고 싶어도 불가능할걸요.”

“무슨 뜻이냐?”

“사람이 매의 날갯짓을 배울 수 있을까요?”

“날개 자체가 없으니 불가능하지. 아, 네 말은 조건에 들어맞아야 자격이 생긴다는 뜻이구나.”

“네.”

“신기한 언어일세. 아니면 우회로를 통해 배워서 그런가?”

“그럴 수도 있죠. 사실 지금도 떠올리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아요. 마치 안개 속에서 헤매는 사람이 된 기분이에요.”

가르치진 못해도 활용은 할 수 있으니 자꾸 욕구가 차올랐다. 그렇다고 ‘제가 미궁의 언어를 조금 아는데, 오파츠 좀 볼 수 있을까요?’라는 말을 하면 안 되니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대표적인 방법은 오파츠로 박물관을 차리는 부자의 밑으로 들어가거나, 경매장의 직원이 되는 것이다. 혹은 이름난 탐험가조합의 감정사나 상위 직급으로 취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오파츠를 다루는 직업은 신원과 신용이 확실해야 해서 불법 입국한 앨런이 지원할 만한 업무가 아니었다. 설령 지원을 받아준다고 해도 탐험가 생활을 1년도 못한 앨런을 뽑아줄지도 의문이고.

미궁의 언어를 읽을 줄 안다고 하면 바로 채용하겠지만, 그들이 앨런을 어떻게 다룰지는 뻔했다. 평생 감시받고, 갇혀 사는 삶은 앨런의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탐험가조합의 의뢰를 받으면 되지.”

“저도 그 생각 하고 있었어요.”

앨런은 눈을 감고 삼라만상에 접속했다. 눈 앞에 펼쳐진 가상의 세계는 언제나 그렇듯 현실을 아득히 초월했다.

땅 대신 구름 위에 빌딩이 세워져 있고, 정체불명의 물고기 떼가 그사이를 날아다녔다. 웬 거대한 늑대가 나타나서 태양을 집어삼키고, 대신 달을 토해내기도 했다.

상상이 그대로 구현된 공간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명함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뇌 확장 장치가 없는 앨런의 문제였다.

‘필요한 것만 얻을 수 있으면 돼.’

화질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오직 지식만이 중요했다.

앨런이 브레이커를 떠올리자, 몸이 빠르게 날아갔다. 구름 위를 스치듯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아래에서 두 발로 걷는 상어가 튀어나왔다.

근육질 몸통에 상어 머리를 달고 있는 라이칸이 날카로운 이빨을 부딪치며 웃었다.

“확장 장치도 없이 삼라만상에 다이브해? 간도 큰 놈이네.”

“걱정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하하하. 내가 왜 걱정을 하지? 방화벽도 없는 멍청이가 눈앞에 있는데?”

상어가 갑자기 커졌다. 가까이 다가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물리적인 크기가 성장한 것이다.

이곳은 가상의 세계라 현실의 법칙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었다. 상어의 모습도 아바타일 확률이 높았다.

날카로운 이빨 하나하나가 앨런의 머리와 비슷한 크기였다. 입을 닫자 이빨이 맞물리며 앨런의 모습이 사라졌다.

“확장 장치 없이 함부로 접속하지 말라고 학교나 부모가 알려줬을 텐데···. 무슨 장치로 들어왔는지 정보나 빼 볼까?”

상어가 입을 오물거렸다. 무언가를 씹는 모습 같아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앨런의 신호를 역으로 추적해서 데이터를 갈취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갑자기 상어의 동작이 딱 멈췄다. 날카로움을 자랑하던 이빨이 저절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현실이 아니라, 말을 제대로 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고, 접속을 끊으려는 행위도 막혔다. 그제야 상어는 깨달았다.

“씨발···. 마법사냐? 맞지?! 확장 장치도 없이 이런 일이 가능한 놈들은 그 새끼들밖에 없어!”

“당신이 다이버를 공격하는 상어군요. 상어는 그런 부류의 총칭이라 그런 모습을 빌렸을 테고요.”

앨런은 자신의 손을 보며 말했다. 정확히는 손에 끼워져있는 상어 모양의 인형에 대고.

“날 어떻게 할 셈이냐?”

“개가 인형을 좋아할까요?”

“무슨 개소리야?”

앨런은 상어의 말을 무시하며 비행을 이어갔다. 어느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자, 그제야 상어의 몸통이 새파랗게 질렸다. 회색 인형이 파랗게 변하는 광경은 조금이나마 눈길을 끌었다.

“여기는!”

“브레이커의 구역이죠.”

외딴 섬에는 거대한 석판이 우후죽순 솟아있었다. 앨런이 접속자 필터를 끄지 않았다면, 이곳을 돌아다니는 탐험가들의 아바타가 보였으리라.

석판 앞에 도착한 앨런은 인형을 벗고 아래로 던졌다. 허공에서 흉악한 송곳니가 튀어나오더니 상어를 집어삼켰다. 도베르만을 닮은 방화벽이 앨런을 슬쩍 보더니 다시 자취를 감췄다.

저렇게 당하면 보통 2가지 결말이 기다린다. 뇌 확장 장치가 통째로 타버리며 뇌까지 망가지거나, 아니면 위치 추적 및 마비가 동시에 걸려서 잡히거나.

브레이커는 후자를 선호했고, 앨런을 노리던 상어는 작은 방에서 시민들의 세금으로 산 에너지바만 한동안 먹게 될 것이다.

상어를 일별하고, 석판을 훑었다. 오파츠에 관한 의뢰는 여럿이었다. 탐험가라고 무조건 미궁만 들어가진 않았다. 지상이 그리운 사람들은 용병처럼 일을 맡기도 했다.

오파츠에 대한 정확한 감정이 필요합니다. 경력 길고, 신용 있고, 입이 무거운···.

성능 실험을 위해 사람을 구합니다. 직접 몸으로 맞아야 하니 튼튼한 분을 찾습니다. 위험 동의서는 무조건 작성···.

오파츠 운송 의뢰. 실력 좋고, 열정 있는 분을 찾습니다. 의뢰비는 협의 후···.

온갖 의뢰가 있었지만, 앨런의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일단 조건부터가 이상한 녀석이 여럿이었다.

‘브레이커가 이런 의뢰도 받아준다고?’

앨런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구석에 있는 별을 발견했다. 별 하나짜리, 즉 형편없는 의뢰란 의미였다.

이러면 말이 달랐다. 브레이커가 사전에 분류를 해뒀으니, 선택은 탐험가의 몫이었다.

‘찾았다.’

석판을 쭉 훑다가 일정 부분에 멈췄다. 시립대 미궁학과에서 내건 상시 의뢰였다.

‘탐험 중 학생 보호, 오파츠 및 유적 경비.’

미궁학과에 다니는 학생은 미궁에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기에 탐험가도 언제나 모집했다. 별이 3개 붙어있는 꽤 괜찮은 의뢰였다.

문제가 있다면 학과 예산 때문에 의뢰금이 다른 일거리에 비해 적었다. 물론 앨런에겐 상관없는 내용이었고, 대학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

앨런은 의뢰를 받고 시립대로 향했다. 시바와 테일러는 대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이번에는 쉬겠다고 했다.

메이즈시티 시립대는 꽤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땅값이 비쌀 때 지어진 게 아니라, 외곽에 지었는데 도시 확장과 맞물려 시가지로 변한 사례였다.

조경이 잘되어서 건물과 식물의 조화가 대단했다. 아예 기둥 하나를 살아있는 나무에게 맡긴 건물도 있었다.

‘이곳이 배움의 전당이구나.’

도시의 최고 인재들이 모이는 장소답게 밖과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일단 총성이나 폭발음이 일절 없었다. 약에 취해 길거리를 누비는 좀비들도 보이지 않았다.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부류가 옆을 지나가긴 했다.

“끄윽~.”

“아유, 냄새. 적당히 퍼마셔.”

“안 취했어. 스트레스 해소하려면 알코올이 필요해.”

성수를 좋아하는 시바와 테일러가 자주 보이는 모습이었다. 워낙 익숙한 광경이고, 앨런도 스트레스 해소의 중요성을 알기에 이해했다.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저럴까?’

생각해보면 저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낸 기억이 없었다. 룬문자를 그리고, 별문자를 찍는 행위가 너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나는 저 정도로 몰릴 때까지 열심히 살지 않았구나. 반성하자···.’

앨런은 방문자를 안내하는 새 골렘을 따라 목적지로 향했다.

벽돌로 외부를 마감한 미궁학과 건물 앞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중심에는 머리 하나가 불쑥 솟아있었다.

오로스 교수, 높은 지성을 간직한 오크가 학생들 가운데에서 수업하고 있었다.

학생들 틈으로 슬쩍 보니 원시림에서 출몰하는 거대 두더지, 테라굴라가 얌전히 누워있었다. 배가 갈려있으니 그럴 수밖에.

“거대한 침샘이 보이시나요? 테라굴라의 침은 촉촉할 땐 흙을 부수고, 말랐을 때는 단단하게 만들어요. 길쭉한 혀로 발톱을 핥는 이유죠. 그거 아세요? 그러다가 혀가 베이는 녀석도 있답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교실에서 해부하면 냄새가 심하니 아예 외부에서 수업을 진행했으리라. 학생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갈라지고, 위풍당당한 모습의 오로스가 걸어 나왔다.

탐험복이 아니라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터질듯한 근육은 이번에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는 건물로 들어가려다가 앨런을 보고 멈춰 섰다.

“앨런 학, 아니 탐험가. 오랜만이군요, 탐험은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나요?”

“원시림까지 내려갔습니다.”

“우리가 만났을 때는 동굴 초입이 아니었습니까? 벌써 거기까지 내려갔군요. 아, 이번에 의뢰를 받은 건가요?”

“네.”

“렉터 군, 여기 정리하고 오세요. 앨런 탐험가는 따라오세요.”

검은 머리에 퀭한 인상을 자랑하는 남자가 팔찌 형태의 에비를 작동했다. 빛무리가 테라굴라의 피를 조금씩 지워갔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햇빛이 사라지고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복도에는 미궁 내부의 그림이 줄줄이 걸려있었다.

미궁 내부의 사진이나 영상을 남길 수 없으니, 기억으로 재현한 것이다. 혹은 화가가 직접 내려가서 그렸거나.

오로스의 연구실은 그의 몸집만큼이나 컸다. 내부의 가구도 보통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보다 거대했다. 그가 소파에 앉으니 끼익 소리가 났다.

“미궁에서 채집한 국화로 우려낸 차예요.”

앨런의 앞에 놓인 찻잔은 맥주잔을 방불케 하는 크기였다. 내온 정성 때문에라도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연구실 내부를 둘러봤는데, 짐작대로 오파츠 몇 개가 보였다. 그중 하나는 반구 형태였는데, 파란 별들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눈이 가는 녀석이죠? 오파츠가 만들어졌던 시기의 천체 운행을 기록한 물건이라 추측하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앨런에겐 저 물건의 정체가 보였다.

“꼭 신생아 모빌 같습니다.”

“오···. 그런 해석도 가능하군요. 천장에 달아놓으면 아기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탐험가라 그런지 관점이 다르네요.”

그때, 문이 열리며 피곤한 표정의 렉터 조교가 들어왔다. 원래 인상이 저런지, 아니면 학과 업무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렉터 군, 천천히 해도 됐는데 벌써 처리했나요?”

“네.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입니다.”

즐거우면 어쩔 수 없지. 앨런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오로스가 묘한 눈빛으로 앨런을 보고 있었다. 앨런은 보물고를 발견했던 탐험가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탐험가답지 않은 열정과 지성. 참 마음에 들어요. 그러니 의뢰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에 왔겠죠. 의뢰 말고 정직원으로 고용될 생각은 없나요?”

앨런이 무슨 말을 하기 전, 렉터가 특이한 반응을 보였다. 오로스 교수의 뒤에 서 있는 그가 고개를 옆으로 살짝 흔들었다.

“아쉽지만 탐험이 즐겁습니다.”

“어쩔 수 없군요. 렉터 군, 앨런 탐험가에게 상세한 업무 내용을 알려주세요.”

연구실을 나가기 전 오로스가 말을 덧붙였다.

“끝나면 다시 오세요. 이야기 좀 합시다.”

문이 닫혔을 때, 렉터의 표정은 처음보다 안 좋아 보였다. 오로스는 심도 5의 실력자니 조교가 무엇을 했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 시립대(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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