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갱도(2) >
말콤은 트럭 운전석에 앉아서 침침한 눈을 비볐다. 생물로서의 눈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인공 안구가 노후화된 탓이다.
차 내부에만 있으니 갑갑하게 느껴져서 아예 밖으로 나왔다. 노천 광산은 아이스틸 특유의 마력이 가득해서 다른 곳보다 서늘하고, 공기가 달게 느껴졌다.
‘젊은 마법공학자 덕분에 크게 벌었으니 이번 기회에 바꿔야겠어.’
사정이 안 좋아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 지경까지 왔다. 당연히 케이든은 몰랐다. 알았다면 시술이 우선이라고 성화를 부렸을 테고, 그랬다면 용병 고용도 물 건너가고 빚에 허덕이고 있었을 것이다.
말콤은 암석 혹은 흙으로 이루어진 길 끄트머리에 서서 전체를 훑어봤다. 나선을 그리며 아래로 파고 내려간 노천 광산은 조금씩 그 형태가 변하고 있었다.
‘이것 또한 사람의 힘이지.’
숲 한가운데에 만들어진 광산은 어찌 보면 흉하고, 동떨어진 모습이기도 하지만, 말콤은 거기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뻑뻑한 인공 안구를 최대한 움직여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흐린 시야로도 저 아래에 사람이 많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검은색 계통의 옷과 묵직한 장비. 무력부대 같군.’
엠엠코 직원을 호위하러 왔다기엔 숫자가 좀 많았다. 게다가 보호가 목적이었다면 호수 근처에 뭉쳐있을 이유도 없었다.
흐린 눈으로 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느껴졌다. 몇몇은 장비를 갖추더니 아이스틸이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로 뛰어들기도 했다.
너무 멀어서 조약돌이 빠지는 듯한 형상으로 착각할 만했지만, 말콤의 뇌는 흐린 형상마저 뚜렷하게 인식했다.
마력으로 가득한 호수는 특이한 수생식물이나 어류, 물질 등 쓸만한 자원을 품고 있었다. 말콤도 이곳에 일을 하러 오면 가끔 보던 광경이지만.
‘왜 저렇게 많이 들어가지?’
물론 대기업의 행사에는 관심을 주지 않는 게 최고였다. 괜한 호기심으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면 사업에 차질이 생길지도 몰랐다.
혹사했더니 인공 안구에서 끼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말콤이 눈두덩을 비비고 있으니, 뒤에서 돌조각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눈이 이상해도 이 거리에서는 그가 누군지 확인할 수 있었다. 광부 역할을 맡은 사람들과 함께 들어갔던 엠엠코 직원이었다.
‘왜 혼자지? 다른 사람들은?’
말콤이 의문을 해결하려고 다가갔으나, 직원은 뒤도 안 보고 차에 탑승해서 저 아래로 향했다.
울퉁불퉁한 지면 때문에 밑부분이 긁혀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급하면 그냥 여기에서 바지를 까지.”
“어허, 그럼 누가 치우라고? 그리고 사내새끼 엉덩이를 내가 왜 봐야 하는데?”
“난 좋은데.”
“뭐?”
근처에서 대기하던 운전사들의 농담이 말콤의 귀를 어지럽혔다.
한동안 서 있었더니 무릎이 아파져서 차로 향했다. 젊었을 적에 당한 사고의 여파는 아직도 그의 몸에 기생하고 있었다.
말콤이 트럭의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쿠구궁!
노천 광산이 크게 흔들렸다.
“으아!”
“미친! 뭔데?”
사나운 진동에 놀란 사람들이 머리를 가리며 절벽 근처에서 멀어졌다.
소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말콤은 진동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장소를 포착했다.
‘갱도!’
조카, 케이든이 들어간 갱도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돌조각이 우수수 떨어지고, 튼튼한 지지대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언뜻 보이는 거대한 물체. 갱도를 꽉 채운 무언가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말콤의 눈이 아무리 흐릿해도 저 존재가 무엇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비늘지렁이···.’
이 근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존재였다. 광부가 몬스터 재해에 당한다면 십중팔구는 저 녀석의 소행이었다.
차를 타고 있으면 액셀을 밟으며 여유롭게 따돌릴 수 있지만, 맨몸으로, 그것도 갱도 내부에서 만나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똑같은 장면을 포착한 운전사들이 도망치고 있었지만, 말콤은 반대로 움직였다.
“안 돼! 케이든!”
사고로 먼저 떠난 형이 남겨둔 조카였다. 그때 운전했던 자신을 보고도 원망의 낌새조차 보이지 않던 착한 아이였다.
말콤이 손을 뻗어보지만, 그의 아픈 다리로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갱도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나마 안면 있는 운전사 하나가 말콤의 팔을 붙잡고 뒤로 당겼다.
“형님! 미쳤수? 달아나야지! 놈한테 전부 잡아먹혔을 거요. 아니면 깔려 죽었거나.”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건장한 운전사가 함께 흔들릴 정도로 말콤의 몸부림은 거셌다. 그렇다가 풀썩 주저앉는 순간, 진동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배가 부른 모양이구만. 한숨 돌렸군.”
“케이든···.”
아직 떠나지 않은 혹은 못 한 운전사들이 상황을 살폈다. 바닥에 주저앉은 말콤은 손바닥을 울리는 약한 진동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자 저 위에서 수송 전술 차량 무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말콤은 차 하나의 유리창 너머로 어떤 인영을 목격했다.
스티븐 대령. 엠엠코가 아이스틸 광산에 파견한 무력부대를 이끄는 대장이었다.
짧게 깎은 머리에 언뜻 보이는 하얀색, 깊고 고집스러운 주름이 인상적이었다. 목 위로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매우 많지만, 그 아래로는 비대하고 튼튼한 육체가 존재했다.
동방대륙에 이런 말이 있다. 노인과 여자, 어린아이를 조심하라고. 괜히 노인이 그 자리에 끼어 있는 게 아니었다.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에서 살아남아 노인이 되었다? 특출난 점이 하나는 있다는 의미였다.
평소의 말콤이라면 최대한 멀리하려고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소중한 조카, 케이든이 저 아래에 묻혀있었다.
아픈 다리로 어떻게 가능할까 싶은 속도로 달려갔다. 말콤 때문에 차를 멈춘 부대원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죽고 싶으면 저 아래로 뛰어내리지 왜 차에 뛰어들어? 재수가 없으려니.”
말콤은 그 말을 무시하며 조수석으로 향했다. 스티븐 대령의 서늘한 눈동자가 자신에게 향해도 꾹 참으면서.
“대령, 갱도가···.”
“우리도 알고 있소. 처리했는데 다른 놈이 왔나 보군.”
“조카···.”
말콤이 내뱉는 단어는 흐느낌과 섞여서 뭉개졌지만, 스티븐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안타까운 일이오. 복수는 해줄 테니 돌아가시오. 녀석을 처리하고 보상안을 의논할 직원을 보내주겠소. 광산은 다시 폐쇄한다.”
그가 말을 마치고 창문을 올리자, 전술차량 한 대에서 내린 무력부대원들이 사람들을 광산 밖으로 인도했다.
지인을 잃은 사람의 곡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도중에도 부대원들은 기계처럼 행동했다.
스티븐이 팔짱을 끼고 호수를 쳐다봤다. 방금 부하 하나가 뛰어들었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뒤에서 부하의 발소리가 들려도 계속 호수만 쳐다봤다.
“대령님, 모두 내보냈습니다. 광산에는 우리 측 인원만 있습니다.”
“녀석은?”
“저번과 이번 일로 충분히 배가 불렀을 테니 자극하지 않는다면 한 달은 얌전하리란 말을 박사가 전하라 했습니다.”
“그래야지. 탐색조, 전원 입수한다.”
“전원 입수!”
잠수장비를 갖춘 부하들이 호수 아래로 들어가고, 대령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
앨런은 이동하며 동굴 벽을 살피다가 테일러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테일러는 비늘지렁이와 연관 없는 삶을 살았어도, 수십 년 동안 쌓인 탐험가 경험 덕분에 탐색 능력이 뛰어났다.
“지렁이가 설마 여기에도 나타나나? 이거 녀석들 흔적이잖아.”
“맞아요, 비늘을 지면에 문지른 자국이에요.”
“말이 씨가 된다더니.”
“바닥이나 벽에 자국들 보이죠? 비늘지렁이의 비늘이 스치며 생성된 흔적입니다. 크기로 보아하니 그렇게 큰 녀석들은 아니네요.”
“아, 그래?”
“10m 정도?”
“그게 작니?”
“아까 봤던 녀석의 길이는 아마 100m가 넘었을걸요. 폭이 15m였으니 길이는 150m 이상?”
“미친···. 땅속에 처먹을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커져? 잠깐, 큰 녀석이 아니라 큰 녀석‘들’이라고?”
“네. 흔적의 형태가 전부 달라요. 저기 보시면···.”
“아냐, 나도 보인다.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르네. 이젠 나도 알겠어.”
두 사람이 떠들고 있으니, 케이든이 시바에게 조용히 물었다.
“뭐가 보입니까?”
“형제님은 그냥 우리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저분들은 탐험가 그 자체라 일반인과 매우 다릅니다.”
“수도승님도 탐험가잖습니까.”
“저는 1년도 안 된 초보라서···, 아, 앨런 형제님도 마찬가지 군요.”
“정말입니까? 뇌를 젊은 몸에 집어넣은 마법사인 줄 알았습니다.”
“진심입니까?”
“농담입니다.”
“사실 저도 가끔 그렇게 느끼긴 합니다.”
동굴은 소리가 빠져나갈 공간이 제한적이어서, 작게 중얼거려도 은은하게 퍼졌다. 앨런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지만, 당연히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비늘지렁이가 남긴 흔적을 살피다가 손을 내밀었다.
“마나소드와 권갑을 주세요.”
“왜?”
“혹시 모르니 룬문자를 새겨두려고 합니다. 이 근방에 서식하는 비늘지렁이는 아이스틸을 먹고 자라서 외피도 비슷한 구조거든요. 다른 무기에는 큰 저항력을 가지겠지만, 제 연구를 토대로 룬문자를 입력하면 더욱 효율적으로 처치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원리가 어떻게 되냐면 차가운 마력을 밀어···.”
“앨런, 지금은 긴급 상황이니 빠른 조치 부탁한다.”
테일러가 마나소드를 적절한 시기에 내밀며 말을 끊어냈다. 앨런은 다음을 기약하며 룬펜을 집어 들었다.
아까 지면을 부술 때와 똑같은 룬문자가 새겨졌다. 크기가 작아서 위력도 낮을 테지만, 어차피 무기로 타격을 주려면 힘을 집중해야 하는 법이었다.
앨런이 새긴 룬문자가 서로 연결되면 밝은 빛을 뿜어냈다. 앨런은 영롱한 푸른빛에 시선을 빼앗겼다.
“참 아름다운 현상이에요.”
“그래? 내가 볼 때는 똑같은데.”
“아뇨. 룬문자마다 명도와 채도가 달라요. 어떤 차이점이 있냐면···.”
“적이다!”
테일러는 갑작스레 나타난 비늘지렁이가 정말 반가웠다. 심적으로는 뽀뽀라도 해주고 싶지만, 실제로는 공격만이 그들을 위한 선물이었다.
자칭 치료사인 시바는 케이든을 앨런 옆에 놔두고 돌진했다. 울퉁불퉁한 바닥과 삐죽 솟은 기둥 위를 통통 튀었다.
“와.”
케이든이 감탄을 내뱉는 사이, 위로 솟구친 시바가 몸을 최대한 움츠리며 공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속도를 이용해서 낙석처럼 추락했다.
콰직!
아무리 빠르게 회전했어도 타격의 순간에는 권갑이 정확히 비늘을 강타했다. 탱탱볼처럼 다시 튕겨 나오고, 다시 부딪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섬뜩한 소리가 들리고, 비늘지렁이의 몸이 깨졌다. 문자 그대로 비늘이 박살 나며 우수수 떨어졌다.
테일러가 선보이는 장면은 그와 달랐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손잡이 말고는 무게가 없는 마나소드는 손목의 움직임만으로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거기에 앨런의 강화까지 더해지니, 비늘지렁이를 거의 채소처럼 썰어댔다.
깍둑썰기를 당한 무처럼 비늘지렁이의 몸통이 조각조각 분해되었다. 녀석이 자랑하는 비늘은 빛으로 이루어진 검날 앞에서 굉장히 무력했다.
“굉장합니다.”
케이든이 입만 벌렸다. 새로 고용한 용병의 전투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테일러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앨런 씨의 기술은 정말 대단하군요.”
테일러가 얼굴 근육을 스트레칭하는 척을 했다.
이번에 나타난 비늘지렁이는 길이 5m의 비교적 작은 개체들이었다. 저번의 녀석을 생각하면 새끼라 생각해도 될 덩치였다.
“앨런, 이거 먹을 수 있니?”
“잠깐만요. 진짜 드시게요?”
케이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챙겨온 휴대식량이 있으면 굳이 입에 댈 필요 없지. 있냐? 우리는 보존식이 있긴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최대한 아껴야 해.”
“없습니다···.”
케이든이 물러나고, 앨런이 나섰다.
“흙 맛 나는 문제만 빼면 먹을 수는 있습니다. 다만, 암석과 광물을 먹는 녀석이라 중금속을 조심해야 합니다.”
휴식 시간이 되었다. 테일러는 가져온 살점을 어떻게 맛있게 먹을지 연구했고, 앨런은 거미들을 사방으로 풀어서 정찰을 시작했다.
“이렇게 구워서 후추를 뿌리면 냄새는 잡을 수 있겠지.”
“형제님, 후추통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테일러가 상자를 가리켰다.
“마석 주면 보관해주더라고.”
삐-!
상자가 주인의 눈치를 보는 사이, 앨런이 눈을 번쩍 떴다. 상자가 뭘 하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입을 열었다.
“사람의 흔적이 있네요.”
“동굴 탐험가라도 다녀갔나?”
“아뇨. 최근에 생겼어요. 꽤 다수의 흔적이네요.”
< 갱도(2) > 끝