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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속 천재공학자-135화 (135/193)

< 갱도(1) >

갱도를 전체적으로 보면 원형으로 뚫려 있어서 바닥도 오목하게 파여있었다. 지형이 험악해도 채광기는 애초에 그런 장소를 다니도록 설계한 기계라 쭉쭉 전진했다.

중소기업 사람들은 채굴의 전문가들이라 아예 바닥을 깎아내서 자신들이 다니기 좋게 평평한 길을 만들기도 했다.

엠엠코의 직원이 알려준 장소를 채굴하는 인원이 7할, 바닥을 다듬는 인원이 3할 정도 되었다. 한동안 정면에서 일하다가 뒤로 빠진 케이든이 바닥을 다듬었다.

앨런은 지네 형태의 골렘이 원석을 운반하는 모습을 보다가 케이든의 옆으로 다가갔다.

“열심히 일하는 중에 죄송한데, 계속 직진하면 어디인지 아십니까?”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여기는 갱도라 GPS 사용이 힘들지만, 위치를 파악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마력으로 신호를 보내면 웬만한 깊이의 지하에도 닿으나, 여기는 아이스틸 광산이라 힘들었다. 원석이 품은 마력이 자연적으로 재밍을 일으켰으니까.

케이든이 조작 버튼에서 손을 떼며 정면을 주시했다. 마석등으로 인해 사방에 푸른 빛이 가득했다. 마치 얼음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저 앞으로 가면 파괴자의 영역이죠. 하지만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도 30~40km 남았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영역 밖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무시하니까요. 수십 년 동안 피를 흘리며 알아낸 정보긴 하지만요.”

“알겠습니다.”

잠시 숨을 돌렸던 케이든이 다시 작업을 이어가고, 앨런은 한 발짝 뒤로 빠졌다.

테일러는 시바와 함께 벽에 기대고 있었다.

“마력이 정말 충만해. 수련하기 좋은 장소야.”

“저도 들었는데, 엠엠코말고 다른 회사는 개인용 수련굴을 파서 대여해주기도 한답니다.”

“파괴자가 근처에 있는데도 겁 없이 돌아다닌단 말이지. 익숙해진다는 게 참 무서워.”

“영역 침범만 안 하면 조용하니까요.”

“파괴자가 등장하고 30년 정도 지났나? 충분히 파악하고도 남을 기간이긴 한데, 파괴자는 언제든지 마음이 바뀔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지···.”

“그런 걱정을 한 사람은 형제님 혼자가 아닐 겁니다. 수만 명이 넘겠죠.”

“하긴···.”

고개를 끄덕인 테일러는 반대쪽 벽에 바짝 붙어있는 앨런의 등을 쳐다봤다. 쪼그려 앉아있어서,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살금살금 걸어가서 어깨너머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앨런, 뭐하니?”

“아이스틸의 구조를 관찰하고 있었어요. 마력이 어떤 작용을 했기에 얼음이 금속의 특성도 지니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앨런이 주먹으로 노크하듯 두드리자, 벽에 붙어있던 암석이 후드득 떨어졌다.

“왜 이리 쉽게 떨어지지?”

“구조 파악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약점 파악이죠. 같은 지식이라도 번영을 이루느냐, 파괴를 일삼느냐는 사용자의 의지에 달렸고요.”

“하긴, 마력융합로도 조금만 바꾸면 폭탄으로 변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편해도 되는 걸까?”

테일러의 말대로 회사가 고용한 용병들은 각각의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원래는 아이스틸의 마력에 취한 몬스터나 동물이 수시로 등장했는데, 오늘은 한 마리도 못 본 탓이었다.

테일러가 천장에 뚫린 동그란 구멍을 보고 말했다.

“두더지가 뚫어놓은 구멍 맞지?”

“네, 흔적은 있는데 주인은 없네요. 엠엠코에서 작정하고 청소했나 봐요.”

“그래 봐야 며칠 지나면 또 몰려오겠지. 사람이나 몬스터나 몸에 좋은 물건을 보면 눈 돌아가는 모습은 똑같아.”

한편, 선두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어두운 갱도와 마주쳤다.

“여긴 왜 마석등이 없어?”

“설치를 안 했으니 어둡겠지. 누가 불 좀 켜봐.”

“네 채광기는 작업등 없어?”

“어차피 밝은 곳이라 마석 낭비하기 싫어서 빼버렸지.”

“미친놈.”

“너는?”

두 사람은 낄낄거리며 웃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채광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는 작업등 있죠?”

“어두우면 불을 켜고 작업해. 기본이 안 된 것들이랑 같이 일하···.”

작업등을 켠 남자가 입을 살짝 벌렸다. 시력이 좋다면 잘게 그리고 무수히 진동하는 턱을 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작업등의 빛 때문에 눈을 살짝 가린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아저씨! 방향 좀 바꿔봐요! 그렇게 세게 트니까 하나도 안 보이잖아. 시끄러워서 귀마개를 꼈나? 말귀를 못 알아듣네.”

“야, 그런데 우리랑 함께 다니던 직원은 어디 갔냐?”

“호출이 어쩌고저쩌고하더니 잠시 밖에 다녀온다고 하던데.”

“호출은 무슨. 쉬러 나갔겠지. 우리도 이참에 숨 좀 돌릴까? 아무리 돈이 좋아도 휴식은···. 어? 저 아저씨는 채광기 놓고 어딜 저리 바쁘게 뛰어가? 너는 왜 그래?”

그제야 남자는 친구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는 목덜미에 갑작스레 느껴지는 습한 공기에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막힌 길인 줄 알았던 부분이 입을 쩍 벌렸다. 비늘지렁이의 아가리가 꽃처럼 벌어지고, 내부에 빽빽하게 들어찬 이빨들이 번뜩였다.

“암석이 아냐? 비늘?”

마지막 말이 거대한 아가리에 삼켜졌다.

톡!

작은 암석 하나가 파워슈트 헬멧을 두드렸다. 시바가 그 모습을 보고 남아있는 흙을 털어내려고 손을 뻗다가 키 차이 때문에 포기했다.

“작업하는 형제님들이 안전하다고 말했는데 자꾸 불안하게 뭐가 떨어집니다.”

“지지대를 충분히 설치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아니면 드워프의 감은 뭐라고 속삭···.”

톡토도독!

앨런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작은 조각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꽤 큰 돌조각도 섞여 있어서 시바가 안전모를 고쳐 썼다.

“케이든 형제님에게 이만 나가자고 말하겠습니다. 목표치는 예전에 달성했으니 들어줄 겁니다.”

걸음을 떼던 시바의 몸이 휘청거렸다. 육체를 단련한 수도승이니 바닥에 요철 좀 있다고 문제 될 건 없었지만.

쿠구궁!

문제는 갱도 전체를 울리는 진동이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축이 흔들렸다.

마침 케이든도 불안감을 느꼈는지 채광기의 머리를 돌렸다.

“지진의 전조현상이나 마력의 뒤틀림도 없었는데 왜 이러는지···. 이만 나가요.”

그때, 저 멀리에서 비명이 들렸다. 공포가 가득 섞인 울음이 갱도 벽면을 따라 통통 뛰다가 사람들의 고막에 안착했다.

앨런이 왼쪽 눈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갱도 안쪽을 바라봤다. 시야가 순식간에 확대되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무언가를 포착했다.

그건 테일러도 마찬가지였다. 앨런 앞에서는 자제하려던 비속어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어···, 저거 비늘지렁이 맞지? 존나 크네!”

갱도는 채광기 몇 대가 나란히 지나가도 될 정도로 넓었고, 앨런은 지금까지 비늘지렁이가 몇 번 왕복하며 갱도를 만든 줄 알았다.

“갱도가 빈틈없이 꽉 찰 만큼 몸통이 굵네요. 폭이 15m는 되겠어요.”

“그게 중요해? 여긴 직선 길인데 어떻게 피하지? 일단 달려!”

베테랑 탐험가인 테일러는 놀랄 만한 상황이 벌어져도 당황하지 않았다.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하며, 케이든을 채광기에서 쏙 뽑아내더니 어깨에 걸쳤다.

“앨런!”

“형제님!”

테일러와 시바가 소리쳐도 앨런은 가만히 서 있었다.

“비늘지렁이의 속도를 고려하면, 어차피 도망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녀석은 갱도에 존재하는 사람과 채광기를 실시간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목구멍이 어찌나 큰지 막힘 하나 없었다.

“앨런!”

“이리 오세요.”

앨런의 차분한 음성은 소란 속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작업자들은 미친놈 보듯 하며 스쳐 지나갔지만, 테일러와 시바는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 뭐 하는 겁니까!”

테일러의 어깨에서 버둥거리는 케이든도.

앨런은 바닥에 쪼그려 앉으며 손바닥을 바닥에 붙였다. 비늘지렁이가 발생시키는 진동이 어찌나 강력한지 뼈까지 드드드 떨렸다.

정신을 집중하자, 파워슈트에 내장된 형상변환합금이 반응했다. 몸 내부에 마력구조체를 만들 수 없는 앨런이 마련한 방편이었다.

룬캔버스라 이름 붙인 마도구가 주인의 명령에 따랐다. 화폭이라는 명칭처럼 룬문자가 자유롭게 움직였다.

[집중] [침투] [가열] [분쇄]

룬문자가 생성한 기운이 팔을 따라 휘돌았다. 오른쪽 팔 전체가 빛에 휩싸이자, 앨런이 팔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한계까지 집약된 마력이 손바닥을 따라 지면으로 흘러 들어갔다. 앨런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닮은 균열이 퍼져나갔다.

“왔어! 왔다고!”

너무 급해서 존댓말도 잊은 케이든의 음성이 귓바퀴를 강하게 때림과 동시에 지면이 움푹 꺼졌다. 그쪽에만 싱크홀이 생긴 것처럼.

수 미터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자, 비늘 하나하나가 암석을 닮은 길쭉한 몸뚱이가 빠르게 지나갔다. 어찌나 긴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늦게 떨어진 상자는 머리 부분이 지렁이의 푸른 비늘에 스쳤는지 찌그러졌다. 비늘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는 증거였다.

삐-! 삐-!

“꼭 욕설 삐처리한 것 같냐.”

“형제님,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몸통이 보이냐. 얼마나 큰 거야? 잠깐!”

테일러가 위로 손을 뻗으려는 앨런을 황급히 제지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케이든이 토할 듯한 표정을 지은 건 덤이었다.

“삼촌···. 우윽···.”

“말콤 씨는 밖에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죠.”

앨런이 발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위는 지렁이 때문에 못 나가는 상황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면까지 불안하게 흔들렸다.

“아이스틸을 부수려고 주입한 마력이 연쇄 작용을 일으켰나 봅니다.”

“형제님, 그럼 어떻게 됩니까?”

콰직!

“이렇게요.”

앨런이 그 말을 남기는 순간, 지면이 움푹 꺼지며 대각선으로 뚫린 갱도가 나타났다. 당연히 일행은 아래로 미끄러졌다.

“다행히 수직 통로는 아니군요.”

귓가를 스치는 바람과 데굴데굴 구르는 돌들이 화음을 피워내는 도중에도 앨런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한참을 미끄러진 앨런이 드디어 땅에 발을 디뎠다. 파워슈트가 없었다면 두 다리가 부러지고도 남는 충격이 발생했다.

“2백 미터 이상 내려온 것 같네요.”

시바가 토하는 케이든을 달래는 사이, 테일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엠엠코에서 처리했다고 했잖아. 내 말이 맞지?”

“둘 중 하나죠. 다른 개체거나, 아니면 중소기업 사람들을 미끼로 던진 거죠. 갱도의 넓이와 비늘지렁이의 덩치를 비교하면, 후자에 무게가 실립니다.”

“100%지. 어쩐지 보상을 빠르게 준다 했다. 원래 그런 놈들은 끌고 끌어서 진을 쏙 뺀 후에야 선심 쓰듯 툭 던져주거든.”

“왜 미끼로 던졌을까요?”

“시간이 필요한 일이 있겠지. 뻔해.”

“일단 저 위로 올라가려면···.”

쿠르릉!

비늘지렁이가 움직일 때와 유사한 소리가 위에서 계속 들렸다. 아직도 난동을 부린다는 의미였다.

“저렇게 움직이면 갱도가 무너질 테니 지금 당장은 힘들겠네요.”

앨런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탈길을 따라 암석과 토사가 흘러내렸다.

“일단 다른 길을 찾아보죠.”

“여기는 자연 동굴인가?”

“그런 것 같아요.”

앨런과 테일러가 대책을 이야기하는 사이, 케이든이 숨을 헐떡이며 다가왔다.

“저만 힘드나요? 숨을 쉬기가 힘듭니다.”

“여기는 산소가 희박하겠지. 아, 미궁이 아니니 우리 몸도 걱정해야겠구나. 그런데 산소호흡기 하나쯤은 가지고 다니지 않나?”

“채광기에 놓고 내려서···.”

상황을 파악한 앨런이 상자 내부에서 마스크를 꺼냈다. 식물을 엮어 만든 외형이 돋보였다.

“이거 하나씩 쓰세요. 자체적으로 산소를 발생해주는 기능이 있어요.”

“일회용 새 부리 마스크 같은데.”

“식물만 멀쩡하면 일회용은 아니죠. 수분은 대기나 호흡에서 챙기니 따로 물줄 필요도 없어요. 흐물흐물해지거나 녹색이 옅어지면 마력을 조금씩 불어넣으면 됩니다.”

“너는?”

“파워슈트에는 재호흡기 기능이 있고···.”

잠시 말을 멈춘 앨런이 바이저를 올리자 방독 마스크가 보였다. 필터 역시 식물로 만든 티가 났다.

“전 원래 마스크 쓰고 다녔습니다. 아저씨가 쓴 것보다 성능이 훨씬 좋죠.”

앨런은 말을 마치고 걸음을 내디뎠다. 파워슈트가 내뿜는 빛이 동굴의 어둠을 밀어냈다.

< 갱도(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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