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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131화 (131/193)

< 30층(6) >

앨런은 알파를 풀어주고, 이와 비슷한 일이 예전에서 발생했는지 테일러와 시온에게 물었다.

“원시림에 유령이 있다는 소문은 들어봤지만, 아이를 목격했다는 소문은 처음이다.”

“난 몰라.”

시온은 정말로 모르는지 바로 부정의 뜻을 내비쳤다. 아니면 브레이커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정보가 있는데 그녀가 관심이 없어서 안 읽어봤을 수도 있고.

“유령이 알파일 수도 있겠죠?”

“그 소문은 수십 년 전부터 들려오던 거라, 둘이 동일인이라면 알파는 저 모습으로 40살이 넘었다는 뜻이겠지.”

“미궁의 신비가 개입했으니 나이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그보다 알파가 왜 나타났는지,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는지 알아야겠죠.”

앨런은 적의가 아니라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던 알파의 눈빛을 떠올렸다.

‘마력수련법 때문에 동족으로 착각했나? 그럼 아저씨는?’

알파는 테일러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했다. 그럼 남은 결론은 미궁의 언어밖에 없었다.

‘언어의 형태로 구현된 신비가 머릿속에 들어오며 기질이 바뀌었나?’

그 가정이 맞다면 알파의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형제님, 거미가 돌아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시바가 가져온 거미가 팔뚝에 달라붙었다. 앨런은 알파를 잡은 후로 계속 관찰했고, 그 아이가 지닌 마력은 자면서도 알아챌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에 따라 추적 알고리즘을 설계해서 별문자를 입력하니, 거미들은 알파의 위치를 놓치는 일이 없었다. 잠시 잃어버려도 거미는 많이 풀어놨으니 상관없었다.

나무마다 가득한 넝쿨 때문에 신호 전달 거리가 매우 짧아졌지만, 거미들을 사용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각 개체가 송신 및 증폭의 역할을 합니다. 넝쿨이 내뿜는 파장을 더 연구하면 훨씬 먼 거리도 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은 알파 관찰이 우선이라 잠시 미뤄뒀습니다.”

“미궁이 거미 흡수하는 건 어떻게 대처하려고?”

“그래서 주기적으로 돌아오게 해서 충전하고 있죠.”

“너 말고는 귀찮아서 못하겠다.”

“연구에 귀찮음은 없습니다. 시간을 얼마나 투자해야 할지에 대한 계산만 필요할 뿐이죠.”

“···알파가 지금은 뭘 하고 있나 보자.”

거미 충전을 완료한 앨런은 녀석을 다시 내보내고, 테일러의 요구를 들어줬다. 왼쪽 안구에서 뿜어진 빛이 거미가 보내오는 신호를 영상으로 빚어냈다.

작고 검은 곰, 아니 알파가 상체를 숙이고 두 손으로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조막만 한 손이 퍼낸 흙은 다리 사이로 흩뿌려졌다.

알파는 덩이뿌리가 달린 식물을 끄집어내더니 만족스러운 콧김을 내뿜었다.

“어, 저거 투구꽃 같은데. 왜 뽑았지?”

“먹으려고 그랬겠죠.”

“저거 독약 재료야. 진짜 먹을까?”

테일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파가 투구꽃의 흙을 대충 털어내고 통째로 삼켰다.

“괜찮으려나···.”

“한두 번 먹은 행동도 아닌 듯하니 멀쩡하겠죠.”

투구꽃을 말끔히 해치운 알파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나무 위로 뽀르르 기어 올라가더니, 날렵한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처음에 우리가 추적할 때는 지상으로 다녔는데, 이번에는 나무를 이용하네요. 학습이 되나 봐요.”

저런 식으로 움직이면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나뭇잎이야 좀 떨어지겠지만, 지천으로 널린 게 나뭇잎이고 일단 발자국이 안 남으니까.

원숭이처럼 뛰어다니던 알파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더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태도였다.

녀석이 바라보는 곳으로 거미를 움직이자, 그곳에서 사냥 중인 탐험가들이 보였다.

“저런 식으로 먹을 걸 충당했나 본데.”

“그런데 영양을 섭취할 필요가 있을까요?”

“생물은 당연히 음식을 먹어야지.”

“알파를 추적하고 풀어주기까지 2일이 좀 넘었는데, 한 번도 화장실을 안 갔어요.”

“그 정도야 참을 수 있지.”

“소변도 눈 적이 없어요.”

“그것참 신기하네.”

알파는 전투를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전투가 끝나고, 탐험가들이 전리품을 챙겨서 떠난 후에도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나고, 남아있는 시체가 땅으로, 정확히 말하면 미궁에 흡수되려 하자, 알파가 밑으로 내려갔다.

“알파가 있는데도 흡수 작용이 시작됐네요. 이로써 확실해졌습니다. 알파는 지상의 아이가 아니라 미궁의 생명체예요.”

“생고기를 그냥 뜯어 먹네···. 방금 뭐라고 했니?”

“별말 안 했어요.”

배를 채운 알파는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주변을 한동안 두리번거렸다.

“이쪽 쳐다본다. 땅굴에서처럼 거미 부서지는 거 아니냐?”

“알파의 감지 능력은 이미 확인했습니다. 분석이 끝난 상대에게 당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죠.”

앨런의 말대로 알파는 고개만 몇 번 갸웃거리더니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긴장이 풀렸다는 의미였다. 그러더니 굵은 나뭇가지 위에 누워서 배를 통통 두드렸다.

“행복해 보이네요.”

“배부르고 따듯하면 좋잖아. 지능이 단순할수록 욕망도 싱거워서 충족시키기 쉽지.”

“오···.”

“이게 평소의 나니까 감탄은 접어둬라.”

“형제님이 명언집 모음 다운받은 사실은 앨런 형제님도 알고 있습니다.”

“네가 알려줬지?”

“해커가 바이러스 심었나 앨런 형제님이 일일이 확인합니다만.”

알파의 일과는 짐승처럼 단순했다.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잤다.

테일러가 독이 있어서 위험하다고 하는 식물도 보는 족족 배 속에 집어넣으면서 멀쩡하게 돌아다녔다. 은신처는 딱히 정해지지 않았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니면 우리에게 들켜서 위험하다고 판단했을까요?”

“글쎄. 저렇게 단순한 녀석이 그런 생각까지 할까?”

“짐승에 가까울수록 본능적으로 행동하니까요. 어···.”

말을 하던 앨런이 화면을 옆으로 돌렸다. 잠을 청하는 알파 너머에서 길고 굵은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티타노보아라 불리는 거대한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알파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도와줄 거지?”

“그래야죠.”

앨런의 거미가 앞다리로 나무를 수차례 두들겼다. 툭툭 소리가 크게 들리자 알파가 눈꺼풀을 빠르게 들어 올렸다.

알파는 소리의 발생지를 확인하려다가 지척까지 다다른 티타노보아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무사히 도망가겠지?”

“우리에게서 달아나던 속도를 고려하면 여유로울걸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했던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뭇가지를 밟던 알파가 휘청거렸다. 넝쿨 때문에 미끄러지며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근처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치고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알파를 거대한 뱀의 아가리가 낚아챘다. 목구멍이 얼마나 큰지 알파가 단숨에 삼켜졌다.

“어?”

테일러가 얼빠진 소리를 내는 사이, 앨런은 거미 조종에 집중했다. 입맛을 다시는 티타노보아의 주의를 끌고, 녀석이 입을 벌린 사이 안으로 진입했다.

화면이 검붉은 살덩이로 가득 찼다. 습기 많고 불쾌하게 생긴 동굴을 탐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앨런은 알파의 탈출을 돕기 위해 속에서 강한 전류를 방출하거나, 폭발로 창자를 찢으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거미가 내장을 억지로 뚫으며 항문이 있는 곳까지 도착했지만.

“알파가 사라졌어요.”

“뭐지? 공간이동? 미궁에서는 그 마법 자체를 사용할 수 없는데.”

그렇게 화면이 끊겼다. 위산과 근육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거미가 완파되었다.

앨런이 눈을 감고 있으니, 테일러가 다가와서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상심하지 마라. 진짜 아이도 아니고 미궁의 생명체잖아. 그리고 사라졌으니 어딘가에는 있겠지.”

“일단 처음에 발견했던 장소로 가보죠.”

앨런의 말에 테일러가 나무 위로 올라갔다. 항상 떠 있는 태양을 보고 위치를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내가 보는 방향으로 2시간쯤 걸어가면 나오겠다.”

거미를 복귀시킨 앨런은 알파의 땅굴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거미를 풀어놓자, 녀석들은 일사불란하게 땅굴로 진격했다.

내부를 꼼꼼히 살폈지만, 알파의 흔적을 찾을 순 없었다.

“자연스러운 행동을 관찰한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나 봐요.”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수문장의 재등장이 최대 48시간이니, 알파도 비슷한 존재라면 그 안에 나타날 겁니다.”

“다른 층으로 가지 않았을까?”

“그래도 돌아오겠죠. 우리가 처음 발견했을 때도 여기로 돌아왔잖아요. 진짜 마지막이에요. 그때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복귀해요.”

앨런의 마음 같아서는 한동안 여기에서 생활하고 싶지만, 파티원도 있으니 자기 고집만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동료가 아니라 부하를 고용해야 했다.

땅굴 근처에 몸을 숨긴 앨런은 다시 거미를 산개시켰다. 가만히 누워있는 모습은 잠을 자는 사람처럼 보였다.

시온이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뿜어내는 파장이 그거 같아.”

“갑자기 무슨 얘기냐?”

“회사 지하에 있는 그거.”

“아, 슈퍼컴퓨터?”

“그게 컴퓨터야?”

“강인공지능이니 비슷하지 않을까?”

“인공지능이라고 말하면 화내. 정령이라고 불러.”

테일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앨런을 지켜봤다. 기다림은 지루했지만, 언제나 그 끝에 두근거림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참을 만했다.

탐험이든, 연구든, 수련이든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성과가 나오는 법이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입력이 없으면 결과도 없었다.

24시간 뒤, 시체처럼 가만히 누워있던 앨런이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변화가 있어요.”

“무슨 변화? 나는 못 느끼겠는데.”

“마력의 흐름이 빨라졌습니다. 땅굴 아래로 모이고 있어요.”

테일러가 시온을 쳐다보니, 그녀도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앨런의 안구가 다시 빛을 뿜어내며 화면을 만들었다.

땅굴 가장 깊은 곳의 영상이 부르르 떨렸다. 거미의 문제가 아니라, 흙과 뿌리가 살짝살짝 움직이는 까닭이었다.

잠시 후, 새까만 문이 생성되더니 파란 덩어리를 뱉어냈다. 마치 씨앗처럼 생긴 수정 안에는 곰 가죽을 두른 알파가 들어있었다.

수정이 곧 깨지더니 알파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충격을 느끼자마자 몸을 일으킨 녀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땅굴 밖으로 나왔다.

알파는 예전과 달리 땅 위를 조심스럽게 기어 다녔다.

“행동이 달라졌는데.”

“우리에게 발각당했던 학습을 통해 나무 위로 다니더니 왜 저럴까요?”

“그러게. 마치 까먹은 사람처럼.”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앨런은 알파의 깨끗한 피부를 확대했다. 가끔 벌어지는 입술 너머로 보이는 가지런한 치아도 굉장히 하얬다.

“고기를 먹으며 기름이 묻어도 그것뿐이었죠. 알파는 항상 청결했어요. 알파에겐 세포의 사멸과 생성 자체가 없나 봐요.”

“그래서 냄새가 안 났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알파는 목숨에 위협을 받거나 죽으면 이런 식으로 부활하나 봐요. 이전 기억은 잊은 채로요.”

앨런이 거미의 마력을 슬쩍 흘리자 녀석은 흥미를 느끼더니 다시 접근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거미는 앨런의 마력으로 움직였다.

잡았다가 풀어줬을 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미궁이 다 그렇지 뭐.”

“아저씨. 알파를 감쌌던 수정이 뭔지 보셨죠?”

“아, 잠시 잊고 있었다. 그게 왜?”

“아무래도 아이스틸 같던데요. 알파가 땅굴을 빠져나오니 전부 녹아버렸어요.”

아이스틸. 얼음과 강철을 합쳐서 이름을 붙였지만, 엄밀히 말하면 금속은 아니었다. 마력을 잔뜩 머금은 얼음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얼음과 강철의 특성을 지닌 아이스틸은 눈에 띄는 사용처가 몇 개 있었다.

“생김새가 생명보존장치, 혹은 동면장치 같았죠?”

“근데 그게 중요해? 아···.”

테일러는 앨런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미궁은 분명 현실과 연관이 있다. 광산에서 봤던 유적과 31층부터 펼쳐진 설원은 유사한 장소였다. 그게 과연 우연일까?

“아이스틸의 유일한 산지가 어디죠?”

“솔도스 연방 북쪽에 있잖아.”

동방대륙의 큰 나라에게 헐값에 주고 산 땅은 사실 자원의 보고였다. 아이스틸 말고도 온갖 자원이 넘쳐났다.

“그런데 아이스틸이 있는 곳은···.”

“파괴자가 점거하고 있죠.”

< 30층(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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