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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127화 (127/193)

< 30층(2) >

마음이 맞고 실력까지 출중한 동료를 얻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렇다고 적합한 탐험가를 구하려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면 미궁에 내려갈 시간도 모자랐다.

그런 문제 때문에 매칭 시스템이 탄생했다. 탐험가에게 동료가 필요할 때, 능력과 도달계층이 비슷한 사람을 알선하는 제도였다.

탐험가는 시간을 아끼고, 조합 측에서는 탐험이 원활히 이루어져서 정산 수수료가 제때 들어오는 이득이 있었다.

탐험가 조합마다 운영방식이 달랐는데, 브레이커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두고 시스템을 설계했다.

이어준 탐험가가 함께 미궁에 내려가는 동안에 사망하면 철저한 조사를 받아야 했다. 때로는 정신 계열 마법으로 속내를 읽어볼 수도 있었다.

사후처리가 이토록 확실하니 시스템을 악용한 범죄는 거의 없었고, 다른 조합보다 심적 부담감이나 거리낌도 적었다.

그리고 일단 매칭이 되면 직접 만나야 했다. 기본 정보만 대충 확인하고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거부하는 일을 방지하려는 조치였다.

앨런은 집을 나서다가 뒤를 돌아봤다. 테일러와 시바도 완연한 봄을 증명하는 얇은 옷을 입고 나섰다.

“그냥 쉬셔도 되는데···.”

“함께 내려갈 사람이니 같이 봐야지. 기왕이면 모두의 마음에 들어야 하지 않겠니?”

“형제님, 제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니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수도원에서 그런 것도 가르치냐? 도대체 뭘 배운 거야?”

앨런이 탑승한 모노레일은 도심을 가로질렀다. 공중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대중교통은 차량정체라는 단어를 몰랐다.

바삐 움직이는 차들, 개인형 이동장치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메이즈시티는 오늘도 활기가 넘쳤다. 속내야 어떻든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앨런은 밖을 보다가 시바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비토 형제님은 탐험가 할 생각이 없답니까?”

“네.”

한동안 세 들어 살던 비토는 방을 구해서 나갔다. 여전히 앨런의 장비를 빌려 쓰고 있기에 가끔 창고를 관리해주곤 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차이가 크게 납니다. 조금 내려가겠다고 전신을 매직웨어로 바꾸라는 제안은 못 할 짓이고요.”

“그럼 나는?”

“지금 삶에 충실한데 굳이 변화를 줄 필요는 없겠죠. 저도 수도원에서 그런 고민을 해봤기에 이해합니다.”

“나 무시해?”

“본인이 선호하는 일을 하는 삶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죠. 그러니 비토는 그대로 놔두는 편이 좋습니다.”

세 사람은 목적지 근처에서 하차했다. 앨런이 파워슈트를 입고 있어도, 테일러나 시바에게서 풍기는 날카로운 기운에도 시민들은 덤덤하게 옆을 지나쳤다.

테일러의 눈에 목적지인 카페가 보였다.

“앨런.”

“네, 말씀하세요.”

“왜 성별 설정을 안 했니? 기본 정보를 보니까 이번에 올 탐험가는 여자던데···.”

“그게 중요해요?”

“당연히. 남녀가 미궁이라는 공간에 함께 들어가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여러 번 봐왔으니까. 사람은 이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이지 않은 동물이란다.”

테일러의 걱정대로 혼성 파티의 붕괴 사유 순위권에 애정 다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앨런은 테일러의 설명에도 시큰둥했다.

“그래요? 피곤하게 사네요. 호르몬 억제제를 사용하거나, 마력으로 본능을 억누르면 될 텐데···. 매직웨어라면 잠시 떼어내면 되고요.”

“또, 또. 무서운 소리 하네.”

“형제님, 원래 그런 부분에 유독 민감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다고 언뜻 들었습니다.”

“나는 누님 말고는 몰라. 그러는 너는?”

“지금 수도승을 의심하십니까? 어머님이 저를 항상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긴. 엄마가 옆에 있는데 애정행각 벌이긴 어렵지.”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시바의 뒷말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묻혔다. 잔잔한 음악이 아니라 떠들썩한 모던 록이 스피커에서 마구 빠져나왔다.

음량에 지지 않으려고 손님들도 목소리를 높여서 카페 안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적당한 수준의 이야기를 하기 좋은 소음이었다.

앨런이 호두차의 향기를 맡는 사이, 테일러는 따뜻하게 데운 맥주를 마셨다. 시바가 맥주잔을 보고 기겁했다.

“뜨거운 맥주라니! 신성모독입니다!”

“기껏 맥주 온도 가지고···. 앨런, 누가 올 거 같냐? 정보에는 엘프 검사라던데.”

“봐야 알겠죠.”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퇴짜 놓는 사람도 있어서, 기본 정보에는 종족이나 전투 스타일 정도만 적혀있었다.

마침 카페 문이 열리고 엘프 하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내부를 슥 둘러보더니 곧장 앨런이 있는 좌석으로 다가왔다.

“저 사람이야? 어떻게 바로 알고 이쪽으로···. 잠깐···.”

테일러가 미간을 찌푸렸다. 주황색 머리카락의 주근깨 엘프는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디서 봤더라?”

“저도 어디에서 본 자매님 같습니다.”

시바도 맞장구치는 사이, 테일러가 생각난다는 듯 손가락으로 엘프를 가리켰다.

“야, 시온. 네가 여기에서 왜 나오냐?”

“브레이커의 매칭 시스템을 이용해주셔서 감사···.”

“선배, 그건 접수대가 자동으로 내뱉는 음성입니다.”

“그래? 그냥 내가 왔어.”

테이블 하나를 둘러싼 소파는 4개. 홀로스킨으로 변장한 시온은 남은 자리를 차지했다.

앨런은 익숙한 사람이라 별생각 없었고, 시바는 강한 탐험가가 합류한다니 좋아했다. 오직 테일러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 튀어나오냐니까.”

“그냥?”

“···.”

대화도 서로 주고받아야 성립하는데, 시온의 대답은 테일러의 말을 툭툭 끊었다. 타고난 검사다운 예리함이었다. 혹은 답답함이든지.

앨런은 테일러의 혈압이 높아지기 전에 나섰다.

“선배와 우리는 실력 차이가 꽤 날 텐데요? 시스템을 만졌군요.”

“비밀이야.”

“비밀은 무슨. 네 얼굴만 봐도 답이 나와.”

앨런은 잠시 고민했다. 제이크 마셜은 자신이 미궁의 언어를 안다는 사실을 알고 굉장히 기꺼워했다. 영입을 거절했는데도 지팡이의 사용처를 알려줄 정도였으니까.

‘이건 감시인가, 아니면 보호인가.’

보호라면 좋고, 감시여도 상관없었다. 에셀 마탑의 계약서를 통해 비밀유지 서약을 맺으면 됐다. 약한 마법이라도 당사자가 동의하면 성립하는데, 에셀 마탑이 보증하는 계약서라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물론 시온이 심도 6~7에 도달해서 마법을 깨버릴 수도 있지만, 어차피 그때쯤이면 자신도 도달할 테니 괜찮았다.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도 중요한 덕목이었다.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야 어떤 일이든 달성할 수 있었다.

“뭐, 좋아. 심도 몇인지 말이나 해봐라.”

“난 나보다 약한 사람의 말은 듣지 않아.”

“후···.”

테일러가 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너무 힘겨워 보여서 시바가 성수를 슬그머니 앞으로 밀어주기도 했다.

“그럼 앨런은? 얘가 물어보면 알려주잖아.”

“나보다 머리가 좋으니까.”

“머리? 내가 너보다 훨씬 똑똑하겠다!”

“음···.”

시온이 눈을 가늘게 뜨고 테일러를 잠시 살피다가 고개 절레절레 저었다. 테일러의 주름이 더 깊어졌다.

“골칫덩이가 달라붙었어. 괴물에게 물어뜯기기 전에 화병으로 먼저 죽겠다.”

“심도 4 후반이겠죠. 5의 문에 손을 올린. 선배, 내 말이 맞죠?”

“맞아.”

“후···.”

앨런의 말에는 즉답이 튀어나오니, 테일러가 또 한숨을 내뿜었다. 시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와서 불만이야?”

“도대체 왜 왔냐? 네 기준에서 보면 우리 실력은 꼬마일 텐데.”

“몰라.”

“왜 이런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어야지.”

“프랑수아가 시켜서 그냥 왔는데. 그러면 안 돼?”

“어휴, 저 답답이. 그래, 너한테 무슨 잘못이 있겠냐. 테스트도 그만두자.”

시온의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오히려 이쪽이 시험받아야 할 정도였다.

“앨런, 이거 너한테 주래.”

시온이 꺼낸 물건은 에셀 마탑의 비밀유지 계약서였다. 속내를 꿰뚫고 있다는 듯한 대응이었다.

계약을 마치고, 일단 헤어졌다. 앨런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테일러의 의견을 물었다.

“선배가 왜 왔을까요?”

“시온 말대로 위에서 시켰겠지. 제이크가 널 좋게 봤어. 그놈은 옛날부터 미궁 탐험에는 진심이라 새싹을 가르치고, 안전한 성장을 위해 요원을 붙여주기도 했거든.”

“뒤의 물결이 앞의 물결을 밀어주길 기대하는 거군요. 이를테면 미래를 위한 투자네요.”

“맞아. 오직 미궁 돌파에만 매달리는 사람이라저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걸.”

“그 정도로 미궁에 매료되나요?”

“탐험가 대부분은 그렇지. 너도, 나도 그리고 쟤도.”

시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이 저를 점점 강하게 주시하고 계십니다. 강해진 신성력이 그것의 증명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모신교 성직자가 사용하는 신성력은 마력수련법에 의해 변화한 마력이라는 결론이 났다. 에셀 마탑의 발표에 누가 반박할 수 있으랴. 그래도 좋은 분위기에 찬물 끼얹을 필요는 없었다.

“그럼 약속 날짜도 잡혔으니 준비를 마무리해요.”

*

시온은 실력 좋은 검사였다. 단순히 좋다고만 표현하기는 아까울 정도로.

검이 길게 긋고 지나가면 오토마톤이 단숨에 갈라졌다. 쑹덩쑹덩 썰어대는데도 검날이 외장갑을 가르는 소리는 아주 작았다. 오러의 절삭력이 방어력을 한참 웃돈다는 의미였다.

전리품을 수거하던 테일러가 시온을 나무랐다.

“살살해라. 네가 전부 처리하면 우린 뭘 얻냐?”

“미로나 동굴의 오토마톤으로 실전 경험 얻을 단계는 지났잖아. 빨리빨리 넘기고 내려가는 편이 훨씬 좋아.”

“너답지 않게 논리적이구나. 그냥 보여서 처리했다고 할 줄 알았더니.”

“흥!”

자존심 상했다는 태도에 테일러가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하···. 잠깐, 그 종이는 뭐냐? 뭐가 빽빽하게 적혀있는데.”

인공 안구의 초점이 확대되며 종이의 글자를 빠르게 읽었다. 아까 시온이 내뱉은 말이 그대로 적혀있었다.

“프랑수아가 그렇게 말하라고 알려주더냐? 그런 건 기억수정에 담아야지 왜 종이로 가지고 다녀?”

“종이는 훌륭한 저장 수단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뇌 확장 장치보다 훨씬 안전하죠. 해킹할 수 없으니까요.”

앨런이 그리 말하자 시온이 우쭐거렸다.

“들었지?”

“저, 저. 편 좀 들어줬다고 어깨 올라가는 꼴 좀 보라지.”

어쨌든 시온 덕분에 전투로 소모하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예전에 1시간을 투자해야 했다면, 지금은 30분 정도로.

언제나처럼 수문장을 상대로 강화한 표범의 능력을 시험해보려 했는데, 아쉽게도 시기가 안 맞았다. 대신 근위병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콰직!

표범의 발톱이 파워슈트의 헬멧 결합부를 박살 내고 멀리 날려버렸다.

“끄아아···컥!”

지하인 특유의 괴성을 지르던 근위병의 입으로 상자가 발사한 마탄이 쏙 들어갔다.

펑!

결과를 말할 필요가 있을까. 머리를 잃은 근위병이 앞으로 풀썩 넘어졌다.

테일러는 상자의 눈이 달린, 머리통이라 추측되는 부분을 강하게 쥐어박았다.

“깔끔하게 처리하지 어떻게 닦으라고···.”

“왜 애를 괴롭혀?”

“괴롭힘이 아니라 훈계라는 거다.”

시온이 상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사이, 앨런이 테일러에게 물었다.

“혹시 예전에 선배를 데리고 내려왔을 때, 조금 전과 같이 꿀밤을 먹였나요?”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다.”

“거짓말쟁이.”

테일러가 고개를 거세게 저었다.

“순진한 얼굴로 구라치는 거 봐라.”

두 사람의 주장은 극명히 달랐기에 진실은 저 너머에 있었다.

소란 때문에 표범의 활약이 묻혔지만, 녀석은 평소처럼 주인의 발치에 가만히 엎드렸다. 앨런이 머리를 살살 문질러주자 각도를 이리저리 틀긴 했다.

전리품을 빠르게 챙긴 앨런이 말했다.

“그만하시고, 쉬는 김에 30층을 지키는 괴물 이야기나 하죠.”

“곰이야. 아주 큰 곰.”

“코끼리보다 작아. 그리고 놈의 울음은 주변의 생물을 끌어모으니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다.”

사이가 별로라도, 이럴 때는 한마음 한뜻으로 설명을 했다.

< 30층(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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