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사라(2) >
땅속에서 몸을 내민 벌레는 아직까진 가만히 있었다. 동그란 아가리를 멍하니 벌리고 있었고, 내부에 촘촘히 박힌 이빨들이 흉악하게 빛났다.
직원, 케이든이 중얼거렸다.
“제발 눈치채지 마라. 일광욕이나 즐기고 있으라고.”
“도로 청소를 맡은 용병은 어디 소속인가요?”
“지금은 엠엠코입니다.”
엠엠코는 마석광산에서 인체실험을 하다 호되게 당했던 록하트처럼 에너지 기업이며 광업에도 손을 대고 있다. 대기업은 문어발 확장이 전문이라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대기업의 로비로 인해 군을 움직였다가 큰 손해를 봤던 솔도스 연방은 지시를 내렸다. 아이스틸 산지 근방의 치안은 알아서 유지하라고.
“그래서 대기업들이 번갈아 가며 이곳 도로 주변을 청소합니다.”
“케이든 씨는 몬스터를 만난 사람치고는 평온해 보입니다.”
앨런의 질문에 그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운전대를 붙잡은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눈동자는 벌레의 동태를 예의주시했다.
“당연히 긴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워낙 자주 겪는 일이라 억지로 익숙해졌을 뿐입니다.”
아이스틸은 마력을 품은 얼음이고, 마력은 신비를 발생시키는 원동력이다. 그런 힘이 존재한다면 누구나 소유하려고 달려들 것이다.
몬스터는 마력으로 육체나 능력을 강화할 수 있기에 언제나 마력이 풍부한 장소에 이끌렸다.
푸른 갑주를 두른 거대 지렁이도 마찬가지였다. 녀석의 이름은 비늘지렁이.
전 세계에서 등장하는 대형 몬스터이며, 지금 보이는 개체의 비늘이 파랗게 물든 이유는 이곳의 아이스틸을 섭취했기 때문이다.
지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엄청 거대한 개체도 존재하며, 동방대륙에서는 그것들을 가리켜서 토룡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저기 오는 트럭도 눈치를 채고 속도를 높이고 있군요.”
마주 오는 트럭은 문제가 없었다. 멀쩡한 도로에서, 그것도 가속하며 달리는 트럭을 땅속에서 움직이는 몬스터가 어떻게 따라잡겠는가.
문제는 앨런이 탑승한 낡은 트럭이었다. 엔진은 언제라도 꺼질 듯이 기침을 토해내고, 그런 이유로 속도마저 느렸다.
케이든은 지렁이가 끝까지 가만히 있길 바랐지만, 하늘을 향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녀석이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이쪽으로 돌렸다.
땅 밖으로 내민 몸통을 통해 길이를 추산하면 최소 20m 이상. 무게도 그에 비례할 테니 충돌했다간 트럭이 대번에 박살 날 지경이었다.
“형제님, 차에서 내리실 겁니까?”
“아뇨. 단번에 숨통을 끊지 못하면 달아난다고 하니, 힘을 낭비하지 말죠.”
앨런은 오랜만에 철판을 꺼내서 무언가를 새기고 휙 던졌다. 시온의 움직임을 모방했기에, 철판은 예전과 달리 멀리 날아갔다.
트럭을 향해 직진하던 지렁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철판이 착지한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똑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사이, 트럭이 위험지대를 무사히 빠져나갔다.
가슴을 달랜 케이든이 룸미러로 앨런을 바라봤다.
“뭘 하신 겁니까?”
“진동과 소음을 이용해서 녀석의 감각을 속였습니다. 마력도 좀 담아둬서 맛 좋은 먹이로 착각한 겁니다.”
“···이렇게 쉽게요?”
“되니까 저쪽에만 관심을 주겠죠.”
앨런은 말을 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트럭의 운전사를 관찰했다. 근거리에서 괴물을 목격한 사람치고는 평온해 보였다.
“일반적인 차량이면 쉽게 달아날 수 있죠?”
“땅에서 솟구치며 바로 충돌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피할 수 있습니다.”
“트럭은 안 바꾸십니까? 이런 고물을 계속 타고 다니면 위험할 겁니다.”
“···그건 제가 더 잘 알죠. 우선 통화부터 하겠습니다. 아직은 엠엠코의 관리 기간이니 따로 연락하면 알아서 지렁이를 처리해줄 겁니다.”
케이든은 운전하면서 룸미러로 계속 앨런을 살폈다. 신기한 생물을 발견한듯한 표정이었다.
계속 나아간 트럭은 사무실과 창고 역할을 동시에 하는듯한 조립식 가건물에 도착했다. 다른 중소기업들의 건물도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대기업과 달리 힘이 약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덩치를 부풀리는 모양이야. 용병들이 모여있으면 지렁이나 다른 몬스터가 나와도 그럭저럭 대처할 수 있겠지.’
앨런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는 사이, 가건물에서 정비사로 보이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나왔다.
“케이든, 왔구나.”
“용병분들이 왔으니 내일부터는 다시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요.”
“잠시···.”
정비사가 케이든을 구석으로 데려가서 속닥거렸다. 앨런이 관심 없는 척하며 주변을 구경하고 있으니, 테일러가 슬쩍 다가왔다.
“저 사람들이 무슨 말 하는지 듣고 있지? 뭐래?”
“그동안은 고용한 용병이 없어서 작업에 안 끼워줬나 봐요. 그리고 아이스틸 채광기가 고장 났다고 하네요.”
“아까 같은 괴물이 나타나면 힘을 합쳐서 퇴치해야 하는데, 누구는 용병이 없다고 쏙 빠지면 고운 시선 받기 글렀지. 시설을 보아하니 여유 있는 회사는 아닌 듯해. 어쩌면 우리를 고용하려고 자금을 전부 썼을 수도 있겠는걸. 수리는 물 건너갔나.”
“다음을 생각 안 하고 그런다고요?”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나 단체가 꽤 많아. 그러다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길거리에서 생활해야지. 왜 그리 위험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형제님, 탐험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한 형제자매님들은 이쪽을 더 위험하게 느낍니다.”
“이쪽에 하도 오래 있었더니 위험한지도 모르겠다.”
앨런은 심각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비사와 케이든에게 다가갔다. 도청기 역할을 한 안테나는 파워 슈트 안으로 집어넣고, 모른 척하며 물어봤다.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용병은 맡은 일이나 해.”
“삼촌, 아까 보니 실력 있는 마법공학자였습니다. 지렁이가 나타났는데···.”
“뭐? 거긴 어떻게 빠져나왔어?”
룬문자로 지렁이를 속인 이야기를 들려주자, 정비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법공학자? 그런 기술이 있는데 왜 용병을 해?”
“용병이 아니라 미궁탐험가입니다.”
“뭐?”
정비사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짙게 물들었다. 그래도 살아온 세월 동안 만났던 특이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안색을 가라앉혔다. 세상은 넓고, 미친, 아니 특이한 놈들은 많았다.
“거참, 신기한 놈일세. 수리에 사용할 부품을 구입하면 되니 신경 쓸 필요 없다.”
“말콤 삼촌, 어떻게요? 설마 집까지 담보로 잡으셨어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몰라도 돼.”
“어차피 채광기가 고쳐져야 일을 할 수 있으니 구경 좀 하겠습니다.”
앨런은 철문을 옆으로 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뻔뻔한 말과 행동에 정비사, 말콤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차고 안에는 지게차처럼 생긴 채광기가 있었다. 전면부에 포크나 마스트는 없고 대신 렌즈가 여럿 달렸는데, 그 렌즈가 빛을 뿜어내며 아이스틸 원석을 채굴했다.
앨런은 말콤이 혼란에 빠진 틈을 놓치지 않고 채광기에 접근해서 내부를 살펴봤다. 살짝 분해된 상태라 따로 손댈 것도 없었다.
“렌즈로 특수한 광선을 발사해서 원석을 떼어내는구나.”
“삼라만상에서 보고 왔으면 기본적인 작동 방식은 알겠지. 그건 누구나 알 수 있어.”
앨런이 눈으로만 살피고 있으니 말콤도 딱히 제지하진 않았다. 아니면 입고 있는 파워슈트 때문에 부담스럽게 생각했을 수도 있고.
“이제 그만 나가. 이 정도면 충분히 배려했으리라 생각하는데.”
“렌즈는 멀쩡하네요.”
말콤이 잠시 지켜보겠다는 듯 팔짱을 끼었다.
“찍은 거냐? 아니면 진짜 보이는 거냐? 렌즈는 기술보다는 재료가 중요하니 어차피 손댈 수 없는 부분이고. 그다음은?”
앨런은 수리하면서 배우겠다는 태도로 내부 구조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담았다. 아무리 복잡한 정보라도 차곡차곡 쌓여서 기억의 도서관에 저장되었다.
“별문자, 룬문자, 회로마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네요.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무슨 뜻이지?”
“구조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고, 쓸모없는 부분도 많습니다. 3가지를 동시에 다뤄야만 고칠 수 있게 만들어뒀어요.”
“···?”
“부품이 고장 나면 평범한 기술자는 손도 못 댈 테니, 수리하려면 채광기를 제작한 회사에 연락해야 했을 겁니다.”
“정확해. 그리고 부품은 욕 나올 정도로 비싸지.”
“그게 나쁩니까? 연구개발에 투자한 결과를 돌려받는 거죠. 노력을 기울인 만큼 보상을 받는다. 어찌 보면 정당한 대가입니다.”
의견이 살짝 충돌하는 모양새가 되자 케이든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자, 자. 이럴 때가 아니죠. 그래서 채광기는요?”
“그렇게 큰 고장은 아니라 하루 정도만 투자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3가지나 다뤄야 한다고 하셨잖습니까?”
“네.”
“그런데 수리가 가능하다고요?”
“전 룬문자, 별문자, 회로마법 전부 사용합니다.”
“오···.”
케이든은 감탄만 흘리고, 그보다 훨씬 잘 아는 정비사는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겉핥기를 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지? 진짜면 머리가 미칠 듯이 좋다는 의미겠고.”
“보면 아시겠죠.”
막상 앨런이 손을 대려 하니 말콤이 중간을 가로막았다.
“잠깐. 이게 얼마짜리인지 알아? 망가지면 나랑 케이든은 진짜 끝이야.”
“고장 나면 보상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니, 우리가 고용한 용병이라도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그걸 어떻게 믿냐고.”
“삼촌, 일단 지켜보죠. 지렁이도 쉽게 뿌리쳤잖아요.”
지렁이를 유인하는 장면에서 감명을 깊이 받았는지, 케이든이 앨런의 편을 들었다.
“그게 어렵습니까?”
“봐요. 뭔가 좀 다르죠?”
케이든은 앨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말콤에게 무언가를 속삭이기만 했다.
덕분에 앨런은 마음 편히 수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건 수리이면서 동시에 학습이기도 했다.
다음날, 말콤은 앨런의 호언장담대로 채광기가 작동하자 눈물을 글썽거렸다.
“집을 안 팔아도 돼···.”
“삼촌, 어제는 담보대출 안 했다고 하셨잖아요.”
작업 시작하기 전에 수리가 끝나서 중소기업들의 행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다른 직원은 없는지, 케이든이 채광기를 운전하고, 말콤이 그나마 멀쩡하게 생긴 트럭을 꺼내왔다.
채굴 장소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차를 타고 1시간쯤 이동하니, 소용돌이 모양으로 파고 내려간 노천 광산이 나타났다. 저 아래에 고인 물은 유독 파랗게 빛났다.
앨런은 그게 뭔지 바로 알아차렸다.
“아이스틸이 녹은 물이군요.”
“채굴은 못 해도 마력이 풍부한 물이라 수요가 꽤 있습니다. 파이프 보이시죠?”
지정된 작업 위치에 도착하자 케이든이 채광기를 운전했다. 원래부터 그의 역할이었는지 꽤 능숙해 보였다.
렌즈에서 뿜어진 빛이 암석을 강타하자.
쿠르릉!
돌무더기가 와르르 쏟아졌다. 동시에 먼지도 자욱하게 일어나며 일대를 가득 채웠다.
“헉!”
화들짝 놀란 케이든이 채광기를 후진시켰다. 앨런은 장갑에서 뿜어내는 바람으로 먼지를 날리며 태연하게 반응했다.
“왜 그러세요?”
“출력이 왜 이러죠? 너무 강합니다.”
“수리하면서 그 부분도 살짝 손봤습니다. 대신 마력 소모가 늘어났을 겁니다. 원래대로 돌려드릴까요?”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케이든은 희희낙락하며 작업을 이어갔고, 말콤은 트럭에 설치된 집게로 원석을 수거하기 바빴다.
“10%, 잊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챙겨드리겠습니다.”
케이든이 가슴을 두드렸다. 앨런이 원래의 호위 역할로 돌아가자, 테일러가 슬그머니 말했다.
“좀 더 달라고 하지.”
“공부하면서 돈까지 받았잖아요. 이런 직업이 세상 어디에 있나요?”
“그래···, 네가 좋다니 그만 얘기하자.”
“세금 처리도 해야 하니 사실 저 정도가 적당합니다. 그런데···.”
앨런이 발치에 굴러온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햇빛에 비추자 탁한 파란색이 언뜻 보였다. 채광기의 빛이 아니라 충격 때문에 떨어져나와서 그런지 아이스틸이 금방 녹아버렸다.
“알파를 감쌌던 아이스틸보다 순도가 낮네요. 파괴자가 점거한 땅의 아이스틸은 훨씬 좋다고 하던데.”
“아무리 궁금해도 거긴 안 된다.”
“분명 다른 방법이 있겠죠. 웨어베어라고 했으니 꿀을 주면 좋아할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직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해봐라.”
< 카사라(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