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사라(3) >
앨런이 채광기를 개조해서 케이든의 작업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트럭의 짐칸이 금방 가득 차서, 말콤이 원석을 가건물 창고까지 운반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하루 목표치를 다른 회사보다 한두 시간 빨리 달성해도, 케이든은 채광기를 계속 운용했다.
“이럴 때 바짝 벌어둬야 합니다. 앨런 씨의 고용계약이 끝나면 출력 증폭의 혜택도 사라질 테니까요.”
채광기의 출력을 상승시킨 대가는 마력회로의 불안정화였다. 뛰어난 마법공학자가 옆에서 계속 봐준다면 상관없지만, 앨런은 언젠가 돌아갈 테니 그때는 본래의 출력으로 되돌려야 했다.
“그래도 사람이 쉬면서 일을 해야죠.”
“전 아직 젊으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기회는 다가왔을 때 잡아야 합니다. 오늘은 몬스터도 안 나타날 것 같으니 앨런 씨도 쉬엄쉬엄하세요.”
앨런은 개조의 대가를 퍼센트로 받아서 케이든이 열심히 일하면 응원해야 할 상황이나, 표정을 보면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다.
근처 바위에 앉아있던 테일러가 시바에게 말을 걸었다.
“불만이 많은 얼굴인데. 입 튀어나온 거 보여?”
“어떻게 아십니까? 제 눈에는 평소의 무표정으로 보입니다.”
“같이 있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돼. 너도 동료에게 관심 좀 가져. 맨날 성수에 취해 있어서 눈이 흐려진 거 아니냐?”
“형제님도 저랑 같이 즐기시면서 그런 삿된 소릴 하시면 안 됩니다.”
테일러의 말이 맞았다. 앨런은 목표치를 빠르게 달성하면 그날은 바로 복귀할 줄 알았지만, 케이든은 다른 회사와 똑같은 시간에 일을 마쳤다.
덕분에 여가 동안 공부한다는 계획이 무산되었다. 그만큼 들어올 돈으로 책이나 지식을 살 수 있어서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진 않았다.
게다가 앨런은 고용된 입장 아닌가. 케이든 덕택에 광산 출입도 가능해진 사실도 잊으면 안 됐다.
앨런은 저 아래에 있는, 아이스틸이 녹아있는 푸르고 작은 호수로 시선을 던졌다. 여기에 도착한 첫날부터 엠엠코의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스틸의 순도가 낮은 상층부는 중소기업이, 순도가 높은 하층부는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어서 이상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앨런의 생각은 달랐다.
‘채광이 아니라 연구나 탐색 같은데.’
수상하게 느끼기보다는 저기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대기업인 만큼 그들의 연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시야 배율을 최대한 확대하고 살피는 사이, 웬 남자 하나가 다가왔다.
“자네가 마법공학자인가?”
“···?”
“채광기를 강화했다고 들었는데.”
케이든의 작업 속도는 남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면 앨런이 마법공학자 티를 내서 그런지 개조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이 생겼다.
“흠···. 한 30만 코인 정도면 되나? 아니면 50만?”
다만, 이들은 케이든과 달리 절박하지 않았다. 어리다고 값을 후려치려고 하거나, 일단 떠보기만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
“마음에 안 드나?”
“···.”
“어른이 말하는데 젊은 사람이 그렇게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되나?”
“···.”
“도대체 얼마나 욕심을 부리려고. 하여간 용병 놈들은 하나같이 왜 이러는지.”
당연히 앨런은 전부 거절했다. 이미 채광기의 원리를 알았으니 거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외워만 두고 이해하지 못한 지식이 아직도 가득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계약이었다. 케이든에게 고용된 입장이라 어디 나돌아다니지 말고 자리를 지켜야 했다.
“욕심은 이렇게 툭 튀어나온 배에 가득하겠지. 법이 참 좋아. 이런 놈들도 보호해주고.”
테일러가 득달같이 튀어나와서 배를 쿡쿡 찌르자, 남자는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덩치를 보고 물러났다.
테일러처럼 전신을 뒤바꾼 사람은 티가 났고, 아무리 신체개조에 관대한 세계라지만, 그런 사람들은 정신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객관적으로 봐도 테일러의 인상은 강렬했고, 눈빛은 사나웠다. 수십 년 동안 미궁의 괴물을 처리하며 쌓인 경험이나 기운이 어디로 가겠는가.
“앨런, 너도 저런 놈들은 상대해주지 말고 무시···.”
“···.”
“내 말 듣고 있니?”
테일러는 그제야 앨런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휘휘 돌리자, 벽 쪽에 바짝 붙어있는 상자가 보였다.
상자는 집게발로 흙을 파내고, 암석을 부쉈다.
“저러면 원석을 캐도 녹아내릴 텐데?”
아이스틸은 채광기의 빛이 닿아야 원형을 유지했다. 채광 초기에는 그것을 모르고 땅에 버린 원석이 얼마나 많았던가.
테일러의 우려와 달리 상자는 원석을 무사히 떼어냈다. 아기 주먹 크기여도 원석은 원석이었다.
“오···.”
“잠시 집중하느라···. 처음에는 저도 실패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 성과가 생기더군요. 이제는 작더라도 원석 채굴이 가능해졌어요.”
잠시 쉬고 있던 케이든이 그 광경을 보고 입을 살짝 벌렸다.
“앨런 씨도 달수정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인데.”
채광기의 전면부에 달린 렌즈, 그러니까 달수정이 채광기 가격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름 그대로 달에서 캐내는 수정이며, 우주의 마력을 받아서 특이한 성질을 지녔다.
앨런은 당연히 달수정이 없었다. 그냥 하다 보면 될 듯해서 시도했더니 성공한 것이다. 대신 달수정이 없어서 채산성이 낮았다.
“달수정은 없고, 그냥 해봤습니다.”
“그냥이요?”
“네.”
“알겠···습니다.”
케이든은 이런 모습을 본 게 하루 이틀도 아니라 빠르게 수긍했다. 이해하려면 자신의 머리만 아프다는 사실을 진즉에 깨달았다.
케이든이 다시 작업을 시작하고, 테일러가 슬쩍 물었다.
“이렇게 작아서 쓸모가 있으려나?”
“크기보다는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죠. 당장은 필요 없어 보여도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을 거예요.”
“하긴, 미궁에서 뭐가 나올지 모르긴 하지.”
“그거 아세요?”
“뭐를 말이냐?”
“동방대륙에서는 아이스틸로 침대를 만든대요. 매우 시원하다고 해요.”
“곧 있으면 여름이긴 하지. 그래도 난 푹신한 게 좋다. 잠깐, 저기 봐라.”
요 며칠은 평화로워서 오늘도 그렇게 끝나나 했는데, 철수까지 2시간 정도 남기고 문제가 생겼다. 저 멀리에서 푸른 털의 짐승들이 비탈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동물이 짙은 마력을 접하면 몬스터로 변이하기 십상이었다. 여기는 아이스틸이 워낙 풍부해서 그런 사례가 굉장히 많았다.
“괜히 용병을 고용하겠어? 이쪽으로도 몇 마리 온다.”
미궁의 괴물과 달리 지상의 몬스터는 사람을 본다고 무조건 달려들지 않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녀석들이 노리는 건 아이스틸의 원석이라, 회사에서는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케이든이 채광기를 운전해서 앨런의 뒤로 빠르게 피신했다.
“원석이 공기에 노출되면 마력이 멀리 퍼지죠. 저 동물들은 몇km 밖에서도 그걸 감지하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닌 듯한데···. 테일러 씨만 나서도 됩니까?”
“네.”
앨런이 워낙 침착한 모습을 보이자, 케이든도 그에 전염되었는지 심장 박동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저 동물들은 미궁의 괴물과 비교하면 얼마나 강합니까?”
“미로, 미궁의 상층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미로에서 나오는 오토마톤보다 살짝 약하군요.”
가만히만 있으면 관절에 녹이 생긴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 나선 테일러는 짐승들을 순식간에 정리했다. 푸른 가죽은 수요가 꽤 있어서 마나소드말고 주먹으로 두개골을 부쉈다.
조금 전에 전투가 벌어졌는데도 중소기업의 사람들은 작업을 이어갔다. 죽음의 위험도 별일 아닌 것으로 취급할 만큼, 돈은 무서운 물질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무탈하게 지나갔지만, 문제는 며칠 후에 발생했다.
[어슬렁거리는 몬스터가 증가해서 광산은 일시적 폐쇄요.]
“갑자기 이런 일방적인 통보라뇨.”
[우리도 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쇼? 위에서 시키는데 어쩌라고.]
“그래도 말이라도 미리 해주면···.”
[손수 나서서 위험요소를 제거해주는데 감사 인사는 못 할망정···.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으리라 믿겠소.]
오늘도 싱글벙글하며 작업장으로 향하려던 케이든이 엠엠코 직원과 통화하고 그 내용을 알려왔다.
“하,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
“안돼!!! 납품일을 어떻게 맞추라고!!!”
옆 건물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이곳은 중소기업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역이라 비슷한 괴성이 곳곳에서 들렸다.
케이든이 그 소리를 듣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야 앨런 씨 덕분에 목표치를 벌써 채웠지만, 저 사람들은 힘들게 됐군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합니까?”
“솔도스가 아이스틸 광산 근처의 치안을 대기업에 맡겼으니까요.”
“지주처럼 행동한다는 뜻이군요.”
“네. 가끔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 통보를 하곤 합니다. 광산으로 향하는 도로도 그쪽의 무력부대가 막고 있을 겁니다.”
“진짜 몬스터 때문에 그럽니까?”
“글쎄요.”
케이든은 말을 돌렸지만, 표정에서 이미 답이 나왔다. 진짜 몬스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일 때문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였다.
세상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신분의 차이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옛날 신분을 태생이 결정했다고 하면, 요즘에는 자금이 그 역할을 했다. 무력은 언제나 공통분모였고.
어쨌든 엠엠코에서 횡포를 부려도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시 며칠이 지났다. 여유로운 케이든과 달리 주변의 곡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앨런은 주변이 상황이 어떻든 학습에만 몰두하다가 자신을 찾아온 케이든과 마주쳤다.
“엠엠코에서 몬스터를 처리했다는 연락이 왔어요.”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겠군요.”
“엄청 거대한 비늘지렁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갱도를 발견했는데, 이번 일로 손해를 본 중소기업에 개방한다고 하더군요.”
“아, 그래서 오늘은 조용했군요. 혹시 케이든 씨도 수락하셨습니까?”
“당연하죠. 상층부보다 순도도 높다고 하니, 앨런 씨가 개조해준 채광기와 함께라면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점심에 거의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중소기업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광산으로 향했다. 그동안의 손해를 메꾸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다.
야간작업도 불사할 기세에도 며칠 편히 쉬며 돈만 또박또박 타낸 용병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그들도 염치가 있긴 했으니까.
광산에 도착하자 달라진 풍경이 이들을 반겼다. 나선형의 형태는 여전했지만, 거대한 비늘지렁이가 나타났다는 말은 거짓이 아닌지 곳곳에 거대한 구멍이 파여있었다.
미리 자리를 지키던 엠엠코 직원이 나서서 중소기업 사람들을 나눴다. 몇 개의 팀을 즉석 해서 만들고, 각각의 갱도로 인도했다.
갱도는 천장에 달린 마석등 덕분에 굉장히 밝았다. 사방이 푸른 빛으로 번쩍였다.
케이든이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분석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기까지 아이스틸의 마력 색으로 물들어있으니, 순도도 굉장히 높을 겁니다.”
케이든이 엠엠코를 욕했던 일을 회개하고 싶다며 시바에게 말을 건 사이, 직원이 갱도에 관해 설명했다.
“주목해주세요. 지질조사는 이미 끝내놨으니 제가 지시한 곳만 파내면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채광하다가 발생한 사고는 모두 본인의 책임임을 주지하시고요.”
중소기업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엠엠코는 갱도를 개방한 일 자체를 보상이라 생각할 것이다.
사실 보상이라 하기도 모호했다. 엠엠코는 광산 관리비 명목으로 수익 일부를 가져가서, 이것 또한 본사의 수익을 위한 일이었으니까.
물론 중소기업의 처지에서는 순도가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호재였다. 같은 노력을 들여도 훨씬 큰 보상이 뒤따랐다.
케이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테일러가 머리 위로 떨어진 흙을 털어냈다.
“이거 안전한 거 맞냐? 미궁에서는 아무리 난리를 쳐도 멀쩡한데, 여기는 툭하면 돌조각이 떨어지네.”
“그런데 방향이···.”
“방향이 왜?”
“이쪽으로 계속 가면 파괴자가 점거한 구역이에요.”
“설마 거기까지 가겠어? 이 사람들이 너보다 훨씬 전문가니 알아서 하겠지.”
< 카사라(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