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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124화 (124/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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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이 급하게 되살린 오토마톤들의 외형은 엉망이었다. 제대로 된 수리 장비는 지상에 있고, 짧은 시간을 잘라 쓰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기계는 생명체와 다르다. 고철 같은 몸뚱이로 보여도, 핵심 부품만 멀쩡하다면 제대로 작동했다.

앨런의 지시대로 임시 방어선 최선두에 자리를 잡고, 탐험가들이 공격할 수 있게 틈을 조금씩 벌렸다.

“온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 빨간 것들이 튀어나오자, 헬멧 전면부에 커다란 렌즈를 장착한 탐험가가 소리를 질렀다.

렌즈 부분이 빛을 응축하더니, 강력한 섬광을 방사했다.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눈을 가릴 광량이 네 발로 달려오던 적귀들의 눈동자를 찔렀다.

시력을 잠시 잃은 적귀들이 저들끼리 충돌한 지금이 기회였다.

“선두부터 차근차근 해치워!”

“화력 낭비하지 말고 가리키는 곳만 쏴!”

탐험가마다 학생 몇을 통솔했다. 학생들의 팔찌, 목걸이, 머리띠 등이 허공에 마법을 생성했다.

에비는 미궁학과생의 필수 장비였다. 연구자의 길을 걸을지라도 미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자신의 몸을 지킬 최소한의 힘은 챙겨야 했다.

몸을 일으킨 대지가 적귀를 붙잡고, 바람의 칼날이 근육을 찢고, 불덩이가 날아가 살점을 태웠다. 챙겨온 센트리건이 총탄 세례를 퍼붓기도 했다.

끼에에!

적귀가 고통을 목소리로 표현하며 다시 내달렸다. 생체 갑옷이라 생명체의 특징을 지녔지만, 전투를 위해 설계한 녀석답게 빛을 빠르게 극복했다.

다시 한번 섬광을 발사해도 나뒹구는 녀석은 많지 않았다.

“충격에 대비!”

“감염에 주의!”

감염은 오직 한 경우에만 발생했다. 핵을 포함한 살덩이가 전신을 뒤덮었을 때. 물리거나 할퀸 상처로 감염이 이루어졌으면 사태는 훨씬 끔찍했으리라.

충돌 직전, 앨런이 아이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오토마톤들은 자세를 낮추고 몸을 들이밀었다.

쿠웅!

거인이 북을 두들긴 듯한 소리가 들렸다. 주변의 작은 돌조각들이 부르르 떨렸다.

오토마톤과 적귀가 뒤엉켜서 나뒹굴었다. 이처럼 적귀는 감당 못 할 존재가 아니었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동굴 수준.’

그러니 오로스도 탐험가에게 학생을 맡기고 떠난 것이다.

앨런의 눈에 집게발을 딱딱 부딪치는 상자가 보였다. 녀석은 방진이 무너지려고 하면 개입했다. 여러 개조를 거쳤기에 운송 담당이라도 전투력이 출중했다.

삐—

상자가 비프음을 낼 때마다 오토마톤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앨런은 방어선을 전체적으로 관조하며 렉터를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그는 에비와 매직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적귀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

몸이 흐릿해지면 어김없이 적귀 한 마리가 공중으로 떠올랐고, 마력 특유의 푸른 빛을 발산하면 암석 창이 몸통을 꿰뚫었다.

예전에 싸웠던 마법사를 떠올리게 하는 움직임이지만, 앨런은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왜 나서겠다고 고집을 부렸지?’

렉터를 알게 된 시간은 짧았어도, 막무가내로 행동할 사람으론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미궁에 내려오고 나서부터 낌새가 수상했다.

‘언제부터지? 미궁 입장 후? 유적에 들어와서?’

앨런의 착각일 수도 있었다. 렉터는 지금 열심히 적귀를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끼에엑!

적귀의 요란한 소리가 위에서 들렸다. 들소 오토마톤이 뿔을 위로 쳐올리는 공격을 역이용한 녀석이 방어선 위로 높이 떠올랐다.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드는 적귀의 예상 착륙 지점은.

‘2초 후.’

앨런의 바로 앞이었다. 자연스럽게 다리를 벌려서 무게중심을 낮추고, 상체는 어떻게든지 움직일 수 있게 긴장을 풀었다.

바이저에 여러 선이 그려졌다. 적귀를 상대할 각양각색의 수법이 앨런을 인도했다.

최종적으로 압축된 방법은 2가지. 하나는 아슬아슬하게 회피하며 검을 꽂아 넣는 시온의 방법, 하나는 육체를 믿고 힘으로 충돌하는 테일러의 방법이었다.

적귀의 낙하지점, 땅에 발을 디뎠을 때의 형태에 대한 계산은 이미 머릿속에서 끝난 상황.

테일러를 선택한 앨런이 앞으로 발을 뻗으며 오른팔을 옆으로 휘둘렀다. 가벼운 움직임일 뿐이지만, 자신의 힘까지 되돌려 받은 적귀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끅!

팔꿈치 안쪽이 목을 제대로 강타했다. 적귀는 제대로 된 소리 하나 내지르지 못하고 등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핵의 위치는 왼쪽 어깨.’

지금도 핵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 어깨란 말은 앨런의 발이 그곳에 닿을 때, 핵이 있을 위치였다.

앨런은 발밑에서 무언가가 뭉개지는 진동을 느꼈다. 동시에 적귀의 근육이 흐물흐물하게 풀어지며 사막에 내놓은 말미잘처럼 변했다.

테일러의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저 힘이 있으니까. 몸의 부족한 부분은 파워슈트가 보충해주니까.

앨런은 오로스 교수가 사라진 장소로 시선을 던졌다. 그의 말대로 육체가 강하면 선택지가 많아지고,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역시 배우신 분.’

확인사살을 마치고, 전장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아까처럼 방어선을 돌파하려는 적귀를 처리했다.

마탄이나 룬문자가 아닌, 파워슈트 본연의 힘만으로 적을 처리하니 문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동안은 뇌가 무의식적으로 리미트를 걸었나? 파워슈트와 피살이꽃 덕분에 여유가 생겼고?’

파워슈트의 동작에 질질 끌려다니리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몸이 잘 움직였다. 적어도 누군가가 무언가를 던져줬을 때 놓칠 일을 없을 듯했다.

그렇게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탐험가들은 혹시 모를 부활을 방지하고자 뻘건 근육들을 한곳에 모아서 모조리 불태웠다.

렉터는 재로 변하기 전에 내화성이 얼마나 좋은지 확인해보겠다고 일부를 빼돌려서 관찰하기도 했다.

‘저럴 때는 영락없이 학구열 넘치는 학생 같은데···.’

구경보다 먼저 처리할 일이 있어서 시선을 돌렸다. 상자가 아이들을 부려서 망가진 오토마톤을 주인의 앞으로 운반했다.

다음 습격에 대비하고자 수리를 하는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는 야매 같더니 이제는 어엿한 공학자가 됐네.”

“좀 쉬세요.”

앨런은 칼슨이 내민 음료를 받았다. 바이저를 열고 캔을 기울이자, 필수 영양소가 포함된 에너지 드링크가 빈속을 채웠다.

“쉬긴. 내가 할 건 없어?”

“그럼 말동무나 해주세요.”

“그래. 네가 그동안 조교님이랑 붙어 다녀서 그럴 기회가 없기도 했고.”

다른 학생들이 마력 좀 쥐어짰다고 무질서하게 널브러진 모습을 보면, 생생한 칼슨은 이쪽 분야에 적합한 인재였다.

“파워슈트는 어디에서 구했어? 상표가 없는 걸 보면 개인 공방 제품이야?”

“네.”

“오, 어딘데?”

앨런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정말? 기업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믿겠는데···.”

“저는 마력회로와 동력 부분을 손봤고, 외장갑이나 골격은 주문 제작했어요.”

“영혼석도 네가 만들었겠지. 그럼 다 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껍데기는 막말로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구할 수 있을걸.”

앨런은 렉터가 구석으로 사라지자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렉터 조교님은 지상에서도 저리 바쁘신가요?”

“조교님? 지상에서는···. 말 걸기 힘든 분위기긴 한데, 항상 저렇지. 이제 보니까 너랑 완전 판박이네.”

칼슨은 언제나의 조교라는 말을 했다. 앨런은 싸한 느낌이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훨씬 오래 봐온 칼슨이니 그의 눈이 더 정확하리라.

‘분명 처음에는 저렇지 않았는데. 뭔가 유적에 들어온 후로 좀 과해진 느낌이랄까···.’

의구심을 잠시 접으며 수리에 몰두했다. 멀리서 적귀들의 괴성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 후로도 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왔다. 연이은 공격에 사람들이 피곤을 호소했지만, 변화를 느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놈들의 숫자. 처음에는 20여 마리가, 그다음에는 15, 그 후에는 12, 8···. 규모가 줄어들고, 놈들의 근육도 바람 집어넣은 풍선처럼 물렁물렁해졌다.

오로스가 떠나고 약 36시간 후, 유적 전체를 진동시키는 높은 비명이 들렸다.

“어···?”

적귀를 상대하던 탐험가 하나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피로가 쌓여서 부러진 검을 버리고 몸을 뒤로 빼려는 순간, 녀석이 먼저 허물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실 끊어진 인형처럼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교수님이 해냈어!”

오로스가 적귀의 지배 개체 혹은 모체를 뭉개버렸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방심은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으니, 긴장을 유지하며 적귀를 처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쿵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들리고, 피부를 붉게 염색한 오로스가 복귀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앨런에게 물었다.

“모두 무사하나요?”

“학생 하나가 팔이 부러진 것만 빼면요.”

“훌륭합니다. 앨런 군, 고생했어요.”

앨런은 어깨를 두드리는 손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탐험가에서 군으로 호칭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왠지 등골이 서늘했다.

정찰을 보냈던 탐험가들도 낭보를 가져왔다. 사라졌던 비밀통로가 열려서 언제든 돌아갈 수 있었다.

“원래는 연구 협력하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으으으.”

학생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좀비 소리를 내자, 오로스가 슬며시 웃었다.

“알겠어요. 시기상으로 내일쯤 브레이커에서 인원을 보내기로 했으니, 그때 복귀하도록 조치하겠어요.”

앨런이 오로스의 말을 듣던 도중, 렉터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낯빛도 얼마 전과 달리 화색이 돌았다.

‘비밀통로가 닫혀서 근심했었나?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하면 감정이 격변하기도 하니까···.’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물었다.

“브레이커에서 온다고요?”

“아, 내가 말 안 했나?”

“네.”

“이번에 그쪽에서 연구비를 지원해줬거든. 그러니 협력은 당연한 절차지.”

그 후의 일과는 평소와 비슷했다. 오토마톤의 영혼석을 회수하고, 힘을 잃은 적귀를 연구했다.

적귀는 근육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해도 손색이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모습을 변형하거나, 힘이 필요한 부분에 몰려드는 모습은 앨런에게 영감을 줬다.

‘파워슈트의 인공 근육에 적용하면 위력이 많이 증가하겠지.’

앨런이 침대에 누워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슬슬 시계를 확인하고 잠을 청하려는 찰나, 옆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렉터가 자신이 잠을 자는지 확인하는 듯한 낌새가 느껴졌다.

그러나 앨런은 제시간에 잠을 재우려는 테일러를 속이려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아직 테일러에겐 통하지 않지만, 렉터를 속이긴 충분했다.

앨런은 기척이 멀어지고 나서야 상자를 불렀다. 게 눈을 닮은 카메라 아이를 번쩍 든 녀석이 천막 밖으로 나서려다가 제지당했다.

“너 말고 거미 꺼내.”

삐···

축 처진 녀석이 거미를 꺼내고, 앨런이 원격 조종했다. 마석 광산에서 조종했을 때보다 시야가 많이 흐렸다. 신호 방해가 이 유적의 특징인 듯했다.

그냥 나갔으면 앨런도 미행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렉터는 숙면을 하나 확인했고,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앨런은 거미를 움직여서 보관소로 향하다가 잠시 멈칫했다. 보관소를 지키는 탐험가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탐험가를 지나쳐서 안으로 들어가자, 렉터가 기능이 정지한 적귀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살짝 움직여서 위를 살피니, 생명력을 마력으로 치환하는, 주사기를 닮은 오파츠로 적귀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실험으로 사용법을 깨달았구나. 그런데 왜 새벽에 몰래 하는 거지?’

오로스였으면 오파츠의 새로운 사용법을 발견했다고 칭찬하며 무엇이든 해보라고 했을 것이다.

그 사이 렉터는 오파츠 내부에 담긴 힘을 어떤 물체에 담고 있었다. 손바닥 위를 보려면 크게 움직여야 했기에 앨런은 가만히 있었다.

그 외의 수상함을 찾지 못한 앨런이 거미를 복귀시키려는 순간.

‘누구···.’

천막에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는 앨런이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바람처럼 움직이더니.

콰직!

렉터의 머리를 몸통에 심어버렸다. 가슴이 불룩 튀어나온 몸뚱이가 풀썩 쓰러지고, 손에 들려있던 오파츠가 툭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렸다.

하필 굴러간 장소에는 거미가 있었다. 앨런이 어떻게 하기도 전에 거미가 붕 뜨더니 남자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음···. 넌 누구지?”

그제야 앨런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 60대 후반임에도 젊어 보이는 얼굴, 시온이 항상 입고 다니는 제복과 비슷한 옷.

그는 브레이커의 회장, 제이크 마셜이었다.

< 선택받은 자(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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