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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126화 (126/193)

< 30층(1) >

돌아온 앨런을 반기던 테일러가 귀를 손가락으로 후볐다.

“누구를 만났다고?”

“아저씨 옛 상사, 브레이커의 회장이요.”

“이제 남남이니 상사 같은 끔찍한 소리 그만해. 얼른 씻고 쉬어라.”

앨런은 파워슈트를 거치대에 세워두고 샤워를 했다. 탐험 중에는 파워슈트가 오물을 막아주기에 금방 끝났다.

표범이 잘 있나 확인하고 식탁에 앉으니, 테일러가 요리를 내왔다. 예전에 미궁 요리를 기대하라고 말했던 그의 취미 중 하나는 요리였다.

밀키트가 아니라 직접 공수한 재료로 만든 요리가 식탁 위에 놓이자, 방문이 열리며 시바가 얼굴을 내밀었다.

“형제님, 오늘도 맛있는 냄새가 납니다.”

“요리할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뻔뻔하게 나타나긴. 얼른 앉아.”

“새빨간 양념으로 버무린 채소는 뭐죠? 읍···.”

반찬을 입에 넣은 앨런이 물을 찾자, 테일러가 웃었다.

“그건 동방대륙 어떤 나라의 김취라는 음식이다. 철수도 나를 똑같이 속였지.”

“키리 씨 할아버지 말이군요.”

앨런은 김취를 덜어놓은 그릇을 슬쩍 밀어내며 아까 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이크 마셜 씨 말인데요.”

“그놈이 왜?”

“명색이 회장이고 직장 상사였는데 놈이라뇨.”

“네가 회사를 안 다녀봐서 모르는구나. 상사는 적과 같아. 특히 열정 넘치고 자신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아랫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

“상사가 능력 있으면 좋잖아요.”

“자신의 기준을 부하에게도 과하게 적용한단 말이다. 네가 룬문자 그리라고 시키면 나랑 시바가 할 수 있겠니?”

“아···.”

룬문자에 빗대서 설명하자 앨런이 바로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탐험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하루 쉬고 다시 내려간다니까. 그러니 아랫사람 입장에서 어떻겠냐?”

“역시 노력이 답이군요. 재능도 있는 사람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으니, 자연스레 심도 7에 도달했겠죠.”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사람은 휴식도 중요하단 의미에서 꺼낸 말이야.”

“스카우트 제안도 하시던···.”

“뭐? 내일 당장 내려가. 시바, 너도 가능하지?”

테일러는 진심인지 꺼내놓은 성수에는 손도 안 댔다. 그렇다 해도 앨런은 내일 미궁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미뤄놨던 표범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니까.

한동안 식기와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렸다. 물을 조금 들이켠 테일러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절대강자를 만난 소감은?”

“사람이라는 카테고리 말고 다른 분류가 필요해요. 그때는 사고가 있어서 그냥 넘겼는데, 지금 생각하니 오싹하네요.”

앨런은 저도 모르게 팔뚝을 쓸어내렸다. 그만큼 마셜 회장에게서 느낀 분위기는 충격적이었다. 같은 살덩이로 이루어진 생명체가 아니라, 폭풍이나 지진이 사람의 탈을 쓴 듯했다.

“그들은 네 말대로 사람이 아니라 초인이지. 매직웨어 사용자도 초인이라고 부르지만, 진정한 초인은 제이크 같은 부류뿐이다. 도심에서 직선으로 내달리면 경로에 있는 모든 게 파괴될걸.”

“빌딩도요?”

“당연하지.”

“앨런 형제님, 방금 사고가 있었다고 했는데···.”

시바의 발언에 테일러가 고개를 홱 돌렸다.

“사고? 무슨 사고? 겉은 멀쩡한데, 속은 어떨지 모르니 누님께 가자.”

앨런은 성을 내는 아저씨를 지긋이 응시했다. 걱정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사심이 우러나온 행동인지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양손을 들고 있으니 가라앉는 흥분이 느껴졌다.

“별일은 아니고 수집가를 만났어요.”

“뭐!!! 그게 어떻게 별일이 아냐?!”

“본인은 아니고 분신이었어요. 그마저도 회장님이 처리해줬고요.”

“그건 다행이구나. 다른 건 몰라도 실력 하나만큼은 믿을 만하지.”

앨런은 수집가가 정신을 나눈 분신으로 오로스 교수의 밑에서 일했다는 이야기를 짧게 풀어냈다. 결과를 알고 있으니 테일러와 시바는 편안한 마음으로 들었다.

“기괴하고 불경한 존재입니다.”

“말세야 말세. 군대가 있으면 그런 놈을 최우선으로 처리해야지, 도대체 뭘 하는지···.”

사실 테일러도 그냥 해보는 말이다.

수집가 정도 되면 함부로 건들기 껄끄러웠다. 처리하려다가 실패하면? 만약 놈이 보복하겠다고 도심에서, 그것도 시민이 많은 시간을 노려서 테러를 자행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거물 범죄자를 처리하기엔 애로사항이 참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우선 힘을 갖춰야 했다. 그러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방해받지 않으니까.

두 사람의 구시렁거림이 끝나자, 앨런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왠지 시온 선배와 닮은 것 같아요.”

“어떤 점이?”

“분위기나 외모요. 혹시 딸일까요?”

“요원은 스카우터들이 각지의 고아원에서 재능 있는 아이를 뽑는 구조니까 그건 아닐 거다. 똑같은 옷에 회색 머리를 하고 다니니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착각인가 보네요.”

푹 쉰 앨런은 정비 시간을 보냈다. 파워슈트의 찌그러진 외장갑을 고치고, 묻은 오물을 닦아내고, 문제가 생긴 마력회로와 룬문자를 다시 그렸다.

표범 업그레이드도 완료했다. 피라미드의 드래곤 골렘만큼은 아니지만, 바람을 다루는 부품을 장착해서 매우 빨라지고, 훨씬 치명적으로 변했다.

다음 탐험 목표는 30층이니 준비는 철저할수록 좋았다.

훈련으로 땀을 쫙 빼고 온 시바와 테일러가 소파에 앉아서 앨런을 구경했다.

“벌써 30층입니까?”

“우리 실력이면 충분하지. 앨런은 말할 필요가 없고, 나야 경험이 있으니 매직웨어만 바꾸면 되고. 너도 느낄 텐데?”

“확실히 저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의 은혜가 점점 강해짐을 느낍니다. 수도원에서 배울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실전을 워낙 많이 겪으니까.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면 주저앉거나 하늘나라로 가겠지만, 견뎌내면 우리처럼 되지.”

“전투가 너무 빈번하긴 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어. 탐험가는 근본적으로 미궁을 파먹고 사는 존재라 괴물과의 충돌은 필연적이니까. 은혜가 점점 강해진다 했으니, 어머님도 흡족해서 신경 써주는 거 아니냐?”

“그렇군요. 어머님이 저를 보고 있습니다! 형제님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신앙심을 자극받은 시바가 갑작스레 기도하기 시작하자, 테일러는 말 상대를 잃었다.

“시간 좀 때우려고 했더니···.”

“그럼 연습 상대 좀 해주실래요?”

“앨런, 네가?”

“아뇨.”

앨런의 옆에 표범이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워낙 덩치가 커서 주인이 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직은 안 될 텐데.”

앨런의 실력이라면 언젠가 괴물 같은 오토마톤을 만들 테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던가. 출력은 매직웨어가 담당해주니, 주로 기술을 연마하면 됐다.

“서로 보완점을 찾으면 좋죠.”

“하긴···.”

테일러가 또 땀을 흘리겠다며 투덜거리면서도 지하로 향했다. 구석에 있는 초고중량 운동기구 말고는 텅 빈 장소였다.

앨런이 벽의 버튼을 누르자 충격 흡수 및 방어 역할을 하는 룬문자들이 파랗게 빛났다.

앨런은 아예 마력로 근처에 앉았다. 자신이 여기에 있으면 방어 마법이 부서질 일은 없으니까.

“시작할까요?”

“그래.”

“준비운동은요?”

“필요 없다.”

테일러가 그리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인공 근육 덕분에 쥐라 불리는 근육의 경련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또한, 혈액을 생성하는 매직웨어가 산소를 많이 운반하는 개조 적혈구를 사방으로 파견했다.

육체는 이미 만전의 상태였다. 몸풀기는 평범한 사람들이나 하는 행위였다.

테일러가 주먹을 쥐고, 표범은 발톱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가벼운 대련이라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나풀거리며 떨어지던 먼지가 갑자기 멈춰 섰다. 아니, 매우 천천히 떨어졌다.

리플렉스 액셀이 테일러에게 추가 시간을 부여했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오직 그만이 정상 속도로 움직였다. 아니면 테일러가 빨라졌거나.

약간 푹신한 소재로 이루어진 바닥에 발자국이 찍혔다. 흔적의 주인은 이미 자리를 떠나서 정면으로 쇄도했다.

바람 찢는 소리가 테일러의 귓바퀴를 세차게 때렸다. 단숨에 목표까지 접근하고, 주먹을 아래에서 위로 퍼 올렸다.

툭—

느낌이 있긴 했으나 약했다. 하지만 어퍼컷에 맞은 표범은 위로 떠 오른 상태였다.

‘그거 조금 닿았다고 저리 높게 솟구칠 리는 없지.’

테일러의 예상대로 표범은 멀쩡했다. 동체가 떠오른 이유는 앨런이 새로 장착한 부품 덕분이었다.

표범은 바람을 타고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외장갑 표면에서 제트처럼 분출되는 바람이 실시간으로 균형을 유지했다.

테일러가 표범의 착지 지점을 예상하고 사커킥을 날렸다. 이번에도 표범이 바람을 이용해서 피하려고 했지만.

쾅!

뱀처럼 휘어지는 발등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오.”

앨런은 그 장면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테일러는 자신이 전투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말했지만.

‘대신에 다른 부분이 발달했지.’

재능 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재능을 지니고 있는데, 그걸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었다. 사실 그런 사람이 99%이긴 했다.

테일러의 재능은 매직웨어 동기화율이었다. 같은 의수를 착용해도 출력과 효율이 월등히 높았다. 그런 사람이 마력 수련법에만 매달렸으니 결과가 안 좋을 수밖에.

‘입대했으면 타이탄 조종사가 됐을지도···.’

앨런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대련이 마무리되었다. 테일러가 4대를 때리면 표범은 1대 때린 결과가 나왔다.

테일러가 어깨를 빙글빙글 돌렸다.

“나중에는 몰라도 지금은 나한테 안 되지.”

“계속 업그레이드해드릴게요.”

“그러다 사람을 벗어나겠다.”

“정신만 똑바로 유지하면 사람이죠. 겉모습은 사람인데 짐승처럼 행동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확실히 특이해.”

“뭐가요?”

“천성은 수집가랑 비슷한 것 같은데, 자세히 파고들면 디테일이 다르단 말이지. 주변 환경의 영향인가? 흠···, 내가 모범적인 어른이긴 하지.”

“혹시 표범이 머리를 때렸나요?”

*

30층은 처음 가는 장소고 수문장 비슷한 존재도 있으니. 이전보다 철저히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식량도 꽉꽉 채우고, 마탄도 상자의 안에 가득 집어넣었다.

시바가 자신이 짊어질 가방을 채워 넣다가 앨런을 불렀다.

“앨런 형제님.”

“듣고 있어요.”

“우리 파티는 추가모집을 언제 하나요? 실력이 출중하긴 하지만 겨우 3명···.”

우연인지 상자가 집게발을 딱딱거렸다.

“···으로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불침번이나 방진에 대한 걱정인가요?”

“제 말이 그겁니다.”

앨런이 테일러를 바라봤다. 크게 힘들다고 느껴본 적은 없지만, 이럴 때는 베테랑의 의견을 듣는 것도 좋았다.

“혼자서 불침번 2시간 30분은 좀···. 장난이니 그렇게 눈 뜨지 마라. 시바 말대로 우리 파티원이 매우 매우 적긴 하지.”

그 말이 맞았다. 평균적으로 미로를 다니는 탐험가들은 최소 4명이 한 무리를 이뤘고, 동굴 탐사에는 최소 6명이 함께했다.

앨런 일행은 원시림을 다니면서도 고작 3명이니, 누가 봐도 인원이 모자랐다.

“미궁은 아래로 갈수록 험난해지니 등을 맡길 사람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지금 바로 구하긴 어려우니 일단 생각만 해놔라. 아니면 매칭 시스템이라도 이용해볼래?”

“처음에 써보긴 했죠.”

앨런은 초기 탐험을 함께 했던 칼슨과 아웅을 떠올렸다. 서로의 실력 차이와 개인 사정 때문에 금방 해산한 파티기도 했다.

“그럼 신청해볼래? 마음이 맞으면 내려가면 되고, 아니면 없던 일로 하면 되니까. 주선자가 브레이커고, 우리도 도달계층이 있으니 엄청 이상한 사람을 소개해주진 않을 거다. 물론 그쪽도 그렇게 느끼겠지.”

“그럼 바로 신청해볼게요.”

< 30층(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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